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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표정관리 - 2009.08.06

여적./  표정관리.

 

얼굴에는 80여개의 근육이 있고 이 근육들로 지을 수 있는 표정이 7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화낼 때는 53개, 웃을 때 13개의 근육이 쓰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근육들을 조합해 무표정, 우는 표정, 놀란 표정, 비웃는 표정, 한심하다는 표정, 배고픈 표정, 고독한 표정 등 무궁무진한 표정들을 짓는다. 그러고 보면 호모 사피엔스, 호모 에코노미쿠스, 호모 루덴스는 표정의 동물이기도 하다. 이 표정짓기에 뛰어난 사람들이 배우가 되는 것일 게다.

표정관리란 말을 종종 쓴다. 비단 연기를 업으로 하는 배우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표정을 관리한다. 그래야 할 때가 많다. 경조사 때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짓는 것도 표정관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표정관리가 작동하는 것은 사생활보다는 공적 생활 영역에서다. 정치인들은 표정관리에 능하다. 타고 나서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표정관리가 표 관리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혹 국회에서 철면피한 모습을 드러내며 표정관리를 포기한 듯한 의원들에게도 나름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다. 내심 그게 진짜 표정관리이며 표 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표정관리는 국제협상이나 사업에서도 즐겨 동원된다. 협상전문가 로저 도슨은 <협상의 심리학>에서 “유능한 협상가는 상대가 이겼다고 생각하며 협상을 마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려면 표정관리도 중요한 요소다. 표정관리라고 하면 좋은 인상을 풍기기 위해 항상 웃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는 “서양인과 상담할 때 헤프게 웃으면 안된다. 우리는 협상할 때 웃는 게 호의라고 여기지만 비즈니스를 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서양인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징표’라고 오해한다”고 충고한다. 표정관리도 시소에 따라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 방문 중 보인 표정관리가 자못 눈길을 끌었다. 기념촬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활짝 웃는데 클린턴 전 대통령은 대비가 될 정도로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김정일은 북·미관계 돌파구의 기대에 차 있는 반면 방북 목적이 억류 자국민 석방인 클린턴은 입장이 달랐다. 하지만 “절대 웃지 말 것, 웃더라도 활짝 웃지 말 것”이란 북한 방문 고위급 인사들의 불문율을 클린턴이 지킨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철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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