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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에도 성과급을 줘라 - 경향100208

일본인들에게 렉서스(Lexus)는 ‘럭셔리(Lexury, 고급스러움)’와 ‘렉스(Lex, 기준)’의 합성어가 아닌 ‘렛츠 고 투 더 유에스에이(Let’s go to the USA)’로 통한다. 렉서스는 도요타가 일본 차란 냄새를 탈색하며 미국 진출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만든 전략 차종이다. 효과는 대단했다. 미국 차의 잦은 고장에 화가 나 있던 미국인들은 렉서스에 빠졌다. 포드·GM을 제치고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도요타는 탄탄대로였다.

지난 1일 렉서스를 타고 가던 미국 경찰관 일가족이 911에 급박하게 구조를 요청한 통화녹음이 공개됐다. “렉서스 안에 있다. 액셀러레이터가 끼어 움직이지 않는다.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는다. 교차로가 눈 앞인데, 제발, 제발…” 충돌음이 들리고 전화는 끊겼다. 통화 내용은 캠리 등 도요타 차의 결함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결국 1000만대 가까운 차량이 리콜됐다. 최근에는 친환경차의 대명사인 프리우스의 결함 은폐까지 드러났다.

도요타의 탄탄대로는 순식간에 절벽으로 바뀌었다. ‘품질 최우선’의 도요타가 ‘결함투성이’로 뒤바뀐 최대 원인은 생산원가의 절감만을 추구하다 품질관리를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으로 요약된다. 자동차의 부품이 2만여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얘기다. 그럼에도 이 얘기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하청업체 ‘무늬만 상생’

한국은 어떨까. 대기업들은 최근들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부쩍 강조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상생 정도가 좋아졌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무늬만 상생’으로 압축된다. 하청업체들에 대기업은 여전히 ‘갑(甲)’이고, ‘주(主)’이다. 지난해 수출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구가했다. 그러나 상당수 하청업체들은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됐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채산성이 악화됐지만 납품단가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어음결제 기간도 늘어났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가격인하 싸움으로 죽어나는 곳이 하청업체라는 것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얘기다.

이런 대기업들은 최근 자사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어떤 곳은 1조원대를 풀었고, 또다른 어떤 대기업은 노사 협의를 통해 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기업이 성과물을 임직원과 나누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실의 상당부분이 하청업체의 눈물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의 상당수는 대기업들의 성과급 잔치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한 하청업체 직원은 “가격 경쟁력 제고가 살 길이라며 납품단가 인하를 재촉할 때는 언제고, 과실이 생기면 그들만 독식한다”며 씁쓸해했다.

대기업이 이익 분배 원칙을 정해 하청업체에 온기를 나눠준다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장점은 꽤나 많다. 자동차업체의 경우 도요타 사태 후폭풍을 염려해 품질의 중요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신뢰 형성은 그 자체만으로 커다란 경쟁력이다.

이익 분배하면 상호 시너지 효과

국가적 과제인 고용문제와 중소기업 육성에도 상당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온기가 하청업체로 옮겨 간다면 대기업 일변도의 취업관이 바뀔 수 있다. 구직, 구인의 미스매칭 현상도 누그러진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지면 한국 경제의 체력은 그만큼 강해진다. 대기업만 성큼성큼 가고, 중소기업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은 의미가 없다.

중소기업 육성은 해묵은 과제다. 역대 정부도 말만 해왔지 실제로 진지하게 육성한 적은 없다. 1인당 GDP가 10년 이상 2만달러 언저리에 있는 것은 중소기업 육성이 동반되지 않은 결과라고 얘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상생의 토양 마련은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하다. 성과 공유는 상생의 첫 단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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