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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 한겨레 2006-03-22

프랑스의 100만 시위를 바라보며


   경찰 추산 50만, 시위대 측 추산 150만, 지난 토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최초고용계약법(CPE) 반대 시위 참가자의 숫자입니다. 정확한 시위 참가자를 가늠하는 방법은 두 숫자의 산술평균을 내는 것입니다. 즉, 100만이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를 벌인 것으로 보면 비교적 정확합니다. 100만이든, 150만이든, 대규모 시위라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관찰자 중에는 이번 시위를 가리켜 68년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68년 학생혁명에선 일자리가 보장된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뭉쳐 혁명적 국면을 형성했다면, 이번 시위는 고용 불안에 처한 젊은 세대들이 주변부를 밀려나지 않을까 라는 불안이 그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68년 혁명이 ‘사회를 바꾸자!’라는 구호에 있었다면, 이번 시위는 ‘사회 안으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작년 11월에 있었던 이주노동자 2세들의 소요 사태는 주변부로 밀려난 계층의 〈절망〉에 이른 사회적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면, 이번 시위는 중간계층이 주변부를 밀려나지 않을 것인가 라는 〈불안〉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 시위는 68년 혁명보다는 95년 11월-12월에 있었던 노동자 대파업 때와 견주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95년이나 이번이나 집권 우파세력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법안을 관철하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 만나고, 법안을 밀어붙였거나 밀어붙이고 있는 총리가 차기 대통령 선거의 후보감이라는 점에서도 서로 만납니다. 95년에 집권우파세력은 공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연금체계를 하향 조정한 쥐뻬(당시 총리 이름)법안을 밀어붙이려다 노동자, 학생 등 프랑스 시민사회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당시 프랑스 철도와 지하철은 3주간 멈췄습니다. - 결국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음 총선에서 좌파에 패배하여 정권을 내주게 됩니다. 우파가 95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으로도 저는 이번 시위를 68혁명보다는 95년 대파업 국면과 연결짓게 됩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회를 들끓게 만든 최초고용계약법이란 무엇일까요? 가장 문제된 것은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최초로 고용하는 경우 2년 이내에는 동기 없이도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25세 미만의 실업률이 24%에 달하고 있는 청년실업문제를 극복 방안으로 집권 우파세력이 강력한 노동유연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항의 시위는 예비당사자들인 대학생,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학부모단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과반의 대학교가 봉쇄되었고 이 물결은 고등학교에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드 빌팽 총리는 아직 법안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학생들과 노동조합은 3월23일과 3월28일에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랑스의 대규모 시위를 접하면서 우리의 현실, 특히 비정규직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법안은 2년 계약기간 동안에는 사용자 임의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유연성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프랑스와 같습니다. 프랑스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최초 고용할 때뿐만 아니라 아무 때나 2년 고용계약을 할 수 있고 2년 계약기간 안에는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중대한 차이가 있음에도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인 곳은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입니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법안이 2월27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는데도 별다른 저항과 분노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일부 노동자들의 투쟁은 확산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자신들을 향한 악법에도 불구하고 노학연대를 보여주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한국과 다릅니다. 전통도 다르고 산업구조도 다르고 역사과정도 다릅니다. 비정규직이 60%에 이르는 한국과 달리, 20%대에 지나지 않는데 그들 대부분은 자발적이거나 13개월까지 허용되는 시험기간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언론도 다릅니다.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때마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를 앵무새처럼 써대는 신문이 주류신문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런 신문을 찾는 시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르몽드는 21일치 사설에서 드 빌팽 총리에게 법안을 철회하거나 유보할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고시공부, 토익공부, 학점공부로 ‘나만의 계층상승’으로 돌파하려는 생각보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라는 근대 공화국의 시민의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국민의 60% 이상이 법안 철회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시민사회의 반응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월에 통과시키려고 하는 비정규직법안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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