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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실컷 다 써놓고 글을 날려버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ㅡ.ㅡ

뭘 잘못 눌렀길래... 하여간 다시...

 

#1. 투표율

 

코로나유행 때문에 선거가 제대로 될 수는 있을까, 투표율이 바닥이면 어쩌나 은근 걱정했는데 다들 그런 걱정을 한 것인지 오히려 예년보다 투표율이 더 높았다.  도통 바깥 나들이를 하기 어렵다보니, 나라가 허용해준 기회에 모처럼 나들이해보자는 심사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도 사전투표하러 갔다가 사람 너무 많아서 깜놀 ㅡ.ㅡ  마감 시간 다가와서 투표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기까지...

'적당히'를 모르는 민족의 근성이 여기서도 발휘된 것인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간에, 도저히 저꼴은 못봐주겠다, 이건 막아야한다는 절박함을 각자 품었던 게 주요 이유가 아니었을까.  내가 투표 안하면 저놈들이 이긴다, 그건 눈뜨고 볼 수 없다... 이런 마음?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이나 민주당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되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파렴치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쇠파이프 움켜쥐고 민주주의 투사인양 목에 핏대를 세우는 나경원의 모습을 더이상, 네버 앤 에버, 보고 싶지 않았다. 이건 뭐 이념이나 개별 정책에 대한 동의/부동의 같은 품격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2. 위성정당과 민주당, 진보정당

 

내 블로그는 소중하니까, 여기에 쌍욕을 쓰지는 않겠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무짓이나 해도 되고, 그래서 했고,  심지어 그랬더니 실제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했다. 민주주의 역사에 참으로 아름다운 교훈을 남겨주셨다. 쟤네들이 하는데 우리는 그럼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거냐고 항변하는데,  이거야말로 정의당을 비롯한 소위 '우군' 시민사회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 아니고 뭐겠나. 너네한테 사정하고 달래가면서, 듣기싫은 욕먹어가면서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아, 그런 노력 따위 하고 싶지 않다구. 따라올테면 따라와... 요런 마음?

그런데 이게 어떤 개인의 '마음'이라면야 뭐 어쩔 도리가 있겠나,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보호받아야지. 그런데 집권여당이 이런 정치적 스탠스를 보인다면, 이게 도대체 의회 민주주의인가??? 또라이에는 또라이로 맞서는 바닥으로의 경쟁이라니.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코어팬덤 전사들의 결기야 내가 공감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으나, 이런 방식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후 승인하는데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들의 불편한 마음에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87년 이후 유구한 '비판적 지지론'에서 이제는 '비판적' 마저 떼어버리고, 심지어 심상정, 이정미 의원 지역구에마저 떡하니 공천을 해대는 패권주의에 이제 넌더리가 난다. 수구보수 일파보다 우리 민주당 앞길에서 딴지 걸었던 정의당이 더 밉다고 온라인에서 떠드는 이들을 보면, 과연 어떤 대목에서 딴지를, 그리고 왜 걸었는지 확인 좀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합리적 대화는 어차피 불가능.

 

물론 정의당에 대한 심경도 복잡하다. NL 그룹이 대중적 진보정당을 '본사'의 지령을 받는 허수아비로 만들어가는 꼴 보기 싥어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거쳐 가만히 있다보니 노동당원 되었다가, 여기도 또다른 본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기도 안 찬 사실에 탄복하여 탈당한 이래 아직까지 당적이 없다. 정의당으로 표상되는 진보정당 존재의 정당성을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여전히 당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의당보다 더 처참한 것은 녹색당이다. 그나마 정의당은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남았지만, 대체 녹색당은 왜 그런 악수를.. ㅜ.ㅜ  쉽지는 않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후일이라도 도모할 수 있는 것 같다.

 

#3. 자기효능감 대잔치

 

선거 다음날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인터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졌다. 왜, 기왕이면 트렌치코트 입고 성냥개비라도 물고 인터뷰하지... 자기효능감이 아주 만랩이로구나.

다들 킹 메이커 놀이. 정치 막후/배후 조정 놀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조심성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것 같다. 칩거하던 모사가 선거 국면에 홀연히 중원무림에 나타나 기가 막힌 용병술을 발휘하여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이제 혈겁을 뒤로 하고 내 역할은 여기까지오. 윙크 한 번 하고 쿨 하게 돌아서서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서사를 내가 왜 "무려 21세기" 선거에서 봐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석양으로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소오강호 가락이 어울릴까나, 아니면 영웅본색의 테마OST가 흐르는게 더어울릴까나 그런게 궁금해졌지. 

민주연구원은 원래도 당의 정책 씽크탱크 역할을 전혀 못해왔지만, 이제 공식적으로도 그냥 선거공학 일삼는 아재들의 살롱으로 확정. 비례후보들도 누구를 대표하고 어떤 배태성을 갖는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저 신출귀몰한 플레이어들의 용병술을 믿어볼 밖에. 다음 선거 때도 다시금 홀연히 등장하여 작전을 지휘해주실테니, 그동안 비전이고 정책이고, 시민사회연대나 지역운동 모두 쓸데 없는 낭비적 투자 되시겠다.

 

미래당은 선거 전날까지 본인이 맡은 당 이름도 모르는 분한테 선거캠프를 이끌도록 했으니 더 할 말도 없다만, 위기에 짠 하고 등장하여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그런 근자감 나도 진정 배우고 싶었다. 한국 남자들에게 삼국지 금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잠깐 들었던 것이, 다들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는 와룡에게 자기동일시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단 말이지. 

그런가하면 아무런 정책도, 작전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고 세 석을 가져온 안철수의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은 앞으로 또 어쩔 것인가?

 

#4. 코호트효과

 

당분간 선거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심층분석이 나오겠지만,

장기적 추세에서는 상당 기간 미래통합당(aka. 자유당,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등)이 우세를 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나의 짐작. 물론 대선에서 어떤 카리스마적 인물이 출현하거나 선거 국면에서 이변이 속출할 가능성이야 상존하기에 장담이야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전에 호프스테드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연령 효과는 대개  Power Distance 가 높은 국가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미국과 유럽에서의 68세대, 일본의 전공투 세대들을 보면 이후 나이가 들어서도 후속 세대보다 계속 일관되게 리버럴한 것이 특징인데, 이를 power distance 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코호트 효과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권력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권력에 닿기를 애타게 소망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잠재력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ㅋㅋ

현재 50대는 20년 전의 50대와 역사적 경험이 전혀 다르고,

이제 50대에 접어들게 되는 70년대 출생인간들은 그 이전과도 또 다른 망나니세대 ㅋㅋ 그 유명한 엑스세대, 신세대인데다 교복과 두발 자유화, 과외도 없이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내고 90년대 대중문화의 전성기를 향유하며 온갖 리버럴 짓은 다 해본 이들 아닌가. 이들은 사회조사에서 나이가 들어도 진보적인 견해에 동의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계속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이후 금융위기를 비롯하여 사회경제적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사회경제적/계급적 이슈에 대해서는 본인의 계급 위치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최소한 이념적이거나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꼴통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짐작한다. 너무 낙후하고 너무 후지기 때문.

예컨대 유승민이나 이혜훈처럼 그래도 좀 제정신으로 말하는 것같은 보수주의자들이 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는 글쎄올시다. 게다가 이 두사람조차, 처음에는 좀 멀쩡한가 했으나 들여다보니 그것도 아니어서 ㅋㅋㅋ 그 똑똑하다는 KDI 경제학 박사도 동성애자 이슈 앞에서는 하느님의 순한 양이더라구 ㅋㅋㅋ

 

장기적 전망이 그렇다는 거지, 격변이 잦은 한국사회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마음이 획 돌아살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숙한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계급적 이슈들이 전면에 부각되었을 때는 코호트 효과고 뭐고 사라지는 거지 뭐. 뿐만 아니라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우리 20대 XY 인구집단......  아...... 할많하않...

 

그나저나 21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마침내 달성했으니 그동안 힘없어서 못한다고 엄살피우던 여러 가지 개혁조치들, 차별금지법 입법, 52시간제 유예와 탄력근로제 확대 중단, 부양의무제 철폐, 공공병원 확대, 젠더폭력 처벌강화 등등의 의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두고 볼 일이다. 공수처나 검찰개혁, 사법농단 재발방지 같은 이슈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엘리트그룹 분파 내에서 알아서 필사적으로 싸울테니 굳이 나까지 걱정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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