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남은 브라질 이야기

오늘은 Heleno 아자씨 부부가 상 파울루 도심과 외곽의 해변 (Santos) 구경을 시켜줬음.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듣고 맛난 것도 먹고 (문어 요리 진짜 맛있더라)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고....  어찌나 고맙던지...

 

0. 관용의 사회

 

브라질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고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음...

아니, 보수적인 사회가 그렇게 광란의 삼바 축제를 벌이고 노동자당에게 권력을 준단 말여? 말도 안 돼...ㅡ.ㅡ

 

나는 여기 브라질 사회가 "태생적으로" 개방적이고 뭐든지 다 허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라니... 좀 뜻밖이었음. 이를테면 불과 두 세대 전만 해도 윗사람에 대한 존칭을 깍듯하게 써야 했단다. 아직도 Helono 아버님께서는 손녀딸이 "you" 라고 부르는 거에 적응을 못 하고 계신다고....

 

60년대-70년대 거대한 사회운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한 거란다.

 

몇 가지 놀라운 이야기들... 

 

Heleno 딸이 보건부의 국제협력 부서에서 (주로 에이즈 관련하여) 일하고 있는데, 거기 국장이 트렌스젠더란다. 외모만 봐도 뚜렷이 분간이 가서, 국제 회의라도 가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좀 당황해한다고...

한국 사회에 트렌스젠더 공무원? 아... 도대체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아직도 성정체성이나 지향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은 상당하고 게이들을 향한 노골적인 폭력도 아직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단다.)

 

그 뿐이랴.

2년 전에 성노동자를 "직업" 분류 코드(!)에 포함시키고 합법화시켰단다.

그 때도 난리가 나기는 했단다.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려고 모두 성매매에 나설 것이라는 둥,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둥... 하지만 합법화시켰다고 성노동자가 절대 늘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들이 건강보험이나 노동안전보건의 공식 영역에 포함되면서 오히려 HIv 감염 같은 건강 문제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오늘 방문한 Santos 시는 몇 년 전에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마약 중독자를 위한 무료 주사기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이 때도 생 난리 발생... 마약 사용을 장려한다는 둥 어짼다는 둥.. 심지어 법원에서 이 정책을 취소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단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 운동이 벌어졌고 이를 뚝심있게 추진했던 당시 시 보건국장은 다음 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되기까지 했단다.... 오호... 놀라워 놀라워....

 

이 부부는 지난 주에 브라질에서 열린 아프리카 코커스를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 지역(동네 이름 까먹음. 포루투기즈 이름 너무 어려워.. ㅜ.ㅜ)이 전통적으로 노예노동의 중심이었고 현재도 흑인 인구가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지역인데.. 이 곳에서 50여개국의 아프리카 대표들이 모여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과 브라질의 지원을 협의했단다. 더구나 딸이 거기서 연설까지 했다고... (지금 나이가 스물 여덟밖에 안 되었다는디...)

 

 



0. "선진국 vs 후진국" 고정관념

 

스스로 국제주의자라고 굳게 믿고는 있지만 깊숙한 고정관념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워낙 국제표준은 미국, 유럽, 혹은 일본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온데다 소식과 정보들도 여기 집중되어 있어 다른 국가들 사정에 어둡고 은근 우리보다 뒤쳐저 있을 것으로 부지불식간에 가정...

브라질 경우가 특히 그런 거 같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 사회는 세대간 단절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니까 여기도 70년대까지 그랬다고....  모든 권위에 대한 부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하는 문화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거의 문제가 안 된단다.

 

한국에서 사회운동, 특히 학생운동의 퇴조가 뚜렷하다고 이야기하니까, 여기도 70-80년대 강력한 운동 시기가 지난 후 90년대 그런 위기를 거쳤지만 다시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단다. 여기에는 국내외 정세를 포함한 사회적 조건의 변화도 큰 역할을 했지만 사회 운동에 열심이었던 부모 세대의 교육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단다.

 

여기도 전국민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는데 (오래 되지는 않았다고.. 역시 저항 장난 아니었다 함), 혹시 빈곤층을 위한 별도의 부조프로그램 (의료급여, 혹은 메디케이드 같은)은 없냐고 물어보니까, 그게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하면 그 시스템은 분명 후질 것이고, 건강은 모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연대의 정신으로 단일한 프로그램에 통합되는게 당연하다는... (지당하신 말씀이오!!!)

 

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가 워낙 사회의학 (social medicine)의 전통이 강하다고 잘 알려져있기는 한데...

학회 하면 전국에서 8천명이 모인단다. 8천명... ㅡ.ㅡ

그리고 모든 학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국공립 대학의 경우 강력한 지역사회 의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슷한 근대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보니, 사회 운동이나 변화의 측면에서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고 사회정책에서도 역시 그런게 당연한 건데.. 웬지 브라질이 우리보다 뭔가 "먼저" 경험했다거나 더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니까 그냥 괜히 놀라운....  바보 같이 말야...

 

 

0. 뻬떼(PT) 에 관한 몇 가지 놀라운 사실...

 

세상에 최근까지도 당비를 소득의 1%로 했었단다. ㅜ.ㅜ

이게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교회를 통해 조직화 사업을 하며 굳어진 관행이라고...

근데 웃긴 거는 이게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방안으로 이게 악용되고는 했는데, 이를테면 매달 청구하는 걸 빼먹고 연말에 한꺼번에 청구하면 이걸 감당하기 어려워서 당적을 포기하거나 이런 불성실을 정치적 성실성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삼았다고...

Heleno 도 한 번은 내내 당비 내라는 소리가 없어 까먹고 있다가 연말에 한꺼번에 내라고 해서 거의 차를 팔아야 할 지경이 된 적이 있었단다. 엄청 싸워서 깎았다고... ㅜ.ㅜ

 

당직자들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 물어봤는데, 

작년에 당직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이를테면 정식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안 쓰고 활동가의 헌신성에 근거하여 초과착취를..ㅡ.ㅡ) 파업을 벌였고, 노동부에 진정을 내서 결국 노동자들이 승리한 좀 어이없는 사건도 있었단다.

 

911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PT 출신의 아주 유능한 시장 한 명이 암살되었단다. 아직도 그 정확한 경과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그래서 PT 지지자들에게는 또다른 911 충격으로 기억되고 있단다. Radicals in power 에 소개된 그 사례였구나....

 

아참..

룰라가 노동자로 일하던 젊은 시절...

첫 부인이 출산을 하려고 병원에 갔다가 보험이 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의사한테 쫓겨나서 그 다음날 아이도 부인도 죽었단다 ㅡ.ㅡ 이게 룰라가 보건의료계나 공공병원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깊은 불신을 일부 설명하기도 한다고....

 

0. PT 에 대한 Heleno 부부의 애정과 비판...

 

여기도 의원이나 선출 공직자들이 세비를 받으면 노동자 평균 임금만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당에 귀속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Heleno 는 거기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일단 의원이 된 이상 다른 의원들이나 사회 지배세력들과 접촉이 많아지고 그들의 문화나 질서에 싫던 좋던 참가해야 할 경우들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데, 경제적 제한 때문에 이러한 기회에 제한을 받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더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당한 돈에 대한 유혹도 커지고....

선명성이나 상징성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존 질서 속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에 투자해야하지 않겠냐고..... 음...... 이런 생각은 또 못해봤네...

 

이들 세대가 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가 바로 PT 가 태동하던 시기란다.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당연히" 당 활동을 함께 했고, 20년도 넘게 그 지지와 실질적인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테면 Heleno는 현재 보건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지만 룰라 정부의 Worker's health center 프로그램을 조직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부인 또한 지난 3년간 Hunger zero 프로그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단다.

하지만 이들의 PT 에 대한 비판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 말아야, 해서는 절대 안 될 일들을 PT 가 어떻게 해왔고, 이것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정말 신랄하게 비판하더라. 50대 초반의 부부가.. 밥 먹으면서..... 그러면서 나한테 계속 강조... "우리는 뻬떼를 지지하고, 또 누구보다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정치라는게,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삼아 씹기야 쉽지만,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한편으로 비판적 견해를 유지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번 브라질에서 만난 양반들... 존경스러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