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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컴퓨터 - 수리와 교육을 해볼까 합니다

지각생입니다. 요즘 "빈"자를 앞에 붙여 생계를 도모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 같아서
저도 유행에 편승해볼까 합니다. :)
적당한 이름은 생각중인데 일단 "빈컴" 정도로 할까요.

매달 첫째, 셋째 일요일에 컴퓨터 수리와 교육을 합니다.
단, 수리는 그 주 금요일까지 사전 예약한 것만 하고, 같은 껀은 두 달 안에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즉 고칠때는 그 옆에서 함께 배우는 걸 전제로 합니다.

교육은 자유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위주로 자잘한 컴퓨터 활용 팁을 공유합니다.
제가 항상 가르치는게 아니고 모인 분들끼리 실생활에서 겪은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걸 중심으로 합니다.
물론 원하는 분이 있으면 특정 주제에 대한 심화 학습을 같이할 의향은 있고요.

부품 교체를 하는 경우 외에는 참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없습니다.
다만 빈마을에서 대안화폐 "빈"이 통용된다면 그걸로 받으려 합니다 ^^

4월은 제가 좀 바빠서 정신이 없는데
다른 분들끼리 모여서 한다면 말리기는 커녕 환영이고요.
저는 5월 첫째주 일요일부터 함께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름과 운영 방식, 배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든 의견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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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부] 다음주 화요일 <정치의 전복> 계속 갑니다

이번주 SF읽기의 '영화 < 메트로폴리스 > 함께 보기'는 많은 분들의 무관심과 뒷북으로 나가리됐지만, 빈공부는 계속됩니다. 다음주 화요일에는 < 정치의 전복 > 4장, 5장 읽고 잡담나누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공동체나 자율주의에 관심있는 분들 참가해주시압. < 정치의 전복 > 책은 아랫집이나 윗집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 시간 : 4 14일 화요일 저녁 7
-
장소 : 빈동네 윗집 (연락처 : 070-8234-1982)
-
내용 : < 정치의 전복 > 4장, 5장.
- 참석시 먹거리(간식, , 반찬, 군것질꺼리 등)나 윗집에 주고 싶은 것을 들고 오시면 감사히 받겠슴다.

* 그 다음주 SF 영화 읽기 에서는 본래 책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잡담을 나눌 예정이었지만,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못 봐서 아쉽다는 뒷북이 여기저기에서 둥둥 소리를 울려주셔서, 아래 덧글로 세 분 이상이 영화를 보자고 우겨주신다면 다시 영화 상영으로 순서를 되돌릴까하는 망설임을 할까말까 고민해보려고 검토중입니다.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박박 우겨주세요.

* 이후 일정

- 4월 14일 < 정치의 전복 > 4장과 5장.
- 4월 21일 SF 읽기 세번째 모임 : 책 < 프랑켄슈타인 > (아무 번역본이나 상관없음), 영화를 보자고 우기는 분들이 세 분 이상일 경우에는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볼 예정입니다.
- 4월 28일 <정치의 전복> 7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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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화폐, 노동, 사랑

마르셀 모스에 관한 동영상 강의를 발견하고 슬라이드 자료나 훑어볼까 시작했는데...
정말 재밌다.

대안화폐 논의는 물론 빈집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글들이 꽤 밀도가 있어서 나도 다 못 봤지만, 시간날 때 읽어보시길. 

1번 동영상 강의들은, 십대 라인을 비롯해서 다 같이 쭉 봐도 좋을 듯.
특히 3번 글은 초강추. 꼭 읽어볼 것.


1. 김성례, <마샬 모스를 다시읽기 - 선물경제>

연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주최하는 수요콜로키움 경제인류학은 "사회경제를 위하여"란 타이틀로 진행되며, 2009년 봄학기 강좌이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와 동시에 비디오컨퍼런스를 통해 중계된다

조한혜정, 우석훈, 최재천, 김성례, 박찬웅 씨가 세계경제, 통섭, 마샬 모스, 칼 폴라니 등에 대해서 강의하는데 볼 만할 것 같다. 공짜다.

아래는 김성례씨 강의 중에 나오는 슬라이드 중 한 장.

데리다의 free gift론 : 위조화폐

* 선물은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증여
* 주는 자가 보상을 기대하거나 받는 자가 채무의식을 느끼는 순간 선물은 더 이상 선물일 수 없다.
* 선물의 본질 : 비호혜성(받기 없는 주기, 보상 없는 소비, 부채 없는 받기, 채무 없는 수혜), 비경제적, 비사회적.
* 선물의 외재성과 초월성 : 교환의 순환질서 밖에 있는 외재성 자체가 교환의 순환과 경제를 움직임.
* 선물은 결코 현전할 수 없는 것, 출현하면서 사라지는 흔적-위조화폐-으로만 알수 있는 허명(虛名).
* Godelier의 sacred object 신성한 사물 : 복사, 대체 불가능한 가치재, 사회적 결속의 기초


2. 최문규, <불협화음의 문학과 보들레르>

위 강의에서 나오는 데리다의 <위조화폐>에 관한 얘기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글.
원래는 보들레르의 글이라고 한다.
보들레르는 잘 모르지만, 일단 이 부분의 얘기는 재밌다.
김성례씨의 설명이나 강조점은 또 다른데, 같이 보면 좋을듯.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의 또다른 텍스트 「위조화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텍스트에서 화자는 자신의 친구가 거지에게 돈을 주는 행동에 내심 흐뭇해하면서 “상대에게 놀람을 야기시키는 데서 얻는 쾌감보다 더 큰 쾌감은 없는 법이요”라는 말을 던진다. 그러나 그 친구는 놀랍게도 거지에게 “위조화폐”를 주었다는 말을 내던지며, 이러한 친구의 언술에 대해 화자는 곧 나름대로 그 위조화폐로 인한 개연성 있는 사건(위조화폐가 발견되지 않아 거지가 부자가 될 수 있거나 혹은 위조화폐가 발각되어 거지가 감옥에 갈 수 있는 가능성 등)을 놓고 여러 가지 가능한 ‘연역’과 ‘가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화자는 친구가 거지에게 놀라움 자체를 주려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자비심과 좋은 거래를 꾀하려 했다”는 것, 즉 “자비로운 인간이라는 면허장을 거저 얻으려 했다”는 것을 알고는 분개하고 만다.

우선 거지에게 위조화폐를 주었다는 친구의 언술 행위는 마찬가지로 보들레르 특유의 수법, 즉 일상의 기대를 부수는 문학적 언술 행위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그것은 가짜 화폐였어”라는 친구의 너스레는 또 한 번의 뒤집기 가능성을 그 자체에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친구가 거지에게 위조화폐를 주었다는 것은 이미 실행된 뒤집기 행위이지만, 이러한 뒤집기 행위는 다시 한번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친구의 말은 진짜 화폐를 주고서 천연덕스럽게 내던져진 제스처일 수 있는데, 그러한 ‘추측’이 가능한 까닭은 위조화폐를 주었다면 수치심으로 인해 은폐하기 마련인 일반 사람의 태도와는 달리 그 친구는 노골적으로, 태연스럽게 그 말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즉 만일 친구가 진짜 화폐를 주었음에도 가짜 화폐를 주었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될 경우) 도덕적이고도 보편적인 차원에서 친구의 행위에 대해 그 정당성을 묻는 화자의 행위가 오히려 매우 표피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결국 위조화폐를 둘러싼 화자의 반응을 담고 있는 텍스트는 보들레르가 자신의 문학에 대한 독자의 일반적인 반응을 미리 선취하여 그 일반적인 반응과 아이러니컬한 유희를 전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두 가지 가능성, 즉 위조화폐와 진짜 화폐의 가능성은 텍스트 내에 동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3. 한보희, <코뮨을 코뮤니케이팅 하는 뫼비우스의 띠>

역시 '데리다'와 '위조화폐'로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보석 같은 글이다.
사랑과 노동의 관계를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이 글이다.
꼭 전문을 다 읽어보면 좋겠다.

우리 삶의 시간은 노동과 사랑으로 점철돼 있고 지배적 현실과 이데올로기는 그걸 망치는 것으로 점철돼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경제생활을 소득과 지출로 나눌 때,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임금노동자들은 노동에서 소득을 얻고 (자기애와 가족애가 포함된) 사랑 쪽에서 지출을 한다. 반면, 자본가와 기업은 사랑(을 미끼로 한 상품)을 팔아 소득을 얻고 노동을 열악하게 만듦으로써 지출을 줄인다. ...... 자본이 더 많은 잉여를 뽑아내려고 기를 쓰는 곳에서 사랑은 독버섯처럼 화려해지고 노동은 곰팡이처럼 음침해지기 마련이다.

라캉은 사랑이 ‘두 개의 결핍이 만나는 것’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어떻게 주는가? 데리다는 모스의 <증여론>에 대한 비판서인 <주어진 시간 : 위조화폐>에서 “시간을 준다”는 마담 맹트농의 편지 구절을 오래 붙들고 늘어지는데, 이때 자신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시간을 준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의 시간)을 바친다는 뜻이다. 삶의 시간은 준다고 줄어들지 않고 주지 않는다고 소유하거나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바로 이 ‘삶의 시간’의 증여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증여라기보다 전달의 ‘몸짓’이며 교통의 ‘행위’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랑은 삶의 방식(way of life)이며 몸을 붓으로, 시간을 물감으로 삼아 타자의 세계에 그리는 생의 무늬(紋畵)이다. 우리는 오직 그 타자의 캔버스에만 자신의 생을 남길 수 있으며, 우리 생은 타자의 사랑이 남긴 무늬를 모두 지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백지와 같다. ‘사랑을 준다’는 것은 결국 타자를 향한 사랑의 몸짓을 ‘살아간다’는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살아감을 통해서만 사랑을 ‘돌려받는다.’ 사랑의 수행자(agent)는 증여가 곧 수수인 사랑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 뿐 사랑을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노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노동은 (임금의 형태든 뭐든) 계량화되어 되돌려 받는 것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돈으로 노동을 살 수 없으며 그것을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도 없다. 노동은 오직 노동과만 교환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품앗이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노동 속에서 사랑의 계기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은 인간이 세계를 향해 자신을 내어준 생의 시간의 총량, 즉 삶 자체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세계 전체를 향유하고 세계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길 기대하며, 세계 전체가 자신의 노동의 산물을 향유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이 그리움 속에서 타자를 향해 가는 생의 증여/수수라면 노동은 그 사랑의 능동적 표현이자 실현이고 우리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한 생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화폐를 ‘보조’ 수단의 지위로 끌어내리고, 비로소 코뮨을 코뮤니케이팅하는 생의 주체로 스스로를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4. 김상환, <교환의 영점-해체론의 선물>

데리다의 '선물' 개념에 대한 논문.
좀 참고 읽으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어렵다. ㅠㅠ

선물은 대가 없는 증여이다. 받기 없는 주기, 보상 없는 소비, 부채 없는 받기, 채무 없는 수용 등이 선물의 본질적 계기를 이룬다. 선물을 주거나 받을 때, 주는 자는 그 어떤 것도 되돌려 받지 않아야 한다. 선물은 회귀하거나 복귀하지 말아야 한다. 회귀나 복귀를 모른다는 점에서 선물은 모든 종류의 경제적 교환과 구별된다.

선물은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주는 자든 받는 자든 선물을 선물로서 의식하거나 자각한다면, 선물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현상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선물은 선물이기 위해서 결코 어떤 의도나 지향성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선물이 선물이기 위해서는 주는 자에게든 받는 자에게든 선물로 현상하지 말아야 한다. 선물은 존재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선물은 선물이라 할 수 있으면 이미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있다고 하자마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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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반장 임영박


아놔, 예술혼을 불태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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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코스프레

09. 04. 07. 화. 매우 맑음

또 그랬다.

내가 이런 인간이 었던걸까? 아님 빈집 생활에 적응 중인걸까? 백수적응?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나가기 싫다 싶은 날이 있다. 백수인데도 불구하고 매일나가서 할일이 있기에.
그런날은 꼭 집안일이 나를 부른다. 가만히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 계획이었건만. 오늘은 어제 밤에 빵만들고 남은 설거지를 시작으로 마늘쫑 볶음?을 하고 밥을 먹는것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것으로 벌써 아침이 분주했다. 문제는 설거지가 문제다. 그것도 함께 사는 장기투숙객들이 모두 나가고 난뒤에 나혼자 남아 시작하는 설거지. 매번 집에 있어야지 하는 날에 설거지가 시작되면 끝을 모른다. 아니 다른 일정이 있어도 다 캔슬하고 집안일에 몰두한다.

오늘 한일을 나열해보자.
설거지 후 바닥을 쓸었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머리카락.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까지만 하자며 걸레질은 일부분만 대충했다. 걸레가 너무 더럽고 행주 삶은지가 좀 된거 같다. 모든 걸레 와 행주 그리고 생리도 끝나가니 속옷과 생리대를 간만에 삶아주기로 한다. 일단 다른 빨래들과 세탁기를 돌렸다. 걸레 , 행주, 속옷, 양말 다 섞어서;;;;;

그리고 방에 널부러 뜨려 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쓸고 .. 쓰레기통을 비웠다. 쓰레기통을 비우려고 쓰레기 비닐을 찾다보니 비닐 정리가 안되어있어 신발장 위에 있는 비닐함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암튼 커다란 상자 가득한 그것들을 다시 정리 하기 시작했다. 칸막이를 만들어서 쇼핑백과 장바구니 뽁뽁이 를 구분하고 무수한 비닐들을 대중소로 다시 정리해서 넣고, 천으로 상자를 가리는 것으로 마무리.

옥상으로 가서 빨래를 넌다. 날이 너무 좋다. 속옷이랑 행주를 삶으려고 다용도 실에서 삶솥을 찾았다. 삶솥하나에서 뭔가 불길한 움직임을 느낀다. 거대 바퀴벌레님 재림!!! 차분한 마음으로 재빨리 다용도실 창문을 열고 그분을 추락시켰다. 삶솥을 락스물로 닦고(em을 쓰고 싶으나 바퀴벌레의 공포로...깨끗함 위생관념에 대해서는 계속 일하면 할수록 마음에 걸리는게있다. 근거 없는 공포를 과학적이라고 말해지는 근거없는 조치를 취하고 위안을 얻는 이상한 시스템. 뭔가 그 심리적 시스템은  민간요법이랑 다를바 없달까? 알면서도 져버렸어. 이 공포여...) 암튼 행주와 속옷을 각각 삶았다. 다용도 실이 너무 너저분해서 쌀독을 정리하고 집들이 이후  잡곡이랑 정리안된 야채들을 냉장고에 넣고 바닦을 쓸었다. 뭔가 죽은 바퀴의 사체같은것을 본것 같아...다른 벌레 일지도 모르지만..(특단의 조처가 필요해!)

정리하다가 고구마와 감자를 발견하고 집들이때 안주로 하려했던 감자칩에 도전해보기로한다. 감자를 얇게 썰어서 소금뿌리고 기름 살짝 바르고 오븐에 투입. 잘될까? 한참 지켜보다가 빨래가 다 삶아져서 화장실에 가서 빨래를 했다. 음 왜 삶아도 집에서 보던 행주처럼 하얗게 안되는거지? 표백제의 힘이였을까? 또 한번 위생과 하얀색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사색하다 -_- 아차차 탄내가! 감자와 고구마의 반이 타버렸다. 쓰다 써. 대실패잖아!

삶은 빨래나 널자 하고 옥상에 갔더니 이미 빨래의 반이 말랐다. 추운날엔 집에 아무리 널어놔도 안마르던 녀석덜이.. 와 얼마만에 느껴보는 빠싹한 빨래느낌이냐. 몇개는 걷고 삶은애들을 널었다. 감자의 대실패의 흔적을 설거지하고 또 마루를 쓸었다. 발바닥에 계속 느껴지는 이 먼지의 느낌. 안되겠다. 그냥 닦자.. 걸레질도 했다. 시지프스가 따로 없군. 점심은 먹지도 못했는데 벌써 저녁때다. 이쯤하니 상당 피곤해진다. 중간쯤에는 나는 이런걸로 스트레스 푸는 성격인가 했었는데..-_- ;
된장찌개를 끓이고, 오래된 파를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고 된장찌개에 넣었던 다시마와 표고를 건져서 볶았다. 해가질거 같아서 빨래를 걷고 개넣고.. 밥을 먹었다.  다른 친구들이 집에 왔다.
아 이제서야 브레이크....


오늘은 좀전까지 가계부 정리를....
=_= 책은 언제 읽은텐가!
백수가되면 책도 많이 보고 그림도 많이 그릴줄 알았건만.

전업주부코스프레 중독인듯.
엄마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앉아보지 못했다고 하실때, 과장인줄만 알았는데. 정말이구나..
엄마 미안했어요 ㅜㅜ






옆집들이 성황리에 끝났어요. 후기를 올려야 할텐데..-_-
이러고 있느라고 인터넷을 잘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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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가르기 해야 함. 아 막걸리도.

[빈집 장 담근 날의 풍경] 이후 넋 놓고 있다가, 돌~님의 [장가르기]을 보고 깜짝 놀라서 쓰는 글

장담그기 하면서... 이게 어느 세월에 다 돼서 잡아 먹나... 하고 정신줄을 놓고 있었는데...
장담그기 한지 벌써 두달이 되어 가고 있어요.

돌~님은 우리보다 열흘이나 늦게 담그셨는데 벌써 장가르기를 하셨다는... ㅠㅠ
아무리 늦어도 이번주 주말에는 해야 할 거 같아요.

토요일날 하는 거 어때요?
아랫집에서 아침 같이 먹고 시작합시다!!

음... 근데... 저도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몰라요.
빈집 위키 - 장담그기를 다시 읽어보고 매뉴얼 대로 할 뿐.
경험과 노하우와 더 좋은 정보가 있으신 분들은 위키에 추가하던가 직접 오셔서 가르쳐주시길...

관심있는 분들, 구경하실 분들, 쫌이라도 얻어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
장래에 장담아서 먹고 살 궁리하시는 분들ㅋㅋ

모두 모이삼^^


아. 그리고 까먹을 뻔했는데...
빈집 맥주 원액이 동나는 바람에...
한동안 주막 마루는 맥주팀은 개점휴업입니다.
역시... 원액 만드는 능력이 없으니 맥주 원액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군요. ㅠㅠ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보루 막걸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계절도 적당할 듯 하고...
담그는걸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으니... 담아봅시다.

토요일에 장가르기를 하고...
쌀과 누룩을 준비한 후에...
일요일에 쌀 찌고 누룩이랑 치대서 발효조에 넣는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음주말 경에 걸르고 맛볼 수 있겠죠.
역시나...

모두 모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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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부] 내일 SF 읽기 <메트로폴리스> 영화 같이 봐요!

지난주 화요일 < 정치의 전복> 공부가 시작되어 3장까지 마치고, 이번주에는 내일 화요일 저녁 SF읽기 모임에서 <메트로폴리스> 영화를 함께 볼 예정입니다.

- 때 : 4월 7일 화요일 저녁 7시  반.
- 곧 : 빈동네 옆집
- 내용 : 영화 < 메트로폴리스> 함께 보고 잡담 나누기.
- 참석시 먹거리(간식, , 반찬, 군것질꺼리 등)나 윗집에 주고 싶은 것을 들고 오시면 환영!!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년 프리츠 랑의 SF 작품으로, 당시 독일 표현주의를 완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SF형식을 빌어 계급 갈등과 화해 다뤘으며, 당시에 많은 정치적인 논쟁을 낳았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사 < 우파(UFA) >는 310이나 걸려 찍은 이 영화에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바람에 파산직전까지 갔다가 다른 영화사에 흡수되었다.

메트로폴리스는 많은 필름을 분실해서 계속 필름의 일부분이 발견되는 대로 복원되던 중이었으며, 내일 상영할 버전 역시 최근 복원된 버전 중 하나.

참고로, 200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원판이 발견되어 2009년 2월부터 마지막 복원이 진행중이다.




그 뒤 빈공부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4월 14일 < 정치의 전복 > 4장과 5장.
- 4월 21일 SF 읽기 세번째 모임 : 책 < 프랑켄슈타인 > (아무 번역본이나 상관없음)
- 4월 28일 <정치의 전복> 7장까지

관심있는 사람(꼭.. 뭐.. 사람이 아니래도 상관없삼)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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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부 '정치의 전복' 1 2 3 장 이야기

정치의 전복 첫 모임이야 ㅋㅋㅋ
공룡 두비 영길 지훈 예린 참석했으요.
빅공부의 역사 짚어보기
SF공부 소개

잘 나눴다.
123장은 유럽자율운동의 건반적인 소개이다.

 

<1장 1968년에서 자율성으로>
얘네들도 참 구리게 살았더라.
카치아피카스에 대해 아는 사람 있는가?
한국 사람과 결혼 했다더라.
신좌파의 상상력을 빌렸다가 반납했다.

 

*신좌파란 무엇인가.
 신좌파와 구좌파를 나누는 구분은 최근 학자들의 견해인데 구좌파는 맑스주의자임이 확실.
 네그리를 비판하는 이유는 운동에서 정치중심 조직중심의 맑스주의를 배척하자는 피카스의 견해인듯 하다.
 허나 맑스주의를 발전시켜 새로운 정치운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시민주도운동과 신사회운동과 아우토노미아와의 다른 부분은 무엇인가. 구분짓는 이유는 뭔가.
 구분의 핵심은 체제를 어찌볼 것인가 하는 시각의 차이.
 체제를 업그레이드 하는가 아니면 체제 전복을 하는가. 인정과 불인정의 차이인가보다.
 노조 정당 민족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놀면 자율주의가 아닌것이다.
 
*차를 마신다.
 
*아나키즘과 자율운동과는 어찌 다를까
 총회의 구조를 얘기하는데 아나키 시스템은 어찌 진행되는가
 소규모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나 지역이상의 넓은 바운더리는 어찌 할까
 빈집만 해도 그릏다. 마을 규모가 된 후로 집중이 안된다.
 아나키와 자율주의는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아나키는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
 아우토노미아는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대 정치의 격동 속에서 발달된 노조운동의 전통에서 태동.
 '체제가 없어지면 어쩔 것인가.' 라는 상정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운동의 성공이란 먼가? 아우토노미아가 실패했다믄.
 정치적으로 이탈리아가 기본적인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 삶이 궁핍해지는 것.
 이후 운동에 영향은 끼쳤으나 본국에서는 우울한 상태. 깝깝하다.
 이탈리아가 정치적으로는 우울한지 모르나 또다른 사고의 전환이 있지 않았으까.
 길바닥에서 너저분하게 잘 노는거랄지, 빨래도 전면에 널어 놓는달지...
 현 총리 전까진 좌파였다. 지금의 총리는 '경제'를 걸고 나왔다.
 언론통제, 비정규직창출, 공공서비스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그나 현총리 계속 인기 좋다.
 노동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 역시 구조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노동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라.
 말레이시아의 아나키스트 이야기 꽃 만발.
 잘 살더라. 운동, 공부개념 없다. 초월이지.
 모이면 노래하고 시를 낭송하고 뭐 그런다. 공부하고 싶기도 한데 검열이 심해 잘 못본다. 아쉽지 아니한가.
 일제시대 때 떠오른다.
 현실에 발 붙이지 않은 아나키스트는 낭만주의자다.
 
 *한국에서의 신좌파운동이라면 그게 먼가?
 518민중항쟁에 대한 카치아피카스의 관점은 뭔가.
 그가 본 한국의 운동은 80년대인듯 한데 우리가 보는 운동의 역사는 80년대와 90년대 이후의 운동의 모양새가 확연히 다르다.
 독일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분위기 타서 동독이 걍 밀어부쳤다.
 우리의 통일은 어찌 이루어져서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
 외부에서 바라볼 때에는 내부의 결절이 보이지 않는다.

 

<2장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페미니즘 운동에대한 부분을 어찌 보았는가.
 여성운동이 자율운동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그의 시각.
 '자유와 해방'의 차이. 자유는 일상의 변혁이고 해방은 공적인 권력싸움이다.
 페미니즘에대한 논쟁은 늘 비슷하다.
 낙태수술센터를 만들었다는 부분에 힘을 느꼈다.
 배우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 문제 있다.
 운동이 필요하다.
 그나 책에서는 아우토노미아 안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 확대해석이 된 듯 하다.
 최근에는 '여성화하는 것이 잉여창출을 하는 방식이 되었다.'라고 분석하듯이 저자의 시각 역시 자기 중심적이지 않는가.
 이탈리아의 페미운동은 체제 안에서의 운동이였지 않은가.
 예를 들어 유럽의 여성운동의 결과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 처럼.
 자율배경으로 보았을 때에는 체계적인 변화발전이 아닌 쟁점중심으로 자유롭게 진행 되었기 때문에 중요성을 지닌 것이 아닐까. 
 오히려 체제변화를 한 것은 프랑스 페미운동이였지 않을까. 저자가 체제의 전복을 말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왜 68년이 중요한 기점이 되었을까
 영화 '파리꼬뮨'을 본 적이 있다.
 근데 궁금하고 끝났다.
 파리꼬뮨은 68년이 아니다.
 68년 유럽은 이차대전 이후로 공산과 비공산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민중업압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거지.
 그리하여 사회주의도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요때 푸코 등장해주고 일상 속에서의 권력에 대한 해석, 여성이랄지, 공동체 뭐 이런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제에 68이후라 했으니 68혁명과 이후 자율운동은 다른 색깔이라고 이해해야 하는거다.

 

* 페미니즘운동의 성과에 대해 자본의 논리에 의한 부분 혹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는...
정부도 기업도 교육도 수평적 구조, 여성성,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 그 논의에는 부가가치 창출,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와 의도도 있다는 것.
'혁명을 팝니다' 처럼 모든 게 자본의 잉여창출의 논리에 지배되는 측면도 있다.

 

<3장 독일 자율정치의 운동>

* 신좌파에서 펑크좌파로라는 표현이 있다. 펑크좌파란?
-> 안 읽은 부분이라서 그런지 ㅋㅋ 딱히 대답 안 나옴

* 부모님은 68세대, 자신은 에꼴(사립대학) 출신의 프랑스 아이. 68세대 싫어하고 국가, 관료 거부하면서 자신은 공장다니겠다 하는데
우리나라 촛불집회 보면서 왜 과격하게 안 하냐 반응 보이고, 얘 어떻게 될까? 궁금하더라...

* 노동운동하는 친구의 아이 일제고사 안 보겠다함.  하지만 아이의 진정한 결정일까? 남다른(?) 부모 만난 특권은 아닐까.
비슷한 이야기로 친구들과 논쟁한 적 있다. 부모의 역할, 부모의 가치,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들에 대해 의견 차이들 있었음.
공부방에서 사례가 사회 이슈에 대한 아이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그 판단의 이유가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쉽게 판단하는 거에 너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를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더 중요한 거고, 그걸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구좌파가 펑크좌파를 보는 관점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향들 많다고 보는 거 같고
로큰롤 좌파 -> 펑크좌파. 펑크좌파는 더 소수그룹 중심의 더 과격한 ... 그런 면 부각한 표현 같음.


* 빈공부 두 번째 마치며 참여자들의 이야기들...
- 책을 읽을 때 우리 사는 얘기를 해야 않을까? 예를 들어 빈집 얘기라든지. 그게 이 책에서 얘기하는 주제와도 맞는 거 같고...
- 경청하는 태도, 토론식 수업들이 좋다. 경청해 주는 분위기에서는 내 얘기도 많이 풀어낼 수 있고 그러면서 자기가 몰랐던 부분 나오면 서로 피드백 되고 좋더라는.
   (종교) 공동체 들어가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 있음. 좋은 대학 안 나와서 출가도 힘들구나 생각 듦. 무소유 갈구하고 실천하고 있음.
   토론이 좋은 게 한정된 자신의 생각 깰 수 있다는 거 같음.
- 청주에서 지역공동체 활동 고민하고 있고, 작업을 같이하는 공동체 하고 싶고. 시스템적으로 빈집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고 싶었었다는.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뭘 할 건데?"에 대해 풀리지 않는 게 힘들었고. 과거의 운동의 희열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생각 들었고.
   그래서 조직화에 대한 고민들도 있고. 내 것을 내 놓기 위해서 움직일 때가 됐고, 중요한 건 현실이기 때문에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권위적인 조직을 버리려는 노력들 계속 필요하다는 생각 책 읽으면서 들었음.
- 빈집, 재밌어서 시작했음. 다들 안 될 거라 했지만 재밌을 거 같았음.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걸 상정해서 사람들이 안 될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빈집이 어느 때는 조금은 조직적이길 바라기도 하는데, 안 되면 속상하고. 그런 걸 털어 버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음.
책을 보면서는 정치적으로 다름은 무엇을까 고민 들었음. 빈집 사람들 정치적으로 다양한데 빈집은 어떤 형태로 정치적인 입장을 가질건가.
난 빈집이 정치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아직도 생각함. 걱정도 되고 힘들었던 건 빈집에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 것. 그 과정에서 서로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고 이런 거 못 채우고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데 난 관심, 이해 이런 게 없으면 정치적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들고 그런 게 우리한테 필요한 게 아닐까. 공동체 더 커지면서 드러날 수 밖에 없고 다른 공동체는 이런 간극들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하기도 하고.
- 개인적으로 책 재밌게 읽었음. 지난 운동사 얘기여서 학생 때 생각들고 정리된다는 느낌도 들고. 내 삶이 무엇에 대항하는, 거기에 반대하는 방식의 운동에 지쳤고 그래서 이제는 내 삶의 변화 나은 게 아닌가 고민해서 공동체적인 삶이 제 일상의 변화이자 관심사. 제도 안에서의 변화와 밖에서의 변화 사이에서 난 체제순응적으로 산 거 아닌가. 책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대항적인 자율적 공간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빈집도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생각함. 그래서 저도 이제 대안적인 공간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생각하는데 여전히 고민됨. 길목에서 여전히 왔다갔다 살고 있다는 생각 듦.
- 자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벗어나려는 자유, 가려고 하는 자유가 그것. 공동체는 꾸려져 봐야 아는 거니까 내가 바라는 공동체는 어떨까 놓치지 않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어떨까.
- 빈집에 와서 들어오기 전에도 만족, 지금도 만족. 다양한 방향성 만족하고 있음. 우리가 뭔가를 휘감돌아서 보여주는 그런 시기를 만나기까지는 안에서의 소통들 이해하고 서로 알아가고 다름을 수용하고 나를 보여주는 것 이런 게 열심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럴 때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게 나는 너를 모르는 거 같애. 실은 그것이 상대방의 벽과 내 벽이 동시에 있는 거니까 서로 허물어 가야 하고. 그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 있고 그래서 절대 불안하지 않다는 것.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가난하다는 게 좋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는 게 재미있음. 조금씩 서로 생활하는 방식이 신기하고 재밌음. 생활 속에서 진행되는 게 제일 흥미진진하다는 거 체감함.

 

이리하여 정치의 전복 1 2 3 장 이야기를 자족적으로 마치고 우리는 상을 마루로 옮겨 촛불을 켜고 술잔을 기울인다.
어렴풋하고 약간의 불만족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기분 좋은 자리.
함께 생각을 나눈 사람들 고맙다.
다음 이시간 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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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지으러 간날..

동자동 사랑방 스머프입니다..

약속한대로 지난주 토요일, 빈집과 함께 고양시에 있는 현천동 농장으로 농사 지으러 갔습니다.

사랑방에서 12시 반쯤 모여서 갔어요.

사랑방에서는 김재호, 이태헌, 이동호, 신성현 자원활동가와 저, 그리고 지역 어르신 4명이 갔으며,

빈집에서는 데반을 비롯 공룡, 라몽, 잇을이 갔습니다.

 

씨앗 심으러 가기 3일전에 밭을 엎었는데 그날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 못해 사랑방 활동가들이

엄청 힘을 쓰기도 했었죠. 특히 저는 삽질을 스무번정도 하니까 더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중도 포기(?)하기도 했답니다.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았는지 여전히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는...ㅠㅠ

 

어쨌든, 씨앗심기 3일전에 갈아 엎은 밭에 드디어 대대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가 심은 채소는 얼갈이, 상추, 열무, 배추, 겨자(?), 감자 등등 이었습니다..

이날은 저희 대표가 집안일로 고향에 내려가느라 제가 처음으로 2종보통 운전면허증으로 1종 봉고를

운전하는 사건을 치렀고, 밭일은 뒷전인채 열심히 새참을 만들었다죠..ㅎㅎ

(새참 먹다가 막걸리까지 마시느라 돌아 오는 길엔 데반이 운전을 했어요..ㅋ)

 

암튼, 재미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처음으로 농사 짓는 폼이라도 잡았다는것과

내 손으로 땅을 일군다는 뿌듯함과 심은 놈들을 어떻게 키워서 잡아 먹을까 하는 기대감도 말이죠..

그날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즐감 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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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들이 뒷북 축하 공연

 

 

전날 찍어놓고 전송을 못해서 뒷북이 되었슴메.ㅠ_ㅠ

 

이게 뭔 일이래.

 

다들 즐겁게 놀았는지.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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