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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자연스로운 복종이란....!!..(영화정리)

  • 등록일
    2005/03/12 11:53
  • 수정일
    2005/03/12 11:53

복종이다.

억압이나 가용가 아닌 복종이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복종심리가 있는 듯 하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수많은 영웅들의 신화에 익숙해졌던지

아니면 스스로 이 험악한 세상을 홀로 버티기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어줍잖은 로맨스적 감성이 선천적으로 있든지..............!!

 

요즘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읽고

며칠동안 머릿속에서 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이 맴맴 돌고 있다.

일상에서 나 스스로는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솔선수범해서 자청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반선 아닌 반성을 전제하면서까지 말이다.

 

요 몇년 동안 본 영화중에서

아무 생각없이 재밌게 보고 

혹시 누군가가 알면 창피할가봐 몰래 열광한 영화들이 몇 편있다.

 

(내 주변에 소위 영화매니아들이 있어서 조심했다.

 그래도 사회운동판에 있다는 놈이 허리우드 영화나 좋아한다고 타박받을까 봐서...헤헤

 실은 모든 영화를 거의 다 보는 편이지만 이런 허리우드 영화를 볼땐

 좀 남의 눈치를 보는 편이다.

 뭐...소위 영화 매니아라는 그 친구들을 내가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활동하면서 갖가지 도움도 많이 받았고......그들이 좋아하는 소위 다큐라든가

  독립영화들도 좋아하기때문에 굳이 불편해 하도록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가령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나 뭐 이런 류의 영화들은 머리 아플때

그냥 멍하니 보기엔 제격인 영화가 아니겠나 싶다.

 

굳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단어가

무슨 스님에게 주어진 화두처럼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지금에

이런 영화들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

 

아마도 이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어떤 판타지 ...복종이라는 판타지를 강렬하게 받은 탓일거다.

 

 

가령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모피어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촛짜에게 복종하는 가 ?

그들은 이렇게까지 네오를

메시아처럼 받들고 스스로들 목숨을 걸면서까지 복종하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계시라는 예언가라는 오라클의 말 즉, 언어에 의한 복종일 것이다.

성서라는 것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은 결국 말씀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트릭스의 인간들은 철저하게 이 묵시론적 언어라는 것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성서속의 유다처럼 네오를 팔아넘기는 싸이퍼는 결국 악의 천사인

루시퍼의 변종이고보면 그리고 그가 외면하는 것은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현실....

즉 진실이 아니라 언어로 예언된 네오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

 

실제 우리는

이 언어라는 것에 대한 선량한 복종들을 도처에서 볼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선량한 행동에 의한 제도의 발전보다

선량한 제도 특히 헌법에 의한 사람들의 개조 혹은 정치의 재구축이 훨씬 더

역사속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찾아내는 것 처럼

그래서 주저없이 프랑스혁명보다는 미국혁명이 더 성공적이었다 평하는 것처럼

어쩌면 정치, 혹은 법이라는 언어라는 수단으로 획득되어지는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언어적 권위에 과감히 맞설 수 있을 가능성마저도 없다거나

아니면 언어적인 강압들이 너무나 강해서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그냥 주저없이 복종하는 것으로

이 체계를 지탱해주고 그런 독재자 혹은 독재적 권력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지의 제왕에서의 복종은 무엇일까 ?

그것은 출신 혹은 혈통에 대한 복종일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왕의 귀환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중간계든 인간계든 그 판타지 세계가 안정화되는데 있어서

왕의 귀환이 갖는 의미라는 것은 결국 출신 계급에 대한 그리고 혈통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아라곤이 곤도르 자기의 백성을 버리고 떠도는 동안

곤도르를 통치하고 곤도르를 이끌어 갔던 인물들은

다들 죽거나 미치거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할 뻔한다.

이는 결국 출신 계급에 대한 사회적 체계에 대한 방한은 비극밖에 없다는

어쩌면 지배이데올르기를 보여주는 전형이 아닐까 ?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계급에 편안히 안주하는 것으로

돌아온 왕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으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자발적 복종이라는 사회집단 전체의 모순적인 이데올로기가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영화는 무엇보다도 아더왕이다.

 

원래 아더왕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시피

엑스칼리버라는 영웅의 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 칼에 복종을 한다.

 

 

존 부어만 감독의 [엑스 칼리버]가

판타지라는 장르속에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영웅전설의 핵심은

사람들이 이 칼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이 칼을 잡아 뽑았을때 사람들은 모두다 무릎을 꿇고 이 어린 전사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사람들 스스로 칼이라고 하는

힘과 무력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자발적 복종의 길로 나아가는 지를 알려주는것이다.

칼로 대변되는 이러한 힘과 무력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아더왕 영화인 킹아더는

이젠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주 달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나온 [킹아더]는

아더왕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전혀 다른 복종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원래는 켈트족의 전설이었던 아더왕이

이젠 선진화된 문화를 가진 로마의 영웅이야기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토록 자신들을 죽이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낸 아더에게

멀린이라는 마법사는 그가 가진 카리스마와 문화, 제도가

미개한 자신의 부족을 바구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기거이 헌납하며 복종하는 것이다.

 

이영화에서 결국

미개한 그들이 선택하는 선진 문화에 대한 자발적 복종은

결국 현재 사회에서 허리우드 혹은 힙팝으로 대변되는 미국문화에 대한

모든 문화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야기하는 것이요

이러한 자발적 복종이

오늘날 이런

문화적인 식민지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영화에서의 켈트족처럼

우린 어쩌면

어떠한 자발적 복종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우린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자세히 돌아보지 않고

과연 어떠한 힘과 계급과 문화에 복종을 자청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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