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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NeoScrum님의 [게바라는 니네 상품이 아니라니깐!!] 에 관련된 글입니다.
진짜로 지랄입니다.
아마도 돈 지랄하는 모양입니다.
진짜로 누구 쿠바에 아는 사람 있으면
아니면 게바라의 딸 한테라도 연락해서
소송걸도록 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된 세상이
갈수록 돈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다 버리려고 하나 봅니다.
에구구
칠성을 뒤로 하고 쌍곡 계곡을 거쳐
화양동으로 해서 청천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중간에 화양계곡에서
만동묘며 암서재며 여하튼 우암 송시열 관련 유적을 볼까도 했는데
내가 워낙 송시열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입장료 핑계 시간 핑계대며 그냥 지나쳤다.
그리곤 곧바로 청전으로 갔다.

청천은 매우 작은 면소재지다.
소재지를 통과하는데 차로 2분도 채 안걸리는
그야말로 지천에 널려있는 그 작디작은 마을이다.
속리산 화양계곡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무리없어 보이지만
살기 힘든 사람들의 속내야 나같은 떠돌이가 알 수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 곳에서도
참 힘들겠구나 하는 전국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균적인 삶이
언듯 보인 것은
청천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 공사를 보면서다.

이젠 전국 어느 시장을 가도 다 이 모양으로 바뀔 모양이다.
아마 재래시장이 망해가는 것을 막기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다들 시장마다 이런 시설물로 다 바꾸는 모양이다.
청천에도 옛날집이 있다.
여기서 잠깐 퀴즈.....??

위 사진에서 문화재 이름은 ?????
헤헤헤 충북 양로원이다.
그럭저럭 때려 맞춰도 갈색 이정표면 문화재 아니겠나 싶다.
이 이정표를 보고 골목으로 쭉 따라 들어가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물이 나온다
양로원 건물이냐구 ?? 글쎄...그것이.....헤헤헤

이 골목 정면으로 보이는 기와지붕위로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물이 중요민속자료이다.

이 건물은 조선말 충청가사를 지낸 송시현의 별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44년 충북양로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문화재 이름이 충북양로원이 되었단다.
지금도 이 건물은 옆의 새로 지은 충북양로원 건물의 마당에 위치해 있다.
난 가끔 이런 것을 보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대개의 문화재 특히
가옥의 경우는 현 소유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방오현 중 한 명이라는 일두 정여창 고택도
문화재 명은 정경호 가옥이란다.
이유는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소유자 이름이 정경호씨라서 그런단다.
이 얼마나 웃긴 말이냐
누구 말대로 가옥 소유주가 청주시면 문화재 명도 청주시가 되는 거란다.
중요민속자료 청주시....우하하하...웃기지 않나 ?
송시현이라는 사람이 지었으면 차라리 송시현 가옥이라고 하지
충북양로원이라고 하니 누가 한옥집인 줄 알고 찾아 오겠는가 ?
참 한심한 공무원 편의주의다.
여하튼 각설하고
이 건물은 사랑채 안채가 옆으로 병렬식으로 지어진 것 같다.
지은지 100여년 정도 되었고
최근까지 사람이 살아서 그런지 관리는 매우 잘된 편이다.
건물은 민도리집에 ㄷ자형 집인데
골추녀를 쓰지 않고 서까래를 그냥 겹친 방식으로 지었는데
충청도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오히려 강원도 강릉이나 고성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의 집이다.
솔직히 골추녀를 쓰지 않은 곳은 그곳 이외에
거의 본적이 없기도 하다.


이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서
한옥이 가지는 중첩의 이미지 즉, 아늑하고 정돈된 느낌보다
왠지 개별적이고 횡한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곳이다.
뭐랄까 .......좀 사람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

그래도 좋았던 것은
안채 마당에 늘어진 이 장독대였다.
아마도 양로원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네들을 위해 사용되는
장독일 것 같은데 이렇게 쳐다보니 나름대로 정겹기는 했다.
이 건물들은 건물 개개별로는 잘 지어진 건물이다.

특히 위 사진처럼
추녀 서까래의 곡선이
최근 청원군이나 괴산군에서 본 것 중에서는 제일이지 않나 싶게
운취가 있었다.
서둘러서 충북양로원을 구경하고
(?? 거봐...도대채 문화재명이 양로원이니 글을 써도 뭔가 이상하지 않나....에구구)
청주로 오려다가 우연찮게 하나 더 보았다.
급하게 사진만 찍고 제대로 보진 않았는데
그건 우암송시열의 묘소와 신도비 그리고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한옥집이었다.

저 길로 올라가면 묘소가 나온단다.
뭐 송시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굳이올라갈 이유를 못찾아 이렇게 묘소 입구에서 사진한장 찍는 것으로 끝냈다.

송시열 신도비가 있는 건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송시열의 신도비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때면
눈물인가 핏물인가 뭐 여하튼 그런 것을 흘린단다.
아마도 송시열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신도비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거란다.
난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가 무슨......?....헤헤헤
난 솔직히 송시열은 성리학자로서나 조선의 정치가로서나
전혀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단지 처세에 능하고 편협하고 자기당파의 이익이외에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야말로 한국사 최고의 불한당이라 생각한다.
오직 송나라 주희만을 유일무이한 스승으로 받든 철저한 사대주의자고
주자와 다르게 성리학 사상을 전개했다하여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죽이고...
특히 윤휴가 죽으면서
나와 사상이 다르면 관리로 쓰지 않으면 될 일이지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에도
눈하나 깜짝안하고 죽인 그가
관리도 아니면서 병자호란중에 싸우다가 포로로 잡힌 사람보고
관리이면서도 자신은 남한산성 임금 품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싸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포로로 잡혔던 윤선거를 비겁자겸 군자가 아닌 졸장부라 욕하던 사람이
무슨 죽어서까지 국가를 걱정했겠는가
아마도
죽어서까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거짓 눈물을 흘리는 듯하여 더 짜증이 났다.
여하튼 괴산군 청전면은 그야말로 송시열의 고장이다.
송시열관련 유적지가 있고
묘소가 있고
신도비가 있고........
그런 송시열을 뒤로하며
담배를 입에물고 추운 옷깃을 여미며 부리나케 청주로 향했다.
어두워지기전에 돌아올 요량으로.........헤헤헤
드디어 갔다.
멀지도 않고
맨날 근처를 지나다니면서도
멍하니 벽돌공장 굴뚝만 쳐다보다가
오랫만에 찾아온 겨울날의 봄날씨속에
근질대는 몸뚱아릴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거의 떼쓰다시피 해서 다녀 왔다.
괴산군이다....^^...
청주에서 증평을 거쳐
새로 뚤린 4차선 도로를 따라 휭하니 달리면 괴산이다.
새로난 길을 가다보면
괴산읍내를 거치지 않아 좋긴 하지만
가는 길 언저리에 눈이 선한 홍명희 생가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쉬웠다.
다만 함께 간 친구의
작은 아버지(?)가 홍명희 생가 옆 한옥집에서
몇년 살았었다는 (에구구)
별루 도움 안되는 이야기로 대신하며 내쳐 달려 도착한 곳이 칠성이다.

괴산군 칠성면이다.
난 언제나 칠성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 벽돌공장 굴뚝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우뚝 솟은 것이 확연히 돋보이는 이 굴뚝만 쳐다보며
칠성을 지나친 것이 몇해나 된다.
지나가던 학생(? 한 고등 아니면 대학생 ???)들에게
율원리 김기응 고가를 물었더니 아마도 둔율리라 하기에
이 벽돌공장 이 있는 마을로 찾아 갔더니
아무리 돌아봐도 김기응 고가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김참판댁이라고 하시면서 갈론계곡 방향으로 다시가야 한단다.
에구구
역시 문화재든 옛날 집이든
하다 못해 이웃동네 이름도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관심밖인가 보다
당당히 이 동네에 산다고 밝힌 친구들인데도
타지 사람들에게 이리 엉뚱한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역시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길을 묻거나 어떤 곳을 찾을땐
우리에 일꾼 할머니들 만한 안내자가 없는 듯하다..............................헤헤

<사진.. 괴산군청 홈피 > - 전경사진을 못 찍어 이것만 퍼옴
김기응 가옥이다.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건물이다.
김기응이 누구인지 기록해 놓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에도 김참판댁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당시 이 지역의 대지주 거부였을 것 같다.
어느 동네나 딱히 불를 이름 없으면 부르는 것이 참판댁이니 말이다.

한 100여년 정도된 한옥집이라서 그런지
벽체나 건축양식들이 많이 화려하고
또한 다른 고가처럼 옛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특히 충청도 양식이라 불리는 이 지역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 흥미로운 집이다.
구조 자체도 대문을 지나 행랑채를 지나 사랑채, 안채가
매우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집을 둘러싼 흙담이 매우 독특한 집이다.


불행이도
집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는데
밖에서 담장 너머로 기웃기웃 거리며 보는 재미가 그런대로 잼났다.
집은 야트막한 소나무 동산을 배경으로 남쪽을 보며 자리잡았고
앞으로는 높은 산이 안산 혹은 조산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집을 지을때
사랑채의 대청에서 바라 보이는 안산 혹은 조산은
그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심성을 반영한다하여
너무 높고 뾰족하거나
아니면 너무 밋밋하여 있는 듯 없는 듯 한 산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매일 바라보게 되는 앞산이
너무 뾰족하면 그 사람의 심성이 흉폭하게 되고
너무 밋밋하면
그사람이 우유부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높으면서도 모나지 않은 산을 선택하는 데
이집은 매우 높고 뾰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런 집 터를 고르는 안목도
기우는 조선의 국운 만큼이나 잊혀져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집터 선정방식이 고리타분할 수 도 있지만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요즘 아파트를 지을 때도 조망권 이야기가 있듯이
교육환경을 이야기 할때 누누이 거론되는
아이들의 시각적 중요성 이야기와 상통하지 않을까 한다.
즉 삭막한 아파트만 쳐다보고 자란 아이들이
삭막해 진다는 이야기다.....헤헤헤

앞산이 지붕을 닮은 듯하여 찍어 보았다.
참고로
이 김기응 가옥이 있는 마을은 칠성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칠성댐은 정식 명칭이 괴산댐 혹은 괴산 수력발전소인데
우리나라 기술진이 만든 최초의 댐이란다.
50년대에 만들었대나....?..하여튼 오래된 댐이다.
근데 잼나는 것은
이 댐이 생기기 전에 이미 댐이 생길걸 사람들은 알았단다.
그 유명한 우암 송시열이 노수신이 기거하던 곳을 찾아
풍류를 즐기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 곳은 산이 막혀 강이 될거라고 예언하고는
자신은 속리산 화양계곡에다가 거처를 정했다는 거다...
거참 ..용하기도 하다 ???...헤헤헤
아 그리고 댐이 들어선 마을중에
두천리가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이 막을 두(杜), 내 천(川) 두천리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은 댐이 들어설 당시에
감탄했단다.
그들도 왜 마을 이름이 이렇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아하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내를 막았으니 두천리요 곧 댐이라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 이름도 잘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헤헤헤
솔직히 김기응가옥은 닫혀 있는 관계로 참 아쉽다는 생각을 해서
담에 꼭 한번 다시 찾아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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