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블로그 음악플레이어

지난번에 달았던 플레이어는 MIXPOD(http://mixpod.com)에서 mp3 주소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었는데, 왜 파이어폭스에서만 재생이 됐고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는 먹통이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어쨋든 해결방법을 못찾고, 결국 바꾸는 걸 선택했다.

 

이번에도 MIXPOD의 플레이어고 유투브 동영상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으면 반복해서 재생해준다.

직접 mp3를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지 못하니 원하는 노래를 들으려면 유투브에 노래가 올려져 있어야 한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그래서 윤선애씨의 노래라든지 유정고밴드의 노래는, 리스트에 못 넣고 있다.ㅠ

 

간편하게 mp3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주는 사이트(http://mp32tube.com/)가 있긴 한데,

올린 다음 바로 검색이 되는 건 아닌지 MIXPOD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 수가 없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진보넷 블로그에 달려면 기타 사이트를 선택해서 object가 아닌 embed 코드를 얻어야 한다.

 

비슷한 원리로 음악을 재생하는 플레이어가 있는 사이트 : http://www.rukie.com/ver3/

2010/06/25 14:08 2010/06/25 14:08

어제 꿈

몸 상태가 오락가락인데, 그래서인지 꿈도 뒤숭숭

 

어쩐 일인지, 꿈속에서 내가 처리해야할 시체가 4구가 있었다. -_-;

(그 이유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만든 일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내 집은 8층이었는데, 시체는 9층에도 11층에도 나눠져 있다. 다른 친구 한명도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리 궁리해도, 한 구면 모를까 네 구나 되는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묘연해 답답해 하면서,

(토막을 내서 갖다 묻어도 네 구는 부피가 너무 커서 다른 주민들 눈에 안띄게 옮기는게 힘들고, 썩는데 시간도 오래걸리겠지라며 꽤 구체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엔 절망하고서, 말도 안된다며 이건 꿈이겠지라고 생각해봐도 꿈이 아닌걸 깨닫고, 아닌데 이게 현실일리가 없는데...를 반복하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으으으음....

요즘, 잠이 든 것과 깨어있는 것의 중간 쯤에서 헤메는 일이 잦다.

꿈이라고 외쳐도 깨어나지 못하고 나니, 다신 돌아올 수 없는 낯선 곳으로 옮겨지는 것에 대해 가졌던 공포가 떠오른다. 이를테면, 어쩌다 발을 잘못딛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갔는데, 그 세계에서 죽음도 없이 시간이 무한정 지속되면 어쩌나 하는 그런 공포. 장자의 비유 같이 이 세계가 일시적인 세계이고 오히려 넘어간 그곳이 '본래' 세계일지도 모를텐데, 이곳에서는 그런 공포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확실히 언젠가는 끝이 오겠다는 안도 때문인 것도 같다. 어느곳이 본래 세계인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까? 하지만 본래 세계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때문에 공포감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잘라말하기는 또 어렵지 않을까. 아예 꿈 혹 현실에서는 영속하는 시간에 대한 공포가 생기지 않고, 양편을 함께 인식하는 경계에 있을 때 깊은 무력감이 드는 걸 보면,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허상일 수 있다는 빈틈이 보이는 순간 내 존재가 반투명해지고 주위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붙잡을 것 없다는 막막함에 빠지는 것 같다. 이건 꿈/현실, 삶/죽음의 경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사회와 저 사회의 경계에도, 시대와 시대의 경계에도 있는 일이겠지. 어쩌면 철학이라는 건 자신을 끊임없이 이 경계에 내던지는 일일지 모르겠다.

2010/06/25 13:50 2010/06/25 13:50

지나간다20100623


참말, 끝이 없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해되지 않던 글이 독해될 땐, 기쁘기도 하지만 그만큼 걱정이 더 는다. 이것이 끝이 아니리라는 자각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나 멀리 가야할 것인가...

 

생명은,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랬다.

내일 죽어도, 새 이파리 하나 틔우는   것.

2010/06/24 06:00 2010/06/24 06:00

지나간다인권의 정치

잘 모르겠는게,

'인권의 정치'를 현대정치의 이데올로기(주체화양식)라고 설명하고,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에 모순(인권의 정치의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봉기에 구성이 필요한데, 구성의 토대에서 소유와 공동체 사이의 모순은 소유권-노동권, 민족공동체-노동자연합의 모순으로 전환된다. 이것은 소유-공동체 모순이 자유주의-공산주의 모순으로 전환되는 것)이 존재한다 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주권=시민권, 자유=평등 명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 아니면, R-S-I 셰마와 저 주장이 가상화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R-S-I 셰마의 전도란 갈등이 개인적 가상화 수준이 아닌 집단적 상징 차원에서 발생한다는 명제로 이동하는 것.)  '인권의 정치'를 요구하는 것은 알튀세르가 거부했던 인간학(인간주의)과 구분되는 것일까?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능동/수동, 지식/무지, 이성/가상, 욕망/정념으로 주체화/예속을 설명하는 것. 그런데 스피노자의 아포리아(대중들의 공포)는 인권의 정치에 미달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피노자의 아포리아는 지금도 이어지는 것인가? 인권의 정치이라는 비철학이 그 아포리아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지?

2010/06/23 09:39 2010/06/23 09:39

목적론/종말론

'목적론 대 종말론: 알튀세르와 데리다의 대화'

(- 에띠엔 발리바르) 후기

 

목적론종말론을 굳이 구분하려 생각해본적 없었고, 둘 다 형이상학의 한 형태일 뿐 역사의 시작과 끝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기각해야할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다 이 글에서 데리다가 목적론과 종말론을 구분하고, 목적론에 대한 대안으로 종말론을 제시한다는 내용을 읽으며 종말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종말론을 후쿠야마류의 역사의 종언으로 생각해왔는데, 철학적 의미에서 종말론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겠구나 싶다. 우선 알튀세르에게 있어 목적론역사에서의 단일한 기원을 상정하고, 그것이 헤겔적인 전개를 거쳐 단계/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발리바르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이미 주어진 목적의 실현으로서 역사적이고 지적인 과정,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목적을 갖는 과정에 대한 교리) 자본주의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와 같은 목적을 향해 역사가 진화해간다는 의식에 목적론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맞게 이해한 거라면, 데리다가 목적론과 구분짓는 종말론은 앞으로 올 (해체불가능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불가능성을 명령ㆍ소환하는 PT의 메시아성(마르크스의 유령적 요소)과 관련된다. 이 메시아에 의한 심판은 임박한 혁명과 혁명적 운동의 분열이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순간이고 결과가 발본적으로 불확실하다.

 

나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질문을 옮겨보면, 소위 Turning point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의 결정적 국면이 존재할 것인가, 역사의 어느 한 국면을 특권화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만약 특권화 시키지 않는다면, 이를테면 1917의 러시아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등이다. 대중으로서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순간, 그 임박한 파국의 순간, 심판의 순간을 상상치 않는 운동은 가능할 것인가? 사실 이런 류의 종말론이라면 나를 비롯한 주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던 것이고,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여기에 있었다. 분명히 마르크스 또한 부단히 진동했을 것이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이지도 않은 대안, 발본적으로 유물론적인 대안을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한다고 주장한다. 목적론과 종말론을 구분짓는 데리다의 비판과 달리, 역사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역사의 목적 뿐만 아니라 종언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임을 확인하고, 목적론/종말론이 아닌 변증법으로 역사를 조망하는 것이 진정 '유물론'적이라는 것이 데리다-알튀세르 사이에 유예되었던 대화의 결론으로 발리바르가 제시하는 내용이다. 유물론적 태도에서 변증법은 변혁을 장기적인 이행으로 사고하고, 따라서 역사를 끊임없는 과정으로 사고(미래는 오래 지속된다)하며 그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던 것(철학에서 유물변증법, 경제에서 논리와 역사의 결합 등)을 끌어내려는 내재적 비판이 진정 마르크스적인 것이고,  역사의 목적/종언이라는 관념론과 단절하는 게 유물론이었음을 밝혀내는 건 마르크스를 복원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어느 순간에서나 혁명이 가능하다는 선험적인 주장혹 의지주의와 결별하는 것이고, 승리의 순간이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지성으로 비관하며, 설사 심판의 순간으로 여겨지는 국면에서도 고독할 이행의 여정을 생각하며 차가운 지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건 오랫동안 혁명에 대해 품어왔던 낭만적 감성과 저 극단에 있는 것이고, 그렇잖아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나를 더욱 위축시키지만, 가장 원칙적이고 발본적인 부정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을 기각했을 때 취해야할 당연한 귀결이고, 현실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삶의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말것이고, 되려 이 순간의 해탈이야 말로 아편같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니, 부처의 가르침도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리라. 니체의 영원회귀 또한 다른 식으로 읽자면,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을 마다하지 말라는 것이지 않을까.(물론, 니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결코 이걸 얻으려 하는 것 같지는 않다만 말이다.)

2010/06/21 00:27 2010/06/21 00:27

지나간다20100619


발제문 쓰는데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아주 환장해 버리겠네.

욕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곤 한다.

개념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그러나.

이렇게 안절부절에 못이겨 먹어서 안달인걸 보니

공부를 업으로 삼을 팔자는 아닌가 보다.

원래, 운좋게 강신하시면 이해하는 거고 아니면 못하는 거랬다.

그분들이 오시지 않은 건 내가 부덕한 탓이라고 여기고 말이다. 흠

2010/06/20 06:00 2010/06/20 06:00

지나간다음,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길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랬었지만, 이쯤되고 보니, 인력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자신이 다른 이에게 가해자였을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하기가 참 어렵다.

그 아이는, 자기 나름의 소통공간을 마련하게 되겠지.

모든 사람과 모든 걸 함께 할 수는 없는 거니까.

2010/06/19 23:57 2010/06/19 23:57

지나간다1000조각 퍼즐

2010/04/12

아마 시작한지 이틀 쯤 됐을까?

 

2010/04/13

 

2010/04/16

 

2010/04/17

 

2010/05/18

 

2010/06/11

 

2010/06/18

 

집에 묵어가는 사람들에게, 10개 못 맞추면 베란다에서 재운다는 협박을 해가며, 이 만큼이나 맞췄다.

아래 부분을 다 맞추고 나선 진도가 안나간다. 하늘은.. 색이 다 똑같다. 막막하고, 맞출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한동안 손을 뗐다가 6월 들어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맞춰져 가는 게 신기하네.

근데, 없어진 조각이 있으면 어쩌나..

2010/06/19 03:10 2010/06/19 03:10

지나간다

요즘, 멍때리며 산다.

죄다 시큰둥해서, 해야할 일도 못찾겠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뭘 하면서 살아도, 재밌을 것 같진 않다.

돈을 많이 벌어도, 평생 여행을 다녀도, 뭘 하더라도.

음악도 하다 보면 금새 지루해지겠지?

 

하다 만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좀 추려봐야겠어.

- 기타 연습하다 만 곡이 있었고,

- 읽다 만 책이 여럿,

- 1000pcs 퍼즐도 맞추다 말았고,

- ...생각만큼 많지는 않네?

 

꿈 속에선 내가 살던 집을 큰 병원으로 만든댔다. 무슨 양자치료한대.. 음.

 

그리스와의 축구결과를 듣고, 그리스 선수들은 자국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계급투쟁을 과소결정 시키지 않기 위해 결단을 했을 거라고, 한국 선수들의 반민중성에 대해 성토했더랬다. 음음.

 

왜 firefox로 들어올 때만 노래가 나오는 걸까..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일하던 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4일 오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소재사업부에서 일하던 사내하청업체 관리자가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 이 짧은 문장안에 얼마나 많은 아우성과 흐느낌과 희열과, 등등의 풍진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2010/06/18 07:52 2010/06/18 07:52

지나간다20100617


지난 번 그리스와의 축구 경기 결과를 보며 그런 얘기를 나눴더랬다.

엄혹한 경제위기 정세 속에서 그리스 민중들의 계급투쟁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그리스 선수들이 일부러 졌을거라고. 그리스 민중 편에 선 축구선수들이라고. 음.

암튼, 거리에 빨간옷 입은 사람이 넘치는 걸 보니, 무섭네..

2010/06/18 06:00 2010/06/1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