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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의해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12/01/15 20:28
  • 수정일
    2012/01/15 20:31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의해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혁명을 희망하며...

 

 

Rosa Luxemburg - then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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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15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가 사민당의 개머리판에 의해 살해당하다.


2003년 ~ 2007년 친서민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정권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살해당하다.


2008년 ~ 2012년 노골적인 부르주아 프렌들리를 표방하던 엠비정권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빈민들이 공개적으로 학살당하다.

 

그리고 2011년 말 살해당하고 학살당한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대표한다던 민노당과 노동조합 관료 다수파가, 독일의 사민당보다 못한  자신들을 살해한 세력과 손을잡다.

 

그리고 93년이 지난 오늘 혁명가들에 대한 탄압과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이 진행중이다.

 

 


[1919년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그녀는 혁명의 와중에, 반혁명의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 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 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 그녀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 아니면 반혁명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로자는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서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모자랐으며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가 있고 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이다. 대중은 혁명의 최후의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이다. 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의 일환이 되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이다." (로테 파네 1919.1.14 )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 로자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 전날 밤 9시경, 리프크네히트와 로자는 만하임가의 은신해 있던 집에서 체포되어 에덴호텔로 연행되었다. 바프스트 대위가 두 사람을 심문했는데, 살해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한 명의 수병이 개머리판 으로 리프크네히트을 때려 넘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상태의 그는 차속에 실려져 틸가르텐 호수근처에서 차에서 끌어 내려져 그곳에서 학살되었다.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취급하였다. 이어 로자가 호텔에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최후역시 비참하게 마감되었다. 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 되었다. 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칼과 로자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차지했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이었지만, 배신과 학살에 의해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 결국 그 사회민주당이 독일 파시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하게 된 것이다. 그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사회민주당은 과거 자기들이 로자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의해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되는 운명을 겪었던 것이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노동조합에 전가했고, 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공산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 결국 세 곳 모두 결사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야 만다.

 

결국 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로자의 묘지는 해방되었고, 아직도 그녀의 저작과 사상, 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중이며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2012년 분노하는 겨울, 노동자시인이 격렬한 희망을 노래하다]

 

 

격렬한 희망

 

  임 성 용

 

"희망이란 어찌 이리 격렬한가!" - 아폴리네르

 

 

폭력의 힘에 맞서는 수단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의 전부가 오로지 비폭력적 희망으로 존재한다면

희망이라는 힘이여!

우리에게도 격렬한 희망을 다오

격렬을 뛰어넘어, 망각과 평화와 저항마저도 뛰어넘어

희망에게도 폭력적인 희망이 존재할 수 있게 해다오

희망의 이름이 적대성을 잃어버린 분노 대신에

제발, 장미꽃처럼 건네주는 사랑의 약속이 아니기를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던 맹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제발, 가차없이 버려진 노동의 식은 밥이 아니기를

얼음덩어리로 굳어진 배반의 시간이여!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희망의 밥통이여!

죽어도 썩지 않을 슬픔이 일천 오백 일을 노숙하는 동안

그럼에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이 겨울을 그만 용서하기를

그럼에도 이런 일들을 너무나 달게 받으라는 특권층이 아닌

이런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조자들에게

격렬한 희망의 눈동자가 한 번이라도 반짝 빛나게하기를

철장 속에 꽁꽁 갇혀버린 시여!

어눌하게 혼자 추방당한 시인이여!

이 겨울을 마치 '동지 섣달 꽃본듯이' 반겨맞으시라

희망을 빼앗고 절망조차 넘겨받은 힘없는 희망들이

이제 곧 격렬한 희망으로 길바닥 나뒹구는 돌맹이가 되리니...

 

 

 

 

 

분노하라, 이 겨울을

 

 -  임 성 용

 

겨울이다

혹한의 칼바람 살을 에는 겨울이다

이 겨울, 깡깡 얼어붙은 얼음나무들이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떨고있는 사람들

뼛속까지 드러난 투명한 핏줄들이

저 높은 철탑과 크레인 위에

맵찬 바람 하늘끝 고공의 둥지 위에

아스팔트에, 보도블럭에, 펄럭이는 비닐막 찢어진 천막에

나뒹구는 침낭 속 싸늘한 숨결로 있다

뜬눈으로 역류하는 잠들지 못하는 잠, 꿈같은 생시로  있다

 

 

지금, 지상에서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인간과 자연이 지닌 모든 것들을 도륙해버리는

이 악마와도 같은 자본주의,

생산과 노동의 소중함은 단 한시라도 안식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었다

경제를 살리고 4대강도 살리고 무엇이든 살리고 살리고

이른바 죽은 좃도 살린다는 MB노믹스,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뽑아내고

포클레인과 덤프트럭과 재개발과 홀딱 벗고 드러누운 싹쓸이 개방과

그리고, 입만 열면 새빨갛게 덧칠하는 거짓말, 거짓말!

 

 

아, 우리는 하나님을 본 게 아니었다

궁상스런 궁민(窮民) 모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악령의 힘을 보았다

악마에게는 사랑을 말할 수가 없다

악마에게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족과 피맺힌 노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악마와 그 악마의 집단에게 우리는, 우리들의 쉴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어찌 하소연하고 매달릴 수 있겠는가

21세기 대명천지, 고도의 문명과 순도 높은 행복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연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과연 전세계 어느 선진국, 어느 미개한 국가에서

일년이면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결하고

숯덩어리 불길로 타죽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섬뜩하게도 그런 나라가 있다

그것은 세계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것은 오로지 서민들 걱정에 잠이 안 온다고 하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이다

돌이켜보라, 그는 중세 이후 너무나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해서 금지된

잔학무도한 화형제도를 버젓이 부활시켰다

갈 곳 없이 내쫒겨 망루에 올라간 용산철거민들을

하루 아침에 복날 개잡듯 불에 태워죽이지 않았던가

그들의 불에 구운 영혼이 구천을 떠돌아도

공장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이 무려 열아홉 명이나 죽어나가도

이래도, 이래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통령!

이래도, 이래도 이 정권의 수명이 다하도록 유지시켜 주는 국민들!

이게 진정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란 말이더냐

이게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나 또다시 이런 더러운 국민이 되란 말이냐

 

 

아니라면, 이것만은 결단코 아니라고 한다면

노동자여, 전민중이여! 이 얼어붙은 겨울을 분노하라

얼음장밑 강물처럼 차디찬 분노를 흐르게 하라

탐욕에 대한, 배반에 대한, 절망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저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로 분노의 도가니로 뛰어드는 일이다

보아라, 간악한 적들은 사람들을 1%와 99%로 나누었다

99%를 다시 집주인과 세입자로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었다

비정규직을 다시 용역, 파견, 시간제로 나누고 또 나누었다

적들의 끊임없는 분열 앞에, 노동자여!

한솥의 용광로에서 들끓는 노동의 쇳물결이여!

그 어떤 세월이 와도 우리는 결코 길들여지지 말자

노동계급의 유전자는 절대로 분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자본이여!

너희가 년간 7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서

메머드급 경쟁력으로 아무리 우리를 묶으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묶일 수 없다

너희가 14조원의 돈다발을 투자해 세계적 글로벌기업으로

아무리 우리를 가두려고 해도 우리는 갇힐 수 없다

현대차 / 비정규직노동자 / 상경 투쟁 / 승리를 위하여/

절절하게 떨리는 생의 목숨으로 다짐하나니

승리의 날은 멀지 않았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2012. 1. 14.  현대차 양재사옥 앞, 투쟁문화제 연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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