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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민족주의의 본질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무역 분쟁은 경제전쟁을 넘어 국가 대 국가, 더 나아가 국민 대 국민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 글에서는 무역 분쟁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왜?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 수출 관리 규정을 개정하여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과정에 이용되는 포토레지스트(PR), 플루오린화 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또한 8월에는 한국을 외국환과 외국무역 관리법에 따른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 화이트 국가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도 일본을 수출 우대 국가에서 제외했으며,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도 연장을 거부했다. 여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반일감정과 더불어 일본 관광 자제와 불매 운동이 고조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를 단행한 일본 정부의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 구제 문제, 참의원 선거에 이용, 그 외에도 문재인정권 흔들기, 한국 경제 견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하여 일본 패싱 견제 등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각각의 배경에는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자본의 위기 속에서 자본 간 치열한 경쟁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본 간 전쟁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제국주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 과정에 민족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아래 글은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민족국가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역 부르주아는 늘 초강대국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지는 않다. 지역 부르주아들은 자신만의 분명한 이익을 가지며 이것 또한 제국주의적이다. 지역 부르주아 분파들은 거대 제국주의의 원조, 조언 그리고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제국주의의 대리인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그 분파들은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자마자 그야말로 제국주의자가 된다. 어떠한 민족국가도 전적으로 경제적 자급자족을 통해 강해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분파들은 더욱 후진적인 다른 민족국가를 희생시키면서 팽창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민족국가는 제국주의 권력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민족인가 계급인가」)
일본 민족주의의 작동 방식
아베노믹스는 지금은 효과가 미미하지만, 초기에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실적을 거두었다.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 등의 행보를 벌이면서도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이런 실적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금 개혁으로 중년층의 표심을 다소 잃고 있는 상황에서 자민당은 내부적으로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을 참의원 선거(2019년 7월)에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즉, 내부의 경제적 불만을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덮으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이런 자민당의 행태는 그 이전부터 사용하던 전략이다.
아베정권 이전부터 일본 부르주아는 주변국가인 러시아, 중국, 한국, 북한과 영토 분쟁 및 핵무기를 문제 삼으며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일본 내부적으로도 끊임없는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긴장감은 아베 내각 출범 당시 국정 목표로 제시한 바 있는 평화헌법의 수정을 통한 군사적 자위권 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내에서는 헌법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은 거의 반반이다. 특히 자민당 지지자 중에서도 헌법 개정이 필요 없다는 여론은 30%를 넘고 있다. (아사히 신문)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정부는 주변국과의 마찰을 일본 민족주의 고양의 토대로 이용하고 있다. 민족주의의 고양은 개헌에 대한 찬성 의견을 높이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헌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일본 헌법 9조는 “전쟁은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영구히 방기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극우파를 중심으로 헌법 9조는 현실적이지 못하고 실현 불가능하기에 개헌을 하자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9조의 마지막 “국가의 교전권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부르주아는 자위권만 있지 교전권은 없다는 논리를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리에서 교전권은 침략권임을 알 수 있다. 문서상으로는 국제법상 침략권은 어떤 국가라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일본 부르주아의 개헌 의도는 제국주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이처럼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은 러시아, 중국,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역시 민족주의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일본 부르주아는 주변국과의 마찰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계급 갈등의 불씨를 덮으려고 한다. 이는 한국,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부의 계급 갈등을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제국주의 강화와 자본의 총알받이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민족주의 강화라는 열매는 각국의 부르주아가 독식하게 된다. 또한 일본의 민족주의 강화는 역으로 중국, 한국의 민족주의 강화로도 나타난다. 그렇기에 영토 분쟁의 승자는 중국, 한국, 일본 각국의 국민도, 노동자가 아닌 부르주아뿐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작동 방식
한국 노동자는 유독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100년 전에 일본어를 거쳐서 조선어와 중국어에 들어온 민족이라는 ‘nation’의 번역어도, 민족이나 민족주의 개념도 극히 근현대적인 현상이다. 민족주의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중들의 의식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지식인 그룹이나 한국 정권의 교육제도와 매체를 통해서 주입 강요해 온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한•중 양국 간 논쟁을 꼽을 수 있다. 2000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킨 결과물이다.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고구려사가 한국사라는 주장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현실에 대한 무지의 반영일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사는 민족 국가의 역사적 신화를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장치일 뿐이다. 이렇듯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조선, 더 나아가 고구려 등의 과거를 민족, 민족주의 일색으로 칠하고 있다.
국사의 이데올로기 기제는 학교 교육, 국민적 기억의 공식 행사(현충일), 제도화된 국경일(제헌절, 개천절), 전쟁 기념비, 국립 박물관, 역사 소설/드라마 등등 굉장히 공고하고 단단하다. 또한 동아시아 정치 지형(북한의 핵은 일본 재군비의 강화로, 이는 다시 남, 북, 중의 민족주의 강화)에서 국사는 철저히 민족주의 강화에 복무한다. 현상적으로는 동아시아 민족주의는 대립하지만, 사유의 틀, 이데올로기 전략은 공유한다. 즉 권력의 강화, 노동자의 역사의식을 민족주의로 규율하여 권력이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 호응, 지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한국, 일본에서 부르주아 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민족적 명분을 조작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정권과 민주당 역시 다른 부르주아 분파와 노동자에 대한 이데올로기 장치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민족주의에서 파생한 극우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부르주아 분파에 대해서는 반일민족주의를 내세워 도덕적 우월감의 근거로 활용한다. 또한 노동자에게는 친자본적이고 반노동적인 민주당의 행태를 가려주고,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으로 보이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자산이다. 한일 민족주의 대립에서 삼성이라는 다국적 자본은 일본 민족주의에 대항한 수호자로 둔갑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철저하게 외면과 무시로 일관한다. 이렇듯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노동자 국제연대를 뿌리에서부터 공격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민족주의 극복 방법은 오로지 노동자 국제연대뿐
오늘날 국가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현상은 자본주의가 민족자본의 경쟁적인 블록의 형태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민족국가는 사회적 재생산 과정을 통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진정한 통합을 반대한다. 국제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체제의 수립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에서 민족국가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가 더욱 악화됨으로서 민족국가의 모순은 명명백백해진다. 각각의 민족국가는 공업-농업 기반시설, 화폐 그리고 국경을 필요로 한다. 생산 활동에 어리석은 중복을 초래하는 자립하려는 민족자본의 노력은 쇠퇴하는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생산력의 어마어마한 낭비로 나타난다. 반면에 민족자본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의 불가피한 첨예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인류와 경제자원에 대한 가장 끔찍한 낭비를 초래한다.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 전쟁이다.
맑스가 언급했듯이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국익은 노동자 대중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제국주의를 위해 노동자들을 입대시키려는 목표를 갖는 신비화에 불화하다. 20세기를 통틀어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는 애국주의. 민족방어, 민족해방의 기치 아래 혼란에 빠져 전쟁에 동원되고 학살당했다. 세계대전과 국지전에서 게릴라전과 거대한 국가 군대 간의 대결에서 만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압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도록 강요받았다.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이익 간의 극명한 양극성은 20세기 이후 더욱 명확해졌다.
민족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는 틀을 구성하며, 봉건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의 혁명 투쟁은 민족투쟁의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의 가장 적절한 틀을 민족에서 발견했다면, 코뮤니즘은 전 세계적인 규모로만 수립될 수 있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한 가지 이익만을 갖는다.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해 전 세계적인 규모로 자신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해방 또는 혁명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를 하는지와는 관계없이 노동자계급을 인종, 성 또는 민족의 끈으로 나누려고 시도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반혁명적이다.
민족에 맞선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맞선 계급으로!!!
노동자국제주의와 국제적인 계급투쟁(전쟁)만이 민족주의/국가주의/인종주의를 넘어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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