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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계급 투쟁 전망

계급 투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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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의안은 22차 ICC 총회의 「해체 보고서」, 23차 총회의 「국제 정세에 대한 결의」, 24차 총회의 「대유행 및 해체 보고서」와 연속성을 갖는다.

 

 

24.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90년대 초, 동유럽 블록의 붕괴와 결정적인 쇠퇴기 개막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점점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할 것임을 알았다. 1980년대 계급 운동에서 이미 핵심적인 문제였던, 정치적 전망의 부재,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전망을 만들어낼 수 없는 무능력함이 코뮤니즘의 죽음이라는 귀청이 터질듯한 선전으로 심각하게 악화할 것이었다. 관련하여, 이 시기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체성 인식도 심각하게 약화할 것이다. 사회적 해체가 가져올 원자화, 분리 불화 효과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 하는 지배계급의 의도적인 노력 - 이데올로기 선전(“노동계급의 종말”)과 세계화 정책(계급투쟁의 전통적인 중심을 붕괴시키고, 충분한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노동계급이 있는 지역으로 산업을 재배치하는 등)이 가져온 “물질적인(유물론적인)” 변화들 모두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25.

ICC는 계급투쟁에서 이 후퇴의 깊이와 지속 기간에 대해, 종종 이러한 퇴조는 곧 극복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 지나면 1968년 이후 시기처럼 새로운 국제적 투쟁의 물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2003년, 프랑스, 오스트리아 및 각지의 새로운 투쟁들에 기반하여 ICC는 반(反)코뮤니스트 선전의 영향을 덜 받았으며 점점 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젊은 세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투쟁이 부활할 것임을 내다보았다. 2006년~2007년의 사건들, 특히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제(CPE)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그리고 특히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운동에서, 이 예견은 주요하게 확인되었다. 이 운동은 세대 간 연대, 집회를 통한 자기 조직화, 토론의 문화, 노동계급과 인류 전체가 직면한 미래에 대한 진정한 염려의 수준에 있어서 중요한 진보를 보여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계급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통합하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해체의 상황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가 직면한 어려움 –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시기 89년 패배 이후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방해가 될 –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26.

이러한 어려움에서 중요한 부분은 계급 정체성의 지속적인 침식이었다. 이는 2010-11년의 투쟁, 특히 스페인에서의 운동에서 이미 명백해졌는데, 의식과 조직 수준에서 중요한 진보가 있었음에도 인디그나도스의 다수는 자신을 계급 일부로 여기기보다 “시민”으로 보았으며, 이로 인해 이후에는 카탈로니아와 스페인 민족주의의 독이 된,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Demoratia Real Ya!)(미래 포데모스(Podemos)당)과 같은 것을 팔고 다니는 민주주의라는 환상에 취약하게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 운동의 여파에 따른 역류의 흐름은 포퓰리즘의 급격한 성장으로 심화하였고, 포퓰리즘은 국제적 노동계급의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는데, 민족적, 인종적 차이를 이용하는 이 분파는 포퓰리즘 우파, 그리고 포퓰리즘과 반(反)포퓰리즘 사이의 정치적 분파의 인종 집단 학살을 지지하는 태도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강화되었다. 전 세계에서 분노와 불만이 증가하고 있었고, 심각한 물질적 부족과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에 기초하여,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대부분은 프랑스의 노란 조끼와 같은 계급 간(inter-classist)의 봉기로, 기후 행진(climate march)과 같은 부르주아 영역의 단일 문제 선전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으로(홍콩, 벨라루스, 미얀마 등), 또는 인종적 성적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로 나타났는데,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응을 위한 유일한 기반이 계급 정체성이라는 결정적인 이슈를 더욱 감추는 데 기여했다. 이 운동의 확산은, 그것이 계급 간의 봉기로 나타나든, 노골적인 부르주아 동원으로 나타나든, 이미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던 노동계급 전체뿐만 아니라 계급 영역을 정의하고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는 조직인 코뮤니스트 좌파에게도 그 무게를 더했다. 명백한 보기는 보르디가주의자들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이 2020년 5월, 경찰의 조지 플루이드(George Floyd)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분노가 그 즉시 부르주아 방식으로 우회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무능력함이다. 그러나 ICC 또한 종종 이러한 일련의 운동들에 직면하여 중요한 문제에 직면했다. 과거 20년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일환으로, ICC는 2011년 아랍의 봄부터 이른바 한국의 촛불집회를 거쳐 최근의 봉기와 동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저질렀던 오류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27.

유행병 사태는 특히 노동계급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했다:

 

- 대다수 노동자는 이 질환의 실상과 다수가 모였을 때, 대중 집회와 노동자 시위의 가능성을 금지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진정한 위험을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더 시급한 의미에서 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재해가 가장 주요한 문제가 되는 상황은 계급투쟁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스본 지진으로 인한 볼테르의 자연에 대한 분노는 일반화되지 않았다. 1905년 러시아 대중파업과 같은 “사회적 지진”과는 달리,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1923년 도쿄 지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늘 그렇듯이,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에 적대하는 데 있어 해체의 효과를 이용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질병의 확산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따라 봉쇄는 이루어졌지만, 특히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형태로 노동계급의 원자화와 착취를 강제하기 위해 이 상황이 이용될 것도 확실했다. 노동 인구를 원자화하는 이 새로운 단계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르는 심리적 고통의 원천이 되었다:

 

- 같은 이유로, 지배계급은 유행병 상황을 이용하여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확대하고 저항과 시위를 제한하는 억압적인 새 법률을 도입하는 한편, 모든 사회적 불만의 표현에 맞서는 보다 노골적인 경찰 폭력도 가져왔다:

 

- 봉쇄로부터 비롯된 실업의 대규모 증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을 통합하는 요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원자화를 가속하려 할 것이다:

 

- 봉쇄가 많은 사회적 불만을 자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월의 스페인, 2021년 4월의 독일에서처럼 이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때 취한 형태가 압도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저항인 것은 노동계급으로서는 완전히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이었다:

 

-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체성 정치”가 보다 심화하는 유행병 사태 동안, 현 체제 아래에서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 인종, 성별, 문화 등에 기반을 둔 정체성의 충돌 소용돌이로 분열했고, 이는 전체 인류를 통합하고 해방할 역량이 있는 유일한 정체성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 - 의 회복에 주요한 위협을 조성했다. 더욱이, 정체성의 경쟁이 전체 인류에 침윤해 들어가는 이러한 혼란 뒤에는 노동계급을 새로운 형태의 반동적 “문화 전쟁”, 심지어 폭력적인 내전으로 끌고 들어갈 위험이 있는 부르주아의 좌우파 간의 경쟁이 있었다.

 

28.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급이 전 세계 규모에서 이미 패배했다거나, 반(反)혁명 시기처럼 그와 비견될 만한 패배, 프롤레타리아트가 이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패배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피착취 계급으로 패배의 학교를 통과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나, 핵심적인 문제는 혁명적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손상하는 가차 없는 해체의 진행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미 압도했는지이다. 해체의 단계에서 그런 패배를 측정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에 공개적으로 맞서 일어나 일련의 패배로 박살 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 또는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트 새로운 세대의 투쟁 부활이 새로운 세계 전쟁을 향한 부르주아 추동력의 주요한 걸림돌이었던 1968년 이후 시기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다.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해체의 시기는 진실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완전히 대응에 실패하고 오랜 기간 분쇄되어 회복하지 못할 위험 - 계급 적대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무자비한 난도질”에 쓰러지는 것 - 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심할 수 없는 해체의 “진행”에도, 시간이 더는 노동계급의 편이 아님에도, 완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활 - 계급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통합으로 이끄는 – 잠재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목격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해체 시기 등장한 중요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2006-7년, 2010-11년 등):

 

- 유행병 사태 직전, 우리는 계급투쟁의 몇몇 태동적, 매우 연약한 신호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특히 2019년 프랑스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역동성이 대부분 유행병과 봉쇄로 중단되었을지라도, 심지어 유행병 사태 동안 몇몇 국가들에서 노동자의 저항 - 특히 노동 현장에서의 의료와 안전 문제를 둘러싼 - 은 존재했다.:

 

- 의식의 보이지 않는 성숙을 가리키는 작지만 유의미한 신호들, 자본주의의 실패와 (특히 2011년 인디그나도스와 같은) 일부 운동에서 다른 사회의 필요를 국제적 수준에서 고려하는 노력에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입장을 찾고 코뮤니스트 좌파의 유산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세대의 등장을 통해서도 그러했다:

 

-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동유럽 블록의 붕괴 이후와 1989년 해체 시기가 시작하던 때와는 다르다. 그 시기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코뮤니즘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승리, 그리고 인류의 밝은 미래가 열리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었다. 해체기 30년은 밝은 미래라는 이데올로기적 기만의 근거를 심각하게 훼손시켰고, 유행병 사태는 특히 자본주의 정부의 무책임함과 태만, 그리고 심각한 경제적 분리로 산산조각이 난 사회의 현실, 그래서 “우리가 그 속에서 모두 함께”가 절대 아니라는 현실을 드러냈다. 반대로, 유행병과 봉쇄는 노동계급의 상태를 보여주었는데, 의료 위기의 주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그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적 생산, 특히 기본적인 생필품의 생산과 “필수적인” 노동의 원천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그러했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양식이라는 이해가 확산하면서, 인류가 직면한 극적인 상황을 무엇보다 어쨌든 이해하고자 하는 정치화한 소수가 등장하는 요인이 되었다.

 

- 마지막으로, 더 넓은 역사적 수준에서 해체의 진행은 자본주의 아래 연합한 노동의 특징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해체로 사회적 원자화가 발생했으며, “긱 경제(gig economy)”와 같은 전략들을 통해 계획적으로 노동력을 분리하려고 했고, 프롤레타리아트 중에 교육을 더 받은 이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보여주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했다. 자본은 세계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동원한다. 프롤레타리아트화 진행과, 그에 따른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더 상호 연결되어있으나, 그러나 사회적 원자화와 고립, 해체의 진행 또한 강화되었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경험하는데 직면한 어려움에서도 표현되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 영역에서의 투쟁을 통해서만 코뮤니즘의 연합된 노동에 대한 기대를 표현할 수 있는, “연합된”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정에서 자본에 의해 모이는데, 여기서는 강제로 노동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성격은 집단적 투쟁으로 이러한 조건을 변증법적으로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노동의 착취는 착취에 저항하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해방하는 투쟁 속에서 바뀌어, 연합된 노동의 잠재력을 어떻게 완전히 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아는 사회로 향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방어적 투쟁은 계급투쟁의 마지막 목표 – 맑스가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이라고 부른 –인 질적으로 더 나은 사회적 관계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이 연합을 통해, 그 모든 구성요소, 역량, 그리고 경험들을 모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강력해지고, 해방된 인류를 위한 훨씬 더 의식적이고 연합된 투사가, 그리고 선구자가 될 수 있다.

 

29.

경제적 위기에 해체의 진행이 반응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경제적 위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으로 남아있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아래와 같이 쓴다:

 

“자본주의 위기의 가차 없는 악화는 사회적 부패가 주입한 독에 저항하는 자신의 능력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 계급투쟁과 의식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각성제이다. 해체의 효과에 저항하는 부분적인 투쟁 속에서 계급의 통일을 위한 기반은 한동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위기의 직접적인 효과에 저항하는 계급의 투쟁은 계급의 힘과 통일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성한다. 이것은 왜냐하면:

 

- 해체의 효과(오염, 마약, 불안정)가 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들을 공격하고 비(非)계급적 선전과 신화(생태, 반핵 운동, 반인종주의 동원 등)를 위한 비옥한 토양을 형성하는 동안, 위기의 직접적 결과인 경제적 공격(실질 임금 하락, 해고, 생산성 증가 등)은 프롤레타리아트(이 영역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자본주의에 맞서는)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덮친다.

 

- 본질적으로 상부구조의 효과인 사회적 해체와는 다르게, 경제적 위기는 이 상부구조가 기반을 두고 있는 기초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를 살찌우는 모든 야만을 까발리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체제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려 하기보다, 급진적으로 체제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테제 17)

 

30.

결론적으로, 계급을 착취 받는 범주로만 보고, 영웅적, 혁명적 세력으로는 취급하지 않는 전형적인 현대적 견해가 있으나, 우리는 계급의 경제적 투쟁, “방어”, 중요성을 경시하려는 풍조를 거부해야 한다. 경제적 투쟁이 그 홀로 해체의 파도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이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듯이, “위기의 효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는 충분하지 않다: 오직 코뮤니스트혁명만이 해체의 위협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5년 「대대적 파업」이라는 그의 글에서 강조했듯이, 그리고 다시, 1918-19년 독일혁명의 열기 속에서 - “정치적” 관점이 개방되어 있었을 때 -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계급으로 조직하고 통일시킬 유일한 기반으로서 경제적 투쟁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여전히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투쟁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 사이의 지속적인,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놓치는 것 또한 심각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혁명적 전망을 회복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인류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의 악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해체되는 부르주아 사회의 객관적인 한계에 저항하기 위해 등장한 계급 영역에서의 새로운 방어적 투쟁과, 노동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정치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혁명적 소수의 개입으로 자양분을 얻은 투쟁의 결합일 것이다.

 

31.

초기에 계급의 정체성과 전투성을 재발견하는 것은 자본주의 해체의 부식 효과에 대한 저항의 형태 - 노동계급이 더 파편화되고 내부에서 적대하는 이들로 분열되는 것을 막는 보루-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환경 파괴, 만연한 군사적 무질서와 같은 현상은 계급투쟁의 발전 없이는 무력감을 강화하고 생태주의나 평화주의와 같은 거짓 해결방안에 의존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보다 발전된 단계에서, 혁명적 상황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은 자본주의가 진실로 그 몰락의 최종적 단계에 도달했음을 이해하고, 혁명이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해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자본주의의 전쟁 추동은 – 무엇보다 강대국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있을 때 – 매우 구체적인 착취와 물리적 위험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사회주의와 야만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더욱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계급투쟁의 정치화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동원의 해체와 절망의 요인들로부터, 이러한 위협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죽어가는 체제를 폐지하려는 결단을 강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곧 다가올 시기,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내부에서 해체가 촉발시킨 약화로부터 이득을 취할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일반인들에게 가하는 해체의 해로운 효과에 저항해야만 하는데, 이는 착취 받는 계급으로서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그 자신의 힘과, 집단적으로, 그리고 연대하여 투쟁하는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그런데도 혁명적 선전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해체의 위험을 강조해야 한다). 오직 혁명적 시기, 프롤레타리아트가 공격으로 전환한 시기,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영웅적 전망으로 무장할 때, 해체의 특정한 효과들, 특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강대국 세력, 그 영향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자본에 저항하도록 방향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해체에 대한 테제)

 

- 24차 ICC 총회에서 채택한 국제 정세에 대한 결의안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 YW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62/resolution-international-situation-adopted-24th-icc-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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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5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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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지 않았지만, 자본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무엇이 정상인가? 대유행 이전 사회는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경제위기, 환경위기, 기후 위기, 생태계 파괴 등이 일상화된 사회였다. 언제 어디서든 이러한 체제 위기가 터져 나오는 사회였다. 게다가 전쟁과 학살은 세계 60여 곳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정상으로 복귀가 아니라 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와 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코뮤니스트」 15호에서는 자본주의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공동 성명을 실었다. 우리의 입장은 전쟁에 맞선 ‘국제주의 원칙’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구호에 집약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며, 장기간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 충돌의 새로운 국면을 의미한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는 동유럽으로 계속 영향력을 확대했고, 러시아는 다시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위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권 다툼이 전쟁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와 유럽연합(EU)을 미국 주위로 결속시키고, 러시아를 중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무대가 열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에서 우리는 현재의 모든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며, 민족해방 투쟁의 연장선상인 민족자주, 조국 방어 등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평화주의에 대한 반박을 통해 전쟁은 자본주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자기모순의 결과임을 밝혔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의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이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호소’,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이러한 국제 행동 호소를 통해서는 전쟁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이는 1차 세계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서 비롯되었다. 

 

「코뮤니스트」 15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자 전망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외에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소중한 의견을 기다리며 섹션별 주요 기사를 소개한다. 

 

□ 코뮤니스트 정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성명서, 부르주아 선거 비판, 반(反)여성주의 이슈 배경과 1917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러시아 국제여성노동자의날을 소개했다. 

 

□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에서는 구(舊)소련 등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유화, 민족해방투쟁에 오해와 왜곡을 코뮤니스트 입장에서 편견을 깨트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기획 번역과 □ 스탈린주의 비판에서는 유토피아에서 과학적 코뮤니즘에 기반을 둔 맑스와 엥겔스의 고민부터 좌익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다양한 경향을 비판적으로 소개하였다. 

 

“제국주의 쇠퇴의 시기, 모든 전쟁은 반동적이다.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며, 오직 사회 혁명만이 진보적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은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과 지향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예외 없이, 모든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의 방어”, “민주주의 방어”, “파시즘과의 투쟁”, “민족 해방”, “해방 전쟁”, 그리고 “자결권” 등등의 깃발 아래 모여,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총알받이로 취급했으며, 제국주의 학살자가 되도록 질질 끌고 왔다.”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는 자본의 좌파로 통합되었는가?’, 국제주의자 목소리)

 

‘코뮤니즘 : 장애를 없애는 실제 운동’은 장애인의 억압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혁명적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코뮤니스트 이론과 장애 운동가 및 이론가의 통찰력을 결합하려는 잠정적인 시도로 작성된 글이다

 

“만약 장애가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면, 그리고 코뮤니즘이 자본주의를 폐지한다면, 코뮤니즘은 장애를 폐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가능한 미래 사회를 가장 넓은 의미에서라도 스케치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는 왜 장애가 코뮤니즘에서 존재할 수 없는지를 기꺼이 몇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생산과 삶을 전반적으로 자기 관리하는 것이 특징인 코뮤니스트 사회를 '능력, 필요에 따라 각각'이라는 구호를 적용하면 장애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 서평 「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 우리 일”」을 읽고’ 에서는 여러 분야의 사회적 약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해 코로나19 재앙을 직접 맞닥뜨린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르포형식으로 엮었는데,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다만 르포형식이라서 코로나19 발생의 근본 원인과 체제의 문제를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 자본주의 경제 비판과 □자본주의 쇠퇴에서는 계급에 따른 불평등한 인플레이션과 재료의 상품화와 기술이전에 대한 제국주의 횡포를 소개한다. 최근 반도체 생산에 대한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자본 사이의 경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쇠퇴에서는 ‘마리 모니크 로뱅(Marie Monique Robin)의 「대유행의 제조」’의 비판적 분석을 통해 현 과학자들의 문제와 그러한 무기력에 맞서는 대안은 코뮤니즘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누구 또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결국 그 책에서 비판받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실 “인간 활동”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대한 모호하고 일관성 없는 고발은 우리를 모호한 상태로 이끌 따름이다. (...)

 

자본주의처럼 계급 분할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 일반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은 완전히 신비화된 정식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관계의 실제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보건과 환경 문제가 실제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조건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업무에 해당하는 것을 “과잉”이나 “일탈”로 제시하는 것은 전체로서 자본주의 체제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다.”

 

그러면서도 책 전반에 걸쳐 과학자들은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특히 경제와 생산 수준에서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고할” 세계적 규모의 “사회 혁명”의 필요성을, 새로운 윤리를 계발하고 그것이 없으면 “생태계를 오래 보존”하기가 불가능할 “빈곤 문제”를 해결할 필요를 제기한다.’라고 소개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적대, 그리고 인간 사이의 적대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코뮤니즘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에서는 ‘가브릴 미아스니코프,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를 지난 호에 이어 연재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과 전망을 일관되게 제시한 「코뮤니스트」에 대한 동지들의 관심이 국제적 실천과 공동행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다.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계급전쟁뿐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2022년 4월 30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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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2년 15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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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2년 15호

 

 

차례

 

 

□ 코뮤니스트 15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성명서 

▶ 선거, 부르주아 통치의 화려한 사기 전술 

▶ 부르주아 선거와 국제여성노동자의 날 그리고 페미니즘 

▶ 105년 전 러시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국제여성노동자의날 

 

 

□ 특집.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자 전망

 

▶ “귀하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마라! 

▶ 만연한 전쟁 위기와 전망? 오직 한 가지 해답 

▶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중요성과 그 결과에 대한 테제 

▶ 전쟁, 착취, 자본주의 지배: 그들에 맞서는 방법과 이유 

▶ 1936년~1939년까지 스페인 전쟁,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선전이 숨기고 있는 것 

▶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우크라이나와 대만 : 불확실한 제국주의 세계의 화약고 

 

 

□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 

 

▶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 

 

 

□ 국제

 

▶ 자본가들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 기획 번역

 

▶ 자본주의와 그 불만: 좌익주의의 여러 얼굴들 

▶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는 자본의 좌파로 통합되었는가? 

▶ 코뮤니즘 : 장애를 없애는 실제 운동 

 

 

□ 서평

 

▶ 「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 우리 일”」을 읽고 

 

 

□ 기획. 스탈린주의 비판

 

▶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 이론. 자본주의의 경제 비판

 

▶ 칩: 생산의 혼돈과 추가적인 제국주의 충돌 

▶ 인플레이션은 이웃마다 다르다 

 

 

□ 자본주의 쇠퇴

 

▶ 무기력 제조에 맞서 코뮤니즘만이 인류에게 전망을 제공한다 

▶ ICC는 왜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을 방어하는가?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가브릴 미아스니코프,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Ⅱ 

 

 

*** *** *** *** *** *** *** *** *** *** *** ***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자!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스트 평화 세상을 위해 투쟁하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 가격 :  15,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15호는 2022 메이데이 집회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리플렛과 함께 배포/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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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세계의 노동자만이 자본주의 재앙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세계의 노동자만이 자본주의 재앙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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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세계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코비드19가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수십억은 아니더라도 수억 명이 그 안으로 떨어졌었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격찬’에도 백신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팬데믹을 통제하지 못했다.(현재 세계 인구의 6분의 1 미만이 2차 접종을 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감염률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영국에서는 모든 법적 안전 조치가 해제되고 있다. 그들이 도박하는 것은 이윤 창출 기계가 곧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전의 ‘정상’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팬데믹 이전에도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의 반란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수단(다르푸르 전쟁이 계속되는 곳), 소말리아, 모잠비크, 그리고 사헬 전역의 전쟁 등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제국주의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그 외에도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필리핀 등 너무 많은 곳에서 경찰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폭력과 그로 인한 굶주림을 피해서 도망쳐야 하는 난민들의 위험한 운명도 함께 내던져지고, 이들은 결국 북아프리카(특히 리비아), 멕시코와 유럽으로 가게 된다.

 

이러한 멋진 세계라는 스티븐 핑커(Stephen Pinkers)의 선택적 낙관주의 선전에도 지구상에 사는 20억 이상의 사람들의 현실은 말 그대로 다음 식사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고 있다. 과학적 진보는 사회적 격세유전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우리는 최근 콜롬비아와 쿠바 국민이 경제적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극적인 시위를 보아왔지만, 팬데믹의 여파가 계속됨에 따라,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부채와 그 결과

 

비교적 편안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팬데믹 이전의 푸드 뱅크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지난 15개월 동안 다양하게 증가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정부는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 결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팬데믹은 세계 정부 부채를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세계 연간 경제 생산량을 넘어섰다. 특히 부유한 나라의 정부는 부분적으로 코비드19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있다.” (1)

 

그리고 같은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2008년 이후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시스템을 구한 이후 계속 늘어나는 부채에 대해 훨씬 더 여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 부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WSJ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미국 정부는 2년 연속 3조 달러의 재정적자를 내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10년 만기 재무부 채권의 수익률은 약 1.33%에 불과하며, 이는 부분적으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 신중론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냉정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굴고 있지만, 그 시스템은 난관에 봉착했다.

 

만약 이미 명백하게 드러난 인플레이션(특히 원자재, 시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시스템은 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이다(미국과 다른 부유한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미국의 경우 0~0.25% 사이). 만일 그렇게 되면 부채 상환은 갑자기 지속 불가능하게 되는데, 특히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이자만 내고 살아남는 현재 상당한 수의 '좀비 기업'은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달러화의 세계적 패권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의 결과는 이른바 '신흥시장'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들은 국내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고서는 단순히 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 여기서 (아르헨티나와 같이)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은 초인플레이션과 지속 불가능한 부채 상환에 직면할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도, 유니세프는 2019년에 25개국이 (대부분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있는) 교육, 의료, 빈곤층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보다 부유한 나라의 금융 기관에 대한 부채 상환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잠비아의 외채 상환은 2011년에 정부 수입의 2%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34%를 차지했다. 파키스탄의 외채 상환은 같은 기간 10% 미만에서 35%로 급증했다.(2) 백신에 더 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이러한 부채 비율이 더욱 증가할 뿐이지만, 이번 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약 회사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위해 이윤을 남기는 한에서만, 인간의 건강(혹은 그것의 결핍)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위에서 언급한 유형의 대규모의 불행과 더 많은 사회적 폭발을 의미할 뿐이다. 심지어 일부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지배계급은 이미 억압의 도구를 다듬고 있으며, 프랑스, 영국, 호주는 경찰의 권한(그리고 배상)을 강화하거나, 법과 질서의 힘을 더욱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

 

어떤 것들은 "정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국주의 경쟁은 단지 수백만 명이 아파서 죽어간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미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유라시아 전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망에 맞서 서방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트럼프가 허물었던 울타리를 다시 손보고 있다. 이 문제에서 우리의 이탈리아 동지들이 보여주듯이, 그 대응은 중국이 이란과, 미국에 반감을 품은 다른 국가들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중국이 태평양에서 미국과의 최후의 대결을 대비해 해군을 증강하면서 일련의 군사작전으로 대만을 위협하고 있다.(3)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 지도부는 ‘중국혁명’으로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되고 싶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 부활의 일부는 홍콩, 마카오,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완전히 통합할 것을 요구한다.

 

이 새로운 ‘정상’에는 또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얼음의 양이 2020년 10월에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감소한 북극의 제국주의 경쟁도 포함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캐나다, 미국, 영국이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중국은 두 번째 쇄빙선인 스노우 드래곤(Snow Dragon) 2호를 그곳에 보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코스코(Cosco)는 러시아와의 '아이스 실크로드' 구상의 일환으로 매년 북극해 항로를 통해 선박을 보내는 5대 컨테이너 선사 중 유일한 회사이다.”(4)

 

이 모든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해 점점 더 부족한 수자원(사헬에서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사이의 청나일강, 중동의 요르단,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을 둘러싸고 제국주의자들 사이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만든 기후 변화는 팬데믹, 제국주의 경쟁 그리고 전반적인 환경 위협을 인류의 미래와 연결 짓는 것이다.

 

자본주의 기후 변화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유례없는 폭염으로 500명이 사망하고, 벨기에와 독일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로 200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실종되었다. 둘 다 모두 인간이 만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결과로 이미 30년 동안 매년 1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은 앞으로 1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세계보건 기구와 다른 과학자 추정)(5) 그리고 합의된 것은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경건한 약속뿐이지만, WSJ가 2017년에 권고한 바와 같이, 이는 세계 GDP 성장의 0.1% 이상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실제로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멸종을 훨씬 능가하는 속도로 종들이 사라지는 지구 역사상(그리고 인간만이 아닌)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대량멸종을 겪고 있다.(6) 이 모든 문제(또는 문제 처리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윤 추구에만 기초한 시스템으로, 한쪽에서는 과도한 부를 창출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믿을 수 없는 빈곤을 초래한다. 일부 사람에게는 몇몇 개혁이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은,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겠지만, 우리는 이미 선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금전적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데 전념하도록 생산 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인류는 세기말까지 세계 인구의 약 8분의 1만을 부양할 지구를 직면하게 된다.(7) 자본가들이 그들의 게임이 끝났다는 데 동의한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재도약의 가능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본 통제자의 관점에서 심각한 위기는 단지 일련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부유해지고 있고,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은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름의 일관성 있는 프로젝트가 부족하기에 자본가들과 정부는 (그들은 현재 승리하고 있다) 계급전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고 있다. 이번 호 브레튼우즈 붕괴 기사가 보여주듯이, 세계 자본주의는 반세기 동안 수익성 위기에 직면해 왔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간에 걸친 위기이다. 이 시스템은 1945년 전후 호황과 같은 수익성 있는 축적의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기 전에 대규모 자본의 평가절하가 정말로 필요하다. 실제로, 세계 대전과 같은 파괴적인 사건만이 이것을 가져올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은 그 결과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하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노동계급 운동의 부상이나 이미 분석된 제국주의 경쟁의 심화로 인해) 다른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관성과 혼란이 주요 정책 추진력이 될 것이다. "녹색 산업혁명"(자본가 우파) 또는 그린뉴딜(자본가 좌파)에 대한 위대한 희망이 제기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터무니없는 계획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동계급과 일반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이 제도의 어리석음에 대해 다시 한번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대중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희망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필연적인 소멸을 향해 돌진해 나아가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혁명 강령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지역적 문제나 당면한 문제(보기를 들어 자본주의 국가의 폐지 없는 경찰의 폐지는 무의미하다)를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적인 생활방식을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이는 "정체성"(인류를 분열시키는 이념적 게임)이 아니라, 생산 체제에서 우리가 갖는 공통적인 계급적 입장에 기초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세대의 노동자 투쟁의 역사(노동자평의회의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 인류공동체)가 제공하는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유롭게 연합하는 생산자들의 공동체 형태로 이윤이 주도하는 재앙의 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다. 물론 혁명가들이 전파하는 강령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필요한 것은 이미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대규모 운동이다. 우리의 임무는 지금까지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얻은 사상을 이해시켜 이번에는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법령으로 전복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해방 강령을 받아들인 계급 대중의 행동으로만 전복할 수 있다. 인류는 오늘날만큼 그러한 계획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2021년 8월 31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

 

(1) wsj.com

(2) 피터 S. 굿맨과 앨런 라페포트 "이것은 가난한 국가들을 전염병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계획이다" 「뉴욕 타임즈」, 2021년 6월 24일

(3) news.usni.org 중국은 현재 미 해군보다 더 많은 함정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또한 1979년에 베트남을 침공하려다 패배한 이후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다.

(4) theguardian.com

(5) scientificamerican.com

(6) un.org

(7) nymag.com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31/only-the-world-s-workers-can-save-us-from-a-capitalist-catacly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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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War But the Class War!

No War But the Class War!

Only the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to overthrow the capitalist system can stop the imperialist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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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months have passed since Russia invaded Ukraine. The United States and Western countries have imposed all-round sanctions against Russia, but Russia has not stopped its aggression. In the war, the European Union (EU) was the first to finance Ukraine's arms procurement, and Putin warned against the use of nuclear weapons. This war is unprecedented since World War II, and humanity as a whole is faced with a more generalized war crisis.

 

In 2006, the crisis of war also escalated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t the first “Communist International Congress” held in Korea at that time, there was an “Internationalist Declaration Against the Threat of War”. The declaration made it clear that it is the worldwide struggle of the working class that can stop the “defence of internationalist principles” and the imperialist war. “We declare that it is the worldwide struggle of the workers that can forever put an end to the barbarism and imperialist wars and the threat of nuclear destruction that are swarming mankind under capitalism.”

 

Fifteen years have passed since the Declaration of Internationalism. The danger of war on the Korean Peninsula persisted, the capitalist economic crisis intensified the imperialist clash, and another war in Europe was provoked. In this crisis,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of the working class for the defence of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and the revolutionary overthrow of the capitalist system, the cause of war, has become more and more important.

 

The long-standing capitalist crisis that has not been resolved since the collapse of the speculative bubble in 2008 has accelerated since the COVID-19 pandemic. Now, in the capitalist world, the threat of imperialist war is escalating amid the deepening economic crisis, the risk of infectious diseases, and the increase in environmental disasters, creating cracks everywhere. The war in Ukraine that occurred under these circumstances was not Putin's sudden action, but meant a new phase of the imperialist clash that was on the verge of a generalized war amid a prolonged economic crisis.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NATO continued to expand its influence into Eastern Europe, and Russia tried to regain the status of an imperialist power again. The war in Ukraine united NATO and the European Union (EU) around the United States and brought Russia into the arms of China, setting the stage for an extensive imperialist war.

 

All the damage of war for the interests of the ruling class fell miserably on the proletariat. Thousands of Ukrainian civilians and soldiers on both sides have already been killed and hundreds of thousands of refugees have been driven into the streets. The war will cause further increases in energy and grain prices, exacerbating poverty and worsening living conditions for workers around the world. Those who benefit from this war that destroys the lives of the working class are the ruling class exploiting the working class. They make the working class die and kill each other through nationalist ideology and war propaganda machines for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dominance and profit.

 

All wars today have the character of imperialist warfare, which has only brought suffering, death, and further destruction to mankind. In these wars, the result of the struggle for national liberation was not the weakening of imperialism, but the replacement of other imperialist forces. This proved that the so-called "national liberation struggle" is far from the "anti-imperialist struggle" because it forces the working class to choose one side of the ruling class or the other of imperialism to identify themselves with some of the ruling class.

 

In the midst of the deepening imperialist conflict, the position of internationalists against the nationalist ideology that still insists on defence of the motherland and national independence has not changed. It is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to convert the “imperialist war into civil war” raised by revolutionaries in the First World imperialist genocide war. In 1917-18, the working class put an end to the imperialist genocide by forcing the bourgeoisie through revolutionary struggle. The same is true of the attitude of the working class to the war in Ukraine. It is to turn the imperialist war into a “class war” against the ruling class without taking sides in the war between the ruling classes, where the working class kill each other.

 

Supporting one side in an imperialist war is supporting the ruling class, and pacifism that refuses to turn an imperialist war into a class war neutralises the class struggle. There is only one way for the working class to escape from the crises of capitalism, suffering and the deadly threat of war. It is to reject all ruling ideologies, including nationalism, and fight in solidarity internationally for the common interests of the working class. It is to stop the imperialist war through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recognising that the only war worth fighting for the workers is a class war, a war against the exploiters.

 

The war in Ukraine expresses the deep and old crisis of capitalism. Today, the war is not only taking place in Ukraine, but also local warfare in more than 60 regions. The crisis of mankind as a whole is progressing not only through war, but also through poverty, infectious diseases, and environmental destruction. We live in an increasingly dangerous world. War destroys the lives of the working class and families, but the ruling class fights for its own benefit. The race to war is a result of the operation of the capitalist system itself. It's not because of some bad leaders, it's a problem with the capitalist system. The working class now has no prospects without the revolutionary overthrow of capitalism. Therefore, the real alternative we face is 'War or Revolution?' In order to fundamentally end the imperialist war that will lead to the destruction of mankind, it is necessary for the revolutionary overthrow of capitalism through an international class war and to build a new system, a world community of freely united producers.

 

The working class must reject all the logic of war and peace led by the ruling class in the imperialist war and take a position of its own.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clarify the internationalist position against the hypocrisy of all pacifist anti-war movements that are not associated with the movement to change the capitalist system, and against the support of “less bad”one side of imperialism claimed by pseudo-socialists. We appeal to all workers who oppose the war against capitalism and imperialism to engage in the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to end the imperialist war under the slogan “No war, but the class war!”.

 

Even if the internationalist workers are a minority now and a revolutionary movement like 100 years ago does not exist, this movement will contribute to the revival of class struggle, the creation of working class own methods, and the emergence of a new subject.

 

Let's end the imperialist war with the international class struggle to overthrow the capitalist system!

 

A society in which all exploitation,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are fundamentally abolished! A socialized society where the means of production are no longer in the hands of capitalists or the state! Let's fight for a communist peaceful world wher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re in harmony with humanity and nature!

 

No war, but the class war!

Peace through revolution!
 

April 13, 2022
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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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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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두 달이 되어간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제재를 가했지만, 러시아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전쟁에서 유럽연합(EU)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무기 조달에 자금을 지원했고, 푸틴은 핵무기 사용을 경고했다. 이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인류 전체는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6년 한반도에서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당시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코뮤니스트 국제대회」에서는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자 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은 ‘국제주의 원칙의 방어’와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밝혔다. “자본주의 아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핵 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국제주의자 선언 이후 15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은 지속되고,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제국주의 충돌을 격화시켰고, 유럽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불러왔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방어와 전쟁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는 더욱더 중요해졌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지속해온 자본주의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제 자본주의 세계는 경제 위기의 심화, 감염병 위험, 환경재앙의 증가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도처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며, 장기간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 충돌의 새로운 국면을 의미한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는 동유럽으로 계속 영향력을 확대했고, 러시아는 다시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위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권 다툼이 전쟁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와 유럽연합(EU)을 미국 주위로 결속시키고, 러시아를 중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무대가 열렸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의 피해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에 비참하게 떨어졌다. 이미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양측 군인이 희생되었고,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야기해 세계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악화와 빈곤을 가중할 것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경제, 정치, 군사적 지배력과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선전 기계를 통해 노동계급끼리 죽고 죽이게 만든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그동안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이 노동계급에게 자신을 지배계급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 즉 지배계급의 한쪽이나 제국주의의 다른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했다.

 

심화하는 제국주의 충돌 속에서, 아직도 조국 방어, 민족자주를 주장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선 국제주의자의 원칙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1차 세계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1917년~18년 노동계급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부르주아지를 강제해 제국주의 대학살을 종식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것은 지배계급을 지지하는 것이며,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는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킨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 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 계급전쟁뿐임을 인식하고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본주의의 깊고 오래된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뿐만 아니라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 전체의 위기는 전쟁만이 아니라 빈곤, 감염병, 환경 파괴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전쟁은 노동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지만,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 그것은 몇몇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이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인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모든 전쟁과 평화의 논리를 거부하고 자기 계급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덜 나쁜’ 제국주의 한쪽 편들기에 맞서,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운동과 결부되지 않은 모든 평화주의 반전 운동의 위선에 맞서 국제주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구호 아래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비록 지금은 국제주의 노동자들이 소수이고, 100년 전과 같은 혁명적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운동은 계급투쟁의 부활과 노동계급 자신의 방식 창출, 그리고 새로운 주체 출현에 이바지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자!

모든 착취와 억압, 차별이 근본적으로 철폐된 사회!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스트 평화 세상을 위해 투쟁하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2022년 4월 13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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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행동 호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행동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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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이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다. 제국주의 경쟁의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경제 위기의 산물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의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이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3. 그러나 세계화, 금융화, 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다. 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다. 체제의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면할 수 없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다.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이 편리한 방식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지구상에서 미국과 경쟁하기 시작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의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의 모순을 심화시켰다.

 

5. 그 거품의 붕괴는 각국이 금융 체제의 부채를 흡수하기 위해 개입하지 않았다면, 1929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강화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 이는 일반화된 전쟁을 필요로 한다.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이러한 추진력은 한동안 탄력을 받아왔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기후 변화로 인한 실제 위협보다 더 빠른 순서로). 사실 세계전쟁의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 활동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임금노동자는 착취자의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국익도 없다. 그들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소수의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한 부문 또는 일터에서의 개별적인 투쟁은 사장과 그들의 노동조합 협력자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한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자가 국제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여 명확한 진로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맹공격 앞에서 노동자 투쟁이 수십 년 동안 쇠퇴한 후에는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각국 정부가 전 세계 노동자에게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경고하는 것이며, 우리는 일상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정치적 계획에 대응해야 한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시켰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한다. 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싸우자는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니다. 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정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이다. 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이다. 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자본주의의 종식을 요구하지 않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착취가 자본주의 존재의 필수 조건일 때,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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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 공동 성명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 공동 성명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모든 제국주의 세력을 타도하라!

자본주의 야만 대신 사회주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크고 작은 각기 다른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고 있는데, 이는 국제적 단결의 계급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이것은 군사, 경제적 지배를 위해 미국, 러시아, 서유럽 국가 기계를 담당하는 전쟁광들이 공공연하고 은밀하게 싸워왔고,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은 세계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결코 무고한 졸로 행동하지 않는 전략적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국가가 아닌 노동계급이 이 전쟁의 진정한 희생자이다. 무방비 상태의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학살에서도, 굶주린 난민 또는 징집된 총알받이로서도, 또는 증가하는 빈곤 속에서 전쟁의 영향이 모든 나라의 노동자에게 가져올 희생이다.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부르주아 생산양식은 제국주의 전쟁을 초래하는 경쟁적 국가 분열을 극복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더 큰 야만으로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세계의 노동계급은 임금과 생활 수준의 악화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1945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번 전쟁은 노동계급 투쟁이 부르주아지의 전복과 노동계급의 정치 권력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대체하지 않을 때의 세계 자본주의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

 

각기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 목표와 거짓말

 

러시아 제국주의는 1989년에 받은 엄청난 좌절을 뒤집고 다시 세계 강대국이 되기를 원한다.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와 세계 지도력의 유지를 원한다. 유럽 열강은 러시아의 팽창뿐만 아니라 미국의 압도적인 지배도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는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강자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미국과 서유럽 열강은 이 전쟁에서 그들의 진짜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설득력 있는 거짓말과 가장 큰 언론의 거짓말 기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작은 주권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하고, 크렘린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푸틴의 잔혹함에 직면해 인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더 강한 제국주의 갱단은 대개 더 나은 전쟁 선전, 더 큰 거짓말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敵)을 자극하고 조종하여 먼저 도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동,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러한 강대국들의 너무나 평화적인 수행을 기억하자. 최근 미 공군이 모술(Mosul)시를 어떻게 평정했는지,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짓 핑계로 이라크 국민을 학살한 수법을 기억하자. 1960년대 베트남, 1950년대 한국,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드레스덴, 함부르크 등 지난 세기 동안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많은 범죄를 기억하자.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러시아의 분노는 본질적으로 같은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항구적인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이다. '평화'는 호전적인 자본주의에서 막간(幕間)일 수 있다.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질수록 자본주의는 증가하는 공해와 전염병의 재앙과 함께 군사적 파괴가 더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혁명적 변화를 위해 썩고 무르익었다.

 

노동계급은 잠자는 거인이다.

 

자본주의 체제, 점점 더 많은 전쟁 체제와 그 모든 공포는 현재 통치에 대해 이렇다 할 계급적 반대가 없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 착취의 악화를 겪고 제국주의가 전쟁터에서 치러야 할 궁극적인 희생을 요구받고 있다.

 

혁명적 전위의 필수적인 역할에 의해 자극받은 계급의식만이 아니라 계급 이해관계 방어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훨씬 더 큰 잠재력을 숨기는데, 1917년 러시아에서 그랬고 당시 독일과 다른 곳에서 위협했던 것처럼 부르주아지의 정치 기구를 완전히 전복하기 위한 계급적 단결의 능력을 숨긴다. 말하자면, 전쟁으로 이끄는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10월 혁명과 그것이 다른 제국주의 열강에서 일으킨 봉기는 전쟁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 권력에 대한 공격의 빛나는 사례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혁명적 시기와는 거리가 멀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조건은 최초의 제국주의 학살 당시와 다르다. 한편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동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과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에서 이러한 원칙을 필요에 따라 조류에 맞서 철저히 방어하는 혁명 조직의 의무이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국제주의를 위한 투쟁과 꾸준히 이어온 투쟁의 정치적 전통

 

스위스의 침머발트와 키엔탈 마을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 사회주의자들이 만나 도살 행위를 끝내고 사회민주당의 애국적 지도자들을 규탄하기 위한 국제투쟁을 시작한 장소로 유명해졌다. 브레멘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의 지지를 받은 볼셰비키는 바로 이 회의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느 편의 제국주의 진영도 지지하지 않고, 모든 평화주의 환상을 거부하고, 오직 노동계급과 그 혁명적 투쟁만이 노동력 착취에 기반을 두고 제국주의 전쟁을 영구적으로 일으키는 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인식”

 

1930년대와 1940년대에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가 발전시킨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한 것은 오직 코뮤니스트좌파라고 불리는 정치적 흐름이었다. 이탈리아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는 제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에서 트로츠키주의를 포함하여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주장한 다른 흐름과 달리 학살에 대한 파시스트와 반(反)파시스트의 정당성을 모두 거부하면서 양측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 코뮤니스트좌파는 분쟁에서 스탈린주의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거부했다.

 

오늘날 유럽에서 제국주의 충돌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유산에 기반을 둔 정치조직은 일관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치를 계속 유지하며, 노동계급 원칙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기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소수이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코뮤니스트좌파의 조직과 그룹은 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야만성에 맞서 만들어진 국제주의 원칙을 가능한 한 널리 알리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대학살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

 

평화주의에 대한 환상은 없다. 자본주의는 끝없는 전쟁을 통해서만 살 수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는 착취에 대한 계급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2022년 4월 6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오노라토 데이먼 연구소(Instituto Onorato Damen)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소개>

코뮤니스트 좌파 조직은 세계 노동계급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공동으로 방어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한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관점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공동성명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이 성명에 동의하는 모든 동지들과 함께 국제적 행동에 나설 것이다.

 

<서명 단체 사이트>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www.en.internationalism.org)

Istituto Onorato Damen (http://www.istitutoonoratodamen.it)

Internationalist Voice (www.internationalistvoice.org)

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http://communistlef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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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맞선 러시아 국제주의자 성명

전쟁에 맞선 크라스-국제노동자협회(KRAS-IWA)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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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반대! 국제노동자협회(IWA) 러시아 지부 성명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 경고한 일, 믿고 싶지 않은 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배 엘리트들은 세계 자본의 선동과 도발, 권력에 대한 탐욕, 노동자들로부터 훔친 수십억 달러로 부풀려진 치명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들의 이익과 지배에 대한 갈망은 이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 치른다.

 

첫 번째 공격은 더 강하고 약탈적이며 오만한 도적인 크렘린이 시작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분쟁에서 항상 일어나듯, 직접적인 원인 뒤에는 지독하게 역겨운 이유가 얽혀 있다. 그것은 가스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투쟁이며, ‘위생’ 독재의 폭정과 ‘소비에트 이후 공간’의 분할과 재분배를 위한 구(舊)소련 국가들의 지배계급 투쟁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모든 국가 당국의 바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크고 세계적인 모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 간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 오래된 패권에 대한 도전과 크렘린의 ‘동생’을 전차에 고정시켰다. 오늘날 이러한 모순은 국지전을 일으킨다. 내일이면 그들은 제3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으로 번질 거라고 위협한다.

 

‘휴머니스트’, 민족주의, 군국주의, 역사적... 등등 어떤 미사여구로 현재 갈등을 정당화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정치, 경제, 군사적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노동자, 연금수급자, 학생에게 그것은 고통과 피와 죽음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평화로운 도시에 대한 폭격, 포격, 인명 살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적대 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전쟁 시작 이전에 존재했던 국경과 전선으로 모든 병력의 철수를 요구한다.

 

우리는 파병된 군인들에게 서로 총을 쏘지 말고, 더욱이 민간인에게 발포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파병된 군인들이 지휘관의 범죄 명령 수행을 집단으로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전쟁을 멈춰라!

 

총을 내려라!

 

우리는 전선 양쪽의 후방에 있는 사람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들에게, 이 전쟁을 지지하거나 돕지 말고, 반대로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참전하지 말자!

 

전쟁을 위해 우리 주머니에서 단 한 푼도 내주지 말자!

 

할 수 있다면 전쟁에 맞서 파업하라!

 

언젠가 (노동자들이 충분한 힘을 갖게 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들은 우리를 서로 적대하게 만든 모든 뻔뻔스러운 정치인과 과두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 사이에 전쟁은 없다!

 

계급 사이에 평화란 없다!

 

가정에 평화를 - 궁전에 전쟁을!

 

 

2022년 2월 26일

국제노동자협회(IWA) 러시아 지부

 

<출처>

https://iwa-ait.org/content/kras-iwa-against-war

 

 

 

 

러시아 국제주의자 성명에 대한 ICC의 소개

 

 

우리는 국제노동자협회(IWA)에 소속된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그룹 크라스(KRAS)가 발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성명을 게시한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가 러시아 국가에 의해 맹렬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명백히 국제주의적인 이 성명을 발표한 크라스 동지들의 용기와 확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성명은 양 진영을 제국주의자로 비난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계급 투쟁을 촉구한다.

 

물론 크라스 동지들과의 연대가 성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기를 들어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종식‘ 요구는 두 부르주아지 진영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양보로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침공과 폭격에서 철수하더라도 지난 8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낮은 수준에서 교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국제노동자협회 소속 세르비아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계획(the Anarcho-Syndicalist Initiative)의 성명은 부르주아지 일부가 퍼뜨리고 있는 평화주의적 환상을 더 명확하게 비난한다. 

 

"전쟁의 공포에 직면하면 실수하기 쉽고 무기력하게 평화를 외친다. 그러나 자본주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그러한 ‘평화’는 사실 노동계급에 대한 다른 이름의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관된 반(反)군국주의자의 입장은 자본주의 전쟁을 멈추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상황을 통제하고 사회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조직적인 계급전쟁이 필요하다.”[1]

 

우리는 또한 이 두 그룹이 전쟁에 대한 대응에서 전혀 동질적이지 않은 국제 아나키스트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것에 지적해야 한다. 보기를 들어, 국제노동자협회 영국 지부인 연대 연맹(Solidarity Federation)의 웹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글을 쓰는 시점에 전쟁에 대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고, 단지 지역 분쟁과 연대연맹 활동에 대한 설명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지부인 CNT의 전쟁에 대한 성명은 전쟁의 비인간성에 반대하지만, 노동계급 진영의 대응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2]

 

이와는 대조적으로 크라스는 ‘자신의’ 지배계급의 악행에 맞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입장을 옹호하는 일관된 기록이 있으며, 우리는 과거에 그들의 성명을 여러 차례 게시한 바 있다.[3]

 

2022년 3월 20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자본주의 전쟁을 노동자혁명으로 바꾸자! 국제노동자협회(IWA)

https://iwa-ait.org/content/lets-turn-capitalist-wars-workers-revolution

 

[2] 오두막에 평화를, 궁전에 전쟁을! | 국제노동자협회(IWA)

https://iwa-ait.org/content/peace-cottages-war-palaces

 

[3] 러시아 : 체첸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자 목소리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wr/263_russia_int.htm

 

조지아 전쟁에 관한 KRAS(러시아)의 성명서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08/08/kras-on-war-in-georgia

 

리비아 전쟁 : KRAS로부터의 국제주의자 입장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1/07/kras-statement-war-libya

 

러시아 국제주의자 선언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에 관한)

https://en.internationalism.org/worldrevolution/201403/9565/internationalist-declaration-russia

 

 

<ICC 기사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54/internationalist-statement-inside-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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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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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해 파리 코뮌 150주년을 기념한 바 있다. 또한 우리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도 기념해야 한다. 이 책의 초판은 파리의 노동 인구들이 대포들을,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가 몰수하기에 앞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등지로 옮기기 며칠 전인 1871년 2월 23일에 런던에서 출간되었다.

 

과학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혁명

 

이 두 사건의 근접성은 그 날짜보다는 정치적이다. 19세기 후반에 자본주의는 모든 곳으로 팽창하여 산업, 기술, 사회, 과학 같은 모든 수준에서 사회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진보는 아주 현실적이었지만, 직선적이지도 조화롭지도 않았다. 자본주의는 가스와 전기 사용을 촉진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를 끔찍한 고통에 처하게 했고, 식민지들에서 끊임없는 대량학살을 수행했으며, 인간성을 말살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초한 궁핍한 사회이지만, 생산력의 어마어마한 발전을 초래했다. 그러한 사회에서, 적어도 그 초기에는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과 인간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또한 종종 그것은 과학이 무력하게 부르주아지에 지배당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과학적 발견의 성과들을 포착하여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윤과 전쟁, 파괴와 죽음을 향하도록 했다. 이것은 오늘날 아주 분명한 사항인데, 과학적 진보의 대부분(보기를 들어 우주 정복, 인터넷, 인공지능)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요청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점차 그것의 역사적 임무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인간에 의해서 축적된 문화적·과학적 유산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대한 문화적 형제애로서 인류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와 연결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문화 전반의 이익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낳았으며, 그리하여 오늘날 모든 나라의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제는 상속권을 상실한 의붓자식이 된) 저 부르주아 문화의 지식과 기예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가장 이상주의적인 옹호자로 만드는 아주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현상을 창출한다.”1)

 

분명 맑스주의는 과학이 아니지만, 상이한 영역에서 일어난 과학적 진보를 점진적으로 통합한 과학적이고 투쟁적인 이론이며, 또한 유물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봉건제 안에서 부르주아지와는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아무런 재산도 지니지 못함으로써, 그 의식과 이론을 최고도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해방하는 동시에 인류를 계급 사회의 감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이유는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혁명 이론(맑스주의), 단결, 자체의 조직, 그리고 세계 혁명 정당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발견 그리고 과학 전반의 발견이 아주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의 유래” 문제에 착수하면서, 1868년 2월 4일 다윈은 새로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두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국 해군함 비글(Beagle)호로 세계 일주 여행(1831-1836년)을 하고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그는 「종의 변화에 관한 노트북들」(Notebooks on the Transmutation of Species)을 쓰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관찰한 모든 것과 참고문헌을 나열한 이 강렬한 저술은 1859년 「종의 기원」의 출간으로 결실을 보았다.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이 저술에서 그는 생명 세계의 계보학이 존재하며, 유기체의 여러 세대가 다양화를 통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예증했다. 그리하여 그는 “변이를 동반한 계승”과 그것의 원동력인 “자연 선택”을 발견했다. 모든 유기체는 완전히 변칙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환경 때문에 변화할 필요가 있거나 환경 자체가 변했을 때,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어서 어떤 개체들은 더 많은 자손을 낳고 다른 개체들은 점진적으로 제거되도록 만들었다. 조만간 이 과정은 상대적 안정성을 지니는 새로운 단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종의 출현을 낳았다.

 

자연 선택 이론은 변형 관념을 뒷받침하고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이 관념은 라마르크(Lamarck) 이후에 획득(후천) 형질의 전파 이론으로 상징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제 각종 역사(계통학)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그 종이 이전에 어떤 종의 산물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몇몇 종의 공통 조상을 재발견함으로써 지구상의 생명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으로 형질 변화에 대한 견고한 과학적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훨씬 더 중요했다. 「종의 기원」 이래로 형질 변화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었으며 “인간이 유인원의 후손이다.”(더 정확하게는 사람과 유인원은 공통의 조상을 지닌다)는 사실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되었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으로 다윈은 두 가지 새로운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제시했다.

 

- 종으로서 인간(homo)은 분명 동물들의 계열에 속했지만, 그것의 출현은 파열 없이 이루어졌다. 본성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갑작스러운 출현이 아니라 출현의 과정이었다.

 

- 인류의 출현과 더불어, 선택과 도태(가장 유능한 것이 선택되고 가장 적절하지 못한 것이 도태되는 것)는 점차 약해져서 최약자와 최빈자에게 혜택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존재하기 위한 싸움은 동정심의 점진적인 발전과 서로에 대한 상호 인정에 의해 대체되었다. 자연 선택은 인간종의 출현과 통합되는 문명을 생산했다. 그것은 연대, 집단적 합리성 그리고 도덕적 정서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2) 이 진화는 사랑과 합리성을 통합하여, 문명 진보의 중요한 족적인 이타주의를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진화의 반전 효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결과는 생물학적 변화, 사회적 본능, 행동, 합리적 능력도 유전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에 의해 설명된다. 다윈에게서 우리는 자연이 문명으로 이행하는 것을 목격하는데, 그것은 최약자의 도태로 특징지어지는 자연 선택이 덜 유능한 자의 보호로 이끄는 사회적 본능을 선호하게 된 이래로 파열 없이 이루어진다. 도태의 도태가 있다. 이 파열 없는 전복을 설명하기 위하여, 파트리크 토르(Patrick Tort)는 “진화의 반전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3) 그것은 도태의 억제가 자연 선택 자체의 중요한 결과물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문명은 도태적 선택을 통해서 유리한 것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지배계급 특히 그 종교와 과학 권위자들의 저항은 맹렬했다. 그렇지만 진화 이론의 수용은 시간의 문제였다. 자연 선택의 행위와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농부, 식물 재배자, 가축 사육자들의 인공적 선택의 사례들이 있었으며, 부모와 그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들 사이에서처럼 어떤 종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이론을 열렬히 환영했다. 1860년 12월 19일에 맑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점에 대한 역사적-자연적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 경험적·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기 위해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연 과학에서 또다시 동맹 세력을 발견한다. 1848년에 「코뮤니스트 선언」이 출간된 이후, 1859년에 「종의 기원」은 다시 현대 유물론이 생명과 사회 양쪽 모두에서 변형 과정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 이러한 호의적인 반응은 회의론으로 그리고 그다음 전면적 거부로 대체되었다. 1862년 6월 18일에 맑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동물과 식물들 가운데에서, 다윈이 분업, 경쟁, 새로운 시장 개방, 맬더스적 생존 투쟁을 지니고 있는 자기 자신의 영국 사회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맑스와 다윈 사이의 이 만남은 맑스주의 이론적 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 같다. 1907년에 작성된 플레하노프(Plekhanov)의 무지의 사례를 보라. “많은 사람이 변증법을 진화의 학설과 혼동한다. 사실 변증법은 진화의 학설이다. 하지만 그것은 속류 ‘진화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속류 진화론은 자연도 역사도 급속한 진보를 창출하지 못하며 세상의 모든 변화는 점진적으로만 일어난다는 원리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미 헤겔은 그런 식으로 이해된다면 진화의 학설은 모순적이며 터무니없는 것임을 보여주었다.”4) 다윈에 대한 이 빈약한 해석의 결과는 연속성에 대한 거부와 “질적 도약”이라는 사변적 관념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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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와 다윈주의

 

이러한 실수는 1859년부터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사회 다윈주의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비롯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출간하기 전에 10년을 기다렸는데,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진화 이론을 마침내 인간에게 적용했다. 그는 자신의 인류학 저술의 출간이 폭발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비판에 답하고 논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여러 개정판을 감독하고 검토하여 「종의 기원」을 완성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종합적인 진화의 철학을 창조함으로써 이득을 보았는데, 그것은 자유주의에 고무되어 다윈이 식물과 동물의 세계에 명백하게 한정했던 원리인 생존 투쟁, 약자 제거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한 새로운 체계였다. 다윈은 스펜서나 멜더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사회 다윈주의”라는 사기 이론은 곳곳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그 이론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 중 한 사람이 카를 포크트(Carl Vogt)였는데, 그는 맑스를 비방했던 나폴레옹 3세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인간의 유래」의 프랑스어판 번역을 책임졌던 인물이다.5)

 

점진적으로, 1980년대 내내, 그다음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2009년에 우리는 그의 진정한 인류학이 (재)발견되는 것을 목격했다. 자본주의, 경쟁과 전쟁, 그리고 약탈적인 수컷의 행위가 증대하는 속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을 지닌 층들의 위태로움은, 우리가 유리한 변화의 선택, 덜 유능한 자의 제거, 그리고 생존 투쟁이 인간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었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자연적이고 이로운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사회 다윈주의가 성공하는 토대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손실을 입혀 진보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국민과 국가는 진보하고 존재를 각인시키고, 결국에는 군사적·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율을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다윈주의의 입장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러나 실제 사정은 아주 다르다. 문명은 반전을 통해서 발전한다. 진화의 반전 효과에 대한 설명에서 보았듯이, 연속과 불연속이 모두 있다. 제거적 자연 선택으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연대(“문명화된” 사회라면 널리 퍼져 있다고 추정되는 것)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파트리크 토르가 설명하듯이 단절이 인류애를 낳는다기보다는 단절이 인류애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 비로소 종은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순응하는 것(가장 유능한 자를 선택함)이 아니라 생존 수단을 생산함으로써 환경을 개조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

 

환경 운동가들이 반복해온 어리석은 행위와는 반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인간 종 그 자체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인간이 자연에서 직접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존 수단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종이 아니라 특정한 생산 방식, 즉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을 공격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기적인 균형을 파괴한다.

 

도구 제작이 종으로서 인간의 독특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물 종(척추동물, 무척추동물, 포유동물, 조류, 파충류, 물고기 등)은 도구를 제작하거나 사용할 수 있으며 인간(호모) 속의 출현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는 모든 생활필수품의 생산이다.

 

다윈과 맑스 사이의 조화가 마침내 가능하게 되었으며 맑스의 첫 번째 반응은 올바른 것이었다. 다윈이 발견한 이념은 맑스의 저작의 한가운데에 포함되었다. 보기를 들어, 맑스와 엥겔스가 1846년에 작성한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한 구문은 진보에 대해서 다윈과 동일한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은 의식, 종교, 또는 그가 원하는 다른 무언가에 의해 동물과 구별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동물과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생존 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것은 그들이 육체적 조직에 의해 규정되는 단계이다. 자신들의 생존 수단을 생산함에 의해 인간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물질적인 삶을 생산한다.”

 

연속성은 특히 “육체적 조직에 의해 규정되는 단계”라는 정식화를 통해서 완전하게 인정된다. 반전 효과라는 개념을 통하여, 진화적 연속성과 “질적 도약”도 유물론적으로 그리고 변증법적으로 재통합된다.

 

문명을 창조하면서, 인간종은 자연과 생물학적 활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강렬한 퇴화의 국면에서 야만과 최약자 제거가 명백하게 다시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역사의 기초는 아니다. 문명은 생산양식들의 연쇄라는 형태를 취해왔고 결국에는 자본주의를 낳았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사회적 힘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모든 범위에서 나타났고, 그리하여 그 힘이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인간의 생물학적 자연적 뿌리에 적대적이게끔 변화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만이 인류가 자기 자신의 발달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재설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전복시킴으로써, 그리고 인류가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마주치게 될 새로운 생물학적·전염병적·생태적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함으로써 이것은 가능해질 것이다.

 

이론 대 허무주의

 

자연 선택을 수단으로 한 수정된 유전 이론과 다윈주의 인류학이 온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껏 다윈주의 인류학은 왜곡되고, 무시되고, 사방에서 공격받았다. 그리고 창조론자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뿐 아니라, 「종의 기원」(과학적 가치를 인정한다)과 「인간의 유래」(철학 저작으로 소개한다)를 분리하라고 말하는, 다시 말해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다윈을 분리해버리는 모든 관념론자에 의해서도 오늘날 계속해서 공격받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그리고 그들의 혁명적 관점)가 사회 현장으로부터 잠시 자리를 비운 현 상황에서, 과학과 모든 과학적 이론을 거부할 길은 열려 있다.

 

17세기에 아일랜드 아마(Armagh)의 대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의 전날 밤에 창조가 일어났다고 포고했다. 심지어는 그 시간이 토요일 밤에 시작되었는지 일요일 아침에 시작되었는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도 있었다. 19세기에도 여전히 대다수 과학자는 여섯 번째 날에 인간과 가축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전설을 옹호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에 대한 음모론들, 불합리한 믿음들, 그리고 회의론은 기존 사회에 의해 제공된 전망의 부재를 반영한다. 그와는 반대로 착취에 맞선 노동계급의 싸움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망에 대한 확신은 의식의 자유로운 발전 그리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의 자유로운 발전을 수반할 것이다.

 

2021년 6월 20일

A. Elberg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 김종원

 

 

 

 

<주>

 

1. 로자 룩셈부르크

 https://www.marxists.org/archive/luxemburg/1909/national-question/ch05.htm

 

2. 아래 사이트 참조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09/04/darwin-and-the-descent-of-man

 

3. Patrick Tort, The Darwin Effect (2008).

 

4. Plekhanov, The Fundamental Questions of Marxism.

 

5. Anton Pannekoek, Patrick Tort, Darwinism and Marxism (2011).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49/descent-man-charles-darwin-came-out-150-years-ago-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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