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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계급투쟁 (2020년 10월)

코로나19 방역과 노동자 파업은 대립하지 않는다!

안전한 노동, 안전한 삶, 생존권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민중의 필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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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계급투쟁 (202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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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투쟁은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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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백신 전쟁: 자본주의는 치료법 개발에 방해

백신 전쟁자본주의는 치료법 개발에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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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 중이며, 지금은 10여 개의 백신이 최종 검사 단계인 임상3상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백신들이 전 세계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이려면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부유한 나라들은 백신을 선구매하려고 벌써 몰려들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백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은 '백신 전쟁' 초기에 작성되었다. 다음 상황과 전망에 대한 글을 약속하며 이 기사를 게재한다.

 

 

모든 미디어는 세계적 유행병 사스(SARS)와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 1천만 인구를 감염시켰으며 그 가운데 50만의 죽음을 유발했음을 인정했고이는 과학 공동체를 백신 개발 경쟁에 돌입하게 했다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백신 경쟁이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접종 원칙을 이용한 최초 백신인 1881년 루이스 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 이후생명기술과 유전학에 기초한 바이러스 세포 배양 방법에는 엄청난 진보가 있었고이로 인해 여러 바이러스 백신이 등장할 수 있었으나현재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19 백신이 2021년 말에나 이용 가능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사실 모든 전문가는 신뢰할 만한 백신을 찾아내어 이용하게 되기까지 평균 10년에서 15년 정도 걸린다는 데 동의한다왜냐하면 수정제조비압축 3단계대규모 실험 프로그램 동물 실험비감염 인구에 대한 실험환자에 대한 실험 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텍사스 A&M 대학교 텍사카나 대학의 바이러스 학자 벤자민 뉴먼(Benjamin Neuman)은 그것은 많은 시행착오가 있지만 다른 방법을 탐험할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뜻” 이라고 판단했는데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군에 대한 효과적인 백신은 인간을 위해 설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뒤늦은또는 포기한 예방법

 

이는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다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과학에 있어 미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SARS-CoV1(중국 남동 지역에서 2002년 말 출현)과 MERS-CoV(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012년 출현)이라는 SARS-CoV2의 두 형제는 백신을 만드는 관점에서 몇몇 과학적 연구의 등장을 촉발했다첫 번째 사례에서연구는 중단되었고백신 계획은 임상시험도 실시하기 전에 폐기되었다두 번째 사례에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동물 실험이 이루어졌다몇 년 동안 과학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19와 같은 유행병의 위협을 예상했다는 사실에도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백신 개발은 ··· 이윤이 되지 않는다.’라고 판단되었다공중 보건 서비스 내 과학적 연구의 영역은 재정적유통 수단의 부족으로 위협받고 방해에 직면해 있다그것은 현재 권력을 쥔 정부의 정치적 색깔이 어떻든 예산 감축으로 희생된 것 중 하나이다.

 

“2019년 5도널드 트럼프는 유행병 사태에 싸우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저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보장회의의 특수부 하나를 폐쇄했다.[1] 2009년 돼지 독감 이후유럽 집행위원회 정치적 권고사항들을 포함한 보고서를 출간했으나이후 EU 구성원 국가들이 이를 거부했다 (...) 2003년 사스 이후질병 통제 유럽 센터(European Centre for the Control of Diseases)가 창설되었고훌륭하게 일했다그러나 협력자는 180에 불과했다(...). Sciensano(벨기에 국립 공공보건연구소)에는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으나연구소는 투자 부족으로 인해 힘이 없었다”[2].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SARS-CoV2 백신 개발을 위해 연구자들은 SARS-CoV1과 MERS-CoV에 대한 연구를 토대 삼고 있다[3]. 처음 바이러스가 출현한 지 17년이나 지났다수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백신을 찾는데 17년을 잃었다!

 

시간과 싸움

 

이러한 재앙에 맞선 투쟁에 불가피한 지체 이후가능한 이를 따라잡기 위해 전 세계적인 유행병 사태로 인한 현재의 황폐화에 직면하여 협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치단결한 과학적 노력이 국제적으로 조정되고백신을 탐색하는데 과학적 지식이 집약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다.

 

그러나 현재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정반대다현재 백신과 치료제를 찾기 위한 세계적인 경쟁은 광적이고혼란스러우며무질서한 유혹의 모습을 띠고 있다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있다: 질병에 대항하는 치료제를 찾기 위해전세계에서 1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발주되고십 수 개의 임상 실험이 진행 중이다[4]. 미디어에 따르면모든 거대 제약회사들사노피(Sanofi, 프랑스 제약 기업 그룹),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 미국 제약 연구소),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영국 거대 제약회사), 리제네론 제약회사(Regeneron Pharmaceuticals, 뉴욕 기반 기업), 존슨 앤 존슨(미국 기업), 그리고 중국 기업 칸시노(CanSino) 등 오직 일부만 거론했지만많은 기업이 이런 실험 중 일부를 하고 있으며독자적으로 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상황에 부닥쳤는가바로 자본주의의 법칙이다이 법칙은 모든 국가의 야망의 무게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쟁을 반영하며분산되고 혼란스러운 방법으로만 이루어지는 보편화한 경쟁이윤의 법칙을 통해서만 사회가 기능하도록 한다같은 방법으로 자본주의는 보건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예방 수단과 연구 예산을 저지하고지연시키고방해하고중지시켜왔다효과적인 백신 발견에 필수 불가결한 자원 집중그리고 정보 공유에 대해 그리고 자본주의 기능과 그 법칙은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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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건강을 대가로

 

코로나 바이러스19 백신 탐색과 기적의 치료제를 위한 이 단거리 경주는 나머지 세계인들의 건강에 대한 비극적인 결과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연구자들과 바이러스학자들은 이런 갑작스러운 재촉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어떤 죽음은 무모한 연구 때문이다 (...) 오늘날 과학은 너무 빨리 가고 있고이는 심각한 결과를 일으킨다 (...) 과학적 결과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을 할 시간이 없고이는 우려스러운 결과를 갖는다[5].

 

백신 대체를 위한 엄청난 양의 업무가 수행되고 있고과거 바이러스 치료제가 재활용되고말라리아나 에볼라에 대한 것과 같은과거에는 이윤이 되지 않는다’[6]라고 판단되었으나날이 갈수록 SARS-CoV2 유행병 사태가 연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을 위한 흥미로운 관점이 된폐기된 백신에 관한 연구가 재개되고 있다이는 과학 공동체의 총체적인 무능력함과 혼란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는 결국 질적으로 좋지 않고충분하게 검사하지 못한 값싼’ 백신 시장에서 갑작스러운 유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이는 셀 수 없는아찔한 숫자의 새로운 희생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그 대가로 치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 그러나 국가의 이윤을 위해

 

현실에서 자본주의부르주아 계급과 그 국가는 국민 건강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군비와 군사적 연구에 투자된 비상식적 규모가 국민 건강과 건강한 삶에 투자되었더라면이런 유행병 사태가 진행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7].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기업들의 백신 개발부터누가 사업화에 성공한 첫 번째가 될 것인가?”[8]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국가가 우선권이 있는가?”[9] 이것이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미디어를 통해 제기하고 있는 커다란 질문들이다사실은 명백하다가능한 한 빨리 치료제와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모든 과학적 작업을 집중시키고 통합하는 대신백신을 찾아내는 첫 번째가 되기 위해최소 7년에서 12년까지의 기간 동안 생산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권을 따내기 위해 각각의 제약회사들이 자신의 실험실에서의 연구 단계와 수준을 질투에 가득 차 감춘다그들의 작업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그들은 가장 비열한 상업 조약을 대가로 가장 높은 입찰자에게 의존한다이들 가운데프랑스 거대 제약회사 사노피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최종 백신 배급을 할 때, 2019년 12월 독감 바이러스 백신 생산에 226백만 달러를 투자했고이에 더해 연구에 3천만 달러를 투자한 미국에 우선권을 줄 것이라 발표했다사노피에 대한 폭로로 유발된 추문과 특히 마크롱의 분노는 겉치레에 다름 아니다실제로는 백신은 시장의 법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접근성은 공평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위선적인 선언이나 인간적인’ 맹세 너머에는유럽이 전 세계시장에서 국제적인 백신 개발 경쟁에서 질 것이라는 공포를 숨긴다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고경쟁의 논리에 순응하며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동력이 되는 제약회사들의 의지 외에도그들은 가장 강력한 다국적 기업들’[10]을 포함하여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국가 경제의 지향과 경영그리고 사업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가장 강력한 경계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국가 자본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다른 말로 하자면그 기업들의 재정적 정책을 지시하는 것이 바로 국가이다.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 선언

 

마스크 전쟁’과 마찬가지로백신 전쟁은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냉소적이고 광적인 경쟁의 극단적으로 교훈적인 예시이다[11]. 이들 국가는 단순한 목표를 추구한다백신을 손에 넣어 독점하는 첫 번째가 되거나또는 그에 대한 어떤 특권을 주장하거나또는 다시경쟁에서 소외되어 도움을 구걸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부르주아 해설가들은 이렇게 인식한다미래의 백신을 위한 미국과 유럽의 라이벌 경쟁과 도널드 트럼프와 중국의 새로운 긴장강대국들 사이의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12]. 미국과 중국에 직면하여유럽은 백신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 수십억을 내던지고 있다 (...) 어떤 회원국도 (...) 백신 개발을 위한 완전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지 않다[13]. 그러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연구에 12억 유로를 보조금으로 지원해 왔으며이는 3억 개 분량의 백신의 대가이다그리고 EU의 국가들(독일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은 제약회사들과 백신의 우선적 공급을 위한 협상을 가속하기 위해 약 24억 유로의 긴급 자금을 활용하길 원한다폐쇄조치(lock-down)와 의료 기구들의 부족 관리에 있어서 일치단결한 방법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EU가 이러한 공공 자금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에서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는 에티오피아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이에수스(WHO 사무총장)를 중국에 이용되었다고 비난했고미국은 그가 이끄는 WHO에 대한 원조를 철회했는데 이 행동은 세 마리의 상어(중국미국, EU)가 이 지구에서 치르고 있는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무역제국주의 전쟁의 충격적인 모습서로를 거부하며대단히 위선적이고협력이 결여된 상황에 빠져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미국은 WHO를 중국과 결탁했다고 비난하고, EU는 미국의 이기주의적’ 행위를 혹평한다.

 

가디언과 같은 좌익 성향의 신문들은 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지만그들의 애도의 목소리는 오직 자본주의 체계 전체의 책임을 가리는데 기여할 뿐이다이 백신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명확한 것은 사람들의 건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와 지배 계급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후자는 제국주의 전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해 건강을 이용하는 데에만 관여한다.

 

백신 전쟁에서의 가장 큰 패배자는 오직 더 많은 고통으로 이어질 뿐인치료 불가능한 병든 체계의 생존을 위해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비롯하여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인류뿐이다스스로 참여하여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연합하는 방법으로 노력을 통합하고 집중할 수 있는 사회만이 진짜 인류의 필요에 기반을 두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2020년 6월 30

아우베(A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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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인터내셔널 전단을 보라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30/generalised-capitalist-barbarism-or-world-proletarian-revolution-international-leaflet
[2] 벨기에 바이러스학자와의 인터뷰, De Standaard(역자벨기에 일간지(2020년 5월 30-31)
[3] RTL infos(2020년 5월 28)
[4] La Croix (2020년 5월 15)
[5] De Staandard (5월 20-21)
[6] 보기를 들어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연구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파산” 상태인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냉소적으로 폐기되었고많은 수의 희생자 피해가 발생했다.
[7] “보편화된 자본주의 야만이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냐
[8] Etoro (2020년 5월 18)
[9] Rtbf (2020년 5월 18)
[10] “경제 위기국가자본주의의 마지막 유물
[11] “가면 전쟁부르주아지는 깡패들의 계급이다
[12] La Croix (2020년 5월 15)
[13] De Standaard (2020년 6월 5)
[14] 에볼라에 이미 이용되었던 안티-바이러스 치료제(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19에 효과를 제약하는데 효과성은 의심스러운렘데시비르의 생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계약은유럽에서 보편적인 사용을 권고했던 EU의 코앞에서 이뤄졌고이러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모습을 띤 이 전쟁이 깡패의 도덕성에 지배를 받는다는 또 다른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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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창간 8년] 창간호를 내며 : 진보, 좌파의 불안한 허상, 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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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를 내며] 진보, 좌파의 불안한 허상, 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시대와 공간, 계급투쟁이 어울려 역사가 되지만, 역사가 또한 시대정신과 계급 주체를 불러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폭발했고, 전 세계는 대공황이다. 역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수술대 위에 올랐다. 수술대 위에 오른 자본주의를 ‘집도’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달려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맑스의 언급을 기억하자.

 

  미국 월가 점거 투쟁에 이어, 최근 유럽의 긴축 반대 투쟁은 그 기세가 맹렬하다. 계급투쟁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자신의 계급의식을 획득한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역사는 지금 진행 중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국내외 계급 관계, 세계 질서를 재편하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역사적 시기에, 대선을 앞두고 서구 사민주의 베끼기에 급급한 개혁주의 진보· 좌파 세력이 이합집산으로 모인다. 더구나 97년 국민승리21 종이정당처럼, 임시 선거용 ‘가설정당’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선거 중독 당’이다. 여기에 최소한 노동자계급정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우리는 코뮤니스트(Communist) 정치 운동을 이제 시작한다.

 

  코뮤니스트 창간호 특집 기획에서 오세철은 대통령 선거 정세를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92년 민중후보 사회주의 강령 ‘투쟁’ 취지를 언급하면서, 현 시기 사회주의 정치 실종을 말한다. 대중의 직접행동을 요구한다. 편집부 명의 글은 그간 사회주의 정치운동 평가와 전망, 코뮤니스트의 역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한다. 

 

  코뮤니스 정치원칙을 세우자는 이형로의 글은 역사적인 소련 사회의 경험,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타락을 분석하고 코뮤니스트 운동과 혁명운동의 원칙을 주장한다. 특히 현 시기 쟁점이 되는 노동자정당, 공동전선을 비판하고, 혁명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독일 코뮤니스트 좌파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국제코뮤니스트당 교훈에서 남궁원과 이형로는 타락한 코민테른에 맞선 독일 좌파, 이탈리아 당 경험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룬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번역 글은 당과 계급의 분석을 위한 의식의 문제를 다뤘다.

 

 

  계급투쟁 소식은 민주노총의 하반기 총파업이 소리 없이 사라진 가운데, 쌍용 자동차 등 투쟁사업장의 공동투쟁을 일지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임경일은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는 형식적인 민노총 투쟁보다 ‘현장 투쟁의 목소리’를 값지게 대변한다. 성승욱은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은 장애인 예산 확보 및 확대를 위한 투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며, 자본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장애의 계급적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계기로 파악한다.

 

 

  「코뮤니스트는 세계 노동자 투쟁, 국제 정세와 기획 논쟁을 강화할 생각이다. 첫 시도로 유럽 긴축반대 투쟁의 핵심에 서 있는 스페인 문제를 다뤘다. 스페인 국민당 정부의 노동계급 생활 조건에 관한 무자비한 공격을 비판하고 투쟁을 진척시키고 제안하기 위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상황 분석을 실었다. 기획번역/논쟁으로 논문 형식의 글로, 북한 문제와 자본주의 쇠퇴, 레닌의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배신자들의 비난>을 실었다. 특히 자본주의 쇠퇴 문제는 계속 연재할 번역할 생각이다.

 

 

  문화 예술은 임성용 시인과 조성웅 시인의 기고 글을 받았다. 임성용은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놓은 공고한 질서의 전복을 꿈꾸는 프롤레타리아 노동문학의 의의에 대해서, 조성웅은 계급 문학을 사수하는 노동자들의 공간인 해방글터 상황과 작지만 소중한 시도인 ‘시와 노래의 새로운 공동체 시간’ 글을 보내왔다.

 

 

  서평은 자본주의 위기와 함께 극우 보수 민족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이때, 파시즘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골랐다. 비교해서 읽고 싶은 책이지만 선뜻 다가서기 힘든데, 현철민은 이념과 역사적 현실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고 있다.

 

 

  좌익공산주의 역사와 인물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코뮤니스트 좌파 역사 문헌과 인물을 앞으로 계속 소개 번역할 생각이다. 남궁원은 세계혁명을 둘러싸고 레닌과 대립했던 유럽 좌익공산주의자인 호르터의 주장과 당시 인터내셔널 건설을 둘러싼 논쟁 글을 번역 소개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출범하면서,  코뮤니스트」 창간호를 발간한다. 우리는 이 책을 사서 읽는 동지들을 단순한 구매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의 시대에 서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로 생각한다. 동지들의 적극적인 비판적 문제의식을 기대한다. 우리는 항상 열려있고, 동지들과 토론하기를 원한다.

 

  애매모호한 진보 좌파, 노동 정치에 대한 허상을 깨고, 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위해!

 

 

 

2012년 10월 8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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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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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국회의사당 공격 사건 : 전 세계 자본주의 해체의 중심부에 서 있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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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국회의사당 공격 사건 전 세계 자본주의 해체의 중심부에 서 있는 미국

 

이건 마치 바나나 공화국에서 선거 결과를 논쟁하는  같다.” 이 선언은 조 바이든의 승리 인증을 막기 위해 모여든 수백 명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1월 6일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뒤 나온 것이다미국 정치 상황에 대한 그러한 가혹한 판단은 미국에 철저히 적대적인 사람이나 미국 좌파로부터 유래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전혀 그렇지 않다이것은 트럼프와 같은 당 소속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한 말이다이는 그날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몇 시간 전백악관 앞에서 대선에 패배한 대통령은 마치 제3세계 선동가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렇게 부추겼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약함으로는 우리나라를 되찾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애국적으로 국회의사당 건물로 행진해서 목소리를 높일 것임을 알고 있습니.”  

 

폭동에 대한 살짝 가려진 외침에 따라프라이드 보이스(Proud Boys)와 같은 세미 파시스트 트럼프주의 갱단이 이끄는 복수심에 불타는 군중들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내셔널 몰 거리를 걸어 내려가서완전히 압도당한 보안군이 보는 앞에서 그 건물을 공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가 시위하는 동안 바로 그 건물 앞에 배치된 인상적인 경찰이 통제력을 전혀 잃지 않았음에도 국회의사당 진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경찰 저지선이 어떻게 공격자들에게 뚫렸을까이러한 충격적인 장면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에 대한 공격이 정치적 9월 11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돈에 직면해 당국은 상당히 신속하게 폭동 진압군을 배치했고주 방위군을 투입했다시위 참가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다른 세 명이 사망했다군대가 워싱턴의 거리를 순찰하고 통행금지가 내려졌다이 경악스러운 장면들은 마피아 파벌 간의 유혈 경쟁으로 분열된 제3세계 바나나 공화국에서 선거 후 밤과 참으로 닮았다그러나 전 세계 신문 일 면을 장식한 이 사건들은 일부 과대망상적 군 장성이 초래한 일이 아니었다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내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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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대하는 혼돈의 중심에 서 있는 세계최강국

 

셀카봉으로 무장한 백인우월주의자들광적인 무장 민병대뿔 달린 모피 헬멧을 쓴 음모론자들에 의해 자행된 미국 민주주의 성전에 대한 신성 모독은 미국 사회에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폭력과 비합리성의 노골적인 표현이다정치 기구의 균열트럼프 당선 이후 포퓰리즘의 폭발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끝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사실우리가 1980년대 말부터 주장해 온 것처럼(1),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쇠퇴의 최종 단계인 해체 단계로 빠져들고 있다이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30년 전 동구권 붕괴였다이 주요 사건은 단순히 이 블록 국가를 지배했던 정권들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그것은 그 이후로 점점 더 악화한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과정을 표현했다지금까지 이러한 해체의 가장 분명한 징후들은 이미 아주 허약한 주변부’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이런저런 부르주아 파벌 이익을 위해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분노한 군중들일상화된 극심한 폭력모든 거리 한 귀퉁이에서 볼 수 있는 비참한 빈곤국가와 전 지역의 불안정화… 이 모든 것이 바나나 공화국에서만 일어날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수년 동안이러한 일반적 경향은 점점 더 뚜렷하게 ‘중심부’ 국가를 강타해 왔다물론모든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해체가 이제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타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유럽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이 증가하고 있고트럼프나 보리스 존슨과 같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예상치 않게 승리를 거두며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무엇보다도해체가 전례 없이 가속되고 있다는 걸 그 자체로 표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재앙적이었다가장 문명화된’ 부분을 포함해서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야만성과 점점 더 심한 경련을 향해 비참하게 진화하고 있다.

 

만약 오늘날가장 발달한 국가 중에서 미국이 이러한 부패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면그것은 또한 불안정성의 주요 요인 중 하나를 나타낸다리얼리티 TV에서 성장한 억만장자 광대가 대통령직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 부르주아지 무능이 이미 미국 정치 기구의 증대하는 혼돈을 보여주었다그의 임기 동안트럼프가 능숙한 비지니스맨의 섬세한 작전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모든 종류의 신랄한 선언들과 혼란스러운 거래를 통해 미국 사회의 분열 악화특히 인종 분열 악화와 전 세계에서 혼돈을 부채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우리는 그가 이란을 폭격하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막은 미군 사령관과의 충돌이나그가 단지 몇 주 전에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붙인 김정은과의 역사적인 만남 떠올릴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후수십 년 동안 보건 체계를 축소했던 모든 국가는 범죄적인 과실을 드러냈다그러나 여기에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부는 국내 기록적인 사망자 수(2)와 더불어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세계협력기구를 불안정하게 하여 국제 수준에서도 재앙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광적인 트럼프주의자 무리의 국회의사당 공격은 전적으로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폭발하는 혼돈의 일부이다이것은 인구의 다양성(흑인 대 백인엘리트 대 민중여성 대 남성이성애자 대 동성애자 등사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갈등 증가의 표현이었다그것의 캐리커쳐는 중무장한 인종주의 민병대와 망상적인 음모론자들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은 무엇보다도 미국 부르주아지 파벌 간의 공공연한 대립의 반영이다한편으로는 트럼프 주변의 포퓰리스트들과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자본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더 관심을 두는 이들 사이의 대립의 한 표현이다민주당 내에서 그리고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서 국가와 군사 기구들 안에서주류 언론 매체에서 또는 할리우드 의식의 무대 위에서 포퓰리스트 대통령의 몸짓에 반대하는 야당의 캠페인은 꾸준했고 가끔은 매우 적의에 차 있었다.

 

서로 다른 부르주아 파벌 간의 이러한 충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미국과 같은 민주주의에서그리고 제세계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그러한 충돌은 제도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존중하면서 일어났었다그러나 이제 그러한 충돌이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 내부에서 이러한 폭력적 형태를 띤다는 사실은 지배계급의 정치 기구 내부에서 엄청난 혼돈이 고조되고 있음을 증명하고이는 자본주의 해체로 빠져드는 중대한 발걸음임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채찍질하면서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대선 패배 이후 그의 초토화’ 전술에서 새로운 선을 넘었다미국 민주주의 입법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대한 그의 공격은 공화당 내부에 분열을 야기했고에이브러햄 링컨 당을 구하기 위해 공화당의 가장 온건파’ 부분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해 자행한 이러한 쿠테타를 비난하고 트럼프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민주당은 이제 그의 가장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더욱 자극했던 트럼프의 무책임과 범죄 행위를 소리 높여 비판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부르주아지의 경악에 직면하여 미국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땅'에서 혼돈의 폭발을 억제하기 위해 조 바이든과 그의 일행은 즉시 트럼프와의 필사적인 싸움에 더욱 몰두했다신임 대통령 취임 직전에 더는 그의 대통령직을 허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문제가 있는 국가 원수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하며 그를 권좌로부터 퇴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화당 각료들의 일련의 사임트럼프 사임 또는 탄핵 촉구그리고 그가 핵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그의 행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도록 국방부에 촉구하는 것은 정치 게임에서 현직 대통령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 이후정치적 위기로 인해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은 트럼프에게서 거리를 두었지만나머지 절반은 민주주의의 신성한 사원에 대한 공격을 계속 지지하고 정당화하고 있다트럼프의 정치 경력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그의 당선 자격을 박탈하고 2024년 선거에서 출마가 불가능하도록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선거에서 패배한 이 대통령은 이제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그가 반란을 요구한 것에 대한 법적 조치에 직면해 제 살길을 찾는 것이다국회의사당 공격 당일 저녁 트럼프는 공격자들의 행동을 비판하기를 거부하면서 그들에게 평화적으로 귀가하라라고 요청했다이틀 후 그는 한 발 더 뒤로 물러서면서 공격을 혐오스러운 것이라 부르며 폭력불법신체 상해에 분노했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는 조용히 자신의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바이든을 위해 왕좌를 비우겠다고 선언하면서, 1월 20일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를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지만포퓰리즘은 그렇지 않다이러한 반동적이고 모호한 이데올로기는 오직 사회적인 해체의 악화와 함께 입지를 넓힐 수 있는데오늘날 미국은 이러한 악화의 진원지이다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갈라져 있다폭력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국민 내부 간 대립(무장 충돌을 포함)의 끊임없는 위험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바이든이 미국 국민을 향해 '화해'를 외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이것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으로는 성공일 수 있지만세계열강 내부의 사회적 혼돈으로의 근본적인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에 가장 큰 위험은 부르주아지의 다른 파벌 간의 대결에 말려드는 것이다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대부분은 '엘리트'를 거부하고 '운명의 남자'를 찾는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트럼프는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으로 러스트 벨트에서 많은 실업자 프롤레타리아를 결집할 수 있었다트럼프 지지 노동자와 바이든 지지 노동자 사이에 충돌 위험이 있다더욱이 해체로 빠져드는 것은 정체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백인 대 흑인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면서 미국 고유의 인종적 분열도 악화시킬 위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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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민주주의 페인은 노동자계급에게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 보았듯이정치 게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 경향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해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반대로 지배계급은 이러한 해체의 영향을 노동계급에 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이미 1989동구권 붕괴가 자본주의 해체를 분명하게 드러냈을 때주요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이 사건을 스탈린주의 정권의 야만성과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 사이의 동질성 주입을 목표로 거대한 민주주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데 이용했다. ‘혁명적 전망의 죽음과 노동자계급의 소멸에 대한 거짓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방향성을 잃게 했고그 결과 계급의식과 전투성에 심각한 역류를 불러일으켰다오늘날 부르주아지는 국회의사당 사건을 이용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영광을 위한 새로운 국제 캠페인을 시작하려 한다.

 

반란자들이 여전히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있을 때 바이든은 즉시, “다른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빛과 희망의 등대였던 우리나라가 ... 그렇게 암울한 순간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고 슬펐습니다지금과 향후 4년의 임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그 후 공화당 내부를 포함하여 같은 흐름의 성명서가 이어졌다특히 서유럽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들은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침략자들과 폭도들보다  강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앙겔라 메르켈은 선언했다엠마뉘엘 마크롱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그리고 보리스 존슨은 덧붙였다. “ 평생 미국은  가지 매우 중요한 것들을 옹호해왔습니다자유에 대한 이상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입니다.

 

기록적인 참여를 보인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한 동원과 더욱더 공정하고 깨끗한’ 경찰을 요구하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세계 부르주아지의 많은 부분이 포퓰리즘에 반대해 민주 국가 수호라는 구호 아래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자’ 트럼프에 맞서 민주당’ 파벌 뒤에 줄을 서도록 요구받고 있다이 잘못된 선택은 순수한 사기극이자노동자계급에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부추긴 국제적 혼돈의 여파 속에서 민주당 바이든은 더욱 공정한 세계 질서를 확립할 것인가확실히 그렇지 않다노벨 평화상 수상자 버락 오바마와 그의 부통령 조 바이든은 8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중국러시아이란 및 다른 모든 제국주의 상어들과 긴장은 기적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은 이민자들에게 더 인간적인 미래를 제공할까우리는 모든 위대한 민주주의자들처럼 그의 전임자들이 이러한 달갑지 않은’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처리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우리는 바이든이 부통령직에 있던 오바마 대통령 집권 8년 동안에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보다 더 많은 이민자 추방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오바마 행정부의 이민자 대책은 트럼프 시절 반()이민 확대의 물꼬를 트는 데 그쳤을 뿐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경제적 공격이 민주주의로의 복귀와 더불어 끝날 것인가확실히 그렇지 않다어떤 해결책도 없이 위기에 빠진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욱 악화한 세계 경제는 민주정부가 이끄는 모든 중심부 국가에서 실업과 빈곤그리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그리고 조 바이든이 그럭저럭 경찰을 정화할 수 있다면모든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민주주의 국가의 억압세력은 여전히노동자계급의 어떠한 투쟁도 막을 것이며그들의 생활 조건과 최소한의 기본적인 필요의 방어를 위한 모든 시도에 맞서 경찰 공권력을 동원할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이룬다고 해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민주적 파벌들의 사이렌에 잠들거나 갇혀서는 안 된다지배계급이 대부분 좌파와 인민전선의 지도 아래 수천만 명의 프롤레타리아를 제2차 세계 대전에 동원하는 데 성공한 것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 독재의 숨겨진 위선적인 얼굴일 뿐이다!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은 인류를 지옥으로 서서히 끌어들이는 죽어가는 시스템의 새로운 증상이다썩어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오직 세계 노동자계급만이 경제 위기의 영향에 맞서 자신의 계급 영역에서 투쟁을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지구와 인류에 대한 파괴 위협을 종식할 수 있다.

 

2021년 1월 10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원문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55/assault-capitol-washington-usa-heart-world-wide-decomposition-capitalism

 

<>

 

1) 영문판 국제평론」 107호 해체에 대한 테제(Theses on decomposition)” 와 국제평론」 164호 오늘날 해체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decomposition today)” 참조

2글 작성 당시공식적인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363,581명이고 확진자는 거의 2,200만명이다. (출처 : “Coronavirus : el mapa que muestra el número de infectados y muertos en el mundo por covid-19”, BBC News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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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주형 열사 8주기 추모문화제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1/01/19 15:03
  • 수정일
    2021/01/19 15:05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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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주형 열사 8주기 추모문화제


"반짝반짝" 윤주형 동지의 비정규직 철폐!
해고와 차별없는 세상의 의지는 더욱 빛나야 한다!


추모제 일시 : 2020년 1월 23일(토)

추모제 장소 : 마석 모란공원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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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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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지도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향년 47세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1918년 11월, 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진흙발로 짓밟았다. 1918년 12월,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설했다. 블러드하운드(집요한 추적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노동자 탄압 시기, 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 룩셈부르크는 적기(Red Flag)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포스터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벽보의 주제는 명백했다:

 

  “평화, 일자리, 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 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년 1월 15일 밤, 베를린 부유한 빌머스도르프(Wilmeersdorfin)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 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Eden Hotel)로 데려갔다. 범죄자들은 그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재판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 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 그들은 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 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Noske)는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자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 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Waldemar Pabst)는 후에 나치 정권, 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억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혁명가의 암살은 노동 운동과 세계 혁명의 진전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했다. 독일혁명은 선구자들과 사상가들을 잃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무척 중대했고, 고통스러웠다. 한 편에서는 독일 부르주아지가 러시아혁명의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써먹었다. 다른 한 편에서 독일 코뮤니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사체로부터 탯줄을 끊는데 벌벌 떨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정당 건설을 연기했다. 이는 모두 독일혁명 패배로 길을 닦는 것이었다. 이 패배는, 또한 세계 혁명의 패배로 길을 열었다.

 

***      ***     ***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의 이름과 영원히 연결될만한 주장 글이나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그는 쓰지 않았다.(심지어 노동가치설에 대해 의심하기까지 했다.)(1) 그는 능숙한 정치가도 아니었다. 전쟁 전에는 맑스의 동료이자 독일사회민주당(SPD) 공동창립자의 아들로 유명했는데(2) 전쟁 후 그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매우 꺼렸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유명한 자유주의 역사학자 세바스찬 하프너(Sebastian Haffner)는 그를 "독일이 배출한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중 일부는 다음의 단편에서 읽을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 주제와 대상, 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리프크네히트가 여기서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은 트로츠키가 몇 년 후 "적절한 순간"으로, 특히 실패한 독일 혁명과 관련하여, 1917 10월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론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3)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는 이 문제를 아우겐블릭(Augenblick : 순간) 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 계급의식이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객관적인 사건 과정에 주관적으로 개입하여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교란할 수 있는 순간 또는 눈 깜박할 사이로 표현했다. 종종 이것은 조건의 "성숙"으로 논의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는 거의 엉망진창으로 죽었다.”고 폴 매틱은 나중에 회상했다. 사실, 그들의 마지막 글에는 이미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처럼, 불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9년 3월

월트 아워(Walt Auerbach)

 

<주>
    (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22년 사후에 출판된 그의 맑스의 비판의 주요 특징(Grundzüge einer Marxkritik)을 참조 바란다.

(2)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와 룩셈부르크는 때때로 리프크네히트가 당에서 "태어났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1914 8월 이전에 그는 독일사회민주당(SPD)의 청소년 부문을 보강하기 위해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 채권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한 그의 결정은 그를 반대파의 유일한 주창자로 만들었고, 결국 1915년에 재판을 받고 1918 11월까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3) 어쨌든, 이것은 보르디가가 가장 좋아하는 트로츠키 팸플릿이었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을 제외하고) “적절한 순간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란에 가장 유리한 조건은 분명히 힘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최대 변화가 일어났을 때이다. 우리는 물론 의식 영역에서의 힘의 관계, 즉 정치적 상부 구조의 영역에서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으며, 혁명적인 시대 전체에 걸쳐 다소 변하지 않은 것으로 가정 할 수 있는 경제 토대의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와 같은 경제 토대에서, 사회의 계급 분열과 함께, 힘의 관계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데, 그들의 환상이 깨지고 정치적 경험이 커지는 정도, 국가 권력에서 중간 계급과 집단의 신뢰가 깨지는 정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자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정도에 따라 변화한다. 혁명 기간 이러한 모든 과정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모든 전술상의 기술은 이것으로 이루어진다. : 여러 사정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 레온 트로츠키. 10월의 교훈. 나오미 알렌(Naomi Allen) 번역. 좌익반대파의 도전, 1923-1925. (Pathfinder Press, New York, NY : 1975).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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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 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 용인하지도 않는다. 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 등등. 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 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 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 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통찰력, 의지, 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 정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 도덕적, 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 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교육을 비교해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 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 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대응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 즉 혁명적 과업이다.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 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 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 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 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 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 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 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들이 단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 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범위에서] 국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 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 4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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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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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0

 

    부끄럽다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1920년 10월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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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1871년 3월 5일 ~ 1919년 1월 15일)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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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 추운 겨울밤의 학살

     

     

      따뜻하고 포근한 안개에 둘러싸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의식세계와는 달리 1919년 1월 15일의 밤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길이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군용트럭의 화물칸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 거친 폭음을 내며 어둠을 향해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 하나가 트럭 위에 올라탔다. 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그것을 통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룩셈부르크의 기력은 쇠잔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트럭에서 세찬 삭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중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잔인한 눈길을 룩셈부르크에게 돌려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허술하게 만들어진 우리에서 피에 굶주린 짐승이 피를 찾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중위는 피스톨의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촛불은 꺼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산산이 부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운하와 동물원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엔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옆의 운하에 멈춰서 있는 두세 명의 병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급히 생각이 난 듯 차는 급정거 하였다. 병사들의 그림자가 한쪽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귀찮은 듯 다리 위에서 운하로 집어 던졌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어둠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다. 삽시간에 어둠과 정적만이 감돌았다. 임무를 다했다는 듯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날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과 함께 전해졌다. 그가 선동한 군중의 광폭한 노여움에 의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시체는 무질서한 혼란의 와중에도 분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독일의 5월은 아름답다. 시인 하이네가 노래하듯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5월, 모든 초목이 싹틀 때’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생 시기였다. 진흙 속에 파묻힌 그의 육체가 운하 위로 떠오른 것은 5월 31일이었다. 6월 13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가 32명의 희생자와 함께 고이 잠들어 있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스펠데 묘지의 같은 장소에 묻혔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묘지 앞에는 생전에 좋아했던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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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비극의 종말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혁명의 와중에, 반혁명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 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 아니면 반혁명 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룩셈부르크는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모자랐습니다.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는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입니다. 대중은 혁명의 최후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입니다. 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 일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입니다." 로테 파네 1919.1.14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칼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 전날 밤 9시경,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는 만하임 가의 은신처에서 체포되어 에덴 호텔로 연행되었다. 바프스트 대위가 두 사람을 심문했는데, 살해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한 명의 수병이 개머리판으로 리프크네히트를 때려 넘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그는 차에 실려 가 틸가르텐 호수 근처에서 끌어 내려져 그곳에서 학살되었다.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취급하였다. 이어 룩셈부르크가 호텔에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의 최후 역시 비참하게 마감되었다. 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 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 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되었다. 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때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했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이었지만, 배신과 학살에 의해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 결국 그 독일사회민주당이 그곳에서 파시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하게 된 것이다. 그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독일사회민주당은 과거 자기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의해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 되는 운명을 겪었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독일사회민주당과 코뮤니스트당(KPD), 노동조합에 전가했고, 독일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코뮤니스트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 결국 세 곳 모두 결사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야 만다. 결국, 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룩셈부르크의 묘지는 해방되었고, 아직도 그의 저작과 사상, 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 중이며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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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동안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인류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 예전의 노동자당에 의한 이러한 배반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 정신의 본보기, 지칠 줄 모르는 결연함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론적-정치적 분석을 이뤄내는 역량의 한 본보기였다.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전개된 야만성과 당의 배반은 혁명가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침울함에 빠졌다. 독일의 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감옥에 있었다.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총 3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결연함을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하려는 것이 수감의 의도였다면, 수감된 후 그의 반응은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었다.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책, 「자본의 축적」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대답으로 「반비판」을 썼다. 전쟁발발 전 독일사회민주당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 수감 중에 그는 당 학교 교사로서 사용했던 초기의 그 강의 자료로 정치경제학입문을 썼다. 그리고 그는 문학과 문화 문제들도 다루었는데, 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 서문을 작성했기도 했다. 그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 '러시아혁명에 대하여'를 작성하고 러시아에서의 혁명에서 행해진 실수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최초의 몇몇 중요 점들을 발전시킨 것도 수감 중인 상태에서였다.

     

      물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감옥에 갇힌 상태로 고통받았지만, 이것은 결코 그의 의지를 꺾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없었다. 그가 수감 중에 쓴 기록들이나 서신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가 감옥 속에서 다룬 화제들의 다양성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일련의 편지들은 길들여질 수 없는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종종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하루를 보냅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스로 가장 결연한 투쟁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용감한 정신을 유지했다. 그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인 노력과 다른 열정들(보기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식물학)을 추구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지원망을 통해서였다. 위장이 약해서 특별 식이요법이 필요했던 그는 감옥 밖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의 저작들은 반복적으로 감옥 밖으로 밀반출되었고, 이는 때때로 간수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수감 중에 룩셈부르크는 많은 동지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 그들에게 충고를 주고 감옥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 감옥을 둘러싼 어떤 벽도 그를 침묵시키고 그가 개인들에게, 동지들에게 그리고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그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만큼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감옥 밖에서도 '들릴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약 천 명의 노동자들(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 감옥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집까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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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자모치(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871년은 파리코뮨의 해였고, 제1 인터내셔널 내에서 바쿠닌의 음모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던 때였다. 17살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에서의 억압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취리히대학에서 몇몇 과목들(식물학, 수학, 경제학, 역사 및 법학 등등)을 수학했다. 1897년 그는 '폴란드의 산업발전'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1890년대에 이미 그는 폴란드 출신의 다른 동지들과 함께 제2 인터내셔널의 오래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발달을 감지할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저항에 맞서, 폴란드의 민족자결권이 더 이상 의제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용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입장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지배적인 입장과 특히 레닌의 입장과 마찰을 일으켰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로 이주하여 독일사회민주당에 참여했다. 독일사회민주당 내부에 하나의 경향이 출현했는데 그 주요 대표자가 베른슈타인이었다. 그 경향은 자본주의가 다소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사실상 베른슈타인은 운동의 목표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그의 답변, 「혁명이냐 개량이냐」(1899)를 썼다. 그 시기 동안에 이미 그는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앞장섰다.

     

      1903년 그의 글 「맑스주의의 침체와 진전」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의 죽음 이후 맑스주의 운동에서의 침체를 비탄하며 새로운 이론적 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맑스주의 자체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옥중에서 쓴 「반비판」의 끝머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를, “맑스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혁명적인 세계관이다. 이는 한번 유용했던 표식에 형식적으로 되는 것을 철저히 혐오하며, 자기비판이라는 정신적인 격렬한 울림에서, 그리고 정신적인 천둥·번개에서 생명력을 가장 잘 유지한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뒤이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대적 파업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계급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 중의 하나였는데, 이제는 노동자들의 주도성이 특징적인 요소가 되고 계급투쟁은 노동조합이나 당 기구에 의해 '계획' 될 수가 없다. 비록 룩셈부르크가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을 아직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그는 이러한 대중 활동을 강조했다. 계급투쟁의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을 노동조합과 증가하는 독일사회민주당 내부 인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꺾어버리려 했다. 노동조합 기구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당 내부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한 논쟁을 금지했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대적 파업에 관한 책 출판 후 “계급 증오를 조장했다”는 선고를 받고 2개월 동안 수감되어야만 했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이전의 지도자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황”으로서 알려진, 칼 카우츠키는 룩셈부르크의 과격한 노선에 점점 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시기 동안 룩셈부르크를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독일 사회민주당 안에 곤란을 유발하는 “유대인”, “외국인”, 그리고 “노처녀”라고 비방하는 캠페인과 중상모략이 강화되었다.

     

      1907년 점증하는 전쟁위협에 대응하여 조직된 제2 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그리고 마르코프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본주의 계급지배의 철폐를 촉진한다”는 공통된 지향을 위해 투쟁했다. 1912년 「자본의 축적」에서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저작들 속에 존재하는 한계와 모순들을 용감하게 지목했었다. 그의 책은 아직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들의 역할과 군국주의의 특수한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본을 제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쓴 그 책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통찰을 제공한다.

     

     

      1914년 8월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배반이 있자마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그래서 1890년대 이래 새로운 조건들을 이해하려는 그의 투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을 설명하려는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도전을 설명하려는 그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1917년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면서 그는 러시아에서 그때 막 시작된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의 분석을 제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8년 11월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지배계급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 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에 반대한 그 당의 투쟁의 표적을 룩셈부르크로 삼았다. 1918년 12월 베를린 노동자평의회에 그와 독일 노동자계급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핑계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18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대해 행한 연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혁명이 테러로 복귀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 전체의 모든 에너지와 의식을 동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교활한 적에 대항한 재빠르고 쉬운 승리라는 당면(當面)주의적 환상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극소수 중의 하나였다. 결국, 그를 겨냥한 중상 비방 캠페인은 1919년 1월 그 극에 달했다. 1919년 1월 중엽 소위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진압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된 뒤 로자 룩셈부르크도 암살되었다. 지배계급은 당시 가장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혁명가 중 하나를 일소해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 합니다 :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 사실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독일코뮤니스트당 (KPD) 창립대회,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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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과학기술에 몰두하며,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과학기술에 몰두하며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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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기술혁신이 지속해서 진전되고 있는 반면에 이른바 사회적·경제적 진보는 후퇴하고 있다시장의 세계화는 생산적인 발전을 잠시 겪은 후전 세계 수억 명 프롤레타리아 노동과 생활 조건의 악화를 가져왔고이제는 실업자 또는 불완전 취업자의 꾸준한 증가를 가져왔다예전의 조립 설비에서 노동 분업은 자동차부터 텔레비전가전제품기계화학제약섬유제조업식품 산업까지 생산 모든 영역을 침범해 온 마이크로 전자공학통신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사라졌다마이크로프로세서는 점진적인 노동자 감소를 유도하며모델과 제품의 지속적인 다양화와 적기생산시스템(just-in-time)으로 재고를 줄여 자본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수십 년 전컴퓨터 기술(통합회로기술부터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에 투자된 거액의 자본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 공장들과 하이테크 분야 전체에 혁명을 일으켰다따라서 미국의 평균이윤율은 기술혁신이 확산함에 따라 다른 산업 부문에서 발생한 이윤율 하락을 초기에는 상쇄할 수 있었다그 이후컴퓨터 기술 적용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이는 먼저 제조업의 고용을 감소시켰고현재는 서비스업에 대한 고용을 줄였다지난 40년 동안 미국에서 7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한다그러나 생산되는 상품 양은 매년 증가해 결국 시장이 왜곡되고어떤 경우에는 남겨진 노동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더한 노동 강도로 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술발전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마르크스는 기술발전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자본론」 3이윤율 하락의 법칙). 그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고정자본인 생산수단과 가변자본인 노동력과의 관계)이 고도화하여 결국 이윤율(잉여가치와 투자된 총자본의 비율)은 감소한다더 발전된 기술이 생산 과정에 적용되어 노동생산성은 향상하지만동시에 노동생산성 향상은 노동자의 노동일 가운데 자본가가 착취하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고임금으로 보상받는 부분은 줄인다그러나 이는 물리적’ 한계(어떤 경우에도 고용된 노동자 수에 항상 좌우된다)에 도달할 때까지만 자본에 이익을 허락한다최종적으로 상품은 반드시 판매되어야 한다만약 상품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다면생산은 주로 산 노동의 이용 축소를 목표로 하는 경쟁 전략을 따르기 때문에 임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게 된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임금 삭감·간접적인 세금 인상공공지출(연금교육건강)의 삭감이라는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충분하다막을 수 없는 탄압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남녀를 목 졸라 죽이는 사슬을 더욱 조인다자본가계급은 자동화 기계와 기술로 달성되는 생산성 향상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상품 판매는 감소한다그리고 산 노동의 사용이 줄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한다로봇은 임금을 받지 않고(로봇은 일정한 기간 비용으로 변할 기계들이다상품을 사지 않는 결함을 갖고 있다로봇은 소비자가 아니다로봇의 생산능력은 지급 능력이 있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는 많은 상품을 만든다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좋은 자본주의가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하지만부는 소수 사람만이 누릴 수 있기에 나쁜 자본주의가 된다세상에는 유용한 상품에 대해 많고 긴급한 요구가 있지만수억 명의 남녀는 그런 상품을 살 수 없다금융시스템을 통한 신용은 상품에 대한 부분적인 수요를 제공할 수 있을 뿐신용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훨씬 더 심각하고 깊은 위기에 빠뜨리는 데 도움을 주고공적 부채와 사적 부채를 증가시킨다이는 일개 국가적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비용의 감소로 국제적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다.

 

자동화와 로봇

 

로봇은 많은 노동자보다 상품을 더 빨리 생산하지만상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상품 판매가격에 포함하는 잉여가치(이익)가 실현되는 것을 막는다심지어 상품 가격이 내려도 살 소비자는 없다로봇과 소프트웨어 때문에 과잉’ 노동자가 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거의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수백만 명 이상이 더 증가할 것이다자동화는 이미 슈퍼마켓콜센터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에 침투했으며컴퓨터가 트럭과 버스를 운전하고로봇이 음식을 준비하고행정 사무소를 장악한다모든 곳에서 직원들의 대폭적인 감원이 일어난다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컴퓨터 네트워크 설비인력 업무 절반도 정보기술과 전자 분야에서 혁신적 자동화된 기술로 인해 필요가 없어진다산업 부문과 상업 부문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증가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정적인 측면인 동시에 이윤율이 감소함에 따라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사회의 물질적 생산력 발달과 지금 존재하는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생산 관계 모순은 더욱 악화한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을 합리화한다.

 

산업혁명 4.0’은 자동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완성하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오류와 시간 낭비는 부가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해 최소화될 것이다수치제어기계는 희미해지는 기억이 된다유연한 자동화를 통해 모델과 제품이 조립 설비에서 직접 변경되며시장의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자원의 조직적 합리화는 낭비와 재고를 없앤다세계경제포럼의 연구는 로봇과 지능형 프로그램의 발전이 모든 직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업무 기술 보고서 2.0’에 따르면, 2025년까지 영국 노동자의 35%, 미국 노동자의 47%, OECD 국가 노동자의 평균 57%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중국의 경우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세계적으로 산업 부문에서 로봇은 약 6천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현재 일본 자동차 회사의 조립 설비에서 사용되고 있는 로봇들은 유지·보수 없이 최소 30일 동안 일한다로봇 팔은 생산 설비에 배치될 것이다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자동운영은 감독할 사람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리고 로봇 비용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개인 서비스 로봇은 미국에서 25,000달러 이하의 비용이 든다중국과 일본에서 가정용 청소 로봇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다산업 부문에서 로봇 비용은 수십만 달러도 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노동 창조는 50만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컴퓨터, 3D 프린터전자두뇌를 장착한 수치제어기계는 어디서나 판매되고 있다또한농업에서는 자동화 씨앗 파종기와 추수기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그것들은 인공위성의 안내를 받기까지 한다마지막으로커피머신식품 판매용 자판기책과 기기은행카드를 이용한 자동 수납 서비스 등이 상업 활동에서 확산하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중국의 자본가적 사회주의가 자동화와 로봇 기술에 강력한 투자를 하며 주도하고 있다중국은 현재 산업용 로봇컴퓨터 그리고 다른 복잡한 자동조정장치 기계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사용되는 로봇의 수에 따라 한국일본독일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살아 있는 기계인 노동자는 그들에서 독립된 죽은 기계로 대체되고노동자는 인간 부품으로 합쳐진다 (마르크스자본론).

 

멈출 수 없는 기술 진보

 

마이크로칩은 2년마다 두 배씩 속도가 향상한다소프트웨어컴퓨터로봇은 인공지능을 향상하고 있다수만 명의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있다맥킨지 보고서(2017년 1)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임금’ 노동 50%가 자동화할 것이라고 했다보스턴 컨설팅 그룹 최근 분석은 아시아(중국일본한국)에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해앞에서 말한 인력 감축을 확인시켜 준다유럽에서는 독일이 이러한 지진을 주도할 것이며이탈리아 산업에서도 로봇 설치가 매년 수천 건씩 진행된다고정자본(기계에너지원자재반제품)이 증가하고 있고가변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며문제가 다시 발생한다제품의 각 단위는 잉여가치를 점점 더 적게 포함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많은 유·무형 직업에서 형태와 내용은 점점 더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지고자본주의 손아귀와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관계에서 기술발전은 정신적으로는 소외 과정을 심화시키며 노동력이라는 상품 구매가 일어나는 상황과 조건 모두를 악화시킨다자본이 노동력 착취로부터 잉여가치를 얻지 못하면 실업 예비군은 팽창한다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동화는 생산 과정에 남겨진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준다우리는 국가 경제 경쟁력을 해치는 노동 관련 규제의 과도한 경직성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될 것이다그리고 남겨진 노동자는 더 낮은 가격에 자신을 팔려는 생각이 있는 실업 예비군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협박을 받게 될 것이다.

 

막을 수 없는 과정

 

마이크로 전자기술 때문에 보다 커진 생산 유연성은 포드주의테일러주의토요타주의 같은 상품 생산에 대한 관리 시스템들보다 시간과 품질을 더 엄격히 통제할 수 있게 한다새로운 응용 분야(3차원 프린팅 기술나노 기술지식 기술)도 마찬가지다자본주의는 현재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이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된 폭탄이 되어가고 있다기계와 공장 그리고 시스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지속적인 생산 주기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가 되었다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는 시장의 공급과잉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확실히 인류 고통과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인류는 기술혁신과 자동화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고 있는데기술혁신은 자본의 지휘 아래에서 그들의 조직과 생산 주기를 매우 유연하게 분리할 수 있다상품 생산과 이동은 최대 속도까지 빨라져 종종 지속 가능하지 않고 고갈되는 작업 이동과 리듬을 요구한다그리고 부가가치는 감소한다통신생명공학제약항공민간용 드론 뿐만 아니라 소위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운송 수단기계 도구식품 가공 등의 산업)에서도 부가가치는 감소한다. ‘부가가치의 상승을 목표로 새로운 소재와 대체에너지가 도입된다그러나 평균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상품 가치는 불가피하게 감소한다그 결과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윤을 되살리려는 자본의 필사적인 노력은 심지어 아동 노동의 착취로까지 확대된다. 1억 6천 5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전 세계 자본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상품 생산이 로봇에 의존한다면 자본주의는 사멸할 것이다실제로잉여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본주의 삶과 죽음의 문제인 이익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잉여노동과 그에 따른 잉여가치를 만드는 노동자가 더 충분하지 않다면 누가 그 상품을 구매하겠는가노동자들은 영구적으로 과잉이 되고다시는 자본에 의해 그 자신의 재생산이나 심지어 미래를 위한 노동력의 회복으로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자본의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된 생산성 향상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많은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했다또한개별 자본은 생산 과정의 기계화 및 재편성을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에 모든 것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임금 억제와 삭감노동 강도의 증가여전히 고용되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초과 근무 등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통해 더 큰 경쟁력을 추구한다그러나 결국 자본은 소위 노동시장에서 넘쳐나는 노동자들의 공급을 흡수하기 위한 생산적 투자 기회를 더는 찾지 못한다노동자의 계급적 활동이 진행 중인 곳에서는 자본이 임금 노동의 수요를 결정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여전히 노동의 역동성이라는 합리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는 자본주의 위기와 생산과 유통 방식의 구조조정에 직면해서 붕괴하고 있다동시에우리는 무역에서도 점점 더 치열해지는 국가 사이의 경쟁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의 자연적이고 역사적으로 발전된 필수적 필요는 최근 수십 년 동안 확대하여 왔지만자본주의는 이제 세계 각지의 수억 명의 사람에게 필수적 필요를 부정하게 되었다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향상되었지만노동자 수는 계속 감소하여 노동력에서 추출할 수 있는 잉여가치는 감소할 것이다.

 

잉여가치 희소성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기계는 항상 "마모와 찢김을 통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사회적 노동만이 교환가치 생산에서 유일하게 생산적 요소로 남아 있다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로봇 활동은 이러한 목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그러나 기술 및 정보통신과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엄청난 자본의 중앙 집중화가 이루어지며금융 자본은 노동자 축소를 대가로 고도의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이윤율 하락은 불가피하게 되고따라서 기생적 금융 자본 일부는 주식시장의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주식채권파생상품으로 향한 자금 흐름이 상품 생산부문으로 향하던 자금 흐름을 대신하며축적률이 반전하기보다 둔화가 더 분명해졌다투자 펀드에 자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하지만 펀드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부문의 잉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펀드에 조달된 자금은 정지되어 있으며, M에서 로 변화시켜야 하는 이윤을 만들지 못한다생산적 산업에 투자가 안 된 화폐는 무()에서 더 많은 화폐를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거의 20억 명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는 이자배당연금지방세서비스 직원과 공무원의 임금경찰군대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잉여가치의 자본화

 

자본주의 성장은 자본축적 없이는 불가능하다상품 생산에서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추출이 필요하다점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잉여가치의 흐름이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그러나 고정자본과 기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가변자본에 대한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고용의 상대적 감소가 동반된다면축적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산 노동의 이용과 착취에 따라 추출 가능한 잉여가치의 양은 투하자본의 양을 증가시킬 만큼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다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 수는 일정 시점까지만 노동생산성 향상과 함께 늘어난다게다가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본회전에 걸리는 시간은 감소해야 하고 상품은 판매되어야 한다따라서 자본은 상품 유통시간을 줄여서 상품이 오랫동안 창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윤율

 

기계 사용은 고용 감소와 더불어 이윤율 경향적 감소의 원인이다이는 직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로부터 착취하는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증가가 필요하다이윤율은 잉여가치를 총자본(공장기계원자재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와 가변자본인 임금에 대한 투자를 더한 값)으로 나누어 계산한다로봇에 대한 투자 증가로 분모가 커지는 동안 발전의 일정 시점에서 분자인 잉여가치가 증가를 멈춘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축적은 멈추고 위기가 시작된다자본은 과학을 적용해 생산성 향상을 사회화한 노동력의 생산력 때문이 아닌 고정자본에 속하는 생산력 때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이다실제로 육체노동과 지적노동 모두에서 산 노동은 불필요해졌기 때문에 버려지거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다현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을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다이는 알고리즘 침입으로 흔들리는 데이터 분석절차 개발 및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회계사변호사은행 관계자이사재무 분석가기자 등의 사무직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한편세계 각지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한편자본가와 연합한 과학자들은 상품 비용과 가격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관한 가설을 얘기하고 있다그러나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없다면생산과 소비 사이의 중재자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현재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심지어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시켰다며프롤레타리아트 소멸까지도 발명했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기술과 자본은 하나이며하나가 된 기술과 자본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모두를 위해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유일한 자동 주체(마르크스)’라고 설득한다!

 

새로운 소비?

 

전문가들의 몽롱한 생각은 스마트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쌓여 있는 환상적인 대량 소비의 새로운 물결을 예측한다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꿈꾸며 말한다. “우리는 몇백만 개의 일자리즉 소비자를 잃게 될 것이지만이것은 진보를 위해 지급해야 할 대가입니다!”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최소한 인류 절반(현재 35억의 인간!)에게 문을 닫은 채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보면서 방황하고 있다실업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여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도 평균 임금의 60% 이하를 받으며 빈곤 노동자’ 수를 늘린다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양의 고정자본(기계에너지원자재반제품)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가변적이고 생산적인 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제품 각 단위에 포함된 잉여가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그리고그 결과 자본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본주의에서 선에서 악으로 변한 생산성

 

자본주의에서 생산성 향상은 새로운 자본(화폐)이 될 수 있는 상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하다그러나 더는 구매자를 찾지 못하는 상품 더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다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도 오랜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를 애도한다초기에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던 걱정스러운 경제적’ 상황은 디플레이션으로 변했고,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참을 수 없는’ 상태이다. ‘공식과 수학적 모델은 공개되자마자 엉망이 되며모든 것이 예측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현재 상황에서 적용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적용을 시도할 때마다 무너졌던 케인즈식 해결책(양적 완화무이자재정지출)의 신화처럼이제 우리는 모든 위기 근원인 자본의 이윤 저하에 직면하게 되었고이제는 경제 회복의 가능성은 없다이 시점에 자본주의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뢰들 위에 있다이른바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 산업운송 수단기계 공구식품 가공 등)와 통신생명공학 및 제약항공 및 민간 드론 분야 그리고 신소재와 대체 에너지 분야가 지뢰들이다오직 하나의 목표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다하지만 부가가치는 평균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줄어든다!

 

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들을 굶주리게 하고 지치게 한다." "생산력과 우리 시대 생산 관계 사이 이러한 적대감은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압도적인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 활동은 그것에 이질적인 힘이 되고그 힘은 지배당하는 대신 지배한다." 이러한 "사물의 인격화 및 생산 관계 객관화"에서사적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지구상 모든 생물 종에 대한 완전한 착취와 지배를 실행했다그러나 정확히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노동력의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것이 자본 활동이고이 활동이 생산에서 무한하게 작은 것으로 축소되었을 때어떠한 관계도 사라진다자본은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인 생산력인 과학과 능력의 축적을 흡수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자본이 필요에 따라 조건화되지 않는 정도까지 불필요하게 된다. (중략작업과 작업량은 상품 생산의 결정적 원리에서 사라진다." 일은 순수한 추상으로 환원되고자본은 가치 기반을 상실한 생산 공정의 감시 아래 최소한으로 일하는 시간을 단축했고이제는 모순적이게도 자본은 "어떠한 잉여 생산물도 착취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기술의 현대화

 

결론은 무엇인가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845)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다른 생산력(기계)을 낳고 현재의 교환수단(화폐)을 확대한다고 썼다이런 상황에서 기계와 화폐는 파괴적인 힘이 된다기술발전은 자본주의 노동력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산 노동의 노동시간을 지속해서 감소하게 한다. ‘산 노동은 자본주의에서 재산의 측정과 원천이다그러므로 자본은 이용 가능한 모든 생산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지구의 모든 거주자 대다수가 빈곤과 야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사회 질서에 반대한다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으로 그 자신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인류 미래에 대한 걸림돌이 되었다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기본 구조와 기본 범주들(가치임노동상품과 화폐)을 관찰하면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 구조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분명한 쇠퇴 징후를 보인다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범주들은 영원하지 않다자본주의에서 모든 생산은 인류 요구가 아닌 자본증식과정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진다자본은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과정의 자동적 주체가 된다자본 대부분은 오로지 자본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력을 발전시킨 후에 허구의 자본이 된다그러나 자본은 세계적인 축적을 위해서 인간노동력을 이용해야 한다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점점 더 정교한 기술사용으로 일반적인 이윤율의 양적인 감소가 촉발된다자본가는 이러한 모순을 노동계급에 항상 적대적인 일시적 처방을 통해서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그것은 금융시장이 추구하는 잉여가치의 창조가 이제는 자본 성장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게다가 생산체계에 더는 통합할 수 없는 잉여’ 인구 증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15

프로메테오(Prometeo)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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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호

  • 분류
    분류없음
  • 등록일
    2021/01/13 13:17
  • 수정일
    2021/02/18 17:40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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