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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 :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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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목록에 올라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비록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사실상 별개의 두 가지 논의인 것 같다하나는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적()이며자본의 정치경제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기구의 필수 부분이다또 다른 관심사는 혁명가들이 어떻게 노동계급과 연계를 구축하고투쟁에 참여하며노동자들이 벌이는 투쟁에서 적극적인 요소가 되는가 하는 문제다이 두 문제는 혼동해서는 안 된다비록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결론지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바와 같이 노동조합은 계급투쟁의 전개에 엄청난 걸림돌이며계급에 적대적인 기구이다그리고 혁명가들이 노동계급과 어떻게 연계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이다동시에노동계급과 연계를 구축하기 위해 혁명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노동조합(그곳에 노동자들이 있어서안에서 일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우리의 결론은그래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지만계급투쟁에 물리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오히려계급투쟁에 대한 우리의 개입 방식은 대부분 자본의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대에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에 관해 우리가 도출한 결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나는 의도적으로 노동조합의 "본성"이라는 계급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들의 "본질"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노동조합과 같은 한정된 기구의 역할은 역사적 발전으로 형성되며고정된 본성이나 본질로 축소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맑스주의는 유전적 또는 계보적 이론이다그것은 혁명적 개입을 목적으로 한정된 기구의 역사적 역할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궤적을 분석하고 설명한다따라서 보기를 들어 노동조합의 경우계급투쟁의 역사적 전개에서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역할과 지배적인 사회관계의 재생산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자본주의가 노동의 자본에 대한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인 포섭으로 이행함에 따라 변화하는 역할에 맞춰져야 한다노동조합의 계보가 필요하지만이 글은 지난 세기 노동조합 발전의 광범위한 개요를 보여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더 철저한 유전적 설명이 남아 있다.

 

만일 우리가 20세기의 첫 10년으로 되돌아간다면사회 지형은 각각 노동계급의 기관인 두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그것은 투쟁의 도구이다미국에는 미국노동총연맹(AFL)으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이 있었는데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혁 투쟁(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노동 조건 개선)으로 그들 자신을 제한했다그리고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 프랑스의 노동조합총연맹(CGT), 스페인의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 등의 대표적인 혁명적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이 있었는데이들은 자본주의 국가와 임금노동 체제로 결정되는 사회관계를 전복시키기 위한 계급투쟁을 벌였다노동조합은 생디칼리스트 조직과는 달리 혁명적이지 않았지만그들은 계급투쟁의 기관이자 노동계급의 표현이었으며아직 자본 기구의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20세기의 첫 30년 동안두 유형의 노동조합은 자본의 정치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구에 통합되었는데 이 과정은 자본의 형식적인 지배에서 실질적인 지배로의 전환과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이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우리의 적이 되었나?라는 샌더(Sander)의 글을 참고). 노동조합의 이러한 변화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수십 년에 걸쳐서 한 시대를 채웠다보기를 들어혁명적 생디칼리즘의 경우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아마도 미국의 혁명적 물결의 절정인 1919년 시애틀 총파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그리고 1923년의 센트레일리아 파업또는 1926년 콜로라도의 탄광노동자 파업그리고 "유혈의 할란"에서도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비록 쇠퇴 국면의 계급투쟁이지만여전히 계급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이후 혁명적 생디칼리즘의 활력의 또 다른 보기를 들자면독일의 노동자총연맹(AAUD)과 노동자총연합-단일조직(AAUD-E)은 수만 명의 혁명적 노동자들을 보유하고 1920년대 초에 걸쳐 대규모 투쟁을 벌였다. (AAUD는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과 연계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까지 (아마도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국을 지지하기로 한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의 결정으로 스페인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은 대중적 노동조합과는 반대로 1930년대 초 독일의 코뮤니스트노동조합(KAUD)이 그랬던 것처럼 혁명적 정치조직(KAUD의 회원 수는 수백 명이었다.)이 되었다또는 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CGT)과 같은 거대한 산업노동조합이 되었고이 경우 자본의 기구에 통합되었다(CGT의 경우 스탈린주의당의 기관으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산업노동조합이자 자본주의 포드주의 시대의 산업노동조합의 모델인 미국의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는 그들의 조직화 투쟁이 낳은 산업 노동계급의 노동조합화에 대한 자본가계급 일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바로 그 시작부터 자본의 기관이었다헨리 포드와 철강 귀족들이 원래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와 싸웠다면루즈벨트 행정부는 불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전쟁을 준비하면서 산업노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했다케인즈주의가 경제 이론과 정책에서 자유방임주의를 지배했던 것처럼후자의 경향이 우세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를 역할로 하는 산업노동조합이 출현했다그것이 바로 현시대의 노동조합의 현실이며그들의 기원이 미국노동총연맹(AFL)의 직업노동조합이든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CGT)의 혁명적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이든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의 대중 산업노동조합이든 간에 다양한 방법으로경제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현실에서 드러내고 있다.

 

물론 노동계급을 규율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성은 자본의 문제였다형식적인 지배의 시대에자본은 노동력을 통제하기 위해 사설탐정과 회사 경찰의 잔인한 폭력과 함께교회와 가부장적 사회관계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전통적인 수단에 의존할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여러 주들은 일단의 법률제정 작업을 통해 회사가 자체경찰력을 창설하거나 기존의 경찰조직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이에 따라 설치된 회사경찰은 구사대의 역할을 수행했다독립경찰조직이었던 사설탐정은 열차경호열차강도 검거반노동조합 활동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역자]) 그것이 실질적인 지배의 시대에생산과정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극적으로 변화하면서더욱 정교한 규율과 통제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필요한 수준의 규율과 통제를 보장하기 위해 외부 세력(교회 또는 깡패)에 의존할 수 없다대신 내부 수단즉 노동자가 주체로서 "구성"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된 방식(자본에 종속됨)은 자본이 노동계급을 훈련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기반이 된다노동조합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즉 노동계급의 물리적 계급 내부에서 자본의 무기가 되었다이것은 경제정치그리고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볼 수 있다경제적으로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보기를 들어가장 큰 기업의 이사회에 노조 대표가 앉아 있는 독일의 공동 경영)과 "그들"의 조합원을 고용하는 회사의 중요한 주주(보기를 들면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의무화된 노동조합연금의 투자 덕분에 노동조합이 대기업에서 최대 주주 중 하나)의 경영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정치적으로노동조합은 그들이 우세한 역할을 하는 좌파 정당을 통해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정권에서 정부에 들어가서특히 노동 문제에 관한 정책을 만들었다(경제 위기 기간 노동계급에 대한 긴축 시행전쟁 중에 군대 동원). 법적으로노동조합이 협상하고 시행한 노동 계약은 그 기간 "노동 평화"를 보장하여 노동조합을 자본주의 국가의 법적 기구에 직접적으로 통합시켰다이데올로기적으로노동조합은 헌법에 충실하고 국가에 헌신하는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서 노동자를 종속시키는 특권적 수단이 되었다사실노동조합은 기관으로서 선천적으로 계급투쟁의 가장 강력한 두 가지 걸림돌인 국가와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영속화가 인류 전체를 재앙으로 위협하는 시대에 노동조합은 세계 노동계급의 감소하는 부분에 더 나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본이 계속 지구를 황폐화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평화에 대한 대가로서가 아니라자본의 기구에 통합되어 노동계급을 규율과 통제하는 역할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

 

확장 가능성이 있는 자주적 계급투쟁만이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토대가 되는 시대에 노동조합은 (비록 지금은 돌이킬 수 없지만역사적으로 자본의 기관노동계급의 적이 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혁명가들이 노동자들에게 계급투쟁에 개입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노동조합의 현 역할에 대한 논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맥 인토시(MAC INTOSH)

국제주의자 전망(IP)

 

 

<출처>

https://libcom.org/library/trade-unions-pillars-capitalism-internationalist-perspective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21년 8월 27일 세상을 떠난 국제주의자 전망」 맥 인토시 동지의 글이다.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던 투사이자 혁명적 맑스주의자였던’ 동지를 추모하고동지가 장려한 비판적 사고와 코뮤니스트 좌파 운동에 대한 공헌을 기리며 이 글을 소개한다.

 

맥 인토시(Mac Intosh) 동지를 추모하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947

 

 

 

<관련 글>

터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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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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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이어 또 하나의 선거가 시작되었다이번엔 지방 권력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부르주아 선거라는 측면에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본질에서 같다오히려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치에서는 중앙정치보다 계급적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노동자들에게 전혀 특별한 것이 없지만일부에서는 부르주아 양대 분파에 대한 심판과 자신들을 대변할 세력을 선출하는 장으로 여길 수 있다하지만 투표는 속임수일 뿐이다우리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업자이든 퇴직자이든 현재의 선거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지난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그 이전에도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수많은 약속을 해왔다노동자들이 조금 더 참고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생활과 노동조건은 좋아질 것이라 약속했었다말 그대로 4년 후, 8년 후 변화된 상황이 찾아왔다하지만 그것은 나빠지는 쪽으로의 변화였지개선이 아니었다끝 모를 경제위기는 모든 노동자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했고그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복지와 연금은 줄어들고주거와 생활비용은 비싸져만 가고상시적인 해고 위협과 불안정한 일자리장기적인 실업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다수의 노동자가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 허락하고 있다이것이 그들이 약속한 변화의 전부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그리고 1991년 부활하여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치러진 지방선거 이래 30여 년이라는 기간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오히려 후퇴하거나 누구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투쟁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정치인들의 약속은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되어버렸다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노동 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그들은 노동자를 팔아 정치판에 뛰어들어 엄청난 재정적인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투쟁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환상과 좌절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를 서커스나 환상이라 부른다왜냐하면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며투표행위로 자신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서만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또한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강화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부르주아 선거라는 무대에서는 원래 무대의 주인인 대중이 아니라 무대의 설치 관리자인 국가권력이 이를 주도하기 때문에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그들이 정한 순서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대중들도 무대를 벗어날 수 없다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차려놓은 서커스 공연에 곡예사로 참여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킨다거나 후보를 내세워 투쟁의 구심을 세우겠다는 발상 역시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도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노동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시킨다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계급은 작업장회사의 동료들과도 투쟁 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자본가를 포함한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이나 정치인을 자신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다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으니 따르라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그런데 왜 의회 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 또는 자칭 혁명 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거나 선거 전술을 사용하는 것일까정말 선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아니면 합법적인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연단이 선거시기에는 열리기 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환상이다사회주의자들의 선거 참여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레닌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선거에 대한 입장과 1930년대 트로츠키의 투항 전술이 혁명적 의회주의’, ‘선거 전술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이른바 선거 전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현재까지도 전혀 시정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논쟁의 본질은 의회 전술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자본주의 발전 상황과 그에 따른 적용 문제즉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 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 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 코뮤니스트 좌파들의 반()의회 혁명 전략의 대립이었다당시 서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계급 일부가 되어버렸고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과거의 논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오늘날에도 선거 전술과 의회의 혁명적 이용이 가능해지려면현재의 부르주아 선거제도에서 의회 제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연단을 열 수 있어야 하며의회제도의 활용이 계급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그런데 역사의 경험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혁명적인 의원단은 의회를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없으며설사 그러한 전략이 있는 정당이었더라도 부르주아 정치에 적응하면서 타락하여 결국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물론 이들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혁명적 경험이 아닌 타락의 경험만을 갖게 되었다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와 민주주의는 혁명적 의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애국가를 강요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철의 원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의회제도의 활용은 바로 이런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놀아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투표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계급적인그리고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투쟁을 위한 파업위원회투쟁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노동계급의 미래는 노동계급 스스로 일어서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에 누가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과 선거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동원되거나 힘을 낭비하지 말고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의 쟁점을 걸고 파업을 위한연대를 위한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고립되거나 장기간 투쟁으로 지쳐있는 우리의 노동자 투쟁에 하나의 계급으로 연대하자.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하지만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2022년 5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이 글은 코뮤니스트」 4호에 실린 글을 축약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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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터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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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우리는 많은 부문에서 발생한 파업을 언급했다.(1) 알파인 삭스(Alpin Socks) 공장, BBC 터키트렌드욜(Trendyol)의 노동자들은 이미 파업으로 쟁취했고다른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또한 우리는 노동자들의 서면 및 시청각 인터뷰에서 연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보기를 들면미그로스(Migros) 식료품 창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미그로스 회사는 인근 지역에서 새로운 노동자들을 데려와 파업을 막으려 했지만새로 들어온 노동자들 역시 파업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많은 부문의 노동자 단체들이 서로에게서 얻은 용기로 파업에 돌입했다고 차례로 선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때때로 경찰의 공격을 받는다미그로스 창고 노동자의 경우가 그랬는데, 150명 이상의 노동자가 구금되고 250명이 해고되었다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파플러스 오토모티브(Farplas Automotive)라고 생각한다터키 진보노동조합총연맹(DISK)산하 금속노조연합(UMW)이 조직한 코자엘리-게브제(Kocaeli-Gebze) 파플라스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그 결과, 150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이에 교대 근무 중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노조 권리와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경찰이 공격을 준비하자노동자들은 공장 옥상에 올라가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선언했다그 결과, 200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었다이 상황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늪으로 끌어들인 것을 보여주지만노동조합이 투쟁을 가두는 '법적 한계'가 노동계급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노동조합의 '법적한계를 넘어선 노동자들이 자신만의 투쟁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기를 들어 미그로스(Migros), 트렌디욜(Trendyol)과 예멕 세페티(Yemek Sepeti)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이들 회사에 대한 보이콧 요구가 있었다불매운동은 노동자들에게 빠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도구를 주는 장점이 있지만다른 한편으로 파업을 지역적이고 법적인 관점으로 축소한다게다가불매운동에 대한 대다수의 지지는 미그로스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따라서 싸워야 할 적()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권리를 무시하는 소수의 자본가 회사로 전락한다자본과 노동계급의 '중재자'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을 '타협'으로 이끌며투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여기게 만든다. '권리 투쟁'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유지하게 하고투쟁의 정당성은 부르주아지 법이 규정한 틀 안에서 유지하게 한다정치적으로 '권리'는 부르주아지의 경제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법적물질적 '이익'을 넘어서지 않는다이것이 트렌디욜(Trendyol)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38.8%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이른바 독립노조 대변인이 앞으로의 투쟁에서 불쾌한 행동은 멀리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한편 예멕세페티(Yemeksepeti) 택배노동자를 조직한 나클리야트(Nakliyat) 운송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나클리야트의 지도 아래’ 노동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부르주아 좌파와 노동조합은 현재 터키에서 벌이는 행동에서 자신을 계급으로 대체하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투쟁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의 스탈린주의적 반영을 보여주고 있다노동자가 쟁취한 성과는 노동조합 방식이나 자본가개량주의 좌파의 조직과 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용기연대단결을 통해 이루어진다코뮤니스트로서 우리의 임무는 노동계급의 의식을 혁명적 수준으로 높이고노동자 투쟁을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노동계급 자신의 당인 세계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계급을 대신하여 투쟁을 그늘에 남겨두거나 계급과 분리된 지도력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전체 노동자-노동조합-자본주의 삼각관계에서노동자 투쟁의 첫 번째 수단이 노동조합 안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법적인 투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영역은 노동조합이다생존 위기에 몰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법적 틀은 해고를 두려워하는 노동자에게 유용한 선택으로 여겨진다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얻은 성과는 자본주의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자본주의의 본질과 이데올로기 공격을 인식하고중재 도구(자본가 정당노동조합선거 등과 같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을 통해 국제적 차원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노동자들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에서 영구적인 이익을 얻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투쟁에서 맑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비판을 활용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맥락에서 맑스가 말했듯이, “만약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같다면 과학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노동조합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드러난다.” (2)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해왔지만과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았다이제는 중재자로서의 주된 역할이 '타협'이지만항상 자본가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숨길 수 있는 걸림돌은 없다개량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유일한 문제가 지도자나 관료화에 있다고 보고노동조합을 혁명가들이 장악해야 하는 투쟁의 장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을 이끄는 사람이 누구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왔다는 수많은 경험으로 거듭 반박되었다따라서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특징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살펴봐야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요소이다. 19세기에 등장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노동조합은 불법이었다그러나 자본주의 모순이 고조되고 제국주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려는 과정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그 일환으로 노동조합이 착취율을 고정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점차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국가는 노동조합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지위도 부여했다따라서 노동조합 역시 '합법성'의 틀 안에 갇혔다그리고 그들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파업을 중지하고 각 국가 자본의 전쟁 목표에 대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보상했다그리고 그 이후 노동조합이 이 체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수록노동자에게 여기저기서 약간의 부스러기를 주면서그들은 더욱 관료적으로 되었고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점점 더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다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이해는 노동조합을 떠나라라는 추상적인 주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우리는 혁명가로서 노동조합의 (낮은 지위를 포함하여어떠한 공식 지위도 거부하지만우리는 항상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 있다우리는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을 때만 노동자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하지만노동자들이 자신의 집회와 선출된 파업 위원회에서 자신만의 투쟁 형태를 만들 때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우리는 노동조합 투쟁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계급이 자신감을 얻고 광범위한 대중에게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선 계급투쟁은 스스로 '권리'와 개혁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갇힌 좌파를 피해야 한다노동계급은 오직 혁명적인 국제 계급투쟁만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지구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자본주의의 고조되는 위기는 이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우리에게는 쟁취할 세계가 있다!

 

 

2022년 218

미미와 메두사(Mimi and Medusa)

터키의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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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 속 현수막과 피켓에는 “DISK가 우리를 속였는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불행을 초래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있다.” 등이 적혀 있다.

 

(1) 터키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2/turkey-workers-are-trying-to-find-their-own-voice-all-over-the-world

 

(2) 노동조합 그들은 누구의 편인가?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0-03-01/unions-whose-side-are-they-on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2-18/turkey-the-trade-unions-are-an-obstacle-to-all-workers-strug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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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자본주의와의 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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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전쟁에 돌입했다이것은 193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 이후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초()유고슬라비아를 전쟁이 휩쓸어 14만 명이 사망했고,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카(Srebrenica)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저질러 청소년을 포함해 8천 명의 인명이 냉혹하게 살해되었다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이제 막 발발한 전쟁은 아직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결국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지금으로서는 구()유고슬라비아 전쟁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오늘날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은 민병대나 작은 국가들이 아니다현재의 전쟁은 각각 1억 5천만 명과 4천 5백만 명의 인구를 갖는 가장 큰 유럽국가 사이에서 일어났고러시아에서 70우크라이나에서 25만의 거대한 병력이 동원되어 있다.

 

더욱이 강대국들이 이미 구()유고슬라비아 대결에 가담했다면그것은 간접적인 방식이거나 유엔 휘하의 개입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오늘날 러시아와 맞서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라 나토에 속한 모든 서방국가다서방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관여하지 않았지만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중대한 경제 제제를 가했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극적인 사건이다이 전쟁으로 이미 수천 명의 양측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전쟁은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야기해 추위와 굶주림을 증가시킬 것이다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착취당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생활 조건의 붕괴를 겪고 있다늘 그랬듯이 세계 주인들의 전쟁 행동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계급인 노동계급이다.

 

이 전쟁이 비극은 지난 2년간의 전 세계적 상황즉 대유행경제 위기의 심화환경 재앙의 증가 등과 분리될 수 없다이것은 세계가 야만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이다.

 

전쟁 선전의 거짓말

 

모든 전쟁에는 대대적인 거짓 캠페인이 수반된다국민특히 착취당하는 계급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끔찍한 희생즉 전선에 보내진 군인에게는 생명의 희생그들의 부모파트너자녀들의 애도민간인들의 공포궁핍과 착취의 심화를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머리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채울 필요가 있다.

 

푸틴의 거짓말은 조잡하고 정치경찰과 첩보조직인 KGB 장교로 경력을 시작한 소련 정권의 거짓말을 반영한다그는 대량학살의 희생자인 돈바스 주민들을 돕기 위해 특수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제제를 구실로 언론에 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다그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는 나치 정권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어권 주민들이 종종 나치 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민병대에 의해 박해를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대량학살은 없었다.

 

서방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더 교묘하다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미국과 동맹국들이른바 "민주주의적영국스페인이탈리아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동맹국은 2003년 이라크 개입을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든 대량살상무기라는 완전히 꾸며낸 위협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팔았다그 개입으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2백만 명의 이라크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만 명의 연합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민주주의적지도자들과 서구 언론은 악한 괴물’ 푸틴과 착한 소년’ 젤렌스키 사이의 싸움이라는 우화를 우리에게 전한다푸틴이 냉소적인 범죄자라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는 그것에 어울리는 외모까지 갖고 있다젤렌스키는 푸틴과 같은 전과가 없고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인기 있는 희극배우(결과적으로 조세회피처에 큰 재산을 소유한)였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그러나 그의 코미디 재능은 이제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피난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조국을 위해즉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와 과두 체제를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하는 군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활기차게 몰입해 있다왜냐하면집권당의 색깔이 무엇이든연설의 어조가 무엇이든모든 국가는 피착취계급과 다른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경쟁에서 무엇보다 착취계급민족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 선전에서각 국가는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침략의 피해자로 자신을 나타낸다그러나 모든 국가가 사실상 강도들이기 때문에 결산에서 어떤 강도가 먼저 발포했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오늘은 푸틴과 러시아가 먼저 발포했지만과거에는 나토가 미국의 지도 아래 그 자체의 진영으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전에 러시아가 지배했던 여러 나라를 통합해왔다전쟁을 시작함으로써강도 푸틴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함으로써 그의 나라의 과거 권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부터 영구 전쟁은 그것이 초래하는 모든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자본주의 체제는 기업 간의 경쟁과 국가 간의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상업 전쟁은 무장 전쟁으로 이어지고경제적 모순과 위기의 악화는 훨씬 더 많은 전쟁과 같은 충돌을 일으킨다이윤과 생산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땀으로는 물론 피로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15년 이후 세계 군사 지출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이 전쟁은 이 과정을 노골적으로 가속했다이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상징으로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최초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구매와 조달에 자금을 지원한다그리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의 결단과 파괴력을 증명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현재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오늘날 전 세계적으로그리고 러시아 자체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하는 많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적대행위를 끝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시위가 아니다역사는 자본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피착취계급즉 부르주아계급의 직접적인 적()인 프롤레타리아트임을 보여주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했을 때그리고 1918년 11월 독일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부가 정전협정에 서명하도록 강제했을 때가 이런 경우였다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맞서 수십만 명의 군인을 보내 죽게 만들 수 있다면만약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오늘날 조국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그것은 세계의 이 지역에서 노동계급이 특히 약하기 때문이다. 1989년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이라 주장했던 체제의 붕괴는 세계 노동계급에 잔인한 타격을 주었다이 타격은 프랑스이탈리아영국 같은 나라에서 1968년부터 1970년대까지 열심히 싸웠던 노동자들에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1980년 8월에 대대적으로 그리고 대단한 결의로 투쟁해서 정부가 억압을 포기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했던 폴란드의 노동자들처럼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전쟁의 희생자민간인 그리고 총알받이로 변한 군복 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인 양측의 군인들에게 진정한 연대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한시위가 아니다다른 국가에 대항하여 한 국가를 지지하기로 선택함으로써가 아니다유일한 연대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를 규탄하는 것이런저런 국기 아래 모일 것을 요구하는 모든 정당평화와 국민 사이의 좋은 관계라는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는 것이다그리고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는 세계 도처에서 대대적이고 의식적인 노동자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그리고 특히 이러한 투쟁은 점점 더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야만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체제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의식해야만 한다.

 

오늘날노동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에 나타났던 그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전 세계의 노동자여단결하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하여!

 

2022년 2월 28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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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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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감염병 대유행장기적인 경제 위기제국주의 대립과 전쟁 위기기후 위기,..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고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무겁게 떨어졌다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본주의 주요모순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바탕으로 한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 위기 상황에서의 대유행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전쟁과 야만인 자본주의의 지속인가 아니면 계급전쟁을 통한 코뮤니스트혁명인가의 선택을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다이제 코뮤니즘은 유령이 아니라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노동계급 투쟁의 무기이자해방된 인류의 미래로 제시되고 있다.

 

1917~1921년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은 오랜 기간 암흑의 침체와 반()혁명 시대를 거쳐 1968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노동계급은 1970년대 초 제국주의적 긴장과 격렬함이 세계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세계 곳곳을 휩쓸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부활하였다하지만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노동계급은 자기해방의 전망인 코뮤니스트혁명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추고인류에게 두 차례에 걸친 위기와 세계전쟁 그리고 파괴와 재건다시 새로운 위기를 반복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차 대전까지 계속 확장되었고그 이후 파괴의 시기(1914-1945)를 지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으나다시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축적조건을 재구축하려는 시기를 거쳐 왔다세계 자본주의는 영국이 주도하던 축적국면을 지나미국이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하면서 80년대 이후 쇠퇴의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자본의 최대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 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고,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방아쇠를 당겨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한편으로 부르주아지의 무능과 분열을 보여주는 현재의 위기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이미 쇠퇴에 빠진 자본주의 경기침체가 40여 년 전부터 1974, 1981, 1991, 2001년에 차례로 있었다수십 년간 실업은 사회의 지속적인 현상의 하나가 되었고그동안 노동계급은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해왔다.

 

만일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수많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빈곤에 빠지고 기아에 직면하게 된다면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오히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넘쳐나지만세계인구의 절대다수는 생산된 상품을 살 구매력이 없다그동안 자본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위적인 시장의 창출을 통해 잠시 비켜 가곤 했으나부채에 의지한 위기의 탈출은 신용의 대대적인 상환의 시기가 오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장기적으로 지속해온 경제 위기는 부르주아지가 대유행에 대해서도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봉쇄와 생산 중단은 경제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대유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한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있다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위기는 이러한 자본주의 법칙이 바로 체제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번 대유행에 따른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냈다더욱이 자본은 이러한 위기 대응 실패를 오히려 노동계급에 전가하며 더욱 깊은 공황의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치명적인 불치의 병에 걸려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아래감염병 대유행 재앙 속에서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아직 이에 맞서 적극적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는 계급 역관계의 커다란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있다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지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노동/진보/사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이들은 그동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지만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자본은 자신이 만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방역을 빌미로 한 봉쇄와 탄압으로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싹부터 잘라내려 하고 있다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노동계급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깨고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할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열어주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이 위기는 계급 대결의 새롭고 전례 없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주었다.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아니면 야만이냐의 의제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파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며혁명당은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노동계급이 다시 계급투쟁의 주도권을 잡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전면전을 시작할 때혁명당은 모든 자본주의 수호 세력에 맞서 정치적조직적 전투를 벌일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또한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다만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오직 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후퇴할 수도 있기에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인 성과와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당이 필요하다따라서 노동계급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고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혁명당의 과업이다혁명가/코뮤니스트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또한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 투쟁으로 나타나지만투쟁 물결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계급영역 내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인종주의민족주의 외피를 쓰고 노동계급의 심리와 의식을 왜곡시켜 부르주아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여기에 코뮤니스트와 혁명당의 역할이 중요하다저항혁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전쟁억압착취의 고리를 끊어내고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스트 세상을 세계혁명으로 만드는 길이 코로나19 대유행이후 시대의 역사적 임무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오늘날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세계적으로 부활하고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코뮤니스트혁명의 실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이에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이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혁명적 인터내셔널 건설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우리 코뮤니스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건설을 위해 투쟁하며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혁명당을 건설하고자 한다우리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들과 전투적 노동자 동지들에게 코뮤니스트 강령과 혁명당 건설의 기초가 되는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혁명의 길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2021년 5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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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의회주의/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 좌파의 투쟁

투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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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탈리아 선거

 

1945년 4월 25일 북부 이탈리아의 독일군은 연합군에 항복했다이날은 이제 이탈리아의 '민족해방'을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이 승리한 결과라기보다 반()파시스트 파르티잔의 헌신으로 신화화한 이탈리아의 국경일이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PCInt)은 1943년 전쟁에서 모든 제국주의 동맹에 반대하는 유일한 조직으로 결성되었다. 1945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비밀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이탈리아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은 전쟁의 위협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주축국이 패배하면서 제국주의 경쟁은 이제 스탈린의 소련과 트루먼이 이끄는 미국 사이의 '냉전'으로 옮겨갔다톨리아티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I)이 전쟁 후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통합 정부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살레르노 전환'에도 불구하고미국은 이탈리아가 코뮤니스트들에게 넘어갈 것을 두려워했다물론 그 코뮤니스트는 톨리아티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스탈린주의자들을 의미했다이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마셜 플랜(유럽 국가들을 복구하기 위해 130억 달러가 할당됨)을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의 첫 번째 민주 선거(1948년 1월 1일 헌법이 발효됨)에서 CIA는 데 가스페리(De Gasperi)의 기독교 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돈을 쏟아부었다아래의 전단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은 투표함에서 대리인이 싸운 이 냉전 투쟁이다.

 

당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게 선거는 도전이었다. 73개 도시와 읍에 있는 지부와 수천 명의 당원으로 당은 빠르게 성장했지만아직은 다양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일부는 1919년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의 입장으로 돌아가 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를 원했다하지만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없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지만선거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전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당은 반()의회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가당은 이미 1946년 지방선거에 선전 목적으로 참여했지만국회의원 선거가 더 큰 문제였다참여의 결정적 요인은 후보자를 내세운 정당이 모든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나 공청회에서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공공 플랫폼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에 체제 전체를 공격 할 수 있었다다음 전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의 목표는 여전히 반()의회적이었다핵심 구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실제로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술적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선거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지만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의회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이점을 결코 찾지 못했다반대로그 이후의 모든 선거 문서가 보여주듯이정치 체제에 대한 자본주의 언론의 지배가 증가한다는 것은 오늘날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단은 또한 1948년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이 이탈리아의 계급의식 상태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대부분 톨리아티의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의 계급 협력을 통해여전히 대부분 자본주의적 환상의 지배 아래 있으며이를 뒤집기 위한 투쟁이 길고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그 당시에는 그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어려울지 예측할 수 없었다. 1948년 4월 선거에서 유권자의 92.2%가 참여했고 자본주의 이탈리아의 전후 재건이 진행 중이었다.

 

2015년 5월 1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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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지 말자!

 

어떠한 정당이나 그들의 전선에도 투표하지 말자!

그것은 전쟁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승리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다시 한번 의회민주주의는 여러분에게 대표를 선출할 자유를 주고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할 준비가 된 사람 중에서 선택할 자유를 준다그들은 어제는 파시스트 국가의 원칙과 제도 아래서 그랬고지금은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과 제도로 선거를 하는데모두 자본주의 국가의 원칙과 제도 아래 시행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이야기는 독점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인 승리의 전진에 대한 이야기이다그것은 지금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를 위한 영구적인 전쟁의 이야기가 되었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와 통일된 정치적 혁명 세력으로서의 물질적 파괴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세계 대학살의 문을 여는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암흑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의 이해관계가 자본주의와 그것의 경제정치 조직의 이해와 반대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전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가 아직 파산하지 않은 것이 경제와 그 이상의 지속적인 부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역사와 과학은 그것을 분명히 부정한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는 계급의 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의식을 파괴함으로써 필멸의 위기를 극복한다계급 내부에서 발생하는 정치세력이 타협과 협력의 관행에 현혹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자본주의는 바로 그 생산체제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고내부 모순으로부터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쇠퇴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더욱 명확해지는 징후를 통해 알고 있다만일 자본주의가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폭력속임수전쟁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과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떼어내어 제국주의와 전쟁의 대의에 확고히 연결된단순히 조작된 대중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자본주의 승리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거 투쟁에서 현재 정치세력의 동맹이 전쟁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배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서 입증되었다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 준비와 연계된 기회주의에 휩싸여 정치 현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선거운동 축제마저 전쟁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오늘날 데 가스페리(기독민주당)나 톨리아티(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에 대한 투표는 더 거대한 의회민주주의나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권력 장악을 위한 투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오직 경제노동국가의 살아있는 권력이 영-미인들의 의회민주주의의 진짜 전쟁 또는 러시아의 인민민주주의의 전쟁으로 몰아가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한마디로 말해서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제국주의 강도의 승리를 위한 총알받이로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여러분이나 노동자들에게 인민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즉 러시아와 미국스탈린과 트루먼 사이에는 역사적인 대척점이 없다고 말한다진정으로 역사적이고 살아있는 대척점은 자본의 독재 사이의 대립이지만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장한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두 당이 선전의 기초로 만든 문구와 선동적인 주장으로만 가득한 강령에 속지 말아야 한다주택고용 문제에 관한 것이든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든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를 압박하는 이 괴물 같은 국가 조직을 통합하는 결과를 초래할 구조 개혁에 관한 것이든 말이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은 투표할 것이고한편으로는 실직으로 인해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한 빵 조각을 얻을 기회를 잃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투표할 것이다한편으로는 그것이 일상생활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투표할 것이다.

 

혁명가로서 우리의 의무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투표하지 말자전쟁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승리를 위해 복무할 정당과 후보에 투표하지 말자.”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부르주아 진영의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있는 전쟁 정당과 그들의 전선에 연대하지 말자.

 

그들은 4월 25일의 대중운동을 이용해 파시스트든 반()파시스트든 부르주아지의 공장재산을 방어하는 무기로 만든 것에 대한 공동 및 개별적 책임이 있다또한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숙청과 사면에 대한 책임그리고 그들 모두는 계급 협조임금 삭감국가와의 화해의 의식적인 창조자이기 때문에 열악한 임금과 실업에 대해 공동 및 개별적인 책임이 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우리 투쟁의 상징, 10월 러시아혁명의 상징레닌은 부르주아 의회에 대한 투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부활의 신호즉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혁명적 계급의식의 부활을 나타내는 행동을 요구했다.

 

모든 전쟁 정당과 전선을 타도하라!

부르주아지 의회의 속임수를 타파하라!

제국주의 양 진영의 인민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전쟁을 타도하라!

프롤레타리아혁명 만세!

 

1948년 4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 집행위원회

 

<출처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5-05-01/don-t-v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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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2012~2022년 한국 선거

2012~2022년 한국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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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진보/보수 프레임공정과 능력세대/성별 분할지역주의민족주의 등)가 이슈의 용광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이처럼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이슈를 잠재우는 블랙홀 역할이 기본이다게다가 부르주아 정파 사이의 진흙탕 싸움(후보자/가족 비리 의혹 공방)으로 정치 무관심이라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결국 이번 선거판도 노동계급의 현실을 철저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그동안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하지만,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른바 진보좌파 운동세력은 실패한 선거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사회주의(?)좌파 공투본민중경선비판적지지 흐름 등이 그것이다물론 그들이 반복하는 낡은 선거전술은 이미 실패로 끝났음이 증명되었다.

 

이른바 좌파단위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 체제 전환을 위한 사회주의·좌파 대통령 선거·지방 선거 공동투쟁본부를 제안했다그러면서 소수 재벌과 자산 불로소득자를 위한 경제를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로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경제위기와 노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더 많은 이윤·더 많은 소비를 하며 더 많은 노동·더 많은 자연 수탈로 지탱되는 자본주의를 필요한 만큼 계획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더 적은 노동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체제 전환이 사회주의 정치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를 필요한 만큼 계획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자고 주장한다. 10년 전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 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라고 비판했다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개혁이라는 점을 스스로 시인했다.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선거에서의 공약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최종 목표와 코뮤니스트혁명의 전망을 가질 때만 노동계급의 무기가 된다. ‘자본주의 전복-노동자 자기 권력 쟁취라는 핵심 과정을 빠트린 채 사회주의 간판으로 후보를 내고 체제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희화화에 기여할 뿐이다.

 

한편민주노총 일부에서는 노동자민중의 대선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노동자민중경선을 추진하고 있고일부 민족주의 계열과 전직 관료 집단에서는 공개적인 이재명 지지나 비판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이 역시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구태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맑스주의자를 자임하는 일부 엘리트주의 학자와 사회단체에서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면서 윤석열 지지를 주장한 것이다타락과 혼돈으로 치닫는 부르주아 정치판만큼이나 노동자 운동 내부도 혼란스럽다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선거 자체다그 안에 노동자 정치가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노동자 운동 내 모든 선거참여 시도는 실패한 선거전술의 반복이다그들 중 이른바 좌파는 다른 세력과 다르게 사회주의 정치를 대중화시키겠다고 나섰지만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뮤니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 간판으로 급진적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투쟁으로 바꿔 말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군소정치 세력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수차례 증명되었음에도 선거철만 되면 선거주의자들의 고질병이 재발한다선거주의는 운동의 퇴조와 전망 부재에 처한 활동가들의 조급성과 결합하여 노동자 운동 내부로 급속히 확산된다그것은 온갖 합리화와 이합집산의 과정을 통해 본래 목적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부르주아 정치의 대안이라는 환상을 확산시킨다물론 이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넘어선다는 명분으로 또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포섭되면서도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며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하지만 그것은 부르주아 잔치판의 들러리로서 노동자 투쟁에 혼란만 가져다 줄 뿐이다.

 

사람들의 대대적인 변화는 반드시 코뮤니스트 의식의 이러한 대대적인 공조 속에서 확인되는데왜냐하면 그러한 변화는 단지 하나의 실천적인 운동즉 혁명 속에서만 실행 가능해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한 까닭은 혁명이 단지 지배계급을 전복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을 전복한 계급이 오직 혁명 속에서만 스스로 낡은 체제의 모든 썩은 것을 쓸어 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맑스)

 

노동계급의 미래는 다른 계급이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의 정치적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노동계급 스스로 투쟁하고 개척해야 한다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강화해주는 부르주아 정치 참여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와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통해서만 진정한 노동자 정치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따라서 선거 시기 부르주아 서커스 쇼에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선거 참여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은 계급투쟁 속에서 자신이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하나의 계급임을 깨닫는다물론 투쟁만으로는 계급의식이 발전하지 않는다그것은 작업장부문지역민족국가를 넘어 연대하고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여 투쟁하는 국제주의 원칙이 노동자 의식에 자리 잡아야 가능하다계급의식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꾸준한 실천과 성찰이 필요하다노동자투사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의 만남토론실천이 그것을 앞당길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의 계급투쟁 조건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운동 속에서 그동안 투쟁을 패배로 이끈 낡은 운동과의 단절과 새로운 운동 창출을 요구하고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주의라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 투쟁이 직접 만나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자.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선거주의와 단절하자!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만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

 

2022년 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이 글은 코뮤니스트」 14호에 실린 글을 보완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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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다시 꺼내든 낡은 당 건설 노선 비판 -

 

노동자의 주변에는 항상 자신들이 노동계급을 대변하거나 지도하는 세력이라 자임하는 정파와 파벌이 득세하고 있다여기에는 소수이지만노동계급의 해방과 사회주의를 실천한다는 세력도 일부 포함된다그들은 항상 "노동계급이 역사와 혁명의 주체이고...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해야만 노동해방에 이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하지만 그들이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과 권력 장악 이후까지 일관되게 노동계급을 권력과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지아니면 반대로 계급을 대리하거나 이용하는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에는 사회주의/혁명 세력을 자임하면서 반()자본주의사회변혁노동해방사회주의자 등을 내걸고 노동자 운동에서 이른바 좌파 블록을 형성한 세력이 존재한다이들이 좌파 블록으로 모인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온갖 폐해를 끼치며 기득권을 누려온 다수파 운동(이른바 자민통으로 지칭되는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엄밀히 보면 자기 운동의 최종목표와 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한 운동의 퇴보에 기인한다이들은 쇠퇴기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 개혁을 넘어선 혁명적 이행전략을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그러나 현실 투쟁에서는 사회주의와 무관한 실천만을 하면서 대외적으로 급진적 구호와 기회주의적 전술을 섞어 자신들의 조합주의/노동자주의/선거주의 실천을 합리화하고 있다이렇듯 좌파의 정체성은 단지 다수파 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적 기질과 줄서기로 드러낼 뿐이다.

 

이들 좌파 중 다수는 혁명적 이행전략인 노동자(평의회권력 창출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소수파 운동의 한계 속에서도 현실에서 혁명적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면서 전략적 과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계급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장기적 전망에서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한 실천즉 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자기 조직화로 나아가는 장기적 목표를 향해 꾸준히 실천하지 않고단기적이고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공동전선의 일종인 좌파 블록이 정치노선과 전략적 목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대부분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형성되는 경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욱이 이들이 개량주의 세력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입당 전술과 노동자 공동전선은 오히려 개량주의 세력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고 혁명 세력과 함께한다는 환상을 유포 시켜그들의 본질을 가려주고 입지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이러한 동맹은 자신들이 다수파를 장악하지 않는 한 그들과 함께하는 내내 개량주의 노선을 묵인하게 된다. 결국개량주의 세력과의 동맹을 옹호하는 전술의 결말은 노동자들이 그것으로부터의 단절하는 시간을 지연할 뿐이다더욱이 이러한 전술의 남발로 인한 이합집산과 분열의 반복은 노동자에게 정치 운동의 신뢰를 잃게 할 뿐 아니라현장 투쟁에서 단결을 실질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들은 자신이 계급의 전위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과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자만에 빠져온갖 현장 투쟁에 개입하면서 투쟁의 목표와 원칙을 훼손하거나 계급의식 발전과 자기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와 운동의 발전에 복무하지 않고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 정세에 조급하게 개입하는 운동이장기적 전망이나 운동의 본질에 접근하는 투쟁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급의 전위란 자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전위는 계급투쟁 과정에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분을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매우 길고 힘든 계급의식 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퇴조-상승의 모든 기간에운동의 최종목표를 명확히 하고 (코뮤니스트혁명 강령을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방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혁명적 소수의 신뢰와 영향력이 노동계급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주요한 투쟁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계급의 전위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하늘에서 떨어진 전위(혁명조직)가 노동계급을 혁명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계급 안에 혁명적 부분(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위가 존재하는 것이다따라서 혁명당(조직)은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계급 안에서 계급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 강령을 방어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계급 주위에서 전위 역할을 한다는 세력들은계급투쟁 개입을 노동자 투쟁을 대리하거나 자신들이 투쟁의 배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들은 공동전선이라는 외피를 쓰고 상층중심의 공동전선(투쟁), 입당 전술노동자 후보/선거연합계급연합노동자정부 등의 혼란스러운 전술을 남발하고 있다이러한 공동전선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공동전선의 상대에 따라 강령의 수준을 낮추고 전술의 원칙을 바꿔가면서 계급의식을 혼란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아직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부르주아의 책략에 눈을 감는 상태에서혁명조직의 책무는 혁명의 최종목표를 보다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알려 행동을 촉진하는 일이지자신의 정치를 부르주아 대중 정치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당 건설 경로에서도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적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고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코뮤니스트 노동자가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혁명적 주체를 형성하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이들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조급한 정세 대응에만 매달리거나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지속해서 후퇴시켜왔다.

 

이제는 반성 대신 생존을 위해, ‘사회주의/좌파 대선후보를 통한 당 건설이라는 이름만 바뀐 낡은 전술을 들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그것은 정치 노선이 불분명한 의회주의 제도권 소수 정당과 (사회주의혁명 노선을 포기한()제도권 소수 정당이 결합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로 표현되었다이들 중 한 축은 9년 전에 선거주의 세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다른 한 축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위로부터의 대선 투쟁(후보전술)을 통해 그리고 실패한 진보정당 운동과 야권연대에 대한 반()정립 운동을 통해 투쟁 동력과 당 건설 주체를 확보하여 당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거짓을 유포했다결국공동전선을 통한 단계론적 계급정당 건설 노선이 선거 전술과 혼합되어 타락하는 운동 세력의 유일한 생존전략이 되었었다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도 없이 이들은 더욱 우경화하여 사회주의 좌파 후보’ 간판을 내걸고 부르주아 제도권 정당으로 향하는 최악의 생존 전략을 채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이제라도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을 포기하고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로 전향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신의며운동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들이 향하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비판은 아래 글로 대신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가능한 최고의 정치적인 외피이다. ... 자본은 ... 그 권력을 매우 공고하게 확립하는데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또는 어떤 정당의 변화도 이를 흔들 수 없다." (레닌국가와 혁명)

 

"민주주의선거는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권력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정치 무대이다실제로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공공의 의견"을 매스미디어부터 시작하여 학교종교 제도로 모양 짓는 도구를 통제한다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것도 아니다모든 제도적 결정은 자본가들의 경제적 필요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따라서 국가의 관리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들이다.

 

이러한 제도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며이 제도들이 진실로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보유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인 수단인 한 그러하다.

 

다양한 제도권 정당들은 지배하는 자와 그 반대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기만적인 게임을 수행한다. ‘끼리 대립 뒤에는 종종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있을 뿐이거나더 단순하게는 더 안락한 제도권 의석에 앉으려는 서로 다른 정치인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 체제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최선의 경우에도 정당은 관리에 있어서 환상에 불과한 차이를 제안할 뿐이다보다 인간적인공정한더욱 민주적인’ 얼굴의 자본주의 등의회에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자칭 코뮤니스트 정당들 또한 진정한 혁명적 강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그들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제도적인 경로라는 환상만을 확산시킬 뿐이며대부분 언제나 (이른바 급진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라도지역 기관들에서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한다.

 

따라서 우리의 약속은 선거에서 대중 투표를 목표로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건설이 아니다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정당이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에서의 당 건설과 같다더욱이 진공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진흙탕(부르주아 선거판)에 빠져버리는 것은그동안 진공상태에서 운동을 해왔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혁명의 승리는 계급의식이 혁명 강령에 근접했을 때 현실화한다이때 당과 계급은 차이는 가장 가까워지며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당프롤레타리아 대중정당으로 현실화한다따라서 계급의식이 정체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일상시기에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혁명과는 거리가 먼 개량주의 당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또한강령에 입각한 혁명적 실천에 기반을 두지 않고 (다수의 비활동 당원을 포함한 채노동조합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모아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의 일을 대신하거나 관료적으로 관리하는 대리주의 당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건설할 당은 선거가 아니라 계급전쟁을 준비하는 당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독립한 계급 정당이다자본주의 쇠퇴기끝 모를 위기의 시기노동계급에 필요한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하는 세계혁명당임을 명심하자.

 

2020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형로

 

이 글은 코뮤니스트」 12호에 실린 글을 보완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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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코뮤니스트 좌파의 의회/선거 강령

코뮤니스트 좌파의 의회/선거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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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주의 혁명전략

 

의회 제도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이것은 노동계급에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하지만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부르주아지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 제도장치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그에 맞서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체제의 내부에서 개혁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의회주의 제도에 노동계급의 참여를 통해생활개선과 개혁을 위한 압력수단으로써 의회를 이용할 수 있었다유럽에서의 19세기 동안그리고 독재정권 아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보통 선거권을 위한 투쟁은노동계급이 그것을 위해 자신을 조직했던 가장 중요한 요구 중의 하나였다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도 노동계급의 강령을 위한 선전 및 선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의 폭로를 위한 연단을 의회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코뮤니스트혁명의 의제와 혁명의 가능성을 직접 내걸어야 하는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다그것은 의회와 선거 개입에 대한 전술이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를 유지하고노동자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따라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대한 개입각종의 선거 연합은 그들이 내건 급진적이거나 혁명적 수사의 강령명칭과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그것은 우리가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의 환상일 뿐이다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자본주의 사회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의 군대사법기관국가 관료보안 세력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따라서 현재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선거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이다또한의회주의 보통선거권의 잔해 위에 노동자평의회의 계급기구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재 위에 노동계급의 독재를 세워야 하는 역사적 장도에 올라있다이때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떠한 혁명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지 죽어 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인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현재와 같이 노동계급이 사회혁명을 주도할 유일한 계급으로 성장한 이상이제는 객체로서가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해 독립성을 획득해야 하며이것은 노동계급의 자립과 자기조직화로 나타나야 한다의회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부르주아 정치 형식인 대리주의는 계급의 자립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따라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의 영역인 의회가 아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부르주아 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싸워야 하며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대중투쟁만이 승리를 보장해줄 것이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국제코뮤니스트전망)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정치군사적)을 갖는다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그 뿌리는 '부르주아지의 독재'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단지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의 꼭두각시 인형극에 불과하다그들은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선거는 부르주아지의 (의회/대통령제민주주의가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인을 선출할 자유를 양보하는 순간이다그들이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줄 세력/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따라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적 신비화를 지지하고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독재를 돕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계급은 4,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지 의회/대통령 선거의 사기극에 맞서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다시 제기해야 한다이것은 분명히 무관심과 정치적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혁명당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대통령 선출이나 의회 다수파 장악을 통한 정권장악의 길은 결코 임금노동의 착취를 폐지하지 못하며지속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권리마저도 유지하지 못 할 것이다오직 계급투쟁의 확산만이 자본이 잠시나마 노동자에게 일부를 양보할 수 있게 한다프롤레타리아혁명만이 착취 없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에 대한 질문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의회와 선거의 신비화

 

자본주의 상승기에 의회는 부르주아지 조직에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특히 부르주아 기관으로서 의회는 노동계급의 활동을 위한 주요 무대가 결코 아니었으며프롤레타리아트의 의회 활동과 선거운동 참여는지난 세기의 혁명가들이 항상 계급에 경고했던 수많은 실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그러나 혁명이 아직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량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 노동계급이 의회 참여를 통해 개량을 촉구하고선거 운동을 프롤레타리아 강령을 위한 선전선동 수단으로써 활용할 수 있었다또한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을 비난하는 호민관으로 의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의회는 더는 개량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제2차 총회에서 정치적 삶의 무게 중심은 이제 의회의 경계를 넘어서 완전히 그리고 마침내 벗어났다."고 표현했다그 이후로 의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즉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유일한 것은 신비화의 도구 역할이다이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떤 방식으로든 의회를 활용할 가능성은 사라졌다노동계급은 실질적인 정치 기능을 상실한 기관으로부터 불가능한 개량을 얻을 수 없다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와 의회를 파괴하는 것이 기본 과업인 시대에그리고 보통선거의 폐허와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해 위에 노동계급이 자신의 독재를 건설해야 할 때의회와 선거 제도에 참여하는 것은 선거 전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죽어가는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선거와 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더는 지난 세기에 가졌던 장점을 갖지 못한다반대로그것은 특히 이른바 '노동자 정당'이 의회 다수를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로 '평화적또는 '점진적이행의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혁명적 의원단을 통해 내부에서 의회를 파괴하는 전략은 그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정치 조직의 타락과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것 이외에 다른 결과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입증되었다.

 

마지막으로그런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문가들의 관심사인 한의회는 대중의 자기 활동 공간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 간의 게임을 위한 경기장이다선거와 의회를 선전과 선동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전제를 유지하고노동계급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직접적인 혁명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그러한 약점이 용인되었지만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의제의 유일한 과업이 바로 낡은 사회질서의 전복과 코뮤니스트 사회의 건설인 시대에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다이 과업은 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처음에 혁명적 의회주의’ 전술이 주로 노동계급과 조직 내에서 과거의 무게를 표현하는 것이었다면그러한 전술의 비참한 결과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ICC 강령국제코뮤니스트흐름)

 

 

 

의회

 

코뮤니스트는 노동자의 자유가 의회에서 과반수 당선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는다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릴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 순진함의 환상이다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무화과 이파리일 뿐이다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서 국가 관료그 보안 세력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의회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환상을 준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지에 쓸모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의회 선거에 반대한다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이 완전한 표현과 조직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당에 달려있다이것은 대표자를 단순히 노동자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일단 그들이 자본주의 관계의 진압을 수행하면평의회는 계급을 폐지하고 국가에 대한 모든 필요성을 없앨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반()국가적 기능을 가진 기구에서 단순한 경제 관리자로 변모할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소멸"에 관해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ICT 강령국제코뮤니스트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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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1971-2021: 미국이 브레튼우즈를 배신한 지 50년

1971-2021: 미국이 브레튼우즈를 배신한 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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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정치적 경향으로 볼 때우리가 자본주의의 세 번째 세계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국경이나 계급 분할이 없는 번영하는 세계 공동체의 물질적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한 세기가 넘도록 한때 인류를 위해 진보적이었던 경제체제(생산양식)는 인간 존재 자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인간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핵심은 세계 경제를 창조한 자본주의 운동 법칙은 20세기가 바뀔 무렵을 의미한다.

 

자본축적 과정에 항상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지구적 위기로 되는 그러한 지점에 자본 집적과 집중의 과정이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강령)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운동 법칙은 이윤 추구즉 개별 상품의 생산 비용을 지속해서 줄이면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더욱 증가시켜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다오늘날 자본주의와 이윤 동기는 다양한 종류의 개혁주의자들(특히 자본주의가 지구를 약탈하고 자연계를 파괴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 환경주의자들그리고 소비재와 함께 급성장하는 세계에서 증가하는 부의 격차에 분노한 사회개혁가 지망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그들이 필연적으로 간과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단순히 '불공정하다는 것뿐만 아니라이러한 생산 양식의 핵심인 근본적인 부당함은 노동계급이 창출한 새로운 가치(당신이 원한다면)의 자본에 의한 전유라는 점이다이는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과학기술 혁신(보기를 들면 산업 혁명 이후)이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즉 주어진 기간 동안 평균 임금 노동자가 창출한 새로운 가치의 엄청난 증가를 수반했기 때문에 더 극적이다그러나 이것은 노동 시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1870년 이후 독일영국프랑스 등 오랫동안 확립된 제세계 경제 국가 중 극소수만이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1))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윤의 극대화외에 다른 역동성이 없는 근본적으로 부당한 이 체제는 전 인류가 잠재적으로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세계 경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끊임없는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허물었던"(맑스그룬트리세것은 결코 순차적인 발전이 아니었다자본주의는 항상 호황과 불황을 겪어왔다노동자의 임금 삭감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정기적인 위기탕감인수그리고 결국 더 집중되고 중앙 집중화된 더 높은 기술적인 기반에서 자본 축적의 새로운 주기로 인해 생산성은 향상되었지만(다른 말로 하면 착취율로 이해됨), 일반적으로 이윤율은 하락했다이러한 평균 이윤율 하락 경향은,

 

“... 현대 정치경제학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며가장 어려운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법칙이다그것은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2)”

(맑스그룬트리세)

 

왜냐하면 그것이 지속적인 확장의 이유이기도 하며자본이 평가 절하되고 더 집중되고 중앙집중화되는 동안 반복되는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축적의 길을 준비하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이것은 단일 기업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개별 기업가로부터공동 주식회사증권 거래소 그리고 특히 유럽 대륙에서는 금융 자본의 발전을 의미했다주기적 위기의 관점에서 그것은 처음에는 국내 경제 부문들 사이에서그리고 나서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걸쳐서 동기화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말에는 국내에서 대기업카르텔합병 및 독점 그리고 해외에 대규모 자본을 수출하는 것을 의미했는데이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상쇄하려는 움직임이 해외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는 것을 가속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세계 경제가 생겨났고새로운 시장과 투자값싼 원자재를 얻기 위한 싸움은 단순한 경제적 경쟁 이상의 것이 되었다그리고 한때 대공황(1873~96)으로 불렸던 길고도 지난한 일련의 국제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새로운 제국주의'로 불리게 되었다오늘날과 같이1차 세계 대전 이전 기간에는 대외 무역이 급격하게 증가했지만자본주의가 자유방임에서 벗어나 국내 경제를 보호하는 데 국가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움직임이 증가했다이는 영국과 프랑스가 1873, 1882, 1890년 및 1907년의 대공황 시기에 관세장벽으로 복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883년 사망한 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을 예측하지 못했다. (비록 1896년에 사망한 엥겔스는 예측했지만그러나 맑스는 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의 단계를 뛰어넘으리라 예측했다.

 

자본이 약한 한에서는그것은 여전히 과거의 생산 양식이나 상승과 함께 지나갈 버팀목에 의존한다강하다고 느끼자마자 버팀목을 버리고자신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그것이 자신을 발전의 장벽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자마자자유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자본의 지배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동시에 자본의 해체와 생산 양식의 해체를 예고하는 형태로 도피처를 찾는다.

(같은 책, 651)

 

그러나 자본주의의 변화된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새로운 제국주의와 세계 대전 자체에 직면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었다부하린과 레닌(카우츠키와는 달리)은 제국주의 전쟁이 자본축적의 정상적인 과정에 대한 비정상적인 중단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보았다자본이 너무 중앙집중화되고 집중되어순전히 경제적 경쟁은 독점과 금융 자본의 이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국가 간의 경쟁에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부하린의 자유방임주의는 국가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레닌은 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국가와 혁명에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제국주의와 함께 자본주의가 생산 양식으로서 새로운 역사적 쇠퇴의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도 레닌이었다. (비록 "이러한 쇠퇴의 경향이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믿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인터내셔널의 설립을 뒷받침한 것은 역사적으로 쇠퇴한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이해인데인터내셔널의 창립 대회는 현재의 시대가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라고 발표했다코뮤니즘의 물질적 토대를 발전시켰던 체제의 내적 모순이 결국은 새로운 사회의 탄생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맑스 생각과 일치한다.

 

맑스는 그룬트리세에서 이윤율 하락에 대해 다시 설명한다.

 

사회의 생산적 발전과 지금까지 존재하는 생산 관계 사이의 증가하는 불일치는 쓰라린 모순위기경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자본의 폭력적인 파괴는 외부의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보존의 조건으로서 그것이 사라지도록 조장하고더 높은 사회적 생산 국가를 위한 길을 마련하는 가장 두드러진 형태이다따라서 기존의 부의 가장 큰 팽창과 함께 생산력이 최고조로 발전하는 것은 자본의 가치하락노동자의 퇴화그리고 그의 생명력의 궁핍한 고갈과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이러한 모순은 폭발대격변위기를 초래하여노동의 중대한 중단과 자본의 상당 부분을 소멸시킴으로써 자본이 다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격렬하게 축소된다. ... 그러나이러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재앙은 더 큰 규모로 반복되고 마침내 폭력적인 전복으로 이어진다.

(같은 책, 750)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 전쟁(그리고 한 번의 패배한 노동계급 혁명)이 대규모로 전개된 순환적인 자본주의 위기의 결과였다. ‘자본의 대부분을 전멸시킨 제2차 세계대전은 가장 긴 자본주의 호황의 토대를 제공했고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자본주의 역사상 훨씬 더 긴 경제 위기였다.

 

브레튼 우즈

 

유럽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연합군이 독일 도시들을 폭격하고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도 전에 전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규정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그것은 두 개의 매우 불평등한 제국주의 블록으로 나뉘는 세계였다한편으로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들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식민지를 박탈당한 서유럽 국가들과 함께 하는 미국이었다그리고 1945년 2월 얄타에서 (루즈벨트처칠스탈린에 의해세계 재분할에 대한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에뉴햄프셔의 미국 산악 휴양지 브레튼우즈의 한 호텔은 미국과 '동맹국'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한 경제적 기반과 교역 조건을 놓고 다투는 장소가 되었다. (1944년 7심하게 패한 영국 제국주의 협상가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국제 무역을 위한 독립 통화(‘방코르’)를 만들자는 제안과 함께 미국 협상가 해리 덱스터 화이트 간에 씨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미국 달러가 국제 무역의 통화가 되어야 한다는 반대 제안은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연합군의 '전쟁 지원'에 대해서 미국이 더 이상의 신뢰를 하지 않겠다는 위협과 함께).(3) 미국은 이제 제국주의의 최고봉이 되었고달러가 국제 무역의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새로운 세계질서에서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하고전쟁 기간 이웃 국가 통화의 평가 절하가 궁핍으로 돌아오지 않도록미국은 온스 당 35달러의 가격으로 달러를 금에 고정할 것이다이 협정의 일부분은 불가피하게 달러로 거래되는 IMF의 채권자 역할을 하는 세계은행의 설립이었다이에 대해서 한 가지 크게 추가된 사항은 러시아가 최종 협정을 비준하지 않았고, 1947년 유엔 총회에서 브레튼우즈 제도를 "월가의 지부"라고 비난했으며세계은행은 "한 강대국의 도구가 되는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것"이라고 비난했다는 내용이다.(4)

 

러시아 대표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i Gromyko)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브레튼우즈가 정착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제국주의 분할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그것은 단순히 미국의 지배에 대한 상대적으로 약한 제국주의 측의 저항이었다약하지만그런데도 대부분의 유럽과 아시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련(이른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은 자체의 위성국을 확보해서 달러의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이때 처칠은 철의 장막 연설을 했고트루먼은 미국이 권위주의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민주국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그의 '독트린'을 발표했다. 1947년 미국은 유럽의 동맹국들을 위해 마샬 플랜을 시행하기 시작했다본질적으로 이것은 미국이 다음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국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의미했다.

 

코뮤니스트 운동은 ... 경제적정치적 약점을 먹고 사는 모스크바가 주도한다코뮤니스트의 압력을 받는 국가들은 영토 보존과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려면 대규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한때는 국제적인 은행이 그러한 지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그러나 이제 은행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미국은 인류의 자유에 대한 전 세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이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스스로 직접 제공한 방대한 새로운 지원 프로그램이다.(6)”

 

이에 대해 소련은 1949년 동유럽 국가들의 마셜 플랜 참여를 저지하고 미국과 영국 및 기타 서유럽 국가들이 강제한 무역 보이콧에 대응하기 위해 상호경제원조위원회(Comecon)를 구성했다.

 

 

한편전쟁으로 영국은 파산했고, 1946년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 파견된 케인즈는 차관의 조건을 강조했다무엇보다도 영국 파운드화 무역수지가 있는 국가들을 1947년 7월부터 달러로 환산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영국 달러화 보유고를 증가시켰다태환은 중단되었지만, 1949년에 이르러 영국 파운드화가 4.03달러에서 2.80달러(7)로 평가 절하되면서 보다 현실적인 환율이 확립되었다. 9월 말까지 영국에 이어서호주캐나다핀란드프랑스인도아일랜드이스라엘뉴질랜드노르웨이스웨덴을 포함한 더 많은 나라가 달러 대비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했다서구의 자본주의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은 러시아에서 확산하는 '코뮤니즘이 아니라 불편한 파업과 시위보다 정치적으로 더 위험한 것으로 변해가는 파산한 동맹국들의 노동계급이 직면한 결핍과 빈곤이었다그리고 미국의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1945년 11월부터 1946년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업 물결이 일어났는데이는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상승으로 5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참여했으며대부분은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았다미국 자본의 당면한 과제는 자국 경제와 동맹국의 경제를 모두 되살려 노동계급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1948년에서 1952년 사이에 서유럽에 약 130억 달러를 송금한 마샬 원조는 "모스크바가 지휘하는 코뮤니스트 운동만큼이나 내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세계의 양극화로 인한 제국주의 분할냉전그리고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을 배경으로 했다.

 

긴 호황

 

세계 제조업의 최대 50%가 미국(8) 내에서 이루어지고달러가 국제 교환의 주요 통화인 상황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자본축적 주기를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1960년 무역수지 흑자로미국의 GDP는 전 세계 총생산의 40%를 차지했다그것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내는 것(특히 서독 수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과 일본의 재건 덕분에 동맹국들이 곧 따라잡은 호황이었다새로운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한 세계 전쟁의 파괴로 탄생한 생산의 급증이 노동계급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오늘날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줄 가치가 있다흔히 '소비자 호황'으로 정의되는 이 호황은 전쟁 중에 계획된 국가 복지 조치 확대에 근거했고 노동자들이 '코뮤니즘(사실은 스탈린주의)'에 끌리고 본질에서 노동자들의 월급봉투에서 인출된 돈으로 지급되는 경향을 약화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병원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영국에서 유명한 NHS), 국가 병가실업급여 혜택 및 실행 가능한 노령 연금 제도는 영국의 노역장을 중단시키고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쇠약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일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한편노동계급의 아이들은 이제 중등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었고 소수가 대학 학계의 상아탑(생계 수당에 대한 수단 검증 보조금을 받게 됨)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능력주의의 부상이론이 생겨났다.

 

전후 수십 년 동안은 매우 낮은 실업률(자본가들은 그것을 완전 고용이라고 불렀다)과 실질 임금의 상승으로노동자들이 점점 더 다양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주택(및 고층 건물건설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주택 부족을 줄였지만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영국에서는 1954년까지 배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1957년에 해럴드 맥밀런(Harold Macmillan) 총리는 "당신은 그렇게 좋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미국과 함께새로운 도로망 구축과 자동차 산업의 확장이 철도 보다 우선시되었는데특히 영국 전체를 연결하는 (수익성이 없는철도망이 자동차 산업의 확장을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해 축소된 영국에서는 더 그러했다. 60년대에는 1961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민간 자동차가 거의 5백만 대에서 그 두 배인 1,000만 대로 증가하면서자동차 산업이 호황기임을 보여주었다게다가 자동차가 있든 없든많은 회사들이 휴가 급여로 여름 휴업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관광회사들은 '패키지 휴가'에 대규모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 확장되었다캠프장에서 베니 돔(스페인의 리조트 도시)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노동계급 가족들이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보다 일반적으로 소비재 시장의 확대는 진공청소기에서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노동 절약기'의 생산이 붐을 일으키면서 주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을 단축했다. ‘완전 고용’ 기간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게 한 것이다이는 여성 고용이 증가했던 이전 시기(보통 전시)와 달리 자본주의 경제에서 서비스 지배와 60년대 말까지 여성 통제 피임법이 일반화되면서 열린 실용적 가능성을 반영하는 영구적인 추세임이 입증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호황이 영국의 노동계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지만그것은 본질적으로 서구 자본주의 블록의 노동자들에게도 동일했다프랑스에서는호황기를 영광의 30(1945~75), 이탈리아에서 일 소르파소(다른 모든 것을 넘어선 수십 년)라고 불렀다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메리칸 드림 속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우리가 그렇게 좋은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들은 후영국은 역동적인 60년대로 향했고노동계급은 10여 년 동안 공식 및 비공식 파업에 돌입했다. 1963년에서 7년 사이에 매년 2~3백만 일의 근무일이 '손실'을 입게 되었고, 1968년에는 470만 일로 최고조에 달했다그러나 이 강력한 노동자들의 투쟁성은 결코 작업장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했다호황이 시작되었을 때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브레튼우즈에 대한 미국의 배신장기 불황의 시작

 

1971년 8월 15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협정의 핵심인 미국 달러를 금으로 직접 태환할 수 있는 고정 환율 시스템의 "일시적취소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사실상 달러는 국제 무역의 단위였다무역이 회복되고 서독과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국제 무역의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유로 달러 시장에서의 금융 회전 및 거래와 같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60년대 초에 미국 밖에서는 포트 녹스(연방금괴저장소)의 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보다 더 많은 달러가 있었다인플레이션이 60년대 말에 조금씩 상승하면서 점점 더 많은 달러가 금으로 전환되고 있었고온스당 35달러의 공식 금리가 아니었다그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었다미국은 이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출로 인해 재정 적자가 증가하고 있었다그러나 1971년 미국의 무역수지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수치를 나타냈다. '닉슨 충격'은 세계 경제에 브레튼우즈 경제체제 종말의 시작을 알렸다. 1973년 닉슨이 금과의 고정 환율을 영구적으로 종료할 때까지 금 가격은 온스당 100달러에 이르렀다현재 가격은 약 1,900달러이다분명히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금으로부터의 달러화 분리는 미 재무부가 달러를 마음대로 '인쇄'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세계 시장에서 주로 달러로 거래되는 상품 가격특히 석유 가격에 반등한 통화를 효과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이는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과 유럽(주로 서독제조업체들의 원자재 비용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전형적인 노동계급 소비재에 대한 서구 세계의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 70년대에 영국은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연간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 '닉슨 충격'의 주요 기획자는 존 코널리(John Connally) 재무장관인데그는 (로마에서 열린 주요 10개국 회의에서) "달러는 우리의 통화이지만당신의 문제"라는 악명 높은 빈정거림으로 미국 수입품에 10%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그리고 미국 노동자들에게 90일 간의 임금 및 가격 동결을 강요하지 못했다실제로 미국의 노동계급은 세계의 다른 '선진국'과 그 너머에 있는 여타의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OECD 노동자의 G20 국민소득 비중은 1970~2014년 꾸준히 감소했으며미국 내 노동계급은 약 11%로 네 번째로 큰 감소를 경험했다이것은 현재 이른바 신흥 경제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추세이다. (오늘날 전 세계 총생산에서 노동자의 비율은 약 50%로 추정된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결한 브레튼우즈 협정의 핵심 부분을 폐기한 것은 세계 자본 축적의 세 번째 주기에서 장기간에 걸쳐 하강하는 단계를 가져왔다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소련의 붕괴와 전후 제국주의 분할이 얄타에서 합의되는 것을 보았으며현재 세계 GDP의 1/5을 겨우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지금까지 그것은 국제 금융과 무역의 지배적인 단위로서 달러의 역할 덕분에 최고의 지위를 유지해 왔는데달러와 금을 연계하는 것이 계속해서 유지되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석유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거래하겠다고 위협하자미국은 1991년 이라크(사막의 폭풍 작전)를 침공한 다음 2003년에 더욱더 맹렬하게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직접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잠시 자본주의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논란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패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이 이야기는 2007~8년 자본주의 사상 최대의 금융 거품(이른바 서브프라임 위기)이 터진 데 이어 세계 경기 침체기에 중국 자본주의가 수요와 국제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한 이후에 끝났다.(9)

 

오늘날 모든 사람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세계 노동계급에 중요한 것은 이 두 경쟁자가 같은 자본주의 체제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웠고 수익성 위기에 직면하여착취율을 높일 방법과 수단(임금과 노동력의 일반적인 유지비용 이상으로 창출된 새로운 가치의 양)을 찾도록 전 세계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고 있다다시 말해서자본주의 위기를 50년 동안 겪은 후에는 노동계급을 위한 '활력 있는 60년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쇠퇴하는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자유로운 생산자들이 연합한 세계 사회로 대체하는 대안을 우리는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데정말로 원하는가?

 

2021, 8월 15

이레이너(ERay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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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유용한 웹사이트(자본주의 경제의 미래에 대한 자유주의적 낙관론을 공공연하게 발전시키지만)인 ourworldindata.org」 참조.

 

(2) 맑스그룬트리세」 , Pelican ed. 1973, p.748

 

(3) 경쟁하지 않는 패권브레튼 우즈에서 금풀제(Gold Pool)까지 1945~60의 세계 경제 위기, Fitt, Faire and Vigier, p.74-77.

 

(4) Eric Toussaint, cadtm.org 참조.

 

(5) 미주리주 풀턴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발표된 "발트해의 스테인(Stettin)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Trieste)까지대륙 전체에 걸쳐서 철의 장막이 내려왔다"고 수사학적으로 선언한 5.3.46. 국가기록원 웹 사이트에서 주석이 달린 영인본을 이용할 수 있다.

 

(6) 1947년 초 유럽에서 귀국한윌 클레이튼(Will Clayton) 국무부 경제부 차관의 각서에서 인용된 바와 같이, 106-7.

 

(7) 보기를 들어벤 스테인(Benn Stein), 브레튼 우즈 전투프린스턴 발행 331 쪽 참조.

 

(8) 추정치가 다르다. E.A. Brett, "전쟁 이후 세계 경제" (맥밀란)는 보수적인 "40퍼센트가 넘는" (63)이다.

 

(9) "고뇌에 찬 18개월의 경기 침체기 동안에실업률은 10%에 달했고 GDP는 무려 4.3%나 줄어들었다경제는 파산한 은행들을 부양하고 충격을 받은 경제에 자본을 투입하기 위해 막대한 정부 부양 지출(1조 5천억 달러 이상)을 한 후에야 회복세로 돌아섰다.” (history.com) 사실 그 추락은 미국이 추락한 것보다 훨씬 더 컸다세계 경제는 아랍의 봄노동계급에 대한 '긴축'과 생산적인 투자의 추가적인 감소를 포함한 연쇄적인 결과들로 인해서불황으로 내몰렸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 이명수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15/1971-2021-50-years-since-the-usa-reneged-on-bretton-w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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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 : 고도의 투기적 자본주의의 광기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 고도의 투기적 자본주의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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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모든 부르주아 정당 후보들이 '가상자산'을 화두로 공약을 발표하며 득표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특별히 20·30대 유권자들이 가상자산 투자 열풍을 주도하는 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책 행보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후보는 "저는 지난해 11월 11일 '가상자산 1년 유예'를 약속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은 12월 2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며 "제가 드리는 약속에 '나중에'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는 "저는 770만 가상자산 투자자를 주식 투자자 수준으로 안전하게 보호하고 거래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나가겠다"며 "청년들이,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가상자산 투자라는 '자본주의 속임수'를 장려해서 노동자와 청년들을 위기와 파산으로 몰아넣겠다는 매표 정책이다. 

 

중앙 집중화되고 전문화된 투기목적으로 전환된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엄격하게 움직일 뿐이며, 지배적인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 어떤 대안도 제시할 수 없다. 자본가계급이 승자인 가상자본 투기에서 노동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렇게 돈을 쉽게 벌려는 꿈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는 투기적 자본주의 광기의 표현인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투자 열풍에 대한 분석과 코뮤니스트 대안을 제시했다.

 



자본주의는 속임수에 걸려든 자신을 발견한다전후의 호황이 끝난 70년대 이후생산의 구조조정 및 수백만 프롤레타리아의 일상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에도 자본을 위해 수익성이 있는 재투자를 찾는 것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어려워졌다이러한 자본의 가격 인상 정책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여러 증상 중 하나일 뿐이다이러한 이윤율 하락에는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을 동반한다이윤 창출을 위한 단기적 방법을 도처에서 찾거나필요한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그들이 체감하는 것을 지키려한다.

 

위기와 투기자본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축적의 최종단계 종식그리고 갈수록 심화하는 이윤의 위기는 국제 자본주의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명백한 신호였다투기자본에서 신속하고 손쉬운 이윤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발견했다브레튼우즈 시스템의 폐지 사례처럼이런 식으로 투기적 통화 및 금융 정책에 대한 문이 모두 열리게 되었다물론 금융위기와 국가부도가 곧바로 이어졌다. IMF의 한 실무보고서에 따르면결코 유럽과 북미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1970년에서 2007년간 이들의 숫자는 적어도 514였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 및 코로나바이러스로 초래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를 궁지로 몰아넣고 탈출구를 찾도록 강요하는 또 다른 두 요인일 뿐이다.

 

모든 투기와 모든 위기의 영향은 노동계급에 가장 날카롭게 다가왔다그들은 매번 실질 임금 삭감에 적응해야만 했으며실직과 사회적 지원의 중단그리고 전반적으로 더욱 취약한 삶에 적응해야 했다심지어 2007년의 위기로 인한 영향들이 최근까지도 여전히 뚜렷함에도, 2020년의 경기 후퇴(또한 현재도 실제로 지속되고 있는)는 배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자본가들의 공격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한편프롤레타리아트는 저금리 정책 시기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다른 저축 수단을 찾고 있다대다수 프롤레타리아에 그러한 투기와 투자가 진정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생활필수품을 확보해야 하고임대료 및 소비자 물가상승에 가장 먼저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심지어 더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소액 투자자와 상류층 역시 보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주식형 펀드와 부동산을 선호하지만백만장자들에게 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암호 화폐는 그것들에 더불어 최근에 선호된다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비트코인 및 기타 암호 화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기타 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적용되지 않는 분산형 통화로서가격 조작과 투기가 거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디지털화된 금의 일종일까위험부담이 큰 증권거래소의 대안으로더 안전한 자산 저장소인가?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 – 은행에 대한 반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얼굴 없는 유령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비트코인을 처음 고안했을 때그것은 대형 은행과 신용기관의 기성 통화체계에 대한 대안이었다그것은 별도로 통제되었는데말하자면 어떤 기관도 지불 제한이나계좌 동결혹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비트코인은 다른 통화처럼 화폐 인쇄를 통해 발행되지 않았으며지불의 흐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이른바 채굴 혹은 미래가치측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건의 지불을 X부터 Y까지 검증하는 복잡한 암호화 작업이 이루어진다과제 해결 및 시스템유지에 대한 보상으로 6.25비트코인이 생성되고채굴자에게 주어진다생성된 비트코인의 양은 최대 가치가 현재 거의 2100만으로 고정되어 있다이는 비트코인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보증하고동시에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함이다근래에 비트코인의 가치는 거의 맑스적 방법으로 결정되었다따라서 진정한 화폐로의 첫 이행의 가격은 생산가격에 근거한 0.07달러로 고정되었다.

 

비트코인이 악명을 얻은 후주로 불법 약물을 사들이는 다크웹에서 가격이 더욱 상승했다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지불 수단으로 여기기보다투기적 목적 혹은 가치 저장소로 여겼다결과적으로 첫 암호화 펀드그리고 비트코인과의 거래를 제공하는 미래 교환이 그사이에 등장했다동시에 암호 화폐 및 거래에 투자한 상당수의 헤지펀드는 더욱 전문화되고 집중화되었다이들 펀드는 대부분 CFD의 형태로만 이용 가능하다이런 식으로 소액 투자자들은 지분이 너무 적은 상태에서 과도한 변동으로 인해 돈을 완전히 잃을 가능성이 증가한다. ‘분산형’ 비트코인이 중앙 집중화되고 전문화된 투기목적으로의 전환은 비트코인 및 기타 암호 화폐들이 지배적인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 어떤 대안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그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엄격하게 움직이며결과적으로 이러한 생산 양식의 모든 법칙에도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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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파괴와 자원낭비

 

앞서 언급한 채굴’, 다시 말해 암호 화폐의 등장 다음 순서는 모순이다해결되어야 할 의 난이도는 생성된 비트코인에 비례하기 때문에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하기 복잡해지고 있다이전에는 누구든지 자신의 컴퓨터에서 몇 개의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것이 간단했지만최근에는 더 이상의 수익성이 없다이른바 ASICS로 불리는 특별한 기계가 없다면국제적 규모의 경쟁은 불가능하다여기서 경쟁은 냉장 보관 공간에 수만 개의 ASICS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아이슬란드카자흐스탄미국이란의 거대 기업의 형태 안에서다낮은 전력비용 덕분에(카자흐스탄의 보조 석탄과 가스 에너지를 통해서든 아이슬란드의 재생 에너지를 통해서든), 이들 기업 뒤에 있는 자본가들에게 이는 수익성 있는 일이다실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것이 아닌단지 투기적허구적 가치만이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할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례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드러낸다그것은 생산과 거래의 중앙 집중화그리고 독점화다하지만 전기 소비가 어마어마하기에 (전력 소비로되돌아 가보자이란의 라프산잔(Rafsandjan)에 위치한 이란계-중국 투자자의 비트코인 농장은 대략 5만 가구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한다현재 전 세계 채굴꾼들의 네트워크 전체는 이미 스웨덴의 연간 에너지 소비량만큼을 사용한다또한 채굴에 사용된 전기의 39퍼센트 정도만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오는 반면비트코인은 매년 약 64 메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캠브리지 대학의 연구는 보여준다이는 세르비아의 탄소 발자국과 같은 양이다이산화탄소 배출량 면에서 거래 한 건당약 170만 건의 비자 거래 혹은 두 달 이상의 미국 평균 가정의 에너지 소비에 준한다또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한다 할지라도그것은 변동에 자주 민감하여 가스와 탄소 전기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노르웨이의 일부 지역에서처럼 녹색 전기를 보유한 지역들이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한다거나중국(쓰촨과 원난에 수력발전소 몇 곳을 운영한다.)이 대부분의 채굴을 금지했다는 사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과는새로운 지역들의 새로운 저장소를 조사하면특히 카자흐스탄과 미국은 모두 에너지를 주로 화석 연료에서 얻고 있기에 새로운 목표로 여겨진다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지속적인 비트코인 생성의 어려움의 증가는 그들의 기계의 지속적 변용을 의미한다낡은 ASICS의 6.3킬로톤(핵무기 파괴력 평가 시 사용하는 단위, 1000t=1kt. 역자)이 전자 폐기물로 버려진다그들에 내재한 자원-팔라듐네오디뮴코발트갈륨 등-은 다른 컴퓨터 칩이나 마찬가지다자본주의 논리와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이들은 끔찍한 조건 아래 DRC(콩고민주공화국)과 같은 국가들에서 가능한 최대의 이윤으로 생산되고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더욱 가공된다이는 터무니없는 것이다수천 명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승인되면환경이 파괴되고자원이 낭비되고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모두가 투기목적으로 자행되는 것들이다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현실이다유일한 대안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무너뜨리고 그것을 코뮤니스트 사회의 필요에 기초한 생산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승리자는 여전히 자본가계급이다.

 

이러한 금융화되고 투기적 자본주의의 광기는 비트코인의 환율에 반영된다그리고 그것은 미묘한 사건으로도 불과 몇 분 안에 몇 퍼센트씩 등락할 수 있다이것의 대표적 사례는 엘론 머스크(Elon Musk) 경우이다그는 2021년 1월 트위터에 그 단어만 언급했을 뿐이었는데환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가치가 14% 올랐다테슬라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싶어 해서 15억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환전했다고 발표한 머스크의 추가적 트윗 이후현재까지 그 가치는 최고를 기록했다거품은 불어나고 불어나 마침내는 터져버렸다머스크가 자신의 비트코인을 팔아 또 다른 암호 화폐로 환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이것은 투자자들의 고전적 수법이다비트코인의 경우처럼 저평가된 주식을 상승시키고거품을 형성한 다음확실하게 훨씬 비싼 자신들의 주식을 팔아 거품을 꺼지게 하는 식이다.

 

그것에 투자하도록 권유받은 노동자들은 종종 막대한 양의 돈을 잃거나그들이 받은 대출에 평생토록 빚을 지게 된다승자이자 남는 자는 자본가들이다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으로부터 이윤을 얻을 가능성이란 없다증권거래소의 현장은 이런 식으로 조금만 운이 좋다면그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결국에는 약간의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며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윤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1929년의 투기 거품, 2000년의 닷컴 버블의 역사적 사례들은 암호 화폐와 관련 없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심지어 암호 화폐의 판매와 교환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조차 이것에 특별한 역할을 한다따라서 그러한 암호거래소가 생긴 지 몇 년 사이그곳에서 수백만 혹은 심지어 수십억 달러를 먼지로 만든 사기가 이미 몇 차례 벌어졌다그 보기로 “MtGox(마운트곡스)”의 거래 센터에서 75만 비트코인(당시 약 8억 달러미화 기준)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아니면 정말로 도난당했거나). 또는 플러스토큰(PlusToken)” 앱이 초보 투자자들을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을 때다피라미드 시스템에 30억에 이르는 달러가 모인 후업자들을 약속된 암호 화폐를 전달하지 않고 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우리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그러한 시스템에 투자한 사람들이 잃은 것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이것의 좋은 보기는 터키의 기업 테오덱스(Theodex)”의 가장 최근의 사례다오랜 기간에 걸친 터키 리라의 하락과 거의 24%의 가치 하락코로나 위기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 이후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저축을 안전한 자산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금이나 달러를 비축했다하지만 심지어 비트코인까지도 점차 사들이는 추세다그래서 세일즈 플랫폼인 "테오덱스"는 큰 수익을 올릴 수있는 기회로 봤다터키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후로는 암호 화폐로 몰렸고여러 계좌에 대한 접근이 잠기고 돈은 사라졌다사기꾼 중 일부는 나중에 체포되었지만이미 피해를 입은 후였다비트코인을 통해서 돈을 벌려는 몇몇 소액 투자자들은 수만 유로약 수십만 유로를 잃었고다시 벌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암호 화폐를 통해서건주식 거래를 통해서건 돈을 쉽게 벌려는 꿈은 허황된 것이다.

 

노동자와 혁명가로서우리는 자본주의 논리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개인주의적 속임수나 시스템에 의존할 수 없다우리는 계급투쟁에서 우리의 집단적 기관과 힘을 재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따라서 끊임없이 절망적이고 공공연하게 공격적인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우리의 프롤레타리아적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계급 안에서 계급과 함께하는 이 투쟁은 코뮤니스트 강령을 이해하고 그 자체로 200년 계급투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결집하여 증가하는 불평등가난,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에게는 위기에서 위기로 몰아치며, 우리 자신의 계급 지형에서 거의 정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좌절에 맞서 싸우는 국제적인 국제주의 조직(세계혁명당)에서만 수행할 수 있다. 

 

2021년 8월 7

혁명(Forradalom)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 지나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07/bitcoin-and-cryptocurrencies-the-madness-of-a-highly-speculative-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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