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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4/19 16:35

집에서 인터넷선을 하나포스로 쓰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 50건 무료 전송의 혜택을~ 원츄~!

 

그런데 불여우(파이어폭스:firefox)에서 쓸라고 했더니만 '발송'버튼이 안 눌러진다.

 

firefox에서 문자전송 안되네여?' 라고 글을 올렸더니

 

얼마 후에 고쳐줬다.

 

대체로 '불여우' 얘길하면 업체들이 생무시하던데,

왠지 넘 기쁘다. ㅋㅋㅋ

왜 이렇게 기쁜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꾼 기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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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16:35 2006/04/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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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4/13 09:54

월요일에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에 갔었다.
주제는 이름하여 [여성의 생식력을 둘러싼 국가와 문화권력 : 가족계획에서 저출산까지].

언제나 대한뉴스 말미를 장식하던 출산억제 구호의 향연.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60년대 구호로부터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어떻게 통제해왔는 지를 감지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오히려 어려운 점은 권리로 주장하기 위해 확립한 개념이 우리의 발목을 덥썩 잡아버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재생산권이라는 명칭

여성에게 가해지던 차별과 폭력을 확연히 드러내고자 주장된 각종 권리들의 명칭들.
즉, '재생산권리',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등과 같은 명칭들은 새삼 재정립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아니, 명칭에 대한 재정립이라기보다 여성 자신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자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하는 지에 대한 개념이나 입장이 맞을 것이다.

이번 포럼의 기조발제에서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다들 알고 있었는 데 나만 뒷북인가?^^;;)
분명 재생산권리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여성이 스스로의 몸에 대한 통제권 확보에 상당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황우석 사태 속에서 발견된 난자 매매라든가 대리모, 성매매 등의 현실은 이러한 권리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논리와 맞닿았을 때 우리가 취할만한 의식의 혼선을 초래한다. 그저 그녀의 선택이라 치부하기엔 매우 부족한, 자본주의 모순의 벼랑에 놓인 그녀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재생산권리는 우리에게(또는 나에게) 적절한 해석을 부여하기는 커녕 자본을 위한 명쾌한 논리를 제공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확실히 재생산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것
처럼 보인다.
Petchesky라는 사람이 1995년에 말했단다. '여성이 자기 몸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현실적 서술이 아닌 수사학적 성취라고...

미국에서 70년대 낙태권 이야기를 했어도 아직 임신중절이 불법인 주도 존재하고, 낙태권 확보를 위해 2,30년전에 만든 투쟁 영상이 아직도 유효한 지금,
일본 공주 하나가 임신하면 여성천황제 도입 이야기가 쑥 들어가는 지금,
한국은 낙태와 피임의 천국이라지만 기실 낙태가 불법이므로 '할 수 있되 사고 시 책임질 수 없는' 불안전의 지금,
대리모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서도 계약법 위반으로 키울 수 없는 지금,
여성이 재생산권을 확보하는 일은 여전히 완료되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유효해보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현실조차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많아져버렸다.
이제 재생산의 권리들은 여성들이 처한 다양한 처지만큼이나 다양해졌고 심지어 서로 대립각을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기존의 재생산권리를 여성 스스로 정치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뭔가 새로운 개념의 확장이나 발굴을 꾀하는 건 꽤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이 아래는 정말 답도 의견도 없는, 질문과 고민만 있는 스포일러라고나 할까?)

모성, 재생산의 진정한 인식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간 토론자 중에는 현대사회를 모성의 아노미로 규정한 사람이 있었다.
대략 박정희식의 발전주의 논리가 지속화되면서 모성을 '가치'가 아닌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바꿔말하면 모성의 진정한 가치는 '있다'고 보는 입장일 것이다.

이후 종합토론 때 floor의 한 참가자가 모성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내는 것이 마치 여성을 모성으로 환원시키려는 듯 싶어 심기가 불편했나보다. 모성을 가지고 어떻게 재생산권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지, 모성도 생식력으로 환원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또다른 토론자는
과연 70년대 초 미국에서 분 낙태권, 비혼임신 등의 권리는 70년대 미국여성들의 생리적 현상(굳이 붙이자면 모성의 발동?)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몸에 가해져있는 제한적 규정으로 인한 역발산이라 할 수 있을까?
라고 발언했는데,
즉, 모성을 인식하는 것조차도 몸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기반한 것 아니었을까라는 혐의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제쯤 뭔가 남아있는 일말의 거리낌을 벗어던지고 '모성은 없다!'고 선포해버려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데 선언하기엔 정리가 모자란다.
포괄적 범위에서 재생산에 포함되는 돌봄 역시 근본적인 돌봄의 발동 기원에 대해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데, 특히 열악한 현실이 겹치면서 현실 대응과 근원 찾기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사실 이 줄다리기가 그닥 논리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지라 매우 합당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해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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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3 09:54 2006/04/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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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3/27 11:04

며칠 전 한국사회포럼에 갔다가 민중언론 참세상 칼럼에서 본 [문신을 하다]의 완군을 봤다.

만났다하기엔 몇마디 못 나눈터라 그냥 '보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듯...

 

"문신에 대해 글 쓰신 분이죠?"
그랬더니 맞댄다.ㅋㅋ

그리곤 완군이 속해 있는 문화연대 사람들이 문신에 대해 왁자지껄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노동조합 활동가 3명은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말 한마디 끼어들지 못했다.
아니, 끼어들기는 커녕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신에 대한 맥락이나 주요 사건 등등 뭐 하나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쩝..
(옆에 논지를 못 따라가 띨띨하게 입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살짝 설명해주는 센쑤!)

사실 문신을 귀 뚫는 거랑 비슷한 느낌으로 언젠가 '땡길 때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문화연대 사람들은 문신을 운동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제 문신하면서 느꼈던 자기 검열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있었다.

그래, 나도 어느새 안한 게 아니라
못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중 하나가 된 건 아닌 지 싶다.

원래 노동조합 쪽은 노동자들 자체가 참 다양한 종류의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문제에 엮여있고 당면해있어서

왠만한 사안은 귓등으로라도 들어봤을 법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일상을 파고드는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하나 열심히 고민하지 못한 느낌.

그리고 이런 식의 분류화는 상당 싫어하지만

순간 운동의 주류와 비주류의 희미한 경계선을 확인한 기분도 살짝,

운동 주제에 대해 대의와 명분에 첨착하고 있는 건 아닌 지 하는 기분도 살짝 들었다,


이렇게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인 세상의 대중과 함께 숨쉬는 시작은

일상에서의 자기 통제권을 늘려나가는 것부터가 아닌지 하는 다듬어지지 않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 사족

문신은 병원의 의사에게 가서 하지 않으면 불법시술이 된단다.

처음 알았다.(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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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7 11:04 2006/03/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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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2/27 15:02

랄라^^*님의 [오호...나도 '네 인생의~~'] 에 관련된 글.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어린이집 교사] 2,3년?
[진보넷 활동가] 4,5년?
[한국보육교사회 활동가] 헉 정말 약간 2,3개월?...
[전국보육노동조합 활동가] 2년째... ^^;;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time to leave] - 삶이 퍽퍽하다고 느낄 때마다, 죽음이 공포로 다가올 때마다,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잠시 헷갈릴 때마다
[패왕별희] - '무극' 때문에 감독에게 화가 날만큼 좋은 영화라 생각했는데, 음... 혹시 장국영 때문?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 - 언제봐도 절대 질릴 리 없는...

[센과 치히로의 모험] -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라면 뭘 봐도 몇번이나 볼 수 있을 듯한...

(추가로 [음양사] - 2편은 실망했으나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 지금 가장 기다리고 있는 영화)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5살 전에 남대문에서 살았다던데 기억 안나니 빼고)
[서초동]에서 한 10년?
[신대방동]에서 한 10년?
[신림동]에서 1,2년?
지금은 [봉천동]...^^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나도 랄라 처럼 집에 TV가 없는데 그나마 요즘 자주 보게 되는 거라면...

 

[비타민] ㅋㅋㅋ
[연예정보 프로그램]
[이누야샤 6기](보고 싶으니 보기 거의 불가능한...T.T)

 

그동안 봤던 TV 프로그램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건

 

[카우보이 비밥]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중국 + 백두산 천지(엄청 오랜전 이야기네)
계룡산(작년에... 엄청난 청량감)
홍천(여름마다 꽤 갔었는데 그야말로 홀로 있을 수 있는 곳)
동해안(점점 수영장보다 바다가 좋다)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보육노조
http://kcwu.nodong.org | 공공연맹 http://public.nodong.org | 민주노총 http://www.nodong.org
진보넷 http://www.jinbo.net | 진보블로그 http://blog.jinbo.net
포털(주로 구글, 다음)
미술관 사이트 몇개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빵과 우유
떡볶이
생선회
뻥튀기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앙코르와트 사원(2년째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이탈리아(한국 사람과 비슷하다던데...)
마사지실(어깨가 돌덩이다)
빔프로젝터나 홈시어터 있는 방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음... 생각나면 적어야 겠어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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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7 15:02 2006/02/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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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1/21 20:21

나름 스포일러입죠.

 

[1]

첫번째 광고는 공익광고였던 것 같은데 어디서 한건 지 잘 모르겠다. 공동모금회던가?

딸과 무지 행복하게 걸어가던 아버지가
혼자서 잠바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서있던 남자아이에게 장갑 끼워주고 돌아서는 장면.
그 남자아이, 아무리 많이 봐줘도 초등학교 저학년생 이상 봐주기 힘들던데
그 정도 어린 아이를 발견하면 장갑 하나 달랑 주고 계속 세워놓는 게 아니라
경찰서든 어디든 보내서 보호자를 찾던지 탁아시설로 보내든지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해주어야 한다.
멀쩡해보이는 어른이 그런 어린 아이에게 장갑 하나 끼워주고 뿌듯한 미소를 짓는 사회라니, 뭔가 잘못 돌아가는 사회이다.



[2]


두번째 광고는 기탄교육 광고.

미국의 몇개 명문대학인가에 동시 입학 허가난 여자아이의 엄마가,
손가락 4개의 피아니스트의 엄마가
그들의 딸들에게 얼마나 많이 책을 읽어주고, 어떻게 칭찬해주었는 보여주는 광고.
엄마들에게 심지어 자식의 운명조차도 당신 손에 달렸다고 세뇌하는 사회,
자식을 위한 진정성 담긴 희생을 잊게 하고
아이의 장래 모습으로 보상받으라고 유도하는 사회,
이젠 2:8도 아니고 1:9가 되어가는 빈익빈 부익부 세상에서 1로 들어가야 한다고 발악하며 외치는 세상이다.

 

 



♪ 기탄교육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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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1 20:21 2006/01/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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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11/16 21:36

모블로깅 테스트중. 카페 들어왔는데 특이한 물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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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21:36 2005/11/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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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11/16 12:00

2005년도 논술고사 예시 문제라는데...

 

'돌본다'는 행위는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될만큼 혹독하고, 보살핌의 사슬은 이제 전지구화되고 있나보다.
조만간 정서노동 연구의 대가라는 Hochschild 의 원서 하나를 모임에서 강독할 예정인데 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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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 디아즈는 34세로서 다섯 아이의 엄마이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교사를 하다가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서 비키는 로스엔젤레스의 비벌리힐스에 있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 겸 두 살짜리 아들의 보모로서 일한다. 그녀는 연구 조사자인 라첼 파레나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도 내 아이들은 내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한다. 아이들은 내가 떠날 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이 아직 아주 어렸기 때문이다. 남편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아이들을 기로도록 내가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 나는 매달 아이들에게 돈을 보낸다.

곧 출판될 자신의 저서 『전 지구적인 하인들(The Global Servants)』에서 라첼 파레나스는 ‘엄마 되기의 세계화’인 이 당혹스런 이야기를 소개한다. 비키는 그녀가 여기서 소개하는 여성 응답자의 이름이다.

비벌리힐스의 그 가족은 비키에게 주급 400달러를 지급한다. 그리고 비키는 다시 필리핀에 있는 자기 가족의 가정부에게 주급 40달러를 지급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 지구적인 보살핌의 사슬’ 속에서 사는 것은 비키와 그녀의 가족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비키는 파레나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보수가 많다 해도 일이 너무 힘들다. 옷을 다리고 있다가도 부엌에서 부르면 가서 그릇을 닦아야 한다. 그것은 또 울적한 상황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모든 사랑을 아이(두 살짜리 미국 아이)에게 주는 것뿐이다. 내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랑을 그 아이에게 주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비키는 자신을 고용할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기른 경험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자리를 얻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신문 광고에서 그 자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전화했고, 그들은 나에게 와서 면접을 받으라고 얘기했다. 나는 결국 채용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이를 어떻게 돌보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뿐이고, 나는 나에게도 다섯 명의 아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보살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가정부가 그 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무엇이든 그것이 만지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모든 것을 만지는데, 그 중에는 내가 얘기하는 ‘전 지구적인 보살핌의 사슬’도 포함된다. 이것은 유급 혹은 무급의 보살피는 일을 바탕으로 한 전 세계 사람들간의 일련의 개인적 연결이다. 대개는 여자들이 이런 사슬을 만들지만, 어떤 경우에는 여자와 남자 모두가 만들고, 드문 경우에는 남자들만이 만든다. 이와 같은 보살핌의 사슬은 국지적, 국가적 혹은 전지구적일 수도 있다.

전 지구적인 사슬은 (비키 디아즈가 이에 해당하는데) 대개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해 부자 나라에서 끝난다. 어떤 경우 그런 사슬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시작하고, 바로 그 가난한 나라 안의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다. 혹은 그것들이 하나의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해 다른 약간 더 가난한 나라로 확장되고, 이어서 후자의 나라 안에서 하나의 장소와 다른 하나의 장소를 연결한다. 사슬들은 또 연결되는 지점의 수에서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하나이고, 어떤 것은 둘이나 셋이다. 그리고 연결되는 강도도 다양하다.

이런 사슬의 한 가지 흔한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가난한 가족의 손위 딸이 동생들을 보살피고, 그동안에

(2) 어머니는 보모로 일하면서 다른 곳에 보모로 가 있는 사람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후자의 보모는 다시

(3) 부자 나라에 있는 가족의 아이를 보살핀다. 어떤 보살핌의 사슬은 보살핌의 대상(가령 아이나 혹은 돌봐야 할 나이 든 사람)에 기반하고, 어떤 사슬은 보살핌의 주체(보살피는 사람들 자신, 그들도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에 기반한다. 각각의 사슬 종류는 보살핌의 비가시적인 인간 생태학을 표현하는데, 한 종류의 보살핌이 다른 종류의 보살핌에 의존하는 식이다.

 

- 알리 러셀 혹스차일드, 「보살핌 사슬과 감정의 잉여가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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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163.239.1.51/sogang/university/pride/albatross/v36/discourse_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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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12:00 2005/11/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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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09/19 13:41

노조 온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교육선전 업무를 해왔다.

 

처음 맡았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교육과 선전은 붙이는 게 아니다 싶다.

 

차근차근 계획 세워서 실행하면 별 탓 없겠지 생각했지만
매일 선전사업 땜빵하다 보면 교육 사업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사실 교육이라는 게 조직 상황, 선전, 정책, 내외 동향 등등 대충은 다 알아놓고 엮어보기도 하고,
어떤 교육이 필요한 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언제쯤 해야 하는 지 계획 잡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중장기를 내다보기 위한 느긋함이 필요하다.
백년을 지속할 기조를 세웠다가도 매번의 교육을 평가하여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내용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비교하여 선전은 대략의 상황인지나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뭘 하든 기조를 못 잡으면 말아먹긴 매한가지.
게다가 예전에는 선전업무에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효과가 명백하게 존재했다.
지금도 잘 만든 리플렛 하나, 백만 마디 말 부럽지 않은게 사실이다.

 

다만 속도감의 차이라고나 할까?
평상 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의 속도감이 너무 틀려 시시때때로의 전환이 잘 안 된다.

 

물어봤다, 노조활동 오래해본 사람에게..
‘왜 노조에선 교육과 선전을 붙여서 부나 국을 만들어요?’
그런데 대답이 ‘구습이지.’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 까이 꺼~ 이상하면 좀 바꿔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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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9 13:41 2005/09/1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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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09/05 12:58

누가 인간은 자유의지의 존재라고 외쳤던가?

사람은 몸이 지배하고, 몸은 달거리와 변덕스러운 날씨, 바이오리듬이 지배한다.

 

그래도 그리 나쁘진 않다.

오랜만에 씩씩, 활발, 진취, 긍정적인 생활을 내팽겨치고

그저 노곤노곤, 나른나른하게 보내는 나날들.

(혹시 아직은 높은 감정곡선 탓?)


 

누군가 나 대신 움직이고 있는 시간...



너 누구야 O_O?


 

 

음... 큰 사고만 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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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5 12:58 2005/09/0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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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5/09/04 18:59

달군님의 [작업하는것의 일부분] 과는 사실 크게 관련은 없는 글.

(트랙백 따라온 분, 미안^^;;)

 

[[달군]]의 그림들을 보니 뭔가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

나도 뭔가 그려보고 싶어서 글적거려보는데 회의시간에 하던 낙서밖에 안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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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4 18:59 2005/09/0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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