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55건

    아프다

    (7)

    룰~루!

    (4)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 16 NEXT
잡다생각_펌 - 2005/08/28 00:28

한심한 스머프...님의 [진보 블로그 다시 그리기 10문 10답] 에 관련된 글.

<진보블로그 다시 그리기 10문 10답>

 

1. 블로그를 언제부터 알고 사용하게 되셨어요? 


 - 블로그를 안 건 : 2003년~
   블로그를 쓴 건 : 2004년~

 

2. 그런데 왜 하필 진보블로그를 ^^ ?


 - 왠만한 블로그 서비스 하는 곳에는 블로그들이 다 있지만 그나마 관리하는 건 진보블로그 뿐이져.^^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



3. 블로깅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 개인 홈피 대체용(이라기보다 블로그땜시 홈피는 죽었네요.)

 - 최근 소식, 경향, 입장 파악. 운동에 대한 공유를 넘어서 공감.
 -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가능
 - 근데 이 이상 블로그, 블로깅으로 업그레이드가 좀체로 안되네여.
   오는 사람 말리지 않으나 좀처럼 가지 않으니 관계가 형성될 리 만무.. 게으른 탓이지요...

 

4. 진보블로그를 사용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요?


 - 1번째, 역시 진보네. 캐릭터도, 쏟아내는 내용도 맘에 듭니다.
 진보네가 없었다면 진보블로그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 2번째, 포스트들. 비겁한 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 편한 곳입니다.(토해내긴 쉽지 않지만...^^;;;;)

 

5. 진보블로그 메인 페이지에서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 '글 이어가기'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트랙팩처럼 트랙백이 한 곳에 모이는 것도 좋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1번째 글'을 읽고 트랙백 걸린 데 가면 '2번째글', 읽고 트랙백 걸린 데 가면 '3번째 글' 뭐 이런 방식도 재미있을 듯...


 - '오늘의 사전' : 많이 사용되는 단어나 각자가 붙인 단어의 정의, 단어를 사용한 포스트 등을 보여줄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주제별 블로그 옆에는 해당 주제에 몇개의 블로그들이 있는 지 표시되면 좋을 것 같아요.

 - 새로 트랙백 걸린 최근 포스트들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배경이미지나 프로필이미지, 각종 캐릭터를 모으고 알리는 공간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진보블로그 말고 괜찮은 외부블로그들도 많이 추천되어졌으면 좋겠어요. 포스트를 직접 소개해주는 것도 좋고...( 1타 多피 정신~!)

 

6. 진보블로그를 사용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점은 무엇인가요?

 - 역시 검색 기능이겠지요

 

7. 진보블로그 외에도 다른 블로그에 많이 가시나요? 주로 어떤 블로그를 많이 찾게 되나요? (특정 블로그를이야기 해주셔도 좋고, 어떤 주제의 블로그라고 말하셔도 됩니다.)

 - 넘의 블로그까지 갈 여유는 없네요.

 

8. 새로운 블로그, 마음에 맞는 블로그를 만나게 되는 계기나 방법이 있나요?

 - 1번째, 내글에 붙은 덧글과 트랙백 따라가는 경우
 - 2번째, 블로거진에 올라온 포스트 따라가는 경우
 - 3번째, 새로쓴포스트에 올라온 포스트 따라가는 경우

 

9. 하루에 블로깅(쓰기 읽기 모두)에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블로그가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방문하나요?


 - 하루 블로깅 시간은 음....^^;;;; 일 많을 때와 일 적을 때 편차가 매우 큽니다.
   일 많을 때는 못 들어올 때도 많고요. 일 적을 땐 보통 1번에 읽기 40분, 쓰기 1시간 30분 정도?
 -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블로그는 모두 웹브라우저에서 URL 쳐서 들어갑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8/28 00:28 2005/08/28 00:28
TAG
잡다생각_펌 - 2005/07/05 08:36

1. X 이야기

 

아직도 만화 [X]는 끝나지 않았겠지?

만화방에 너무 오래 안 갔네.

 

X 에 보면 (편의상) 좋은 카무이와 나쁜 카무이가 나오는데,

좋은 카무이는 세상을 지키려는 카무이(인 듯 하)고,

나쁜 카무이는 세상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카무이(인 듯 하)다.

 

여기서 나쁜 카무이가 '나쁜'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의 토대 마련을 위해 세상을 멸할 생각인데 곱게 멸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다 쓸어버릴 정도의 계획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결정적으로 이 나쁜 카무이가 진짜 '나쁘다'고 판정되는 그 때가 언제였냐하면

자신의 친누이를 찔러 죽일 때였다.

근친 살해라니 참 악독한 범죄이지.



2. 며칠 전 버스안 이야기

 

출근길에 버스에 앉아 핸펀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뒷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자리도 양보를 ... 저런 년들은 우산으로 후려갈겨야해"

물론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앞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방금 전 하차한 정류장에서 타셨나보다. 할머니가 한 분이 서계셨다.

'아뿔사, 나한테 한 얘기로군.'

이젠 더더욱 뒤를 돌아볼 용기는 사라졌다. 안 봐도 비디오, 그런 아저씨는 잘 못 쳐다만 봐도 진짜 우산으로 한대 갈겨버린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바로 일어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했다.

왕뻔뻔하다고?

나, 생각보다 소심하다.

그저 순간의 황당함과 모멸감에 상처받은 자존심 찌끄러기로 잠시 몇초 버틴 후 다음 정류장 즈음하여 카드 긁고 내렸을 뿐이다.

 

솔직히 왕 분하다!

할머니 발견, 자리 양보 여부에 대한 갈등, 소지품 챙김, 자리에서 일어남 등등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쏟아지고만 비난, 특히 그 말 하나하나는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나처럼 '젊은 년'들은 양보 안 하고 버텨 앉아있는 게 더 힘들단 말이쥐.

 

여하튼...

분노에 찬 상태에서 머리속은 완전 전쟁통인데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한 대 후려갈겼으면 좋겠다.'였는데,

이게 점점 지나면서 (그 아저씨, 대략 40대쯤 아닐까 생각하며) '저 세대들, 빨리 사라져줬으면, 늙어 죽어줬으면 좋겠다'로 이전되고 있었다.

 

 

3. 고민하는 카무이의 선택

 

좀 지나면서 '내가 바랬던 게 뭐냐'를 고민해봤는데, 

그저 "후려갈겨야 해" 스타일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게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양보를 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강압이나 폭력에 놀아난게 아니라 나의 의지이길 바란거고...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그 아저씨에게 정말 바랬던 게 나에게 그저 약간의 여유나 "할머니한테 자리 좀 양보해주겠어요?"라는 식의 인간적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좀 놀랐다.

단순히 아저씨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내 감정에 대한 공포.

 

갑작스레 나쁜 카무이와 이번 일에서의 나와 여러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1.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것.

 - 적어도 나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양보해주겠어요?"라고 노곤노곤 권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2. 이를 위해서 기존의 것(전체이든 일부이든)을 멸해야 얻을 수 있다는, 특정 존재들이 사라져줘야 얻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

 

'확 엎어버려?'

 

확 엎어버리자는 게 나쁜 생각일까? 그게 왜 나쁘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그것을 행하는 방식이라는 게

인간 존재의 부정 하나로 획일화되었다는 것은 분명 내가 나쁜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다.

 

세상의 그 어떤 영웅도 세상을 지키는 녀석들이 좋은 녀석들...

세상을 좀 바꾸려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사람 하나 죽이는 그 순간부터 나쁜 놈으로 전락한다.

왠지 심하게 세뇌받은 느낌이다. 이 세상은 고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주인공들이 행하는 잔혹 무도한 방식에 신경이 꽂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 빛을 바래게 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나 자신은 아무 의미없이 지루하게 봤던 영화 [마지막 확제].

어느날 쭌모 가 [마지막 황제]에서 마지막 황제가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무슨 노동수용소 같았던 기억이 있으나(앗, 이것도 세뇌?)

어쨌든 자본가나 권력자를 같은 노동자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게 맞다면)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가능성이든 강제성 여부든 간에 이것저것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뭐든 단계적으로 고민하도록 전환해봐야겠다.

언제나 머리속에서 하루에 몇명씩 저 세상 보내시는 극약처방만 내리는 것도 이제 짜증난다.

 

 

* 음... 물론 아저씨의 욕지거리를 노곤노곤 말투로 전환하는 건 매우 매우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보이긴 한다. 솔직히 같이 살기 싫다.

그래도 그 아저씨는 '언어폭력을 통한 강압으로 도덕 유지, 남성우위 확인'한다는 목적에 매우 충실히 사는 것 보면 나랑 이 세상 같이 사는 게 살만한가 보다.

박카스 광고기획자한테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말고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언어폭력 삼가'도 기획해달라고 해볼까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7/05 08:36 2005/07/05 08:36
TAG
잡다생각_펌 - 2005/06/26 13:45

오뉴월에 *도 안걸린다는 감기에 걸렸다.

목이 아프다. 기침을 안하려고 애쓰는데 너무 간질거려서 나온다.

열도 난다. 물수건으로 다운시켜놓아도 하루밤 자고 나면 다시 올라간다.

이럴 땐 서늘한 바람 약간과 수면이 장땡인데...

뭣모르고 빛의 세계에 나왔더니만 잠도 잘 안온다.

(최근에 반지하 -> 3층으로 이사)

 

그냥 어둠의 세계에 머물러 있을 걸 그랬나?

너무 눈부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26 13:45 2005/06/26 13:45
TAG
잡다생각_펌 - 2005/06/22 13:48

김홍준 운영위원장이 그랬다죠?

"아직도 모르세요? www.realfanta.org예요." --- FILM2.0 에서

 

 

이그림은 워리님(http://worrynet.com/board/tt/index.php?pl=875)이 만든거래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22 13:48 2005/06/22 13:48
TAG
잡다생각_펌 - 2005/06/02 21:30

저 제목은

내가 배웠다는 게 아니라 배웠으면 하는 항목이고,

lsj가 배우라고 넌지시 건넨 쪽지에 적힌 글이며,

더불어 진보넷 기술국 식구들도 꼭~~~꼭~~~ 배웠으면 하는 덕목이다~!

그래, 이건 항목이 아니라 덕목이다.

 

 

이틀 전인가?

A로 시작하는 모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A의 @@@입니다.

저 저희 홈페이지가 %%%가 안되고, 게시판 ###가 엉켰고..."

 

황당 5분전..

 

 



아마도 햇수로는 3년을 헤아릴 듯...

 

마지막 통화 때가 작년 9월쯤이라던데. (난 기억도 못하는데 그쪽에서 알려줬다.)

분명 그 때도 말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예요. 관리자 구하세요."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해버렸다.

"이번이 마지막..T.T"

 

페이지 제작해준 것도 아니고, 얼굴 한번 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 뭐하는 단체인지도 잘 모른다.

다만 예전 어느때인가 누군가가 나보고 잠깐 페이지 봐달라며 슬쩍 전화번호 전해준게 시작이라면 시작인데...

뭔가 거절하고 느낄만한 죄책감, 찝찝함에서 벗어나고자 덥썩 받아버리긴 했는데,

종일 궁시렁궁시렁거리니까 lsj 가 다가와서 "잘 거절(NO)하기"에 대한 종이를 놓고 간다.^^

 

아름다운 인간 관계를 위해 잘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놔야 하겠지만,

지금은 지금은 이 일의 발단이 된 '봐달라'던 그 브로커~! 제일 미워...ㅠ.ㅠ

 

조심하십시오.

여러분도 미움받는 브로커가 될 수 있습니다. ~~ o(-.-)o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02 21:30 2005/06/02 21:30
TAG
잡다생각_펌 - 2005/06/02 00:27

* 한심한 스머프...님의 [나한테도 이런게...] 에 관련된 글. 

 

덧글까지 남겨준 친절한 머프에게 감사...^^;;

그나저나 음악엔 소양이 ...



1. 컴퓨터에 있는 음악파일의 크기

- 현재 379메가.

 

 

2. 최근에 산 음악CD(가 아니라 사고 싶은..)

- 헉. 음악 CD 안산지 꽤 오래되었어여..

사고 싶은 CD는

 

[1] Limp Bizkit

 ... 전혀 모르는데 우연히 'My Way' 라는 노래를 들어봤다.

 널부러지는(?) 느낌이 좋다고나 할까? 근데 가사를 해석 못해서리...하하...^^;;

 

[2] Emiliana torrini

... 델로스 페이지 가봤는데 'Nothing brings me down'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역시 널부러지는 느낌이 좋은 걸 보니 요즘 상태 그런 상태인듯...^^;;

 

3.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 음악 찾아보면서 이것 저것.

 

 

4.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 있는 노래 5곡

음악 들을 때 거의 아무 사연이 없음. 그냥 땡기면 질릴 때까지 계속 들어요. 게다가 별 취향도 없는듯 싶어요...

 

- [카우보이 비밥의 OST]

많이 듣는다. 그냥 좋다.

요즘 특히 많이 듣는 건

TV판에서는 주로

[Mushroom Hunting]

[Heavymetal Queen]

극장판 [천국의 문]에서는 주로

[Ask DNA]

[Time to Know Be Waltz]

 

- The Blues 의 OST [Feel Like Going Home]

블루스에 대한 다큐의 OST.

베베 꼬인 기교도 없고 간결하고 왠지 경쾌하기까지 한 기분좋은

 

- 카드캡쳐 사쿠라의 [기쁨의 캐롤].

어쩌다 구하게 된 애니 카드캡쳐 사쿠라에 나오는 [기쁨의 캐롤].

'Happy Christmas 준비 OK~!'

문득 틀었는데 그 유치함과 귀여운 척 하는 내숭 섞인 목소리에 갑자기 반해버림.

이런 대놓고 예쁜 척하는 노래를 들은 지 너무 오래되었었나보다.

 

- [winter weather]

재즈. 여성 보컬의 'I love winter~ weather~' 가 흘러나오면

가슴 근처가 간질간질 거린다.

 

- 아람유치원에서 만든 동요들.

가사가 정말 리얼하다.

-------------------------------------------

'나는 새 이가 나오면 그 때부터 이 잘 닦을 거야.

지금 이는 다 빠지고 다시 날거니까.~~'

-------------------------------------------

'나 이 바지 입기 싫어 .... 중략... 엄마 치마 입을거야'

'안돼 너무 추워서 안돼'

...중략...

'그래 입어라 입어. 입고 얼어죽어.'

'싫어. 싫어. 안 얼어죽을거야.'

-------------------------------------------

 

5. 이어받을 사람

 

오~~~~ 없다~~~!

lsj 와 childcare 한테 받으라고 하면 "바빠!"라며 딱 거절하겠쥐...

renegade 와 toiless 는 했나?

혹시 땡기면 받아요~~(^___^)/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02 00:27 2005/06/02 00:27
TAG
잡다생각_펌 - 2005/05/11 23:51

* 쭌모님의 [룰루]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하하하~. 룰루 보면서 쭌모님의 다양한 생각의 나래가 느껴져요~!

전 단순해서 '여남관계'밖에 안보이던데... 다시 봐야 겠다.



난 공포영화에 약한데, 아마도 언제나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릇해서 그런가보다.

그러다보니 [룰루]를 보다가 토끼인 톰에게 감정이입 만빵 해버린 것이다.

 

물론! 토끼라는 이유만으로 약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

그러나 어떻든  '룰루가 늑대'라는 사실을 권력의 문제로 접근할 때, 다소 일반적 감성에 기댄다면 대략 수긍가능하지 않을까나? 토끼보다 늑대가 있어보이잖아?

 

그렇게 몇장 넘겨가면서 끝끝내 룰루가 톰을 놀이로 겁주는 장면을 대하게 될 때에 이르니,

어느덧 약자가 실제 권력이나 폭력에 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갖게 되는 사회적 위축효과의 발현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룰루에게는 -비록 부모에게 '토끼는 잡아먹는 것'이라는 세뇌를 받았다할지라도 - 토끼를 잡아먹는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게 혹시 톰과 화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요즘 운동이 힘(power)을 가지려는 맥락의 측면에서

여성운동이 여타 운동과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는 것과 짬뽕~!

 

예를 들어 노동운동과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는 맥락은 자본가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을 만한 민중의 힘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라면?

물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뜻은 권력의 평등적 분배를 고려할 때 자본가를 노동자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지 모른다.

솔직히 자본가는 가진게 많았던 지라 다소 괴로운 것 뿐이지 결국 평등한 권력을 누리는 상태가 되겠지.

한편 요걸 그대로 여성운동에 등치시키면 상대적으로 남성과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매우 관건이 될지도...

물론 결과적으로 평등 분배를 원한다면 그건 여타운동과 동일한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한때 남성을 가상의 적으로도 놔보려고 했다가 잘 안되던데, 

원하는 결과가 권력을 평등분배하고 싶다는 거에 수긍이 가는 반면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힘의 관철로는 잘 해결이 안 날것 같다는 냄새가 폴폴 나서이다.

좀 추상적이지만 일상적 관계성의 예민한 관찰 등과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물론 이것 역시 여성이라는 민중들이 뭉쳐 발휘하는 힘이 관철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만.)

 

다시 룰루한테 돌아가보면,

그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또는 있는 지점'이

(룰루처럼) 혹시나 경험의 완벽한 거세로 이루어지는 거라면

태어나서부터 본의아니게 남자라는 권력자가 되는 이 사회 구조를 어찌해야 하나

기운 빠지는 고민을 하다가...여기서 STOP~!

 

정말 생각이 커지는 (건지 많아지는 건지 난잡해지는 건지) 동화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5/11 23:51 2005/05/11 23:51
TAG
잡다생각_펌 - 2005/04/26 23:50

[1] 사촌의 집들이

 

얼마전 사촌이 집들이를 했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살던 모습을 좀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이건 완전 딴세상이다.

 

이 날 집들이 참가자는 우리집의 3남매와 올케, 작은 아버지네 2남매와 올케.

그 멤버중 하나는 학창시절 학업은 접어두고 햄버거 알바부터 자장면집 알바까지 두루 섭렵한 건 알고 있었지만,

또 다른 녀석이 동네 자장면집 배달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니며 물건 훔치기를 일삼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만만치 않은 가출 경력들과 도둑질, 각종 야비한 작태들, 거기에 큰소리 한번으로 이내 수그러들었던 비굴함의 기억까지...

물론 '나 잘났어!'와 개구쟁이들의 괴롭힘을 퇴치해준 기억도 만만치 않게 섞여있다.

 

난 거의 기억이 안 난다! 아니 들은 바도 없는 것 같다!

사실 기억력도 별로 안좋아서 대학교때 일도 기억에 별로 없다.

하지만 꽤 생뚱맞은 지라 나만 혼자 딴 세상에 산 기분이다.

동생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난 주로 자기들을 많이 도와준 존재였던 모양인데,

하긴 그게 부모에게 부여받은 첫째의 역할이지.

동생들의 인생역정을 듣다보니 너무 티미하게 살았다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동네에서 발견한 괴이한 친구의 무용담처럼 떠들어댄다.

만약 현재의 이야기라면, 이미 어른이 되었는 데 행한 엽기행각이라면, 이렇게 손쉽게 떠들어댈 수 있을까?

 

이렇게 무용담식으로 말하는 모습에서 아래의 2가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어른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 할 지라도- 어린이 시절의 모습을 타자화시키는 것. 즉, 이미 내가 아닌 존재로 인식 내지는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탁월한 기억력으로 인해 당시의 행동은 기억이 나지만  일상을 지내던 감성과 문화를 잃게 되는 것. 따라서 매우 관찰자적 서술을 하는 방식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몇가지 충격적인 감정은 그대로 머리속에 남아있겠지만...

 

간혹 어린이를 어른의 미숙한 단계이거나 어른으로의 발전 단계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것은 어른인 나조차도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심각한 단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저 세월의 무게일까?

어떻든 적어도 지금은 어른과 완전 다른 객체라는 생각이 든다.



[2]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최기숙 지음, 책세상), 이건 책의 이름이다.

대체로 동화, 특히 전래동화를 분석한 책을 보면 결론이 비슷하다.

 

대략의 뉘앙스는 다음과 같다.

'동화는 어린이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동화는 어른의 이야기일 뿐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전래민담도 원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차피 100% 완벽한 스토리는 없기 때문에 동화를 잘 고르는 것보다 어린이들이 이를 통해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 역시 이러한 대략의 기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집었을 때, '과연 진정한 어린이의 꿈은?'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상당히 많이 무너졌다.

 

대신 예상치 못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어른의 일상과 꿈이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뛰어난 아이는 부모로부터 '역적의 집안이 될 것이 두려워' 죽임을 당하게 된다. 행태는 어른의 아동 살해지만 실제 어른 자신의 변혁의 가능성을 제단하고 스스로 자해한 꼴이다.

시아버지의 먹을 것이 줄어드는 것을 아들의 탓으로 돌리고 아이를 죽이려한 부모는 효사상의 억지스러운 사회지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남동생보다 힘이 더 장사였으나 '남자의 기를 죽일 수 없어' 일부러 씨름에 져주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누이는 남녀차별사상의 희생양이다.

아버지보다 권력 높은 이를 자신의 꾀로 응징하려는 아이를 보면서 어른스러운 기만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아이들은 남다르거나 뛰어나거나 매우 순진한 천사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바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의 꿈이다.

 

어린이가 바라는, 어린이에 맞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어른들에겐 불가능한 프로젝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어떠한 이야기를 접하든, 어떠한 현상에 맞닥뜨리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에게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은 추천 동화가 몇가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어린이의 세계는 꽤 미지의 세계이다.

 

* 사족 - 해님달님에서 어둠이 싫다며 여동생이 해님이 되었고, 그런 여동생이 얄미워 오빠가 여동생에게 모래를 뿌리는 바람에 해는 눈부시게 되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6 23:50 2005/04/26 23:50
TAG
잡다생각_펌 - 2005/04/25 22:49

* 이 글은 미류님의 [돌봄노동에 대한 질문]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일요일에 발견한 미류님의 트랙백... 뭔가 묻고 있다! 게다가 어렵다!
답해줄 재주는 없는디...흑흑T.T


왜 트랙백 거셨어여...꺼이꺼이. 


그런데 없는 밑천이라도 뭔가 적어야 하지 않나하는 강박관념에 휩싸여...-_-;;

열심히 찾아낸 내용이 아니라 대략의 의도나 흐름정도만 적은 거라,

죄송합니다...-_-;;;;;

 



1.


먼저 저번 글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사회진보연대의 ‘소위 여성적 노동’에 대한 기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돌봄’을 ‘노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발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마르크스의 이론에 맞춰 ‘노동으로서의 돌봄’을 적은 동시에 gender 적 입장에서까지 파악한 원서의 번역 발제문과 그걸 발제해준 사람의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참고자료의 원서는 Diemut Elisabet Bubeck 의 [Care, Gender and Justice]입죠)


제가 이 글을 참조하게 된 것은 노동으로서의 돌봄을 돌아볼 때 가장 친 노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현명한 마르크스의 노동 이론을 차용하면서도, (마르크스에 대한 저의 지식이 매우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원저자의 지식을 믿으면서!) 그러한 친 노동적 이론 속에서조차 여성적 노동을 이야기할 때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또는 간과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접한 ‘주변적 보조적’이라는 단어가 자본이 아닌 친노동적 단체에서 나왔고, (워낙 피해의식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표현된 자체로 나름의 근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노동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대략의 뉘앙스로 보면 ‘돌봄을 노동이라고 가정’한다는 데서 출발한 것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맞춰 다른 노동과 비슷하게 배치해 보려했으나, 솔직히 결론을 말하자면 ‘끼워맞춰 보려했으나 약간 어긋나더라’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 원저자에게는 ‘배치하기 힘들겠다’는 사전 가설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마.)


--> 이것만으로도 미류님의 제 글의 이상한 구조에 대한 많은 의문이 해결될 듯...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빌어 설명하면서 필요노동임을 밝힌 것 역시 어설플 수 있다고 보는데, 대략의 정의가 맞더라도 인간의 노동이 ‘감소, 끝끝내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이상 마르크스 이론으로의 완벽한 등치가 어렵다고 본 점이 존재합니다.
그래서인지 미류님이 말씀하신 ‘노동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내용을 접하면서
‘무엇을 정의?’하면 좋은지 좀 난감하네요.
배치해 보려다가 어긋남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돌봄노동 자체의 정의나 성격에 대한 기술 말고 미류님의 말씀대로 돌봄이 노동인지에 대한 정의가 따로 필요한 지는 앞으로도 지난하게 갑론을박이 벌어질 겁니다.

그리고 돌봄을 노동으로 정리하려는 누군가를 발견한 기쁨도 있었고, 미류님의 말처럼 지속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노동에 대한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는데 동조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맞춰보려 했으나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이론의 보강이나 새 이론 창조를 요구받는다라면, 무엇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 것인지, 특정 이론이나 입장을 말하는 것인지,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매우 상대적이고 반드시 어긋날 끼워맞추기가 될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이러한 분야가 모호하고 미 개척된 영역의 것이라고 친다면(소위 여성적 노동이 많겠지요?) ‘정의에 대한 선행 없이 배치 없’다는 말은 약간 우울할 수 있는데, 돌봄 또는 여타 가사, 육아 등에 대한 노동인가의 여부에 대한 물음에 종지부를 찍어야 노동의 성격 규명과 배치가 가능하다고 와전될 가능성이 있어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빌어 설명하려 할 때 노동에 대한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면 분명코 그 노동은 그 자체로 -적어도 이론적으로만이라도- 주변화된 노동이라 볼 수 있고-_-, 따라서 위의 ‘주변화’라는 말이 범상치 않게 들린 것은 이러한 혐의가...

-------------------
‘주변화된 노동이다’라고 적힘
 -> 마르크스의 노동이론에 기인한 것처럼 생각됨
 -> ‘주변화된 노동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 마르크스 이론에 완벽 등치된 노동이 아닌 것 같으므로 전반적인 성격에 귀 기울이고 공평 분배되어야 할 노동임을 강조

-------------------
뭐 대략 이렇게... 하하... 와전이 심했나요?^^;;

 

2.


확실히 전 마르크스 이론에 무지한 편이라 전문가가 작성한 참고자료에 많이 의존해서 썼습니다. 따라서 표현이나 내용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기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제가 이해하기로 마르크스의 필요노동 개념은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노동’이 '0'인 상태이지, 해당 노동이 ‘0’이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자동화 등이 등장한 것이 아닌지...
그런데 미류님이 말한 필요노동과 구분되는 필수적인 노동에 대한 개념 분리는 꽤 유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O_O
 


3.


돌봄의 특성을 정의하는 부분에 있어서 ‘다른 노동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스스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노동은 많이 있다고 봅니다.
확실히 의료서비스는 자동차산업보다는 돌봄과 매우 유사하고 넓게 보면 의료조차도 돌봄의 영역안에 들어가거나 ‘복지’라는 단어로 모두 함께 포괄할 수 있겠지요.

사실 돌봄노동의 입장에서 보거나 소위 여성적 노동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옛날 ‘애보는 엄마’만 염두에 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초 주는 동네 할머니’도 염두에 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말고도 다른 노동 - 소위 여성적 노동이라 불리지 않는 노동 - 에 있어서도 유사한 성격은 얼마든지 교차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 글에선 성격 자체를 나열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글 쓸 당시엔 돌봄노동과 돌봄을 제외한 소위 여성적 노동의 성격을 왔다갔다하며 포괄하려 했던 면도 있고요...^^;;

 

아동의 권리차원의 접근은 그동안 보육인이 많이 고민해온 부분입니다.
인권보육의 기치는 꽤 까다롭지만 주로 ‘노동으로서의 돌봄’이 아닌 ‘돌봄으로서의 노동’에 복무해온 대부분의 보육인들이 많이 고민하던 지점이고,
보육판에 복귀한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잘은 모르지만 자료 있으면 공유하겠습니다.^^
확실히 제 글의 보육의 공공성 제기 부분은 이번 글의 맥락 속에서 국한되어 기술되었으며, 보육의 공공성 확보 부분은 유의미한 다양한 기제가 많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일례로 보육노조는 주로 한 단체의 회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건설된 노동조합이고, 그들의 제1의 구호는 ‘인권보육 실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보육노동자 노동조건 개선’도 기실 ‘인권보육 실현’을 위한 토대라고 생각하고 있습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5 22:49 2005/04/25 22:49
TAG
잡다생각_펌 - 2005/04/15 10:52

영화 평론가인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성영화제는 항상 여성 폭력 영화제인것 같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을 봤던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가족에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강간도 당하고, 일반적으로 무시당하고, 마침내 내외적으로 모두 소외당하고...

여기 나온 셀리스타 데이비스 감독의 다큐 이야기를 했더니 쭌모님이 그런다.

"그러게 [TV는 사랑을 실고] 에서도 은인뿐 아니라 속상하게, 가슴아프게 만든 사람도 만나서 따지고 화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금 있는 곳이 보육이다보니 이 문장이 마구 와닿는다.

“부모들의 부당한 태도가 나와 언니를 더욱 슬프고 병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문장에 가슴 아프다.

 “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들을 보호해야"

 

어른이라고 이 세상 수퍼맨도 아닌데 수단과 방법 안가리고 보호할 재주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할 일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나 혼자 뭐 되겠어?'라고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죽고 우리 주변의 누굴 죽이게 된다.

안될 것 같으면 여럿 모여 '뭐 되게' 라도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팩 13 : 여성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자전 다큐 ‘끔찍하게 정상적인’ 셀리스타 데이비스 감독




“나를 성폭행했던 그 남자 앞에 섰다 카메라를 들고”

서울여성영화제

25년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은 성추행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는 자신을 성추행했던, 어머니 친구의 남편이자 아버지의 친구였던 ‘그’를 만나기로 결심했고, 그 길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셀리스타 데이비스(32·미국)는 그렇게 영화감독이 됐고, 자전적 다큐멘터리 <끔찍하게 정상적인>을 들고 8일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를 찾았다.

영화 속에서 셀리스타 감독과 또 다른 피해자인 언니, 그리고 가해자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성추행 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셀리스타 감독은 대여섯살 무렵 가족 피크닉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는 “보여줄 게 있다”며 셀리스타를 방으로 데려갔고, 바지 지퍼를 내린 뒤 ‘보여주겠다던 그것’을 셀리스타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셀리스타의 언니도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를 마주 대하는 것 이외의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어요. 그를 만나 그가 나에게 저질렀던 일들을 자백받은 뒤 상처를 털어내고 싶었지요. 또 무엇이 두려운지도 모른 채 불안 속에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를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인 언니와, 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한 어머니가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했고, 영화를 완성할 때까지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감독은 긴장과 망설임, 눈물과 고뇌 속에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가해자는 자매들과 만난 자리에서 카메라를 끄게 한 채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털어놓는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다”거나,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느냐”는 변명의 말도 잊지 않는다. 그의 자백과 변명은 검은 화면 속 음성만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셀리스타 감독은 “그 남자가 카메라 앞에서 정직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촬영 당시에는 그를 용서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정말 화해가 가능할까’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감독은 “중요한 것은 영화 촬영 뒤 ‘세상의 모든 남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이제야 비로소 남자와 성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셀리스타 감독은 “성추행 피해자들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만나기로 결심하고, 그를 찾아가 만나고, 영화를 통해 그 과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적어도 나에게는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상처를 씻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또다른 길을 제시했다.

 

“아버지는 우리 자매에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를 대하라’고 타일렀고, 그와 변함없는 친분관계를 유지했어요. 어머니는 몹시 분노했지만 성추행 사건을 지나치게 부끄러워한 나머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요.” 감독은 “부모들의 부당한 태도가 나와 언니를 더욱 슬프고 병들게 만들었다”며 “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들을 보호해야 하며, 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13일 한국을 떠나는 셀리스타 감독은 끝으로 “관객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관심이 나를 흥분시켰다”며 “피부색이 다른 30대 독신 여성 5명의 이야기를 담은 새 작품을 들고 내년에 다시 여성영화제를 찾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15 10:52 2005/04/15 10:52
TAG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 16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