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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9
    연리지(6)
    풀소리
  2. 2007/12/05
    곤란한 부탁(6)
    풀소리
  3. 2007/12/03
    12월(4)
    풀소리

연리지

1.

지난 주 금토(7,8일) 이틀간 노조 지부장/지회장/분회장 합동수련회가 있었다.

내가 책임자로써 치른 행사다.

만족스럽고, 아니고를 떠나 일을 마치니 후련하다.

마치 한 해 농사를 모두 마친 것 같다.

 

수련회 장소인 눈덮인 보람원수련원

 

2.

나는 준비팀과 함께 하루 일찍 수련회 장소인 충북 괴산 보람원수련원으로 갔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날씨였다.

소백산맥 산자락을 끼고 가는 길은 눈이 채 녹지 않거나 빙판길이 많았다.

우리 차량도 빙판에 미끄러져 옹벽을 들이받고 겨우 멈출 수 있었다.

 

3.

조심조심 마음조리며 도착한 수련원은, 그러나

하늘 가득 쏟아질듯한 별들을 가득 이고 있었다.

'사고 나고도 별을 볼 여유가 있느냐'며 함께 간 일행으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그래도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이냐... ㅎ

암튼 간만에 본 별들 가득찬 짙푸른 함하늘은 너무나 시원하고 좋았다.

 

함께 간 준비팀 성원들은

하나같이 술이 쎘다.

원샷을 외치며 마시는 술을 따라하다 보니

어느덧 흠뻑 취해 있었다.

 

눈덮인 수련원 뒷쪽 산책길

 

4.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조금 더 내려

세상은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었다.

 

다행이 기온은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닌지라

잘하면 한낮이 되면 수련회로 오는 길들에 있는 눈들은 다 녹을 것 같기도 했다.

 

아침을 먹기로 한 식당은

연리지(連理枝)로 유명한 연리지 가든이다.

 

청천면 송면리에 있는 소나무 연리지/ 믿기 힘든 모습이다. 간절한 사랑을 뜻하듯, 연리지 나무는 뒤로 약간 제쳐진 모습까지 마치 절정에 이른 환희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리지란 두 나무가 자라다 중간에 이어지는 나무를 잃컸는 거라고 한다.

옛부터 있었던 말이었겠는데, 당나라의 대 시인 백낙천이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장한가(長恨歌)라는 서사시로 읊었을 때

사랑의 절실함을 연리지에 비유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는 당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고 간곡히 하신 말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은 차라리 끝간 데가 있을지라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의 한은 끝이 없으리이다...

이때부터 사랑을 노래하는 시에는 '연리지'가 자주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천장지구'도 이 시에 나오는 구절이구나.

 

좀더 가까이서 찍은 연리지/괴산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5.

시원한 버섯전골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참으로 편안한 얼굴 표정을 가진 주인장 노부부가 추천하는 대로

화양동계곡으로 향했다.

 


절벽 위 암반에서 본 화양계곡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는 제법 큰 냇가가 있고,

깎아지른 절벽 위로 완만한 산책길을 내어놓았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아님 겨울이라서 그런지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고,

낙엽 가득 덮힌 산책길은 너무 좋아 가슴이 아리기까지 했다.

 

바닥까지 훤히 비치는 맑은 계곡

 

나는 일행과 거리를 두고

풍경과 시원한 공기와 길게 이어진 사색을

혼자서 천천히 맛보았다.



완만하고 길게 이어진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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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부탁

1.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나보다...

검찰은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알아서 기고 있다.

 

2.

역시 대중은 똑똑한가 보다.

인민들은 멀리는 김대중 정권부터, 짧게는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적 정책과 집행에 대한 반발로

이른바 합리적(?) 보수 세력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나는 본다.

 

명백한 파시스트인 이명박이지만, 노무현 류가 대안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찍겠다는 거 아닌가.

 

휴~ 파시즘 아래서, 5년을 살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3.

정치세력화한 유일한(?) 진보라는 민주노동당은 어떠한가.

이미 주사파, 종북파가 당 집행기구 뿐만 아니라 대의기구를 다 장악하고 있다.

비로소 경제문제가 정치문제화되는 이 계급적 각성의 시기에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북한에 유리한 정치활동을 하려니

'코리아연방' 기치를 고수하는 것처럼 하는 짓마다 늘 헛발질이고,

헛발질을 수정하려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떼거지로 패악질을 한다.

 

휴~ 파시즘 아래서 살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탈당을 해야하나... 분당을 해야하나...

 

4.

지난 11월 28일 뜸금없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노조 정치위원장 풀소리지요? 저는 '노동과 세계'의 ***기자인데 대통령 선거 관련 조합원들 참여 독려 글 좀 부탁합니다."

 

'노동과 세계'는 민주노총의 기관지이다.

전화 저편의 목소리는 부탁이 아니라 당연한 걸 요구하는 것 같았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정치위원장들의 글을 모아서 연속기획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어쩜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겠다 싶었다.

흔쾌하진 않아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

 

"그런데 원고 마감이 내일까지예요."

 

허걱!

나도 노조 전국지부/지회/분회장 수련회 책임을 맡고 있고, 지회 간부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는 등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내일까지 써야한단 말인가?

시한도 시한이지만, 뭘을 쓸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짧은 시한 등 무례하다 싶을 정도의 부탁에 대해 왜 그렇게 쉽게 답변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당연한 권리처럼, 지시하는 것처럼 요구하는 그녀의 당당한(?) 목소리에 마법이 걸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ps.

1. 원고를 바로 넘겼는데도 아직도 내글은 안 싣고 있다. ㅋ

2. 원고를 쓰다보니 선거운동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3. 내 사진을 요구했는데, 정말 사진이 없더라...



17대 대선에 무엇을 할 것인가?

- 4.15 총선을 기억하며 행복을 꿈꾸자.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기억이 생생하다. 2002년 12월 19일 투표를 앞두고 주변 동지들은 내게도 내기를 걸자고 했다. 100만 표를 넘으면 자기가 술을 사고, 모자라면 나보고 술을 사라면서 말이다.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부드러운 호소는 IMF를 겪으면서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 속을, 가슴 속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민주노총, 심지어 민주노동당 일곽에까지 여전히 ‘비판적 지지’의 악령이 떠돌고 있었고, 보수 세력의 지긋지긋한 ‘사표 앵벌이’ 공세가 기승을 부렸지만, 대중은 비록 찍지는 않아도 대단한 호의로 민주노동당을, 권영길 후보를 바라보았다.


결과는 약 96만 표, 아슬아슬하게 100만 표 미달이었다. 100만 표 득표를 둘러싸고 내기를 한 이들이었지만, 그러나 이긴 이, 진 이 할 것 없이 술값을 내라고 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100만 표에 육박한 득표에 환호했고, 기꺼이 술값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1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단순히 ‘보수’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파시스트들, 그것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이미 드러난 후보들이 1, 2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 민주노동당 후보는 여전히 5%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전의 시작이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참 많다. IMF 10년을 거치면서 너무나 어려워진 서민들의 살림살이와 비정규직 확대, 절망적인 사회 양극화는 우리가 염원하는 계급투표의 기반을 마련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반민중적인 정책과 비리의 종합세트인 이명박, 우리 민주노동당을 내세우기 위해 이 얼마나 좋은 기회란 말인가.


그러나 어디 세상이 내 마음대로만 될 수 있겠는가. 작금의 현실에 대하여 사람마다 원인 분석과 내놓는 대책이 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원인과 대책을 따지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고, 절박하다. ‘엄마는 춤바람 나고, 아빠는 매일 술타령이라고 수험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있는가?’ 라는 누군가의 말대로 열심히 해야 될 것도 절박한 ‘우리’고, 열심히 하지 않아 명백한 패배를 당한다면, 그 결과 적들의 창날이 맘 놓고 우리에게 향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책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돌이켜본다면 난 8% 넘는 정당 지지율로 9명의 광역 비례의원을 탄생시킨 2002년 지방선거부터 그해 있은 대통령선거, 그리고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탄생시킨 4.15 총선까지가 가장 행복했던 당원생활이었던 것 같다. 그 행복은 그러나 거저 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뼈 빠지게 뛰고, 악을 쓰며 선거운동을 해도 1%에서 꿈쩍도 않는 득표율에도 굴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가 모이고, 또 모여 꽃봉우리를 만들었던 것 아닌가. 또 다시 행복한 시절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지 않겠는가.


남은 20일, 후회 없는 선거운동에 매진하자. 결코 쓰러지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자. 그래서 민중의 희망은 보수 세력이 아니라 우리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임’을, 끝내 우리가 집권해야 함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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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DECEMBER

지난 토요일 지방 출장갔다 돌아오는 길. KTX 잡지 표지에 새겨진 이 단어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12월임을 느꼈다.

 

12월.

어쩐지 부록처럼 덤으로 달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런가?

내가 정녕 12월을 부록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는가?

 

따지고 보면 12월은 내게 바쁘기 그지 없는 달이다.

책임지고 있는 운수노조 지부.지회장 수련회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그런데도

모든 게 꿈처럼 현실감이 별로 없다.

 

결과가 뻔할 대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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