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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쓴 거...

과기노조 13년 역사를 연표집으로 만드는 일을

노동자 역사 '한내'에 맡기기로 했다.

 

관련한 자료들을 챙기던 중에

<전문노련> 기관지 1994년 2월호에서

고 박성오 동지를 추모하는 내 글을 발견했다.

 

글을 보고 나서야

아, 이런 것도 썼었지, 하고 옛 일을 떠올렸다.

파일로 따로 남아있기도 할텐데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 남긴다.

 

고 박성오 위원장.

1993년 12월 16일에 자가운전으로 출근을 하던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12월 25일 오후에 돌아가셨고,

전문노련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실험실에서 기대받던 젊은이(?)였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들 하던데

글쎄올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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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오 동지여 고이 잠드소서>

 

유전노조에 가본 적이 있는지,

동지여 그 곳은 겨우 열여섯 평의 작은 공간에

창가에 책상 하나

물끄러미 입구를 마주 보며 놓여 있고

4개의 책장과 4개의 서류함들

회의용 탁자 둘과 의자 열 개

6인용 소파와 탁자

그리고 두 대의 컴퓨터와 두 대의 프린터

각자 다른 벽을 바라보는 사이로

사무원이 쓰는 작은 책상과

그 위에 놓은 팩스, 전화

그것이 전부다

참, 10리터 용량의 작은 냉장고 하나

모서리에 죽은 듯 박혀 있지

 

하여튼 좁게

게다가

좁은 공간을 더 좁게 갈라놓은 간이칸막이

거기에 몇 년째 걸린 걸개그림 한 폭

녹두장군의 부릅뜬 눈 치틀어 올린

상투 위로 쓰였으되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름은

그 본의가 결단코 다른 데에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들의 머리를 버히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니라'

(갑오년 호남창의격문 중)

 

여기에서 한 사람이 살다 갔다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유전공학연구소노동조합

고 박성오 위원장

52년, 전쟁 중에 공주에서 태어나

형님 넷 누님 둘의 귀여움

혼자서 고스란히 받으며 크더니

이 겨울 아침 찰나의 사고로

그 형님 누나 다들 뒤에 두고

부인과 어린 남매 세상에 남기고

마흔 두 살의 아직 젊은 나이로

20대 못지 않은 단단한 가슴팍을

붉은 심장을

언 땅에 묻었다

만장 속에

아련한 만가 속에

눈물 속에

우리는 그를 묻었다

누구라도 문을 열면

싱긋 웃으며 반겨주던 기억은

지금은 빈 책상으로

썰렁한 사무실로

여기에 뎅그라니 남아 있다

 

그러나 남은 것이 어디 친지며 가족이며

우리 몇몇의 짧은 기억 뿐이랴

생전에

짝사랑보다 더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얼싸안던 140여 조합원들

과기노협의 5,000여 동지들

나아가 연맹의 15,000여 식구들과 함께 나눈

87년 이래의 투쟁의 역사가 있다

나란히 서서 내지르던 우렁찬 함성이 있다

한번도 싸움에서 선봉이 된 적 없지만

사람들이 다들 힘들어할 때

주눅들어 있을 때

더 이상 일꾼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언제나 선뜻 나섰으니

2대와 5대, 그리고 6대 위원장으로서

그의 발자취는

유전노조 역사의 반을

혼자서 감당하고도 남아

이제

우리들 일상의 짐짓 식어버린

열정과

게으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타하고 있다.

 

부드러운 사람

온화한 사람

사람들은 그렇게 표현한다

그런 그는

무엇보다도 낚시를 좋아했다

3년 전쯤의 일이다

여름 폭우로 갑천이 넘치자

사람들은 서둘러 귀가하기에 바빴는데

다음 날 그가 말하기를

자기는 정말로 바빴노라

아, 글쎄

갑천에도 손바닥만한 붕어가 올라오더라

밤 9시까지 신명이 나서 낚싯대를 드리웠노라고

그랬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 천진한 웃음이 반가워서

절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환한 얼굴이 부러워서

우리는 함께 웃었다

 

어쩌면 우리들 중 몇몇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가 드리운 낚싯대에 걸려

오늘도 이렇게 노동조합을 찾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밤마다 그를 꿈꾸는 것이나 아닌지

이 저녁 갑천변을 걸으면서

우리는

녹두장군의 눈보다 더 선연한 빛으로 살아

남아있는 우리를 채찍질하는

그의 지긋한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는다

실팍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기꺼이 맞는다

 

위원장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이성우 <유전공학연구소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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