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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민주노총 제34차 임시대의원대회

-2005. 2. 1. (화) 14:00

-영등포 구민회관

 

거기에 갔다가 왔다. 참담한 심경으로 돌아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몇 마디 심경을 쓴다.

 

노동조합은 이미 그 자체로서 하나의 권력이라고 나는 2000년에

한 술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다.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합원들과 또다른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타락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 말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말을 어제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얼마나

여러번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권력이라는 말의 의미를

우선 찾아보았다.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B.A.W.러셀)

"선이라고 생각되는 장래의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방법"(T.홉스)

"어떤 사회관계 내부에서 저항을 무릅쓰고까지 자기의 의사를 관철

 하여야 하는 모든 기회"(M.베버)

 

이수호 위원장은 회의의 첫머리에서 벌써 천박한 절차적 민주주의

의 논리에 기대어 되풀이해서 이런 식의 얘기를 했다.

 

"(대의원들은) 오늘 이 대의원대회 사수에 대한 책임까지 가지고 왔다."

"(대의원들이) 판단할 일이다."

"(대의원들이) 결정해 달라."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안건을 처리하고자 했다.

사회적 교섭안을 지지하는(혹은 지지하기 위해서 조직된?) 대의원들만 믿고

무모하리만치 과잉의 발언 차단과 답변 회피로 끌어간 회의에서

위원장은 하나의 공고한 권력이었다.

기필코 저항을 초래하고야 만, 그리고 그 저항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러나 끝까지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이런 발언을 하고 싶었다.

 




-저는 사회적 교섭안을 반대합니다. 극단적인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 회의 자체가

제가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민주노총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를 갈라쳐서 얻는 사회적 교섭의 성과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앞서 사회적 교섭을 찬성하는 여러 대의원들께서는 사회적 교섭안이 민주노총이 당연히 해야 할 교섭의 원칙을 담고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과연 교섭의 일반적인 원칙만을 얘기하고 있다면, 위원장께서 정부와 자본에게 우리의 교섭의 원칙은 이러이러하니까, 당신들이 우리의 원칙에 맞는 사회적 교섭방안을 먼저 제시해라, 하고 선언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와 노동부장관은 이미 우리의 교섭원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발언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미 그 실체가 드러난 노무현 정부에게 노동자가 기대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합니다.

 

-투쟁할 수 없기 때문에, 총파업을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교섭에라도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대의원들이 있습니다. 당신 파업할 수 있어? 파업도 못하면서 왜 교섭을 거부하는 거야?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당장 투쟁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노동조합이 아예 노조 깃발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사용자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걸어도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노사협의회로 달려가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교섭안은 현재 시점에서 투쟁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라서 저는 반대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발언을 할 수가 없었다. 멀쩡히 손을 들고 발언을 신청하고 있는데도 위원장은 토론종결을 선언했다. 그러자 모두 퇴장하자는 발언이 있었고, 단상으로 밀어닥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욕설이 난무하고 뒷쪽에서는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 한 마디 하려고 마이크 앞에 가서 스위치를 켰다가 그냥 서있었다. 말로 정상화될 상황이 이미 아니었던 것이다.

 

민주노총의 상당수 대의원들이 단상에 올라간 노동자들에게 내려와라, 당신들의 의사는 이미 충분히 전달되었다, 의사진행을 방해하지 말고 내려와라, 대의원이 왜 거기에서 발언하려 하느냐, 마이크 앞에 가서 발언해라, 참관인은 발언자격없다, 이런 얘기들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기어이 의사진행발언을 한마디 했다.

 

-대의원들께서 단상의 대의원, 조합원, 노동자들이 이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몰아부치지 말기 바랍니다. 이 회의를 올바르게 진행하는 것은 의장과 우리 대의원들의 몫입니다. 오늘 회의의 파행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서둘러 토론종결을 선언한 의장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 진행과 관련해서, 저는 이 안건에 대해서 밤을 새서라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것이 의사진행발언이고, 짧게 두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수석부위원장께서 지난번 속리산 대의원대회에서 회의를 무산시킬 시나리오를 입수했다고 한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날 저도 질문 하나, 발언 두번을 했던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음모론이 제기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안건과는 별개로 분명한 추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여러 대의원들이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음)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씀하시는데, 노동조합은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싸우는 조직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했으면 오늘 우리 노동자가 어떻게 여기 와 있겠습니까? 내용의 민주주의가 중요합니다. 우리 대의원들의 권한이라는 것은 7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위임받아서 생긴 것입니다. 저기 단상의 노동자들이 바로 우리들 동지라는 것을 잊지 말고 회의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발언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 지금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끝내 못한 말이 있다.

 

-여기 있는 대의원 누구에게도 단상의 저 노동자들을 나무라고 내려오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체의 혼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독선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박정희 전두환을 통해서 뼈저리게 경험한 독재 그것입니다. 거기에 저항해 싸우면서 우리는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단상의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있는 대의원이라면 이미 여기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노동자가  싸워서 극복해야 할 권력에 불과할 뿐입니다. 제발, 동지를 적으로 몰아부치지 말고 투쟁의 대상을 명확히 하기 바랍니다.

 

대의원대회를 사수하자고 무수히 외쳤던 이수호 위원장은, 급기야 이 안건이 통과시키지 않으면 위원장직을 사퇴할 수 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치더니, 성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표결을 강행하려다 제지당했고, 8시간만에 회의는 다시 유회되었다. 회의는 가고 혼란과 분열은 남았다. 만화에서 보면 어둠의 세력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현직의 노동조합 간부로서, 나는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 없다. 책임지는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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