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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페미니즘[여이연 08여름강좌] 2-4,5

 

4.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외부에 존재하는 ‘노동’

▶(나의 생각) 여기에서 <외부>라고 하는 말은 ‘가사노동=사적인 노동 영역’이라는 범주 외부를 가리키고 있는데,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쓰이는 것 같다.

▶(나의 생각) 여기서 주요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생산양식의 의미가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단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인 개념이며, 한 역사적 시대의 지배적인 생산 체제 전체를 생산양식이라 한다. 그러므로 한 시대에 하나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있을 뿐이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생산양식 외의 다른 어떤 생산양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한 역사적 시대에 지배적인 생산양식인 자본주의 생산양식 외에 다른 어떤 생산양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지닌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물론 다른 생산양식이 나타날 가능성을 지닌 싹을 지배적 생산양식이 자기 안에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시대에 두 개 이상의 생산양식이 양립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봉건제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생산양식인데, 그 속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싹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봉건제 생산양식이라고 하지, 봉건제 생산양식+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생산양식 체제가 2가지의 질적으로 서로 다른 운동 과정, 즉 자본의 자기 생산 운동 과정과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운동 과정으로 이루어져서 이런 혼동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두 과정은 서로 각기 다른 운동 과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결코 그 운동 과정을 자신의 운동 과정의 결과로 삼지 않는다. 즉 애초에 자본은 노동자의 자기 생산을 자신의 운동 과정의 최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고(목적으로 삼게 되면 자본은 더 이상 자본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해체된다), 노동자는 자본의 최대 이익 생산을 위하여 자신을 인간으로서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는 이렇게 2개의 이질적인 운동 과정의 통일로 구성되어 있다. 이 2개의 운동 과정 중에서 <가사노동>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운동 과정은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과정’이다. 가사노동이 없이는 노동자의 자기 생산은 불가능하다.   


① 존 해리슨, “가사노동의 정치경제학(1973)”

- 사회주의 경제학회에서 발표. 사회주의 경제학회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스 분석의 잠재적인 교차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보다는 마르크스 분석에 보다 주요한 관심이 있었다.

- 가사노동을 “경제 사회체계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지배적 양식에 의해 창조되거나 혹은 선택된 종속양식”.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양식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생산양식을 구성한다고 주장.

▶(나의 생각) 가사노동과 관련하여 이 2개의 설명은 얼핏 보면 서로 모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전자의 설명에서 가사노동이 지배적 양식인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창조된 ‘종속적 양식’이라고 한 것이라고 해 놓고서는 후자의 설명에서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생산양식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종속양식=명확히 구별되는 생산양식>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종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산양식의 맹아 형태를 띠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존 해리슨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② 폴 스미스.

- 가사노동 논쟁과 생산적, 비생산적 노동에 대한 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관련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생산양식의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엄격성이 부족하다는 것.

▶(나의 생각)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내 생각엔 생산양식의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엄격성이 부족한 것은 포 스미스 자신이 아닐까 한다.

- 필요노동과 생산 노동의 혼동.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존재 조건을 확립해 주는 활동들은 비록 그것들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하여 기능을 갖는다 할지라도 외적인 것.

-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위한 외부적 필요성으로 개인화된 가사노동”

- 가사노동 논쟁에서 생산/비생산 논쟁 모두 가사노동이 사적인 노동으로 된 것, 즉 사회적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성립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오류는 두 입장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 이 배제된 부분을 포함시키고자 한다는 것.

- 가사노동을 소외시킨 것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것.


가사노동을 여성억압을 구체적 역사 속에서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열쇠로 파악된다. 즉 가사란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특수한 종속을 규정하는 중심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할 거리)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사노동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논의가 여성의 지위/억압/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5. 여성주의 정치경제학과 가사노동

- “보이지 않는 가슴”

- “싸이버타리아트”

--> 강사 선생님께서 위 주제와 관련해서 보아야 할 책 목록을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가슴”이 영화라고 말씀하셨는지, 책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딴 짓을 하고 있었나 보다.^^ 


(참고문헌) 

- 아네트 쿤, 앤 마리 울프, 『여성과 생산양식』, 강선미 역, 도서출판 겨레, 1986.

- 조세핀 도너번, 『페미니즘 이론』, 김익두, 이월영 역, 문예, 1993.

- 레오뽈디나 포트 뚜나띠, 『재생산의 비밀』, 윤수종 역, 박종철출판사, 1997.

- 로즈마리 통, 『페미니즘 사상』, 이소영 역, 한신문화사, 1995.

- 어휼러 휴즈, 『싸이버타리아트』, 신기섭, 갈무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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