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3장. 이성의 시대(18세기 : 영국과 프랑스) 2

▲ 조수아 레이놀즈 경(Sir Joshua Reynolds : 1723 - 92) ▼

- 호가스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서야 비로소 18세기 영국의 상류사회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린 영국의 화가 조수아 레이놀즈 경이 탄생했다.” (464쪽)

- “그는 미술가들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 거장들의 장점이라고 불리는 것들, 이를테면 라파엘로의 소묘, 티치아노의 채색 등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모방하는 것이라는 카라치(pp.390-1쪽)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464쪽)

- “그의 강연들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주제의 탐구를 권하는 말로 가득 차 있다. 왜냐하면 레이놀즈는 거창하고 감동적인 것만이 ‘위대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화가라면 대상을 세밀하고 예쁘게 묘사해서 인류를 즐겁게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그의 신념의 위대함으로 사람들을 개선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이것은 레이놀즈가 제3회 강연(영국 왕립 미술원의 초대 원장으로서의 강연들 중 하나)에서 한 말이다.” (464쪽)

-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나 풍경화의 경우처럼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손으로 묘사하는 작업은 어딘가 비천한 감이 없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회화란 단순한 손재주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 즉 레니의 <오로라(새벽의 여신)>(p.394, 도판 253)이나 푸생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p.395, 도판 254)와 같은 주제를 그리는 데에는 해박한 학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465쪽)

 

▲ 레이놀즈의 <조지프 바레티의 초상>(도판 304, p.466) ▼

- “그는” “상류사회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종류의 미술은 초상화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465쪽)

- “이미 반 다이크가 귀족 사회의 초상화의 전형(典型)을 확립해 놓았으며 후세의 인기 있는 초상화가들은 모두 이 전형에 도달하려고 애썼다. 레이놀즈는 반 다이크 이후의 초상화가들 중 누구 못지않게 모델을 돋보이게 미화할 수 있었으나 그는 모델의 성격과 사회저인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의 초상화에 무엇인가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을 덧붙이기를 좋아했다.” (465쪽)

- “도판 304는 존슨 박사(Samuel Johnson : 1709 - 1784 ; 18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시인·비평가) 그룹의 한 지식인이며 이탈리아 출신의 학자로서 영어-이탈리아 어 사전을 편찬하고 후에 레이놀즈의 《강연집》을 이탈리아 어로 번역한 조지프 바레티의 초상이다.” (465쪽)

 

▲ 레이놀즈의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울즈 양>(도판 305, p.467) ▼

- “어린이의 초상화를 그려야 할 때에도 레이놀즈는 배경을 신중하게 선택함으로써 그 그림을 단순한 초상화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도판 305는 그가 그린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울즈 양>의 초상화이다.” (465쪽)

- “우리는 벨라스케스도 또한 강아지와 함께 있는 어린이의 초상화를 그렸음을 기억한다(p.410, 도판 267). 그러나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눈으로 본 질감과 색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레이놀즈는 우리에게 소녀가 애완용 강아지에게 기울이고 있는 애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465-7쪽)

- “그는 이 귀여운 아이의 성격을 표현하고 그 성격의 우아함과 매력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려고 하였다.” (467-8쪽)

 

▲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 1727 - 88)의 <하버필드 양의 초상>(도판 306, p.469) ▼

- 레이놀즈의 “호적수였으며 그보다 불과 네 살 아래였던” 게인즈버러가 “그린 비슷한 또래의 소녀 초상화”가 바로 이 그림인데, “작은 숙녀가 망토의 끈을 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468쪽)

- “그녀의 행동에는 감동적이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애완용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 레이놀즈의 창안처럼 게인즈버러의 그 단순한 행동(산책을 가기 위해 막 옷을 입고 있는 행동)을 매우 온화하고 예쁘게 만들었다. 게인즈버러는 레이놀즈에 비해 ‘창안’에 훨씬 관심을 덜 가지고 있었다.” (468쪽)

- “이 두 사람(레이놀즈와 게인즈버러)의 관계는 라파엘로의 방법을 부활시키려 했던 유식한 안니발레 카라치(p.390)와 자연 이외는 어떤 스승도 인정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카라바조(p.392)를 연상시킨다.” (468쪽)

- “게인즈버러는 ‘지성적인’ 체할 의향이 전혀 없었으며 단지 그의 뛰어난 붓놀림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과시할 수 있는 솔직하고 틀에 박히지 않는 초상화를 그리길 원했다.” (468쪽)

- “그의 빠르고 성급한 붓질은 우리에게 프랑스 할스(p.417, 도판 270)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의 많은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색조의 섬세함과 세련된 붓질은 오히려 바토의 그림(p.454, 도판 298)을 상기시킨다.” (468쪽)

 

▲ 게인즈버러의 <시골 풍경>(도판 307, p.470) ▼

- “레이놀즈가 고대사에 나오는 야심적인 신화의 장면이나 일화들을 그릴 시간과 여유를 갈망한 반면에, 게인즈버러는 그의 경쟁자가 경멸했던 바로 그런 주제, 즉 풍경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469쪽)

- 게인즈버러의 “대부분의 풍경화는” 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린 습작(도판 307)으로 남아 있다. 이 그림들에서 그는 영국 시골의 나무들과 언덕들을 아름다운 풍경이 되도록 짜 맞추어서 그 당시가 풍경 정원이 유행하던 시대였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왜냐하면 게인즈버러의 습작들은 자연을 직접 묘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그림들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반영시키기 위한 풍경 ‘구성 작품’들이었다.” (469-70쪽)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 Siméon Chardin : 1699 - 1779) ▼

- “18세기 영국의 제도와 영국인의 취향은 이성의 법칙을 갈망했던 유럽의 모든 사람들이 찬미하는 모델이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는 미술이 신처럼 군림한 통치자들의 권력과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70쪽) (미술의 상품화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프랑스에서도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중후하고 장엄한 바로크 양식이 18세기 초에 오면 바토의 로코코 미술 작품(p.454, 도판 298)과 같은 보다 섬세하고 친근한 감각 효과에 밀려 우행에서 벗어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귀족풍의 몽상적인 세계는 퇴조하기 시작했다.” (470쪽)

- “화가들은 당대의 보통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는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 제일 위대한 화가는 샤르댕으로 그는 호가스보다 두 살 아래인 화가였다.” (470쪽)

- “도판 308(<감사기도>, p.471)은 그의 매력적인 그림 중의 하나로서 한 여인이 식탁 위에 저녁을 차리면서 두 아이들에게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말하는 소박한 장면을 보여준다.” (470쪽) (이는 근대에서의 남녀 성별분업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샤르댕은 이러한 서민 생활의 평온한 광경을 좋아했다. 눈에 띄는 효과나 날카로운 비유를 추구하지 않고 가정적인 정경의 시정(詩情)을 느껴 화폭에 담은 면에서 그는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p.432, 도판 281)와 유사하다.” (470쪽)

- “그의 색채는 고요하고 은근하다. 그리고 바토의 번쩍거리는 그림과 비교할 때 그의 작품은 광채를 잃은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원칙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거기에서 신중하게 구사된 색조의 미묘한 농담의 변화와 꾸밈없어 보이는 화면 구성의 솜씨를 발견하게 된다.” (470쪽)

 

▲ 징 앙투안 우동(Jean-Antoine Houdon : 1741 - 1828) ▼

- “영국에서처럼 프랑스에서도 권려의 겉치레보다는 서민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초상 미술에 도움을 주었다. 아마도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초상 미술가로는” “조각가인 우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472쪽)

- “그의 훌륭한 흉상들을 백여 년 전에 베르니니가 시작했던 전통(p.438, 도판 284)을 이어받고 있다. 도판 309는 우동이 제작한 흉상 <볼테르 상>(p.472)인데, 우리는 이 위대한 이성의 옹호자의 얼굴에서 날카로운 기지와 통찰력 있는 지성과 또한 위인의 깊은 동정심을 ‘읽을 수’ 있다.” (472쪽)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 1732 - 1806) ▼

- “영국에서 게인즈버러의 스케치에 염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자연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picturesque)’ 측면에 대란 취향은 마침내 18세기의 프랑스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472쪽)

- “도판 310(<티볼리에 있는 에스테 별장의 넓은 정원>, p.473)은 프라고나르의 소묘인데 그는 게인즈버러의 세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 또한 상류사회의 테마를 그리는 바토의 전통을 따르는 매력적인 화가였다.” (472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