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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이성의 시대(18세기 : 영국과 프랑스) 1

23장. 이성의 시대 (18세기 : 영국과 프랑스)

 

▲ 영국 경험론의 특징 ▼

- 이 시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리 잡고 있던 철학적 이론 경향은 베이컨으로부터 시작하는 영국 경험론과 이 경험론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기계적 유물론이다.

- 영국의 경험론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의 감각 또는 지각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감각 대상 또는 지각 대상이 우리에게 감각적인 정보 데이터를 보내 주면 우리가 그 감각 데이터를 받아들여서(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을 <경험>이라고 한다) 그 감각 대상에 대한 관념(idea)을 비로소 가지게 되며, 이 관념이 대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참다운 앎> 또는 <진리>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론이다.

- 그런데 이 영국 경험론은 우리의 일상 경험으로 볼 때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경험론에서 말하는 진리 또는 참다운 앎이 그렇지 않은 것일 수 있는 경험적 반박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범죄자의 목격자가 2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목격자는 그 범인의 얼굴이 장동건처럼 생겼다고 하고, 다른 목격자는 그 범인의 얼굴이 배철수처럼 생겼다고 진술했다. 그럼 범인의 얼굴에 대한 진술은 누가 맞는 것인가?

- 이러한 불일치는 우리의 관념(장동건, 또는 배철수)의 원인인 감각적 경험 대상(범인 자체)을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대상은 한결 같아야 하는데(그래야만 그 대상에 대한 앎, 사실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장동건이었다가 배철수였다가)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의 지각 또는 그 지각에 의한 관념뿐이며, 이러한 지각 또는 관념에 따라 감각 대상인 사물이 존재할 수밖에, 즉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이렇게 해서 영국 경험론은 두 가지 형태로 갈라지는 모습을 띠게 된다. 첫 번째는 우리의 감각 대상에 의해서 우리의 지각 또는 관념이 형성된다는 견해로서 감각 대상(즉 객관)이 더 우선적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지각 또는 관념에 따라 우리의 감각 대상이 존재한다는 견해로서 우리의 지각 또는 관념이 더 우선적이라는 주장이다. 첫 번째를 주장하는 철학자는 로크라는 철학자이고 두 번째를 주장하는 철학자는 버클리라는 철학자이다.

- 이 두 철학자에 비유될 수 있는 영국의 두 회화 예술가가 있다. 로크에 비유될 수 있는 회화가는 게인즈버러라고 할 수 있고, 버클리에 비유될 수 있는 회화가는 레이놀즈라고 할 수 있겠다.

- 이러한 영국 경험론이 18세기 영국 미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 1632 - 1723) ▼

- “그가 지은 세인트 폴 대성당(도판 299,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p.458)을 불과 20여 년 전에 로마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교회(p.436, 도판 282, <전성기 바로크 양식의 로마 교회 : 산타 아그네스 성당>)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457쪽)

- 유사점 : “렌의 성당은 보로미니의 교회당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중앙의 둥근 지붕과 양쪽의 탑들과 고대 신전의 정면을 연상시키는 정면 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로미니의 바로크식 탑과 렌의 탑 사이에는 확실히 유사성이 있으며 특히 2층의 경우가 그렇다.” (457쪽)

- 차이점 : “이 두 정면 현관들이 주는 전반적인 인상은 대단히 다르다. 세인트 폴 성당은 곡선적인 곳이 없어서 운동감을 암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강인함과 안정감을 준다. 건물에 당당함과 고귀함을 주기 위해서 사용된 쌍으로 나란히 선 원주들은 로마의 바로크 양식보다는 오히려 베르사유 궁전의 정면(p.448, 도판 291)을 연상시킨다.” (457쪽)

- “세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장식에는” 바로크와 같은 “괴상한 것이나 환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의 모든 형태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모델들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다. 건물의 각 형태와 부분은 그것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은 그 자체로 보여질 수 있다. 보로미니나 멜크 수도원을 지은 건축가의 자유분방함에 비하면 렌은 우리들에게 은근하고 침착한 인상을 준다.” (457쪽)

 

▲ 렌 경의 <런던의 세인트 스티븐 월브룩 교회>(도판 300, p.459) ▼

- “신교와 가톨릭 교회 건축의 대조는 렌이 설계한” “월브룩 교회(도판 300)와 같은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면 훨씬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교회”의 “목적은” “천국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도들의 생각들을 집중시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457쪽)

 

▲ 벌링턴(Burlington : 1695 - 1753)과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 1685 - 1748) ▼

- “교회들이 그랬듯이 성(城)들도 동일한 경향을 따랐다. 영국의 어떠한 왕도 베르사유와 같은 궁전을 짓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자금을 모을 수 없었고 영국의 귀족들 또한 사치와 방종의 면에서 독일의 제후들과 경쟁하려 하지 않았다.” “18세기 영국의 이상(理想)은 성이 아니라 교외의 저택이었다.” (459쪽)

- 이러한 교외 저택의 선호는 중세 봉건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부르주아 가족 형태인 근대 핵가족 문화, 더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생산과 그 생산에 따른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 즉 효율성에 부합하려는 경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교외의 저택들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보통 바로크 양식의 지나친 호사스러움을 배격했다. 그들의 야심은 그들이 ‘고상한 취향’이라고 생각한 규칙을 하나도 위반하지 않고 고전 건축의 실제적인 또는 그렇다고 주장하는 법칙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따르려는 것이었다.” (459쪽)

- “도판 301(<런던 치직 저택>, p.460)은” “팔라디오 식 별장인 치직(Chiswick) 저택이다.” “이 건물은 정말로 팔라디오의 로톤다 별장(p.363, 도판 232)과 대단히 유사하다.” (459-60쪽)

- “당당한 현관은 코린트 식 기둥 양식(p.108)을 지닌 고대 신전의 정면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p.73). 건물의 벽은 단순하고 평범하여 곡선이나 나선형이 없고 지붕 위를 장식하는 조각상도 없으며 그로테스크한 장식도 없다.” (460쪽)

- “그 이유는” 영국의 “고전주의”와 경험론에 기인하고 있다. (460쪽)

 

▲ 도판 302(<윌트셔(Wiltshire) 주 스타우어헤드의 정원>, p.461) ▼

- “영국의 전반적인 기질은 바로크 식 장식에 나타난 공상의 비약에 반대했고 또 감정을 압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예술에도 반대했다.” “베르사유 궁의 정원 양식 같이” “실제 건물 이외의 주변 지역까지 확장된 형식적인 느낌을 주는 정원은 불합리하고 인공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460쪽)

-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정원이나 공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반영해야 하며 화가의 눈을 매혹시키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모아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켄트 같은 사람은 팔라디오 식 별장의 이상적인 주변 경관으로서 영국의 ‘풍경 정원(landscape garden)’을 고안해냈다.” (460쪽)

- “경치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서도” 영국인들은 “남유럽의 한 화가에게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대체로 클로드 로랭의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460-1쪽)

- “18세기 중엽에 조성된” 이 도판의 “아름다운 정원 풍경을 로랭과 팔과디오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배경에 있는 ‘신전’은 팔라디오의 로톤다 별장(p.363, 도판 232 : 이것은 본래 로마의 판테온을 본떠 지은 것이다)을 연상시키는 한편 연못과 다리, 로마의 건물을 연상케 하는 전체적인 경관은” “ 영국 풍경의 아름다움이 클로드 로랭의 회화(p.396, 도판 255)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461쪽)

 

▲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 1697-1764) ▼

- 호가스는 “사람들이 ‘그림의 효용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청교도적인 전통이나 성장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도 예술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에게 착한 인의 보상과 악한 일의 대가를 가르칠 만큼 교훈적인 내용을 그릴 것을 계획했다.” (462쪽)

- “그는 방탕과 나태로부터 범죄와 죽음에 이르는 <탕아의 편력(A Rake’s Progress)>이나 소년이 고양이를 놀리는 일에서부터 어른들의 잔인한 살인에까지 이르는 <잔혹의 네 단계(Four Stages Gruelty)>를 보여주려고 했다.” (462쪽)

- “그가 이러한 교화적(敎化的)인 이야기와 경고의 사례들을 어찌나 잘 그렸던지 이 일련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다 그 그림이 의미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훈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462쪽)

-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의 대가들과 그들이 회화적인 효과를 내는 데 사용한 방법을 세심하게 연구”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익살스런 에피소드로 그림을 채우고 또 인간의 유형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얀 스텐(p.428, 도판 278)과 같은 네덜란드의 대가들을 잘 알고 있었다.” (462쪽)

- “그는 또 당시의 이탈리아 화가들과 구아르디(p.444, 도판 290) 풍의 베네치아 화가들의 수법도 알고 있었다. 구아르디로부터 그는 붓을 두세 번 힘차게 휘두름으로써 한 인물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 (462쪽)

- “도판 303(<베들럼의 탕아>, p.463)은 <탕아의 편력>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빈털터리가 된 탕아가 베들럼 정신 병원에서 광란하는 미치광이로 인생을 끝맺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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