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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자연의 거울(17세기 네덜란드) (2)

▲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 1606 - 1669) ▼

- “네덜란드가 낳은 최고의 화가이며, 그리고 아마도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420쪽)

- “그는 성공적이고 인기 있는 화가였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파산의 비애와 진실로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외로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에 관한 놀라운 기록인 일련의 자화상들을 남겨” 놓았다. “이 자화상들”은 “일종의 독특한 자서전인 셈이다.” (420쪽)

 

▲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자화상>(도판 273, p.422) ▼

- 이 자화상은 “만년의 렘브란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을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420쪽)

-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고, 끊임없이 이난의 표정에 내포되어 있는 비밀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탐구하려는 화가의 꿰뚫어보려는 응시가 있을 뿐이다.” (420쪽)

- 꾸미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측면에서 가톨릭적 바로크와 대립되는 부르주아·프로테스탄트적 바로크의 특징을 엿볼 수 있으며, 붓놀림이 간결해 보인다는 측면에서도 이 특징을 엿볼 수 있다.

 

▲ 렘브란트 반 레인의 <얀 지크스>(도판 274, p.422) ▼

- <자화상>에서의 렘브란트의 면모를 <얀 지크스>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 이 초상화 역시 인물을 정중앙에 배치하지 않고 살짝 오른쪽에 치우쳐 배치하였지만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크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얀 지크스의 장갑 낀 왼손을 단순한 스케치 형태로 남겨둔 채 완성해 버렸다”는 점에서 부르주아·프로테스탄트적 바로크를 느낄 수 있다. (422쪽)

- “이 작품을 프란스 할스의 생생한 초상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할스는 우리에게 실감나는 스냅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렘브란트는 인물의 전 생애를 다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422쪽)

 

▲ 렘브란트 반 레인의 <무자비한 하인 이야기>(도판 275, p.423) ▼

- 이 그림은 “성경에 나오는 무자비한 하인의 이야기(마태오 복음18장 21-35절)를 묘사한 소묘이다.” “셈을 청산하는 날 커다란 장부를 살펴보는 남자와 함께 주인이 앉아 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 속을 뒤지는 것 같지만 그 모습으로 보아 빚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분주한 회계사와 위엄 있는 주인과 죄송스러워하는 하인의 상호관계가 몇 개 안 되는 선으로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423쪽)

- 여기서도 부르주아·프로테스탄트적 바로크를 엿볼 수 있다. “렘브란트는 이 장면의 내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제스처나 동작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연극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424쪽)

- 이 그림을 통해 렘브란트는 자신의 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렘브란트 반 레인의 <다윗왕과 압솔롬의 화해> ▼

-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루벤스나 벨라스케스 못지않게 번쩍이는 질감의 효과를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는 탁월한 솜씨를 지녔다. 렘브란트는 이들보다 밝은 색을 훨씬 더 적게 사용했다. 그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첫인상은 어둠침침한 갈색이다. 그러나 이 어두운 색조들은 몇 안 되는 밝고 현란한 색채와의 대조를 보다 강하고 힘차게 돋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 그의 몇몇 작품에 나타나는 빛은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424쪽)

- 빛과 색채의 이러한 사용을 통해서도 부르주아·프로테스탄트적 바로크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렘브란트 반 레인의 <설교하는 그리스도>(도판 277, p.426) ▼

- “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렘브란트도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판화가로서도 역시 위대한 거장이었다. 그가 사용한 기술은” “에칭(etching, 부식동판화)”이었다. (424쪽)

- “도판 277은 렘브란트의 에칭 작품 중의 하나인데 이것 역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424쪽)

- “당대의 다른 미술가들처럼 렘브란트도 카라바조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카라바조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역시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427쪽)

- “렘브란트의 자유로운 제작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가 인물들을 배치하는 데 얼마나 많은 예술적 지혜와 기술을 사용했는지 잊게 만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군중들만큼 교묘하게 균형이 잡힌 예는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을 겉보기에는 우연한 듯이 그리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군상들로 배치하는 기술을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전통에서 배웠다. 그는 결코 이탈리아 미술을 경멸하지 않았다.”(427쪽)

 

▲ 얀 스텐(Jan Steen : 1626 - 1679) ▼

- "대부분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유쾌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북유럽 미술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도판 140(p.211)이나 도판 177(p.274)과 같은 중세의 세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427쪽)

- “우리는 농민생활의 유머러스한 장면과 묘사를 통해서 화가로서의 솜씨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지식을 과시했던 브뢰헬(p.382, 도판 246)eh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기억한다. 이러한 전통의 흐름을 완성시킨 17세기 화가는 얀 반 호이엔의 사위인 얀 스텐이었다.” (427쪽)

- 도판 278(<세례 잔치>, p.428)은 평민들의 유쾌한 생활의 한 장면인 세례를 축하하는 장면이다.“ (428쪽)

- 이 그림의 “모든 세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화가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화면에 혼합시킨 솜씨가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전경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인물만으로도 한 폭의 훌륭한 그림이 되고 있다. 원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작품의 화려한 색채들이 주는 따사로움과 부드러움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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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콥 반 로이스달(Jacob van Ruisdael : 1628 - 1682) ▼

- 얀 스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보다 렘브란트의 정신에 가까운 분위기를 표현한 다른 화가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또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 풍경화가 야콥 반 로이스달이었다. 로이스달은 얀 스텐과 동년배로 위대한 네덜란드 미술가들의 제2세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428-9쪽)

- “그는 생애의 전반기를 하를렘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보냈는데 그 도시는 숲이 우거진 모래 둔덕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는 이 넒은 둔덕에 생겨나는 명암의 효과를 즐겨 관찰했으며 점점 ‘한 폭의 그림 같은’ 숲의 풍경(도판 279, <나무로 둘러싸인 늪이 있는 풍경>, p.429)을 전문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429쪽)

- “로이스달은 검고 어두컴컴한 구름, 어두워져 가는 저녁 햇살, 폐허가 된 성과 콸콸 흐르는 개울을 그리는 전문가가 되었다. 클로드 로랭이 이탈리아 풍경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화가였듯이 그는 북유럽 풍경의 시정을 발견해낸 화가였다. 그 이전의 어떤 미술가도 자연 속에 반영되는 자기 자신의 정서와 기분을 로이스달만큼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사람은 없었다.” (429쪽)

 

▲ 윌렘 칼프(Willem Kalf : 1609 - 1693) ▼

- "네덜란드 화가 중에서 가장 ‘전문화’된 분야인 정물화를 그처럼 흥미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러한 점에 있다.“ (429쪽)

- “정물 그림에서 화가들은 그들이 그리고 싶은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그들의 상상에 맞게 테이블 위에 배치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정물화는 미술가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실험장이 되었다.” (430쪽)

- 예를 들어 윌렘 칼프 같은 화가는 빛이 색유리 위에서 어떻게 반사되고 흩어지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또 색채와 질감의 대조와 조화를 연구하고, 화려한 페르시아 양탄자와 번쩍이는 도자기, 다채로운 색깔의 과일, 윤이 나는 금속 장식물들을 참신하게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도판 280 ; <성 세바스티아누스 사수들의 조합의 뿔로 만든 술잔과 바다 가재 및 유리잔이 있는 정물>, p.431). (430쪽)

- 이처럼 “가사가 없어도 위대한 음악이 될 수 있듯이, 중요한 주제가 없는 위대한 그림도 있을 수 있다. 17세기 화가들이 가시적인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였을 때 모색했던 것은 중요한 주제가 없이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이 새로운 발견이었다(p.19, 도판 4). 그래서 동일한 종류의 주제만을 평생 동안 그린 네덜란드의 전문 화가들은 결국 주제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430쪽)

 

▲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Jan Vermeer van Delft : 1632 - 1675) ▼

- “이러한 거장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렘브란트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난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였다.” “그의 작품 중에는 의미심장하고 거창한 주제를 다룬 것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작품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가옥의 실내에 서 있는 순박한 인물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430쪽)

- 어떤 작품은 우유를 따르고 있는 여자처럼(도판 281 ; <부엌의 하녀>, p.432)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단 한 여자만을 보여준다. 베르메르와 함께 유머러스한 요소는 풍속화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의 그림은 사실 인물이 들어 있는 정물화이다.“ (430쪽)

- “이렇게 단순하고 가식이 없는 그림이 불후의 명작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질감, 색채 및 형태들을 치밀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베르메르의 표현 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430쪽)

- “그 밝고 정확한 화면 속에는 고심하거나 힘들여 제작한 흔적이 없다. 형태를 흐릿하게 만들지 않고도 사진의 거친 대조를 교묘히 부드럽게 수정하는 사진사처럼 베르메르는 윤곽선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입체감과 견고함의 인상을 주었다.” (430-433쪽)

- “베르메르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정경의 아름다움을 참신한 눈으로 보게 만들었으며, 천의 색깔을 고조시키는 창문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보았을 때 그가 느꼈을 감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4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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