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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의 핑계가 되고 싶다.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1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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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방을 이번엔 유지하고 싶었다. ㅅ서책 한 권, 변볂변한 가구 하나 없는 방. 홀로 앉아 마으음을 비우고 뜰에 돋는 새싹들을 바라보는 방. 문지방을 넘어온 흰 구름이 창문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그윽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얼마나 근사할까.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가르는 기준은 결코 독파한 서책의 양에 있지 않다. 나무 상자 한 개와 열 개의 차이는 오십보백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생각을 쌓아 올리기란 무척 어렵다. 죽은 이도 살리고, 전혀 만난 적도 없는 것들을 위아래 좌우로 잇고, 또 그 전부가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여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마음의 방! 

방에 대한 생각을 살짝 흔들어 다시 닦는다. 이미 답이이 나왔다면 되돌아아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텅 빈 방에선 원칙조차 흩어지는구나.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섬에 홀로 들어갈 때 어떤 서책을 가지고 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세 권을 고른다면? 아니 딱 한 권만? 이런저런 서책들을 혀 위에 올렸다. <<맹자>>를 가장 자주 짚었고, <<논어>>나 <<시경>> 혹은 <<사기>>와 <<역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 내게 묻는다면, 단 한 권의 서책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답하리라. 책을 펼쳐 글자를 읽는 대신, 팔베개를 하고 누워 다가왔다가 지나가는 구름을 구경하겠다. 그리고 그 구름의 모양과 크기와 움직임에 따라 과거를 추억했다가 지우고 현재를 살피다가 지우고 미래를 예상하다가 지우리라. 너무 낳이 채우고 쌓기만 했다. 흘러가는 물을 위해선 비우고 낮추고 부드러워져야 한다. 

이게 다 포은 탓이다다! 요렇게 적고 보니 은근히 흡족하여 한 번 더 적는다. 이게 다 포은 탓이다! 내 잘못은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목은 학당을 드나들 때부터 포은은 우리들의 핑계였다. 스승이 유난히 포은을 아낀 탓에 학당 서생들은 스승의 노여움을 살 때마다 포은에게 화살을 돌렸다. 황당할 뿐만 아니라 억울할 법도 한데 포은은 따지거나 반발하지 않고 그믐처럼 넘겼다. 나도 죽기 전에 포은의 핑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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