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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지혜^^...

이번 학기에 <영화로 철학하기> 수업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

가지고 있던 영화를 이리저리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는데,

그 중에서 인상이 남는 에니매이션 영화가 <고양이의 보은>과

<귀를 귀울이면>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영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것을 보고 고양이에 대해서 다시금 옛날의 기억과 추억이 생각났다는 얘기다.

 

이 영화들 속에 나오는 고양이는 푼베르트 폰 직키켄 남작 고양이와 뮤타(그런데 극 중에서 종종 부타로 불리운다. 그런데 부타는 일본 말로

돼지라는 뜻이다)라는 고양이는 청소년(이 두 영화에서 나오는 여학생들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다.

그래서 청소년이란 표현을 쓴다)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의 길라잡이로서

삶의 지혜의 상징들이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란 무엇일까, 또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사실상 이번 <영화로 철학하기> 수업의 커다란 주제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유기적으로 잘 선정해야 하는데, 좀 걱정이다. 혹시 이 주제와 관려나여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으면 소개하시라. 소개하신 분들께는 나중에 맛있는 저녁을 대접할 뜻이 있슴다^^.),

동시에 실제 고양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물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두 번째 물음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두 물음이 서로 연관성을 가질 수 있고, 구체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물음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어렸을 때, 고양이와 한 10년간 같이 지내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자라던 곳은 달동네였다.

달동네라 좁은 골목길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개를 키우는 집도 몇 없었고, 더군다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개, 고양이를 같이 키웠던 집은 우리집밖에 없었을 것이다.

 

옛말에 고양이는 주인이 없다고 했다.

이건 주인과의 관계를 볼 때, 개에 비하면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낮다.

충성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주인과의 관계맺음 방식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주인이 잘 해 주면 있고, 주인이 구박하면 그냥 떠나 버린다.

그리고 주인집에 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산다.

 

이전에 우리집에 있었던 고양이의 하루 일과(?)를 다음과 같다.

(우리집은 고양이를 절대 묶어서 기르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길렀던 고양이들은

모두가 도둑 고양이 출신들이었다. 물론 이삼 일 정도는 묶어 놓았다. 앞으로 우리집이 고양이가

같이 살 집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그 당시 우리집은 아침 8시쯤에 아침밥을 먹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아침 밥상을 부엌에서 가지고 나오는 순간 고양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담을 타고 집으로 와서 마루 앞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 밥상 위로 올라오려 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고양이의 버릇을 고약하게 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한두 차례 주의를 주었다.

그 후에는 절대로 밥상위로, 심지어는 마루 위로 올라서지 않았다.

우리가 밥을 먹고 난 다음 고양이에게 밥을 주었다.

고양이는 한 번에 절대로 많이 먹지 않는다.

조금씩 자주 먹는다.

밥을 먹고 난 후에 고양이는 휴식 시간을 가진다.

이때 고양이를 건들면 안 된다.

고양이를 귀찮게 굴면 처음에 고양이는 못 본 척하면서 귀찮아 하는 기색을 보인다.

<귀를 귀울이면>이나 <고양이의 보은>에서 뮤타가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는데,

정말 그 표정과 똑같다.

좀더 귀찮게 굴면 담을 타고 집 밖으로 나가 버린다.

이때 몇 번 더 귀찮게 굴면 아예 집을 나가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밥 먹고 난 후에 휴식을 취하는 고양이를 절대로 건들면 안 된다.

 

휴식을 취하고 난 후에 10시쯤에 고양이는 슬슬 마실을 나간다.

그런 다음에 점심 먹을 때 아침 때처럼 정확하게 나타난다.

점심 먹고 늘어지게 한숨 잔 뒤에 또 마실을 나간다.

마실 나가서 뭐하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고양이들끼리 모여서 재미난

놀이를 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고양이의 시간 지키기는 일명 칼 같다.

나와 동생이 학교 갔다가 집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담을 타고

와서 우리를 마중한다. 온갖 아양을 떨면서...^^...

고양이의 아양은 어떨 때는 닭살 돋을 정도이다.

아양을 떨면서 고양이는 우리가 하자고 하는 놀이를 군소리 없이 받아주면서 같이 논다.

그런데 그 노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

정확하게 30분 정도...!!

30분이 지나면 심드렁한 표정을 지면서 또 휴식 시간을 가진다.

물론 이때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다가 또 마실을 나간다.

 

저녁을 먹을 때 또 칼 같이 나타난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서는 바로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나와 동생하고 한 1시간 가량 또 놀아준다(정말 놀아준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러고선 잠시 쉬다가 8시 반쯤 또 집을 나간다.

그러다가 자정쯤 집에 들어온다.

집에 들어와서는 우리 옆에서 꼭 붙어 잔다.

겨울에는 우리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와서는 겨드랑이 밑이나 배 위에서 잠을 잔다.

그러다가 한 새벽 3시쯤 나간다.

겨울에는 방문을 꼭 닫고 자는데, 고양이는 자기가 방을 나갈 때 방문 열어달라고

방문을 발톰으로 긁는다. 그래서 방문을 열어 주면 밖으로 나간다.

아마도 오줌을 누고서 또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나가는 것일 게다.

고양이는 절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배설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배설물을 절대 보여 주지 않고 땅에 파 묻는다.

고양이의 배설물 냄새는 지독하다.

아마도 자신의 배설물이 지독한 줄을 알아서 사람들에게 냄새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아침밥 먹을 때면 또 정확히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고양이의 삶은 <따로 또 같이> 방식의 삶인 것 같다.

고양이는 절대 구속 받으면서 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들뢰즈가 말하듯이, 유기적인 관계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기계적인 관계의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 같다.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즉 맑스 식으로 말하자면,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대하는 관계의 방식으로 사는 것 같다.

 

고양이와의 의사소통은 그 시기가 개보다는 좀 빠른 것 같다.

약 두 달 정도만 같이 지내면 고양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서로가 다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만 들어준다.

그리고 서로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기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구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실제 고양이의 삶의 방식인 것 같다.

이제 첫 번째 물음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지혜가 무엇인지의 실마리가 잡힐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삶의 방식, 지혜는

우리 인간의 삶에 좋은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종기 님의 시가 생각난다.

 

# 寓話의 江 1 #

- 마 종 기 지음 -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 종 기 시집 <그 나라 하늘빛>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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