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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 그리스 철학-5.

 

(6) 피타고라스학파


피타고라스학파는 순수한 학문적 학파라기보다는 종교적 학파에 가까웠다. 이 학파는 수적 조화(황금 비율, 하나(一)와 여럿(多), 음수와 양수, 홀수와 짝수 등)와 윤회설을 믿었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다. 이 수적 조화에 의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하학이 엄청나게 발달하였다. 이 학파 초기에는 귀족들만이 이 학파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평민은 될 수 없었다(귀족들이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이었고 그리하여 토지는 거의 대부분이 귀족들의 소유였다. 그리고 토지의 정확한 분을 통한 토지 소유는 귀족들의 관심사였고, 이것이 기하학을 엄청나게 발달시킨 주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사회 혼란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기에 사회적 혼란을 종교적으로 극복해 보고자 노력한 학파가 또한 피타고라스학파였다. 

이 학파 역시 <다(多)의 공존>을 꾀하였는데, <수적 조화>를 사회의 상황에 적용시켜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당시의 일반 평민에게도 이 학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다시 말해서 일반 평민의 고통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하였고, 따라서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고통은 디오니소스적 고통과 오르페우스적 고통으로 표현된다.

디오니소스는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서 아버지는 제우스신이고 어머니는 인간이다. 어느 날 제우스는 자신의 본처인 헤라 몰래 지상에 내려왔다가 지상의 이름모를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한다. 그래서 그 여인과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디오니소스였다. 헤라가 매우 질투심이 강한 여신이라서 제우스도 함부로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때문에 제우스는 헤라 몰래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허벅지 속에 감춘다. 그러나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을 핀 것을 눈치 채고는 디오니소스의 생모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그러나 다행히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눈을 피하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허벅지 속에서 크게 된다. 더 이상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클 수 없었던 디오니소스를 제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생모의 여동생 부부에게 맡겨져 크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디오니소스를 직접 죽이는 대신에 디오니소스의 양부모(디오니소스 생모의 여동생 부부)를 디오니소스가 보는 데에서 생모처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이를 본 디오니소스는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디오니소스는 집을 떠나지만,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디오니소스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를 붙잡고서 그를 도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생모가 헤라에게서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이 헤라와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더해서 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디오니소스는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제우스는 이런 디오니소스를 불쌍히 여겨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이 신이 바로 이른바 축제의 신, 술의 신인 바쿠스(박카스)이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와 금실 좋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의 금실이 너무 좋아 신들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에우리디케는 독사에 물려 죽게 되고 하데스가 지배하고 있는 지하 세계(저승 세계)로 끌려가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너무 슬픈 나머지 지하세계로 내려가게 되었다.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하데스에게 간청하였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간청을 듣고 에우리디케를 돌 주겠다고 오르페우스에게 약속하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오르페우스가 지상 세계로 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상 세계의 문 앞에 거의 다 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가 잘 오고 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때 에우리디케는 지하 세계로 다시 끌려 가게 되었고 오르페우스는 너무나 상심하였다. 그 이후에 오르페우스는 오로지 에우리디케만 생각하고서 하프 연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하프 연주가 너무 애절하고 아름다워서 트라키아 처녀들의 혼을 온통 빼 놓았다. 트라키아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그래서 청혼을 하고자 하였으나, 오르페우스에겐 오직 에우리디케만 있었을 뿐 트리키아 처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트라키아 처녀들은 이에 분노하여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오르페우스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오르페우스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고 저마다 오르페우스의 신체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남아 있는 것은 오르페우스의 에우리디케에 대한 영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머리만 남게 되었다. 트리키아 처녀들은 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바다에 던져진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바다를 동동 떠다니다가 <레스보스>라는 섬에 떠밀려 왔다. 이를 불쌍히 여긴 무우사들(음악의 여신들)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다시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하프 연주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소리는 바드를 건너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세계 곳곳의 처녀들이 이 소리를 듣고 구름처럼 몰려들게 되었다. 이 섬은 금남의 왕국인 여인들의 왕국이 되었다. 이로부터 레스비언(여인들의 왕국인 레스보스 섬에 사는 사람들, 여성 동성애자)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의 일반 평민들의 고통을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의 고통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일반 평민들의 고통을 분담하여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했던 피타고라스학파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 불평등이 하나의 종교적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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