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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 그리스 철학-4.

 

(5) 원자론자들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이 지배하던 귀족 정치 체제 아래에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인간의 자유는 억압당함으로써 사회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민주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민주주의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 데모크리토스를 위시한 원자론자들이었다(사실 원자론자도 상인이 주도적이었던 상민(常民) 계급을 대변하였던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원자론자들은 위에서 말한 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만드로스도 민주주의자였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그리하여 <물질적 요소와 그 물질적 요소들 간의 운동>이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원자론자에게 있어 물질적 요소는 원자이다. 원자는 무수히 많은데,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4가지 요소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초기 원자들의 속성은 크기, 모양밖에 없었다. 그러나 크기, 모양만으로는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후기 원자들의 속성은 크기, 모양 이외에 무게가 첨가되었다. 이러한 원자의 개념은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에서의 <원자> 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원자론자들은 원자들의 운동을 수직 자유 낙하 운동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운동을 위해서는 빈공간이 필요했는데 이 당시에는 빈공간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좌우의 운동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빈공간은 근대에 와서야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수직 자유 낙하 운동만으로는 만물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물의 발생은 원자들의 결합과 분리에 의한 것인데, 수직 자유 낙하 운동으로는 원자들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자론자들은 수직 자유 낙하 운동을 수직과 거의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사선을 그리며 빗겨 내리는 자유 낙하 운동으로 수정하였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사선은 이후에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이 자유의지의 현실태, 즉 현실적인 실천 활동으로서 노동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있는 것>으로 꽉 차 있는 곳에서 어떻게 수직 자유 낙하 운동이 아닌 운동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원자론자들의 답변은 물에서의 물고기의 유영(헤엄)에 비유된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궁색한 답변이다. 물에서의 물고기에 비유한 답변은 하나의 메타포어(비유)일 뿐이지 논리적인 답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자론자들의 이론은 처음부터 결함이 많았다. 이는 지배 계급인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의 지배 사상인 파르메니데스 이론에 대해 대항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자면 여전히 지배 계급의 사상이 새로운 사상을 압도할 만큼 주도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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