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래의 글은 질라 아이젠슈타인이 편집한 논문 모음집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and London, 1979) 중에서 질라 아이젠슈타인의 논문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해석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와의 상관관계를 공부하는 중인데, 이러한 상관관계를 내 나름대로 명쾌하게 밝혀보고자 하는 욕심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잘 될라나 모르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정리한 글을 이 해가 가기 전에 써 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욕심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
#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 #
- Zillah R. Eisenstein -
@ 1장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
** 들어가며
급진 페미니스트들과 남자 좌파들은 사회주의자 여성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을 혼동하면서 여성으로 됨과 페미니스트로 됨 사이의 정치적 구별을 잘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급진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사회주의자 여성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차이 또한 연결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자 여성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가부장제로부터 나타난 권력 시스템을 이해하고자 한다. 나는 자본주의 계급 구조와 위계적인 성적 구조 사이의 관계가 서로 강제하는 변증법적 관계임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라는 말을 선택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상호의존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정치적 분석의 본질에 해당한다. (남성 지배권으로서의) 가부장제가 자본주의 이전에 존재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의 현재 관계는 억압 구조가 바뀌려고 할 때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단일적인 맑스주의 분석이나 고립된 급진적 페미니즘 이론을 넘어서게 된다.
권력은 사회주의자 여성들과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취급된다. 권력은 경제적 계급 지위 또는 성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적 남성/여성 구별에 기초한 권력 비판은 대부분 가부장제에 초점을 맞춘다.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트 구별에 기초한 권력 비판은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은 사회적 생산관계를 억압적인 것으로 또는 사회적 재생산관계를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가사노동을 억압적인 것으로 또는 임금 노동을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사적 영역을 억압적인 것으로 또는 공적 영역을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가족을 억압적인 것으로 또는 경제를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이데올로기를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또는 물질적 조건을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성적인 노동 분업을 억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또는 자본주의 계급관계를 억압적인 것으로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들의 상황이 이러한 이분법의 양 측면에 다 속해 있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된다. 여성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서 개념화하는 것은 여성 억압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분법이 현실을 이기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서 변증법적 사고로 접근하고자 한다.
급진적 페미니즘과 맑스주의 분석을 종합하는 것은 일관된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정식화하는 첫 단계로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정치이론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이 두 가지 이론을 서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이론이 성별 노동 분업을 통하여 서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본다.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이러한 문제의 근원으로 정의하는 것은 동시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답이라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나는 맑스주의 계급 분석을 테제로 사용하고, 급진적 페미니즘의 가부장제적 분석을 안티테제로 사용하여 논의를 전개해 나가면서, 이 둘로부터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종합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테제 : 계급으로서의 여성
1. 맑스 : 혁명적 존재론과 여성 해방
여성 억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맑스주의 분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맑스주의 분석은 권력 연구를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계급 분석을 내놓는다. 둘째, 맑스주의 분석은 역사적이며 변증법적인 분석 방법을 제공한다. (방법으로서) 변증법은 거의 대체로 계급과 계급투쟁을 연구하는 맑스주의에 의해 사용되고 있지만, 또한 여성의 현존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적 관계들과 이로부터 나타나는 여성의 혁명적 잠재력을 분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맑스주의 분석이 모든 권력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렇게 할 수 있다. 역사적이고 변증법적인 방법은 계급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는 계급투쟁에 관한 맑스의 분석을 사용할 것이지만, 또한 그의 분석 방법을 끌어내서 그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몇몇 권력관계 차원에 적용시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맑스의 방법을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관계에 대한 오늘날 우리의 이해를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물질적 관계들로 확장시켜 사용하고자 한다.
이런 관계들은 맑스의 착취와 소외 이론을 통해 해명된다. 여성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 착취 이론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회주의자 여성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이에서 이미 많이 논의돼 왔기 때문에, 나는 아주 짤막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나는 맑스의 소외 이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그의 변증법적이고 혁명적인 존재론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소외에 관한 그의 논의가 노동력을 가진 여성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전혀 다르게 가정주부와 같은 비임금 가사노동자에게도 적용되지만, 이와는 별개로 나는 그의 분석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석을 착취 이론 속에 나타난 것으로서 계급과 계급투쟁으로 환원시키지 않음으로써, 소외 이론 속에 나타난 변증법적 방법을 여성의 특별한 혁명적 잠재 능력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소외 이론이 착취 이론에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착취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외이론과 그 이론으로부터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유적 삶”으로 넘기는 일은 인간 존재의 혁명적 능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유적 존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간 잠재성을 창조적 노동, 사회적 의식,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삶의 과정에 도달시키기 위해 애쓰는 존재이다. 또한 이러한 능력들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내면화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존재론적 구조는 그 존재의 본질과 현존을 규정한다. 맑스에게서 현실은 따라서 단순한 현존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존재는 현실 속에서 인간 본질을 향한 운동을 구체화시킨다. 이것은 완전히 추상적인 인간 본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본질이다. “유적 존재”는 소외되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개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로지 본질로서만 존재한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없다면, 인간 존재는 자본주의 관계들 속에서 착취 당하는 자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자신의 잠재적인 혁명적 능력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소외 이론에서 착취 개념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 우리는 착취 당하는 사람으로 방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노동자의 유적 삶의 잠재적 능력 때문에, 바로 착취 당하는 노동자는 잠재적인 혁명적 존재가 된다. 유적 삶의 잠재적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맑스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한 노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적 능력은 계급 구조 또는 착취 관계 내에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존재한다. 이러한 잠재적 능력의 실현은, 그러나 계급 별로 차이가 난다.
자신의 소외 이론에 따라 맑스는 자본주의의 본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해 간다. 자본주의에 관해서, 맑스와 엥겔스는 상품생산의 전 과정을 언급하였다. 이 과정 안에 내재해 있는 착취를 고찰하면서, 맑스는 자신의 권력 이론을 발전시켰다. 권력 또는 권력 없음은 한 개인의 계급 위치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억압은 자본주의 조직의 결과물이며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생산적 노동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는 부르주아지를 위해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자를 착취한다. 이윤 속에 내재해 있는 잉여 노동은 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시간과 필요 노동시간 사이의 차이로부터 나타난다.
자본주의 생산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생산적 노동은 가변 자본 부분(임금의 형태로 소비되는 자본 부분)과 교환되는 임금노동인데, 이러한 가변 자본 부분(또는 노동력의 가치)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이에 덧붙여서 자본가를 위한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 그러한 임금노동만이 자본을 생산하는 생산일 뿐이다.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형태로 나타나는 계급 구조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다.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양분된다. 이 둘 사이의 분리와 갈등의 기초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이다. 잉여가치가 자신의 생산적 노동으로부터 뽑히면서 당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당하는 억압이다.
자본주의 관계에 대한 맑스주의의 이러한 비난은 사회적인 인간 현존재의 혁명적 존재론으로 포괄된다. 혁명적 존재론은 사회에서 혁명적 의식으로 나타나는 본질과 현존재 사이의 변증법이 각 개인들 내에 있음을 단정한다. 소외 당하고 착취 당하는 계급 현존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런 계급 현존재에 관한 이론 내의 혁명적 존재론 둘 다 맑스주의 분석으로 하여금 계급의식 이론을 추가하면서도 그 이론을 넘어서 나아가는 페미니즘 이론이 발전해 나가는 데 비판적인 역할을 하도록 한다.
여성으로 확장되었을 때, 이 혁명적 존재론은 자유의 가능성이 착취와 억압과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이 현재의 그녀 모습보다 더 잠재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오늘날 그녀의 모습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고, 이는 내일의 실제적 가능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능력 또는 잠재성의 객관적 한계를 결정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소외된 노동자에 대해서는 참이다. 어떤 노동자가 그의/그녀의(자신의-옮긴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녀/그는 여전히 잠재적으로 창조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본질과 현존 사이의 이러한 모순은 혁명적 여성뿐만 아니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저변에 깔려 있다. 맑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계급적 위치는 의식을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적 존재론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것(계급적 위치-옮긴이)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어떤 여성이 그녀의 성과 관련하여 규정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가부장적 관계들은 그녀의 의식을 규정하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혁명적 잠재력을 함축하게 된다. 사람들의 현실적 조건들(현존)과 가능성들(본질)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혁명적 잠재력을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는 가부장제적 관계들이 어떻게 인간 본질의 발전을 막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적 삶이라는 개념은 남성과 여성의 혁명적 잠재력을 지시하고 있다. 여성의 혁명적 의식의 잠재력을 규정하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맑스가 이해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맑스는 결코 성적인 사회 위계 질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훨씬 더 복잡해진 일련의 관계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유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따라서 유적 삶의 현실화가 계급 체계 하나만을 해체시킨다고 해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성에 관한 그의 저작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가 유적 삶과 남녀 모두의 사회적 경험의 자본주의적 소외 형태들 사이의 긴장들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자본』에는 가족과 여성의 착취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것들이 있다. 맑스는 가족 관계를 단순한 화폐관계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 가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도구로 여기고 있다. 현대 가족, 즉 부르주아 가족의 기초는 무엇인가? 자본, 즉 사적 이익이다. …… 가족과 교육에 관한 부르주아의 허풍, 부모와 자식 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부르주의 허풍은 모두 근대 산업 활동으로 인해 점점 더 정나미 떨어지는 것으로 변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가족 관계는 산산이 부서져서 아이들은 단순한 상업 물품으로 그리고 노동도구로 변하게 된다.
사적 소유의 관계는 교환양식이 된다. 이러한 부르주아 우위의 확장은 사회적 관계를 가족 내로 한정시킨다. 그리고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아주 진정한 사회적 관계로만 보이는 가족은 부차적인 욕구가 된다. 사유재산과 사적 소유라는 이해관계는 여성-남성 관계에 침투해 들어간다.
「유대인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유적 관계 자체, 즉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 등은 상업의 대상이 된다. 여성은 구매되기도 하고 판매되기도 한다.” “가진다”라는 성향은 유적 관계를 소유와 지배의 관계로 탈바꿈시키고, 결혼을 매춘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래서 맑스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끝으로, 사적 소유를 보편적인 사적 소유에 대립시키는 이러한 운동은 (확실히 배타적인 사적 소유 형태의 하나인) 결혼을 여성이 공동체의 공동 소유가 되는 여성들의 공동체에 대립시키는 동물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 여성이 (11쪽)결혼으로부터 보편적인 매춘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부의 전체 세계(즉, 남성이 지배하는 자산의 전체 세계)는 사적 소유주와의 배타적 결혼 관계로부터 공동체와의 보편적 매춘 상태로 나아간다.
맑스는 여성의 문제를 단순한 재생산 도구로서 취급되는 그녀들의 지위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봄으로써, 사회주의 혁명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선언』에서 그는 “현재 생산 체계의 폐지는 이 체계로부터 나타난 여성들의 공동체, 즉 공적이고 사적인 매춘 모두를 포함하는 매춘의 공동체 폐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라고 썼다. 맑스의 저작에서 부르주아 가족은 그 자체 특별한 의미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도구로서 나타난다. 여성의 억압은 결혼과 가족을 통해서 나타나는 계급 사회에서의 억압이다. 여성은 프롤레타리아트 일반과 구별되지 않는 희생자, 즉 유해한 계급(프롤레타리아트-옮긴이)의 노동 분업의 단순한 또 다른 희생자로 인지된다. 성별 역할, 목적, 활동 등등과 마찬가지로 성별 노동 분업은 맑스에게 독자적인 존재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는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 또는 가족 내에서 노동 분업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것으로서 모성 역할에 거의 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맑스는 여성과 남성의 착취를 똑같은 근원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았으며, 그들의 억압이 동일한 구조적 용어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였다. 혁명적 의식은 착취에 대한 계급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만 한정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유적 삶을 살아가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삶은 여전히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도록 하는 성별 노동 분업에 의해 구조화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 역할은 끊임없이 소외와 고립을 피할 길 없는 일을 여성에게 미리 부과할 것이다. 본질과 현존은 여전히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맑스는 사회에서의 성별 노동 분업이 비창조적이고 고립되는 노동을 특히 여성들이 담당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착취의 해체는 그 자체 현실적인 유적 삶, 즉 여성의 창조적 노동, 사회 공동체, 그리고 비판적 의식을 보장하지 못한다.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상태를 잘 드러내주는 글입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68혁명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지금은 그 영향력을 거의 대부분 상실했습니다. sf는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잘난 척만 많이 합니다. 여기서 아이젠슈타인의 글을 일일이 논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급진 페미니즘은 굉장히 솔직합니다. 그들은 누구와 싸우느냐? 남성. 그럼 sf는 누구와 싸우느냐? 자본가. 여성노동자는 자본가와도 싸워야하지만 사업장에서 남성관리자들과도 싸워야하고 남성노동자들과도 싸워야하고 아버지, 남편, 애인, 동지들과도 싸워야합니다.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보다 훨씬 더 적대적인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방지법 이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포스트 페미니즘과 함께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남성의 영구집권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성의 정치학과 성의 변증법은 68혁명 당시 수많은 여성들을 투사로 만든 기념비적인 저서입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중에 이름있는 사람 한 번 대보세요. 없어요. 우리는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느냐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를 보고 평가합니다. 지금 사회주의도 현장에 영향력이 없어서 괴로워 죽겠는데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전혀 영향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sf들은 이 비극을 전혀 반성조차 하지 않고 다른 페미니즘 까대는 건 아주 잘합니다. 전 이런 사람들 처음 봅니다. 물론 급진주의 페미니즘 이론이 부실하죠. 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도 허섭하긴 매한가지. 아직도 자본에 필적할 만한 이론서 한 권 못내놓고 있으면서 잘난 척만하고 게을러터진 sf들. 그럼 실용적인 도움이라도 주는가하면.. 여성노동자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여성의 전화나 성폭력상담소에 연락하지 sf들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아요. 아이젠슈타인이 미국 이타카대 교수여서 아니나 다를까 설명explanation은 못하고 기술description만 하고 있네요. 이런 글은 인식의 생산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읽을 필요 없습니다. 차라리 에세이가 낫지.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시체 해부해서 뭐합니까. 자기들 이론이나 정교화하지. 사회주의가 살아있으니까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살아있는거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훌륭한 점이 뭔데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그리고 제가 님에게 충고 하나 드리죠. 저도 예전에 번역을 했었습니다. 어릴 때 번역을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왜 때려쳤느냐. 번역을 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한국어 실력. 둘째. 외국어 실력. 셋째. 그 분야의 전문지식.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기자에겐 무슨 정신이 필요하죠. 이건 취재해야겠다는 동물적 감각. 그럼 번역을 하는 사람에겐 뭐가 필요하죠. 이건 글로 옮겨서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해야겠다는 정신. 글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거죠. 그리고 글을 옮길땐 원문도 공개하는건 기본 중 기본입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악의에 찬 비방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왜 주시자같은 기둥서방이 당신들 이론을 좋아하는지. 자기들에게 하나도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니까 그렇지.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고맙습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진보넷은 비공개 덧글이 있어서 편리하면서도 논쟁의 한쪽 당사자에겐 일방적이란 느낌이 드는군여.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뭐 곰탱이님이야 제 말은 말같지 않으니까 상대 안하시겠지만 다른 사람이 덧글 달면 바로 달려오시는군여.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이것이 당신의 논쟁 매너군요. 알겠습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하..님은 곰탱이님이 번역한 글과 그것을 번역했다는 것이 맘에 안 드시는건가요?덧글에 대응하지 않는 건 제가 봐도 이해가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님의 덧글은 읽을수록 짜증이 납니다.
내용과 별 관련없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감사인사했다가 나까지 싸잡아 비난 받을까봐
비공개글로 남겼는데 그것가지고도 곰탱이님이 매너가 없다는 비난을 받는 걸 보니
한심하네요. 무슨 개인적 감정이 있나요?
하..님이야말로 논쟁을 하려고 했다면 매너를 지키시죠.
두서없는 내용에, 빈약한 근거, 일방적인 비난만 하시는데
그게 논쟁입니까?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이런 쓰레기를 봤나. 너나 두서없는 내용과 빈약한 근거와 일방적인 비난만 하지말고 네 생각을 밝혀.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감사인사했다고 나까지 싸잡아 비난받을까봐 비공개글 남겼다구. 피해의식에 쩔어사니.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이럴 줄 알았습니다. 잘 알겠습니다.당신같은 사람에게만 피해의식이 있어요.
왜냐..말이 안 통하니까.
앞으로는 무시하겠으니 혼자 떠들어 대세요. 말같지도 않는 쓰레기.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나도 너같은 쓰레기 상대하기 싫다. 인신공격과 감정배설이나 하고 다니면서. 혼자 떠들거면 내가 여기 왜 오니.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판단은 너만 하냐.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자기가 무시하면 혼자 떠드는게 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거지. 황제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넌 누가 네가 쓴 글에 두서없는 내용에 빈약한 근거에 일방적인 비난만 하고 있군요 하고 일갈하면 그걸 받아들이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야지. 내용과 별 관련없이 얘기한 건 내가 급진 페미니즘 이론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전반적으로 동의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여기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적 공헌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어떤 태도에 대해 말했던거야.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제가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포스트 페미니즘을 싫어하는건 제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생각이 굳어지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어요. 전 여기 블로그가 없기 때문에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어쨌든 부족하지만 덧글이라도 제 생각을 밝혔다고 생각해요. 님은 글을 쓸 수가 있으니까 저보다는 더 유리한 조건이죠. 님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걸 밝히시면 되는거에요. 굳이 제 말 하나 하나 반박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하지만 님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겁니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사회주의자 아닌가요.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식인가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성의 변증법을 짧게 정리한 것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이 정리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님은 저보다 더 많이 아시겠지만 어쨌든 저와 다른 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소개글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내용 요약
목차
1. 성의 변증법 : 경제계급과 카스트제도
2. 미국의 여성해방론
3. 프로이트주의 : 오도된 여성해방론
4. 아동기를 없애야 한다.
5. 인종차별주의 : 남성가족의 성차별주의
6. 사랑
7. 로맨스 문화
8. (남성) 문화
9. 문화사의 변증법
10. 여성해방론과 사회생태학
11. 결론 - 궁극적 혁명
※ 결론 정리
본문내용
1. 성의 변증법 : 경제계급과 카스트제도
○ 성적 계급의 뿌리는 아주 깊다.
- 음과 양의 구분은 모든 것에 스며있다. 현대서구식 성구별은 가장 최근의 것에 불과.
→ 여성해방론자들은 서구에 대한 모든 것에 질문을 해야 한다.
○ 현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린 성차별주의의 태동과 진화, 그 작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린 ‘성전쟁역학’ 분석이 필요하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역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시작됨.
“사적 유물론” (역사적 사건의 원동력을 역사과정에서 찾음.)
: 그들은 계급갈등의 원천인 경제적인 것까지 그들의 분석은 ‘부분적’현실이었다.
: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적대적 계급은 시대의 경제적 조건들에 기초해 나타난다.
- 여성억압을 엄격히 경제적 해석에 의거하는 것은 오류이다.
: 엥겔스는 최초의 노동 분업은 자녀양육을 목적으로 남녀 간에 발생한다고 봄
: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성적계급을 인정했지만,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함.
→ 여성해방론을 마르크스주의에 포함시키려면 사적 유물론을 확대시켜야 한다.
- 우리는 성 그 자체를 근거로 역사의 유물론적 관점을 발전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 생식을 (성적) 이원론의 원천으로 보는 분석
: 생식 기능의 차이가 계급 체제를 만들었다는 주장.
: 생물학적 가족에는 불평등한 힘 분배가 내재되어 있음.
① 출산조절이 불가능했을 때, 여성은 남성에 의존적이었다.
② 사람은 생존을 위해 적어도 얼마동안 성인에 의존.
③ 어머니-아이의 상호관계의 존재
④ 생식의 차이는 이에 기반한 차별과 계급 발생시 노동 분업을 가져옴.
→ 권력의 성적불균형이 생물학적 기초를 가진 것임을 인정함.
But. 패배는 아님. 인간은 동물이 아니므로
→ 우리는 더 이상 성적계급제도의 유지가 자연 속에 기원이 있다는 근거로 정당화할 수 없다.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따라서 아이젠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언급 "그녀는 억압 체계로서 자본주의를 가부장제로 대체하면서 인위적으로 성 영역과 경제 영역을 분리시킨다. 그녀는 풍부하고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서 좀 더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억압을 좀 더 복잡한 현실로 바라보기보다는 현대 시대의 주요 억압으로서 성을 다루고자 하였기 때문이다."는 악의적인 비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성의 변증법이 68혁명 당시 수많은 여성들을 투사로 만들었다는 것은 저의 착오입니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출판되었고 이 글을 쓸 당시 파이어스톤은 25세였습니다. 아래는 1968년에 파이어스톤이 쓴 글입니다. 파이어스톤의 생각이 잘 담겨 있습니다.MIA: Subject Archive: Women and Marxism: Shulamith Firestone
Shulamith Firestone 1968
Women and the Radical Movement
This document was first published in The New York Radical Women, 1968 and obtained by the Herstory Project from the Women’s Studies Resources | Duke Special Collections Library - A project of The Digital Scriptorium, Special Collections Library, Duke University.
Within the last year many radical women’s groups have sprung up throughout the country. This was caused by the fact that movement women found themselves playing secondary roles on every level...be it in terms of leadership, or simply in terms of being listened to. They found themselves (and others) afraid to speak up because of self-doubts when in the presence of men. Their roles ended up concentrating on food-making, typing, mimeographing, general assistance work, and as a sexual supply for their male comrades after hours.
As these problems began being discussed, it became clear that what had at first been assailed so be a personal problem was in fact a social and political one. We found strong parallels between the liberation of women and the black power struggle, being oppressed by similar psychological/economic dynamic so And the deeper we analyzed the problem, and realized that all women suffer from this kind of oppression, the more we realized that the problem was not just isolated to movement women.
It became necessary to go to the root of the problem, rather than to become engaged in solving secondary problems arising out of that condition. Thus, rather than storming the Pentagon as women, or protest the Democratic Convention as women, we must begin to expose and eliminate the causes of our oppression as women. Our job is not only to improve the conditions of the movement any more that it is to only improve the condition of professional. working woman. Both are reformist if thought of only as ends in themselves; and it ignores the broader concept that one cannot achieve equality for sore members of one’s group while the rest are not free.
In choosing to fight for women’s liberation it is not enough, either, to explain it only in general terms of “the system.” For the system oppresses many groups in many ways. Women must learn that the specific methods used to keep her oppressed is to convince her that she is at all times secondary to man, and that her life is defined in terms of him. We cannot speak of liberating ourselves until we free ourselves from this myth and accept ourselves as primary.
In our role as radical women we are confronted with the problem of assuring a female revolution within the general revolution. And we must begin to distinguish the real from the apparent freedom.
Radical men may advocate certain freedoms for women when they overlap their own interest, but these are not true freedoms unless they spring out of the concept of male and female equality and confront the issue of male supremacy.
For example, man may want women to fight in the revolution because they need every able bodied person they can get. And they may need women to join the work force under a socialist economic system because they cannot afford, like capitalism, to have an unemployed (surplus) labor force not contributing work, being supported by the state. And man may therefore advocate state nurseries so that mothers are not kept from work.
There was a wistful note at the end of Bill’s interview on WBAI. He said something to the effect that, who knows, perhaps some day women will really get angry. I thought about that. Because some of us, still very few, are getting angry. And we are getting angry now. I hope Bill will not have to wait for his Utopia quite do long as he thinks. I hope that it will be very soon when we approach him, en masse, strong, organized, conscious, and say:
We sincerely thank you, Bill Baird, for your great sacrifice. You and people like you have helped us immensely in our struggle to become aware. And now, sooner that you predicted, your wish has come true. We are angry at last. So angry that we no longer need you to fight our fight.
Smulamith Firestone
Shulamith Firestone Archive | Women and Marxism
To volunteer for the MIA, Email our Admin Committee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아래는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성의 변증법입니다.The Dialectic of Sex
In The Dialectic of Sex, Firestone synthesized the ideas of Sigmund Freud, Wilhelm Reich, Karl Marx, Frederick Engels, and Simone de Beauvoir to put forth a feminist theory of politics. It became a major text in second-wave feminism in the United States.
Firestone argued that gender inequality originated in the patriarchy forced on women through their biology: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disadvantages imposed by pregnancy, childbirth, and subsequent child-rearing[1]. She stated that women must seize the means of reproduction and advocated the use of cybernetics to carry out human reproduction in laboratories - as well as the proliferation of contraception, abortion, and state support for child-rearing - enabling them to escape their biology. Firestone described pregnancy as "barbaric", and writes that a friend of hers compared labor to "shitting a pumpkin". Among the reproductive technologies she predicted were sex selection and in vitro fertilization.
Firestone explored a number of possible social changes that she argued would result in a post-patriarchal society, including the abolition of the nuclear family and the promotion of living in community units within a socialist society.
The Dialectic of Sex continues to be an influential and widely quoted feminist work. Kathleen Hanna, among others, often cites it as a critical work. The book influenced American novelist Marge Piercy's imaginative utopia, Woman on the Edge of Time.
피임과 낙태의 허용은 남성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자유를 여성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파이어스톤의 생각이 일부 황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태일도 책을 읽어보면 나이 어린 시다들을 위해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린 여성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파이어스톤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갖힌게 아니라 거기에서 해방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동물이 아니니까! 따라서 다음과 같은 아이젠슈타인의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비판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을 말해줄 뿐입니다.
"게다가 여러 문제들이 있다. Firestone은 맑스와 프로이트를 종합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맑스의 사회적 역사적 구조를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생물학을 시간을 초월한 불변적인 상태로 취급함으로써 그렇게 하려고 한다. Firestone이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불평등은 사회적 문맥에서만 불평등이다.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은 생물학적으로 다르지만, 이것을 불평등으로 부르는 것은 생물학적 차이에다 강제로 사회적인 (불평등-옮긴이) 의미를 부과하는 것이다."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주체가 될 노동자계급의 사상을 오염시킬 수 있는 사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단호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적대자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한심한 인간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는 그들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아이젠슈타인이 여성의 해방을 위해 한 일이 뭡니까. 알고 싶으니까 한 번 얘기해주세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또 제가 얘기할땐 개무시하고 있다가 비밀덧글 있으면 나타나시겠죠. 당신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한 우리는 시궁창의 쥐 신세를 못면할겁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당신같은 사람들은 여성노동자들과 특히 업소에서 일하시는 분들한테 관심같지 마세요. 그 분들은 당신들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더 잘 알고 있어요. 여기처럼 개념있는 사람들만 오는 데서 블로그에 겁나게 혁명적인 글 쓰는 거 누가 못해요. 딴데 가봐요. 장난 아니지. 나도 얼마전에 괴로워서 블로그 폐쇄했는데.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당신들이 제 아무리 훌륭한 이론 생산하면 뭐해요? 투쟁하는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들의 무기가 되지 못하면 내가 어느 날 무료해서 땅을 세로 백미터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것은 전술차원입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님이 아니라 다른 분 얘기지만 내가 전에 성노동이 뭐냐고 거품물때는 가만있다가 성노동자 권리 지원과 비범죄화를 위한 토론회 오라는 글이나 올라오니까 내가 당신들 경멸하는거야.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