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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1.

이 번역은 지난 번에 이어서 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중 5장 [화폐 가치론]의 1절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2절 [자연주의와 사회이론 사이의 가치론>부터는 2003년 판으로 번역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1991년 판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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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

 

@ 5장 화폐 가치론 @

 

1849년 맑스는 프로이센에서, 그리고 그 다음엔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그가 죽을 때까지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 서문의 자서전적 스케치에서 나타나듯이, 1850년은 맑스의 과학적(학문적) 노동(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나타난다. 대영박물관에서 대하였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맑스는 자신의 경제학 연구를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맑스의 연구 성과들은 우선 맑스가 실천적으로 거의 중요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익명의 경제학자들과 논쟁하였던 것을 반영하는 일련의 발췌목록들 속에서 나타났다.(주1-) 맑스는 1857년서부터 비로소 하나의 “고유한” 경제학을 서술하려 하였지만 여러 측면에서 연기되었던 계획에 착수할 수 있었다. 바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1939-41에야 비로소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 쓰였다. 이 수고는 직접적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맑스는 이 원고를 토대로 부르주아 경제학을 6권(자본, 토지소유, 임노동, 국가, 국제무역, 세계시장)으로 구상된 저작 안에서 다룰 생각이었다.(주2-)

1859년에 출간된 저작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는 이러한 생각의 서막이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은 단지 자본과 화폐에 관한 두 장만이 포함되었다. 이 저작의 초안에 포함되어 남아 있는 단편은 자본에 관한 3장의 처음 부분에 들어 있다. 이 단편은 처음으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초고』라는 이름으로 『요강』과 함께 출간되었다.

원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의 연장으로 계획된 것이 있는데,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쓰였던 약 2400쪽의 방대한 분량의 맑스 수고였다. 그런데 이 수고는 맑스 자신에 의해서 출간되지 못했다. 카우츠키는 이 수고로부터 다만 (텍스트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잉여가치학설사』만을 출간하였고, 전체 텍스트는 1976년부터 1982년까지 MEGA에서 비로소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수고 1861-1863)』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주3-)

이 수고를 저술하는 동안에 맑스는 1859년에 나타난 "제1분책”을 연장시키는 대신에 하나의 독립적인 저작, 즉 『자본』을 내놓기로 결심하였다.(주4-) 1863년과 1865년 사이에 전체 3권으로 이루어진 『자본』의 원고가 쓰였다. 제1권의 원고 중에서 다만 이후에 나타난 결론 장인 「직접적인 생산과정의 결과물들」만이 유지되어 남아 있다. 제2권의 수고는 MEGA로 출간되었는데, 제3권 수고는 아직도 출간되지 않고 있다.(주5-)

그리하여 오로지 『자본』 제1권만이 1867년에 출간되었다. 1872년에 제2판과 불어판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 두 판은 제1판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무엇보다도 가치형태 분석에 관한 절에서 그러하다. 맑스가 출간된 텍스트에서 수용하지 못했던 이러한 초과작업과 개념적 고찰을 시도했던 수고는 처음으로 1988년 MEGA에서 『‘자본’ 제1권에 대한 보충과 개정들』이라는 편집상의 표제로 출간되었다.

『자본』의 제2권과 3권은 맑스가 죽은 이후에 엥겔스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때 엥겔스는 제3권에 대해서 1864/65년에 쓰였던 수고에 의존할 수 있었다. 제2권에 대해서 엥겔스는, 자신의 서문에서 나타나듯이, 1864년에 쓰였던 수고가 아니라 60년대와 70년대에 쓰였던 더 많은 수고를 이용하였다. 이러한 수고들은 지금까지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대략 1857년 이후부터 쓰였던 경제적 저작들은 모두 『서문』에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의 이론 장과의 단절을 전제로 삼고 있다. 이런 한에서 이 저작들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통일적 기획으로서 인간학에 기초하고 있는 40년대 초의 “국민경제학 비판”과 구분될 수 있다. 1857년 무렵에 씌어졌던 텍스트에 대한 개요가 분명하였지만,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기획에 대한 모든 해석은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앞에서 열거된 저작들 중에서 맑스는 오로지 두 가지(『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과 제1판과 2판으로 나온 『자본』의 제1권)만을 출판하였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남아 있는 텍스트의 대다수는 여러 다른 원고 작성 단계들 속에서 나타나는 수고들과 발췌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수고들과 발췌록 대다수가 여전히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20여 년 동안 개별적인 수고들이 씌어졌다. 이 개별적 수고들은 변화와 발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변화와 발전은 그 자리에서 상이한 텍스트들을 단순히 개별적인 부분들이 상호 보완되는 전집으로 합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859년부터 1867년 사이에, 정치경제학 비판이 애초에 6권의 책으로 만들려는 계획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총괄하는 종합적 개념이 변하였을(주6-) 뿐만 아니라 가치와 화폐라는 근본범주들에 대한 파악 역시도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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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2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1>에 이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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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포이어바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이론에서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보았다고 강조하였다.(주56-)

물론 맑스는 이후 몇 개월 동안 앞에서 말했던 비판에 착수하지 않았다. 8월 말 맑스는 엥겔스를 통해 파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견해를 계속해서 일치시켜 나갔다. 그들은 공동으로 브루노 바우어에 대한 비판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신성가족 또는 브루노 바우어와 그 동료들에 대한 비판적 비판의 비판』을 썼다.

바우어는 그 사이에 자신의 “자기의식의 철학”을 추상적이고 “순수한 비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바우어에게서는 더 이상 민족과 통치권력이 대립하였던 것이 아니라, (바우어가 비판하고 있는 형태인) “정신”과 바우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의 실패에 대한 책임 전가 대상이었던 무지몽매한 “대중”이 대립하였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바로 “대중”(프롤레타리아트)을 미래의 혁명 담지자로 보았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바우어와 그에게 여전히 항상 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추종자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사실은 명백한 것이었다.

비로소 이렇게 청년헤겔학파와 결별하면서(결별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글들을 맑스가 썼다) 맑스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중의 일부분, 따라서 바우어를 둘러싼 영역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 헤겔의 자립화된 추상에 대한 비판을 총괄하였다. 맑스는 또한 국민경제학의 관점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비판으로서의 프루동의 비판을 비판하며,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의 자신의 경제 연구의 결과물의 가치를 비판한다.

새로운 요소는 이념적이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 속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역사”와 “이념”의 관념적인 자립화에 대하여, 맑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이념’은 자신이 ‘이해관계’와 구별되는 한 항상 자신을 욕되게 한다. 다른 한편 대부분 역사적으로 자신을 관철시켜 나가는 모든 ‘이해관계’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들어서게 될 때, ‘이념’이나 ‘표상’ 속에서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완전히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쉽다.”(2/85)

 

프랑스 유물론의 발전에 근거해서 이념과 이해관계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연관시키는 일은 일반화된다 :

 

“17세기 형이상학의 붕괴가 18세기의 유물론으로부터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 운동 자체가 그 당시의 프랑스인들의 삶의 실천적 형태로부터 해명되는 한에서이다.”(2/134)

 

그런데 이념의 생산과 실천적인 사회적 삶 사이의 연관성이 인식되면, 이념은 결코 더 이상 이성적 본질인식으로서 현실성과 대립할 수 없게 된다. 참된 존재와 현실적 현존재 사이의 모순이라는 문제틀(Die Problematik), 즉 지금까지 맑스 담론 구조 틀을 형성해 온 문제틀은 이러한 새로운 표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적 존재의 역사성과 더불어 인간학적인 본질철학에 두 번째 폭약이 장전된 셈이다. 물론 맑스와 엥겔스는 이에 관해서 결코 알지 못했다. 포이어바흐는 『신성가족』 여러 곳에서 여전히 열광적으로 환영받고 있다.(주57-) 그러나 포이어바흐의 의식적 비판은 이후에 비-인간학적이고 비-본질철학적인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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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1

이 부분은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중에서 6절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을 번역한 것입니다. 6절은 2부분으로 나누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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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

 

@ 제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

 

** 6절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

 

『경제학-철학 수고』를 통해 맑스의 관심은 마지막으로 새로운 대상영역, 즉 경제학으로 옮겨졌다. 물론 이런 것은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을 이론적 도구로 삼는 것과 같이 나타난다. 맑스는 단순히 개별적 이론에 대한 비판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으로서의 국민경제학 비판을 겨냥하는 국민경제학의 비판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 따라서 이 종교비판이 종교를 인간의 자기소외 형태로 파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맑스는 이제 국민경제학을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파악한다.

맑스의 경제학은 여전히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것과 동일한 이론적 영역에서 출발한다. 맑스의 인간주의 개념은 이미 분명하게 나타났다. 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맑스의 비판에 대해서도 특정한 인간 “존재”가 기초를 이루고 있다. 정치경제학이 상품소유자를 “인간으로” 파악하는 반면에, 이 상품 소유자는 맑스에게서 오로지 자신의 존재로부터 소외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가 개인이라는 영속적인 존재가 객관화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사람들은 맑스의 개인주의에 관해 말한다. 또한 “인간 존재”가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에 맑스의 과학개념 역시 경험적이다.(주-54) 분명히 정치경제학의 비역사주의(Ahistorismus)는 맑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맑스는 국민경제학의 이론적 장과 결별한다는 사실 때문에 국민경제학 비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인간학을 사용하는 방식과 양식을 통해서 국민경제학 비판자가 된다. 정치경제학이 자신의 인간학을 단정적으로 사회적 현실과 관계시키려고 하는 반면에, 맑스는 현실적인 (인간)관계와 그 관계를 무비판적으로 반영하는 국민경제학에 대한 비판의 척도로서 자신의 인간학을 사용한다.

 

대상의 변화를 통해 포이어바흐에게서처럼 의식과 종교가 아니라 노동이 분석의 중심에 있을 것을 요구 받는다. 또한 맑스는 인간 유적 존재 개념에 대한 내용의 풍부함으로 이미 포이어바흐 인간학의 내용적인 규정들을 넘어섰다. 맑스 담론의 구조는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다.

맑스는 자신이 이론적으로 포이어바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맑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불리우며) 『수고』의 세 번째 노트의 끝부분에서 발견되는 “머리말”에서,(주55-) 맑스는 법, 도덕, 정치 등에 대한 비판을 더 확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포이어바흐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국민경제학과 사회주의의 유용한 문헌을 언급한 후에,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게다가 실증적인 비판 일반과 마찬가지로 국민경제학 비판과 그 비판의 참된 근거는 포이어바흐의 발견에 힘입은 바 크다. 포이어바흐에 의해서 비로소 실증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비판이 생겨나게 되었다.”(Ⅰ.2/317; EB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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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3

여기에서는 <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2>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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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에서보다는 『밀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에서의 발췌』에서 부르주아의 소외된 사회와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성의 대립이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맑스는 상품교환에서의 욕구 상호간의 도구화에 “인간적인” 생산을 강하게 대립시키고 있다 :

 

“우리가 인간으로서 생산한다면 좋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보자 :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을 생산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중적으로 인정한다면 좋을 텐데. 내가 1) 나를 생산할 때 나의 개인성과 그 개인성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냈으면 좋을 텐데…… 2) 나의 생산물을 당신이 즐기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인간 존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어야 하고, 3) 당신을 위해 당신과 (인간) 유 사이의 중재자가 있어야 하고, 당신의 고유한 존재를 보충해 주는 존재로서의 당신 자신에 의해……(그 중재자를) 발견할 수 있다면…… 4) 나의 개인적인 삶의 표현 속에서 직접적으로 당신의 삶이 표현되어야 하고, 따라서 나의 개인적인 행위 속에서 직접적으로 나의 참된 존재, 나의 인간 존재, 나의 공동체가 확립되고 현실화되었다면 좋을 텐데. (……) 나의 노동이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 되고, 따라서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좋을 텐데.”(Ⅳ.2/465f; EB 1/462f)(주53-)

 

이에 반해 현재의 상태는 다음과 같이 간주된다 :

 

“우리의 생산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위한 어떠한 생산도 되지 못한다. 즉 어떠한 사회적 생산도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산을 상호 결속시키는 것이 인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Ⅳ.4/462f; EB 1/459)

 

맑스는 여기서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인간학으로부터 인간 존재에 상응하는 사회상태를 끄집어내고 있으며 그 사회상태를 이상(Ideal)으로서 현실성에 대립시키고 있다. 맑스가 다른  곳에서 “인간이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를 인간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가 소외의 형태로 나타난다”(Ⅳ.2/452; 40/451, Herv. von mir)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마치 소외 상태로부터 비-소외된 상태로의 이행 과정에서 인식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기서 분명히 맑스는 공상적 사회주의 구조를 잔손질을 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걸맞는 사회적 상태와의 대결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관계를 비판한다. 참된 인간 존재에 적대적인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도덕적 비판 형태의 마지막 목적은 인간 존재의 현실화를 역사의 목적으로 제시하는 맑스 역사 개념의 목적론적인 계기를 통해 감춰진다.

그러나 이러한 “공상적인 사회비판의 형태에서 벗어나기”(Sost 1980, S.29)는 당장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태들이 “약간 나중에 씌어진” 『수고』의 세 번째 노트에서  “지금까지의 불충분함에 대해 명백하게 수정”(Sost 1980, S.30)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 이것은 Sost에 의해 가정된다. 이 형태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증거로 인용한다 :

 

“사적 소유의 운동 속에서, 즉 바로 경제의 운동 속에서 모든 혁명적 운동이 자신의 경험적 토대뿐만 아니라 이론적 토대를 발견한다는 사실로부터 필연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Ⅰ.2/263; EB 1/536)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위해 필수적인 Sost의 수용에 대립해서 『밀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에서의 발췌』는 『수고』의 세 번째 노트 이후에 비로소 씌어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의 불충분함에 대한 수정”이 바로 결코 단순한 신앙고백을 통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그리고 인용된 진술이 맑스 (사상) 발전의 이러한 시점에 대해 어떤 다른 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설령 이 사실 속에서 이후의 결과들이 먼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나타난 불충분함은 오히려 소외 개념 자체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따라서 오로지 새로운 개념을 통해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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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2

<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1>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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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서도 맑스는, 인간의 역사성을 바로 감각의 영역에서 강조하고 인간의 5가지 감각의 형성이 “지금까지의 전체 세계사의 노동”(Ⅰ.2/270; EB 1/541f)일 수 있음을 확정할 때 포이어바흐를 넘어서게 된다.

 

포이어바흐를 넘어서는 인간 유적 존재에 대한 규정은 포이어바흐와는 아주 다른 헤겔의 평가로 이어진다. 『수고』의 세 번째 노트에서 맑스는 세 개의 긴 부분으로 헤겔의 철학과 대결하였다.(주41-) 거기서 맑스는 청년헤겔학파 그리고 특히 브루노 바우어를, 그의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헤겔 논리학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맑스는 오로지 포이어바흐만이 헤겔 변증법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주-42) 그러나 맑스는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헤겔이 인간 존재의 역사적 생성을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포이어바흐와는 다르게 헤겔을 인정하고 있다.(주43-)

맑스의 존재 개념이 포이어바흐와 구별되는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그 두 가지 계기는 역사성과 생산으로서, 인간 자신의 생산으로서 대상성, 즉 맑스가 헤겔에게서 재발견하고 있는 대상성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학자들의 관점에 서 있다. 그는 노동을 존재로서, 즉 인간 존재를 입증하는 것으로서 파악한다.”(Ⅰ.2/292f; EB 1/574) 

 

물론 맑스는 헤겔이 역사성과 노동을 오로지 사변적인 방식으로만 파악한다는 사실을, 즉 헤겔이 알고 있는 노동이 “추상적이고 정신적인”(같은 곳)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이것은 헤겔의 소외 개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 헤겔이 소외를 이미 대상화 속에서 발견하고 있기 때문에, 헤겔은 현실적인 소외를 결코 해소(지양)할 수 없으며, 오히려 소외의 대상적 형태를 없애 버림으로써 의식 속에서만 폐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맑스는 포이어바흐에 대립하여 헤겔에서 긍정적 계기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본다. 즉

 

“소외 안에서 나타난, 대상적 존재의 소외의 해소에 의한 그 존재의 전유(소유, Aneignung)에 대한 통찰, 다시 말해서 인간의 현실적 대상화 속에서 (인간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는 통찰”(Ⅰ.2/301; EB 1/583).

 

맑스에게 있어서 국민경제학과 헤겔 철학은 소외 안에서의 과학들이다. 맑스는 “참된 유물론”과 “실제적 과학”을 이들과 대립시킨다. 참된 유물론과 실제적 과학을 토대를 닦은 사람은 포이어바흐라고 할 수 있다(Ⅰ.2/276; EB 1/570). 이러한 실제적 과학은 바로 이 과학이 인간 존재를 그 존재의 소외된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형태로 파악한다는 사실을 통해 그 특징이 나타난다.

 

맑스가 인간 유적 존재의 대상화를 대상적 생산으로 파악하고 이 생산을 역사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포이어바흐의 비역사적인 인간학은 이미 잠식당하고 있다.(주44-) 그러나 이것은 바로 유적 존재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inhaltliche) 규정으로 여겨진다. 맑스의 담론 구조는 여전히 하나의 인간학적인 존재철학이다. 특히 이것은 분명히 유적 존재의 사회성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에게서 이러한 사회성은 인간과 인간의 통일로서 오로지 추상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다.(주45-)

맑스는 『수고』(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사회적 현실성을 인간 존재의 객관화로 파악한다 : 사회성은 개별적 개인들에게 내재해 있는 유적 존재를 통해 나타난다. 분명히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무엇보다도 ‘사회’를 또 다시 개인과 대립하는 추상으로서 정립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다.”(Ⅰ.2/267; EB 1/538)(주46-)

 

그러므로 여기서 맑스는 정치경제학과 똑같은 개인주의(Individualismus)로부터 출발한다. 사회는 직접적으로는 개인이라는 존재의 특성으로부터 구성되므로 이러한 존재의 특성으로부터 파악될 수밖에 없다.(주47-) 그런데 정치경제학이 현존 사회를 인간 사회로 파악했던 반면에, 맑스는 인간 유적 존재로부터의 인간 소외를 바탕으로 해서 현존 사회가 다만 이러한 소외의 객관화라는 사실, 즉 (현존 사회의) 인간이 참된 사회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정립한다.(주48-)

이러한 참된 사회성은 공산주의를 통해서만 비로소 나타날 수 있게 된다. 공산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인간의 자기소외로서의 사적 소유의 긍정적 해소(지양)로서 공산주의, 따라서 인간에 의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인간 존재의 현실적 전유(소유)로서의 공산주의 ; 그러므로 완전히 지금까지의 모든 부의 발전을 의식하고 또 그 안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인간, 즉 인간적인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로서의 공산주의. 이러한 공산주의는 완전한 자연주의 = 인간주의, 완전한 인간주의 = 자연주의이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인간과 자연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순의 참된 해소이며, 현존재와 존재(또는 본질) 사이, 대상화와 자기 확증 사이, 자유와 필연성 사이, 개인과 (인간) 유 사이의 진정한 해소이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역사의 해결된 수수께끼이며 자기 자신을 이러한 해결로 알고 있다.”(Ⅰ.2/263; EB 1/536)

 

여기에서 맑스의 존재개념과 소외개념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계기들이 모여 있음을 보게 된다. 현실성은 관념적인 인간 존재와 대조되는데, 여기서는 현존재와 존재(또는 본질)의 불일치, 모순, 현실적 존재의 소외가 확정된다. 이러한 모순은 공산주의에서 해소된다.(주49-)

맑스가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존재로 “복귀”(주50-)하는 것으로서의 공산주의에 관해 말할 때, 인간이 여전히 자신의 인간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어떤 근원적인 상태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함축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근원적인 통일의 분리, 상실, 심지어 자신의 고유하고 참된 본질(또는 존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분리, 상실에 다름 아닌 소외의 개념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주51-) 상실로서 하나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은 그러나 항상 이미 이런 상실 앞에 있는 다른 하나의 상태를 가정하게 된다. 물론 맑스는 소외되지 않는 국면으로서 하나의 특정한 역사적 국면을 비추는 것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물론 이러한 역사적 국면은 이런 근원적인 상태의 지위(상)에 관한 문제를 낳는다.(주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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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1

여기에서는 <가치에 관한 과학> 중 2부 <맑스의 과학 혁명> 3장 <비판으로서 인간학: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5절의 <인간존재, 기원과 유토피아>를 번역하였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2,3>으로 계속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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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

 

@ 제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

 

** 5절. 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전개되었던 맑스의 인간 존재 개념은 1844년 국민경제학 비판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존재 개념이 『요강』과 『자본』에서 나타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구성되었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맑스 이론 발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맑스가 유적 존재의 대상성을 대상적 생산으로 파악하는 한에서, 맑스의 인간 유적 존재 개념이 포이어바흐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 간략하게 대략적으로 제시되었다. 이에 반해서 포이어바흐에게는 이성, 의지, 정서가 가장 중요한 인간 존재 개념 규정이다(Feuerbach 1841, 39쪽).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종교에서 비밀스러운 인간 존재가 명백히 드러나는 인간 소외의 결정적 형태를 보았다.(주37-) 이에 반해서 맑스의 세 번째 공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사람들은 산업의 역사와 산업에 의해 생성된 대상적 현존재와 마찬가지로 감각적으로 현존하는 인간 심리학인, 즉 지금까지 인간 존재의 연관성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항상 외적인 유용성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파악되었던 심리학인 인간 존재 능력이 펼쳐진 책을  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운동하는 소외 속에서- 오로지 인간의 보편적 현존재, 즉 종교, 또는 추상적-보편적 인간 존재의 역사를 인간 존재 능력의 실현과 인간의 유적 행위로서의 정치학, 예술, 문학 등으로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이고 물질적인 산업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인간의 대상화 능력을 감각적이고 낯설며 유용한 대상의 형태로, 즉 소외의 형태로 가지고 있다.”(Ⅰ.2/271; EB 1/542f)

 

또한 산업이 “인간과 자연 따라서 인간과 자연과학 사이의 현실적인 역사적 관계”(Ⅰ.2/272; EB 1/543, Herv. von mir)인 한에서, 역사성은 인간 유적 존재의 이러한 대상성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맑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이른바 전체 세계사는 인간의 노동에 의한 인간의 생산, 인간을 위한 자연의 생성에 다름 아니다.”(Ⅰ.2/274; EB 1/546)

 

맑스는 여기서 노동이 『정신 현상학』의 주인과 노예의 장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 하는 헤겔의 노동개념의 본질적인 계기를 받아들인다. 거기서 헤겔은 주인을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는 노예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바로 자신의 본성의 우월함과 사유 능력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 생산물에 대한 직관 속에서, 즉 자신의 창조물 속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주38-) 맑스에게서 인간 유적 존재의 현실화는 자신의 창작물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생산력의 전개와 역사성으로서의 대상성이 포이어바흐의 존재 규정들을 넘어서고 있지만, 인간 존재의 감성(Sinnlichkeit)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맑스는 사적 소유의 긍정적인 해소가 인간 삶의 감각적 전유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사적 소유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소유할 때, 그 대상은 비로소 우리의 대상이 된다는 정도로 우리를 어리석고 일면적으로 만든다…… 따라서 모든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감각을 대신해서 이러한 감각의 단순한 소외, 즉 소유라는 감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 따라서 사적 소유의 해소는 모든 인간의 감각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Ⅰ.2/268f; EB 1/540)(주-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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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 2

<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 1>에 이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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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법철학 비판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그 비판은 오히려 “해결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제공하는 과제, 즉 실천”(Ⅰ.2/177; 1/385)(주22-)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무기의 비판”이 요구된다면, 이러한 혁명적 실천의 사회적인 담지자(주체)가 누구이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나타난다. 맑스는 우선 한 계급의 계급이해가 보편적 이해로 사칭되는 상황에 그 계급이 놓여 있을 때 부르주아 사회의 그 한 계급이 해방된다는 것에, 정치적이지만 단지 “부분적인” 혁명이 기인한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볼 때 독일에서는 부르주아의 어떠한 계급도 결코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독일에서 단지 정치적이고 부분적인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을 때라도, “근본적인 혁명”, 즉 “보편적인 인간 해방”이 가능할 수도 있다(Ⅰ.2/179; 1/388).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에 놓여 있다. 즉

 

“부르주아 사회의 한 계급이지만 그 사회의 어떤 한 계급일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계급의 형성에, 모든 신분을 해소하는 하나의 신분의 형성에, 자신의 보편적 고통을 통해 보편적 특성을 가지며…… 한마디로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며, 따라서 인간의 재획득을 통해서만 인간 자신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국면의 형성에. 하나의 특수한 신분으로서 사회를 이렇게 해소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Ⅰ.2/181f; 1/390)

 

맑스는 이제 더 이상 『라인 신문』이나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처럼 무질서하게 “무장된” 계급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인 힘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맑스는 이 개념을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한다)에 관해 말한다. 또한 맑스는 더 이상 『유대인 문제』에서처럼 단순한 정치적 해방의 요구보다는 인간 해방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맑스는 이제 인간 해방은 오로지 근본적인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자신으로 하여금 결국에 공산주의의 지점에 도달하게 만드는 이러한 혁명의 역사적 담지자(주체)로 본다. 이러한 근본적인 혁명에서는 경제적 관계의 혁명화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나타난 경제적 분석은 바로 당연한 귀결로 나타난다.

 

맑스는 이제 또한 더 이상 이성적 인간성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위치 때문에 혁명에 적합할 수 있는 한 계급에 관계한다. 그러나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위치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혁명의 잠재력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의 도움을 받아 사변적으로만 확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으로 이끌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인간 존재 사이의 모순이 있다. “고통 받는”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러한 모순을 바로 느끼는 반면에, 철학은 이러한 모순을 모순으로서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철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결합은 혁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주23-)

 

 

맑스가 이제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해방의 역사적 주체를 본다는 사실에 대한 원인을 대개 파리에서 독일과 프랑스 노동자의 단결을 맑스가 보았다는 데서 찾는다.(주24-) 크라츠(Kratz)는 물론 맑스가 사회적 변혁의 담지자(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경험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맑스는 이러한 경험을 이론적인 딜레마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까지(마지막으로는 루게와의 편지 교환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식개혁”, 따라서 철학적 비판을 통해 도달한 이론적 통찰을 실천적-혁명적 행위의 전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분명히 처음에는 철학적 반성을 토대로 행위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사유하며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감각적이며 경험적인 존재로서 파악하는 포이어바흐의 감각주의는 또 다시 (맑스에게-역자 삽입)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제 소외는 모든 인간에게 관계되는, 즉 사유의 영역뿐만 아니라 물질적 현존과 관계되는 소외로서 파악될 수 있다. 따라서 또한 역시 비 이론적인 프롤레타리아는 소외를 경험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소외 상태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영역에 있게 된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맑스가 무엇보다도 먼저 프롤레타리아트를 “고통 받는” 계급으로 특징짓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파악의 직접적인 결과이다(Kratz 1979, 173쪽 이하).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을 통해서 혁명적 노동운동의 경험을 이론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으며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었다. 비록 박사학위논문 이후에 그의 이론적 개념의 개별적이고 실질적인 계기들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그 밑바탕에 놓여 있는 구조는 동일한 것으로 남게 된다 : 현실성은 자신에 대립해 서 있는 (인간)존재(본질)와 비교되어 비판된다. 이러한 비판이 우선 오로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일어난다면, 존재와 현실성의 (이분법적 대립의) 붕괴는 이제 혁명을 통해서만 지양되는 필연적인 소외로 파악된다. 맑스에 의해 암시된 인간 존재의 사회성은 포이어바흐가 인간의 유적 존재에 부여한 실질적인 내용물을 넘어서고 그 내용물을 제거해 버린다. 그런데 맑스가 자신이 근거하고 있는 유적 존재의 개념에 어떤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맑스의 유적 존재가 비판의 척도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 주체라는 개념 규정에도 사용된다는 사실 속에서 나타난다 : 보통 인간 존재에 대해 낯선(소외된) 이러한 계급은 근본적인 혁명의 담지자(주체)로 될 수밖에 없다.(주25-) 따라서 맑스의 경제적 이론과의 첫 번째 대결이 시작되는 영역의 경계가 표시된다 : 그 영역은 포이어바흐 인간학의 추론적 구조(diskursive Struktu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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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 1

<가치에 관한 과학> 중에서 제2부, 제3장, 제3절인 <정치학 비판:인간해방과 혁명>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일단 앞 부분에 해당하는 것만 싣고, 뒷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은 <정치학 비판:인간해방과 혁명2>라는 것으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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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

 

@ 제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

 

** 제3절. 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 **

 

『유대인 문제』에서 맑스는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의 저작과 대립한다. 바우어는 정치적 해방에 대한 유대인의 요구에 대해, “기독교” 국가에서는 결코 해방될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은 종교적 해방을 전제로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맑스는 바우어가 단순한 정치적 해방과 “인간” 해방을 혼동하고 있다고 바우어를 비난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으로 맑스가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포이어바흐의 인간 “유적 존재”라는 개념에 기인한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종교 속에서 자신의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해 낯선(신적인) 존재로서 관계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인간) 고유한 유적 존재가 낯선 존재로서 자립화될 수도 있다는 이러한 비판적 형태를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로부터 정치적 영역의 자립적 형태인 국가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거기서 맑스는 이러한 소외의 해소를 민주주의 속에서 보았다. 이에 반해 이제 맑스는 “유적 삶”의 자립화를 역시나 “완전한 정치적 국가”의 특징으로 파악한다. 또

한 그 정치적 국가에서 인간은 “이중적인 삶”을, 즉

 

“인간이 국가로 간주되는 정치적 국가에서의 삶, 그리고 인간이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하며 다른 인간들을 수단으로 파악하는 시민사회에서의 삶……”(Ⅰ.2/149; Ⅰ/354)(주19-) 

 

을 산다.

자립화의 해소, 즉 실질적인 해방은 따라서 결코 하나의 정치적 행위, 즉 민주주의의 실현일 수 없다.(주20-) 따라서 이제 맑스에게서 더 이상 특정한 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문제이다. 따라서 인간 해방은 정치적으로 가능할 수가 없으며 오로지 자립화된 유적 존재를 현실적 인간으로 되가져옴으로써만 가능하다 :

 

“모든 해방이란 인간 세계, (인간) 관계의 기원을 인간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다. 정치적 해방은 인간을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즉 이기적이며 더 이상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즉 도덕적 인격(Person)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바로 현실적인 개인적 인간이 자신 안에서 그리고 개인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노동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관계들 속에서 추상적 국민을 폐기할 때, 유적 존재가 된다. 바로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능력들’을 사회적 힘으로서 인식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힘이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 해방이 완수된다.”(Ⅰ.2/162f; 1/370)

 

인간이 어떻게 유적 존재가 되는가, 인간해방을 누가 완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맑스는 물론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짧은 논문 2부에서 맑스는 처음으로 소외의 경제적 원인들을 다룬다. 맑스는 이제 결코 유적인 삶이 정치적 영역에서 자립화된다는 사실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우선 시민사회가 “인간의 모든 유적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 세계가 원자화되고 적대적으로 대립해 있는 개인들의 세계 속으로 해소될” 수 있다(Ⅰ.2/168; 1/376)는 사실을 비판한다. 따라서 맑스는 소외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시민사회 안에서 구성된다는 사실을 말하였다.(주21-)

국가라는 이성적 존재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맑스는 “시민사회가 정치적 국가를 완전히 발생시킨다”(Ⅰ.2/166; 1/374)는 사실, 따라서 정치적 해방이 오로지 제한된 목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맑스는 이제 국가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성적 공공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거나 의식을 개혁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맑스는 이성과 비이성의 충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적 존재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문제 삼는다.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으로부터 넘겨받은 이 개념(인간 소외)을 맑스는 처음에는 오로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만 적용시켰는데, 이제는 그 개념을 시민사회 자체에 적용시킨다 : 맑스는 소외의 원인들과 소외의 해소 가능성을 경제에서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맑스는 청년헤겔학파의 표상의 영역과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요구들의 영역을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질적인 진보에 있어서 맑스의 이론적 문제의식의 구조가 여전히 존재와 현실 사이의 모순이라는 동일한 지평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맑스가 『독불 연보』에 실은 두 번째 짧은 논문인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은 독일에서 종교 비판이 끝나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맑스는 이제 인간의 종교적 자기소외의 사회적 원인에 관한 문제에 서 있게 된다 :

 

“그러나 인간 그것은 결코 세계 바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 그것은 인간 세계, 즉 국가, 사회이다. 이러한 국가, 이러한 사회는 종교, 즉 전도된(거꾸로 된) 세계의식을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 존재가 환상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된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어떤 참된 현실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Ⅰ.2/170; 1/378) 

 

이렇게 인간 존재의 사회성을 추상적으로 파악하면서, 그렇지만 그렇게 파악한다고 할지라도, 맑스는 이미 포이어바흐의 추상적 인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종교비판의 위상이 변하기 위해서, 종교비판은 단지 고유한 비판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비판으로부터 종교가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어 나아가야 한다(Ⅰ.2/171; 1/379). 맑스가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하필이면 법철학 비판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를 맑스는 독일의 현실이 그가 다른 나라들에서 얻을 수 있었던 역사적 상태에 여전히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통해 밝히고 있다. 유일하게 독일 법철학과 국가철학만이 “액면가 그대로 공식적인 근대라는 현재와”(Ⅰ.2/175; 1/383) 관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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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가치론 - “리카르도주의 사회주의자들”

이 번역문은 미카엘 하인리히가 쓴 <가치에 관한 과학>(Die Wissenschaft vom Wert)이라는 책 중에서 1부 1장 6절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장, 절 들을 번역해서 올려 볼 생각입니다. 왜 이걸 번역해 보냐 하면 여성노동의 가치와 연관된 논문을 써 볼까 하는데, 제가 생각하고 있는 맑스의 가치론과 저자가 보는 맑스의 가치론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번엔 2부 3장 3절 <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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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 Wissenschaft vom Wert #

 

- Michael Heinrich -

 

<1부 :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인간학 -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영역>

 

@ 1장 : 고전 정치경제학 @

 

** 6절 :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가치론 - “리카르도주의 사회주의자들” **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노동운동도 발달하였다. 19세기 초 무렵 영국에서 노동운동은 부르주아 개혁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2~30여 년이 넘게 이 둘 사이의 대립은 아주 강했다. 이러한 발전은 상호 대립해 있으면서도 정치경제학을 둘러싸고서는 결코 대립되지 않았다. 1820년과 1840년 사이에 고전 노동가치론으로부터 나타난 서로 다른 저자들은 전체 부가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될 수 있고 따라서 노동자가 전체 노동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로벤탈 학파(로벤탈 1911년) 이후에 통상적으로 이러한 저자들을 “리카르도주의 사회주의자들”로 불렀다. 정치경제학이 우선 과거에 토지소유자와 봉건 지배구조에 대항하는 무기였다면, 이제 정치경제학은 노동계급에 대립하여 자본의 합법적 과학으로 비판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고, 또한 이러한 것이 정치경제학의 전제들 속에서 출발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와 연관된 중요한 지점이다.(주41-반자본주의 이론과 노동운동의 연관성은 부르크아트(Burkart, 1980)에 의해 토마스 호지스킨(Thomas Hodgskin)의 예에서 고찰된다.) 

 

이미 1821년에 익명의 저작은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으로 환원됨을 보여 주었다. 그 저자는 자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승인된 명제, 즉 노동은 모든 부와 수입의 원천일 것이다(익명 1821, 2쪽)라는 명제와 더불어 (논의를) 시작한다. 그런 후에 그는 잉여노동의 개념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넘어서 생산하는 인간의 노동으로 정의한다(같은 책, 3쪽). 이러한 개념을 통해서 그는 자본소유자의 수입을 설명한다 :

 

“더 이상 자신의 노동을 사회의 노동과 통일시킬 수 없는 자본소유자는, 자신의 자본이 지대로부터 나오건 또는 화폐이익으로부터 나오건 간에, 자신의 자본의 사용을 위해 지불되는 타인의 잉여노동 또는 이익 위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익명 1821, 8쪽)(주42-그 다음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 “…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는 매 시간의 노동생산물을 노동자들로부터 뽑아내고자 한다.”(익명 1821, 23f))  

 

맑스는 그 저자가 이윤을 잉여노동으로 해체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리카도나 스미스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하나의 진보임을 인정하였다.(주43-) 사실상 여기서 이윤은 잉여노동에 대해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서 이익, 지대와 통합된다. 물론 여기서 이윤이 잉여노동으로 해소되는 것이 결코 가치론에 근거하지 않고(주44-), 따라서 부르주아 경제학을 대상으로 삼는 어떠한 이론에도 근거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하고 모든 사회에 타당한 사실들에,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한다는 사실, 하나의 계급이 전유하고 있는 사회적 잉여생산물이 다른 계급의 잉여노동을 통해 생산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저자는 착취의 물적 내용을 인식하고 있지만, 부르주아 사회에서 착취가 매개되는 특수한 형태를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른바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표자는 토마스 허드그스킨(Thomas Hodsgkin)이다. 그에 관해서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바는, 그가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넘겨받아서 착취이론으로 폭넓게 발전시켰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Blaug 1958, 143쪽을 참조하라). 사실상 허드그스킨은 명백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론, 즉 자본의 권리가 노동자계급이 빈곤해지는 원인이라는 이론을 끌어오고 있다(Hodgskin, 1825, 80쪽을 참조하라). 물론 무엇보다도 먼저 허드그스킨은 리카도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있고 리카도의 이론을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주45-) 허드그스킨 자신의 고유한 이론적 싹은 리카도의 가치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 파악되기보다는 스미스의 가치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허드그스킨은 “자연적” 가격과 “사회적” 가격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은 것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다 :

 

“자연 가격 또는 필요 가격은,……자연이 인간으로부터 요구하는 노동의 총량은 인간이 어떤 상품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은 과거에 최초의 화폐였고, 현재와 미래에는 자연과의 거래에서 구매 화폐가 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사회적 가격이라고 부를 가격의 또 다른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 규칙에 의해 높아진 자연적 자격이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요구될 수 있는 노동량이 얼마이든지간에, 노동자는 항상 사회의 현재 상태에서 자연으로부터 상품을 사는 데 요구되는 노동보다 더 많은 노동을 그 상품을 획득해서 소유하는 데 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에 대해서 증대된 자연가격(Naturel Price)이 사회가격(Social Price)이다.”(Hodgskin, 1827, 219쪽)

 

허드그스킨이 자연 가격을 “자연”을 요구하는 가격으로서 나타내고 있는 과장된 정식들은 말 그대로 확고하게 스미스가 노동을 가치의 척도로서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Smith 1776, 47쪽 이하와 비교해 보라). 뿐만 아니라 자연 가격을 높인 것으로서 사회 가격의 구성 역시도 스미스가 자본주의적 관계라고 간주하였던 가치 규정과 연결되어 있다 : 상품가치가 덩 이상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윤이나 지대에 대한 몫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상품 생산에 대해 요구되는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그 상품에 대해 지불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노동자가 “자연” 가격과 “사회” 가격 사의의 차이를 지불하고, 이러한 차이가 이윤과 지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미스와 리카도에게서보다는 허드그스킨에게서 그가 잉여가치를 “사물과 관련해서(der Sache nach)"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허드그스킨은, 그 자신이 위에서 논의한 익명의 저자와 비슷하게 상품의 가치량과 평균 이윤의 규정과 같은 세부 항목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취하였다.(주46-)

맑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모순”, 다시 말해서 “그 경제학자들의 전제들로부터 형성되는 모순”(Ⅱ.3.4/1370; 26.3/234)이 좌파 리카도주의자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 경제학자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이론적 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허드그스킨은 이미 스미스와 리카도가 만들었던 독특한 인간주의의 틀 내에서 정치경제학의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허드그스킨은 그의 저서 『대중 정치경제학』(Popular Political Economy)에서 스미스가 이미 보여 주었던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분업이 인간 본능의 결과일 수 있으며, 계속해서

 

“정치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연적인 이해관계들, 열정들, 본능들, 그리고 성정들(affections), 더 나아가 이러한 것들의 결과들이다. 이 책은 거의 오로지 이러한 것들에 한정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과 이런 것들의 영속성 위에서…… 국부에 대한 자연과학이 발견된다.”(Hodgsikin 1827, 25쪽)

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허드그스킨에게서는 자연과학이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스미스와 리카도에게서처럼 허드그스킨에게서도 상품 생산은 바로 자연적이며 인간에게 적합한 생산방식으로 나타난다. 허드그스킨에게서 등가교환은 자연적인 공정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교환에서는 분명히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는 어떠한 등가물도 교환될 수 없기 때문에, 이 교환은 불공정한 것이다.(주47-) 부르주아 사회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이러한 관념은 현실적인 (인간)관계들과 충돌하며 비판의 척도가 된다.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이러한 비판은 비판행위의 전제들 안에서 변함없이 출발한다.

맑스의 비판방식은 이러한 도덕적 비판 방식과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이에 대해서는 4장과 비교해 보라), 종종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맑스는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자신의 가치이론과 잉여가치이론을 넘겨받지도 않았다.(주48-) 물론 이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다. 맑스는 1844년 처음으로 스미스와 리카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맑스는 노동자의 비참한 상황에 직면하여서도 모든 부의 원천으로서의 노동을 이야기하고 세이의 논점들이 리카도의 노동가치설과 연결되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냉소주의”를 비판하였다(Ⅰ.2/258; EB 1/531). 맑스는 1847년에 『철학의 빈곤』에 나타나 있는 프루동과의 논쟁 과정에 노동가치설을 비로소 긍정적으로 적용시킨다. 1844년과 1847년 사이에 리카도와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의 심오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맑스는 1845년 맨체스터에 머물고 있을 때 이들의 저작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노동가치론을 자본주의 비판에 적용시킴으로써 리카도와의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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