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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인간 존재, 기원과 유토피아 2>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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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에서보다는 『밀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에서의 발췌』에서 부르주아의 소외된 사회와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성의 대립이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맑스는 상품교환에서의 욕구 상호간의 도구화에 “인간적인” 생산을 강하게 대립시키고 있다 :
“우리가 인간으로서 생산한다면 좋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보자 :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을 생산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중적으로 인정한다면 좋을 텐데. 내가 1) 나를 생산할 때 나의 개인성과 그 개인성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냈으면 좋을 텐데…… 2) 나의 생산물을 당신이 즐기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인간 존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어야 하고, 3) 당신을 위해 당신과 (인간) 유 사이의 중재자가 있어야 하고, 당신의 고유한 존재를 보충해 주는 존재로서의 당신 자신에 의해……(그 중재자를) 발견할 수 있다면…… 4) 나의 개인적인 삶의 표현 속에서 직접적으로 당신의 삶이 표현되어야 하고, 따라서 나의 개인적인 행위 속에서 직접적으로 나의 참된 존재, 나의 인간 존재, 나의 공동체가 확립되고 현실화되었다면 좋을 텐데. (……) 나의 노동이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 되고, 따라서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좋을 텐데.”(Ⅳ.2/465f; EB 1/462f)(주53-)
이에 반해 현재의 상태는 다음과 같이 간주된다 :
“우리의 생산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위한 어떠한 생산도 되지 못한다. 즉 어떠한 사회적 생산도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산을 상호 결속시키는 것이 인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Ⅳ.4/462f; EB 1/459)
맑스는 여기서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인간학으로부터 인간 존재에 상응하는 사회상태를 끄집어내고 있으며 그 사회상태를 이상(Ideal)으로서 현실성에 대립시키고 있다. 맑스가 다른 곳에서 “인간이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를 인간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가 소외의 형태로 나타난다”(Ⅳ.2/452; 40/451, Herv. von mir)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마치 소외 상태로부터 비-소외된 상태로의 이행 과정에서 인식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기서 분명히 맑스는 공상적 사회주의 구조를 잔손질을 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걸맞는 사회적 상태와의 대결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관계를 비판한다. 참된 인간 존재에 적대적인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도덕적 비판 형태의 마지막 목적은 인간 존재의 현실화를 역사의 목적으로 제시하는 맑스 역사 개념의 목적론적인 계기를 통해 감춰진다.
그러나 이러한 “공상적인 사회비판의 형태에서 벗어나기”(Sost 1980, S.29)는 당장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태들이 “약간 나중에 씌어진” 『수고』의 세 번째 노트에서 “지금까지의 불충분함에 대해 명백하게 수정”(Sost 1980, S.30)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 이것은 Sost에 의해 가정된다. 이 형태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증거로 인용한다 :
“사적 소유의 운동 속에서, 즉 바로 경제의 운동 속에서 모든 혁명적 운동이 자신의 경험적 토대뿐만 아니라 이론적 토대를 발견한다는 사실로부터 필연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Ⅰ.2/263; EB 1/536)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위해 필수적인 Sost의 수용에 대립해서 『밀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에서의 발췌』는 『수고』의 세 번째 노트 이후에 비로소 씌어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의 불충분함에 대한 수정”이 바로 결코 단순한 신앙고백을 통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그리고 인용된 진술이 맑스 (사상) 발전의 이러한 시점에 대해 어떤 다른 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설령 이 사실 속에서 이후의 결과들이 먼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나타난 불충분함은 오히려 소외 개념 자체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따라서 오로지 새로운 개념을 통해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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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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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는 여기서..."로 시작되는 끝에서 네번째 문단을 보면...(1) 먼저 그 문단의 "게다가..."로 시작되는 문장부터가 제 책에서는 독립된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2) 또한 그 문장 앞에, 즉 "...적절하다"로 끝나는 문장 다음에 한 문장이 추가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3) 한편 그 바로 앞에, "인간이...나타난다"라는 인용문은 출처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4) 이상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서.. "맑스는 여기서..."부터 "게다가..." 바로 전까지, 즉 제 책에는 하나의 독립된 문단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 봤습니다. (곰탱이 님 번역에 약간의 수정/의역을 했고, 앞서 말씀드린 추가된 한문장을 넣었습니다.)
맑스는 여기서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계지점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인간학으로부터 인간 존재에 상응하는 사회상태를 끄집어내고 있으며 그 사회상태를 이상(Ideal)으로서 현실성에 대립시키고 있다. 그가 다른 곳에서 “인간이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를 인간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가 소외의 형태로 나타난다”(Ⅳ.2/452; 40/451, Herv. von mir)고 말한 것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소외의 상태에서 소외되지 않은 상태로의 이행이 마치 인식(깨달음, Erkenntnis)의 문제인 것처럼 드러난다.
(5) 위에서 보시듯이, 한 문장이 추가됨으로써 의미가 훨씬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 같은 문단의 맨 마지막 문장: "이 형태들은..."
여기서 주어 sie는 Sost를 받습니다. (Sost가 여성인가보군요.) 따라서 이 문장은 "그녀는..."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상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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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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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네요^^. 1991년 판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데, 제 불찰 입니다. 지적하신 문장도 빠져 있네요^^. 지송함다^^. 고쳤습니다.(2) 그렇네요. "따라서 여기에서는 마치 소외된 상태에서 비-소외된 상태로의 이행과정에 인식 문제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문장이 빠져 있네요.
(3) 인용문 출처 고쳤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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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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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1년 판에는 다르게 나와 있던데, 2003년 판을 보고 수정했습니다.(4) 지적하신 것을 참고로 해서 나름대로 고쳐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5) 주어 sie는 문법상 Sost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사 원형(zitieren)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맥상으로는 Sost가 맞는 것 같은데, 문법상으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Sost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바람에^^... 좀더 알아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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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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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런.. 여기서 독일어 실력이 뽀록나네요 ^^;;;;어이없게도 참고문헌을 찾아보니.. Sost는 Sozialistische Studiengruppen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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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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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ㅋㅋ... 그럼 Sost가 맞네요^^... 너무 감사함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