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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렇게 말했다며?'

참 슬프다.

내가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어느날 누군가에게서 '니가 그렇게 말했다던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카더라'류의 이야기.

 

한 두번의 경우이거나, 별 의미 없는 경우에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듣게 되는 그 말은 참 난감하다. 그 이야기가 돌아 돌아 내 귀로 들어왔다면 이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해졌으리라.

 

그로 인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타인이 나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인데, 결국 그로 인해 내가 아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 그것도 조금 따가운.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의도적이든 무심결에든 그런 말들을 전하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라면 덜하겠지만, 돌아 돌아 들은 이야기를 나도 분명히 그렇게 타인에게 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도 그러니 뭐'라고 하면서 넘어가기엔 뭔가 걸리는게 많다.

 

그렇다고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라고 해명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나 대중매체에 해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오해가 해결되거나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조심하는 수 밖에. 직접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이상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수 밖에. 나부터.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인지를 확인하면서 주변에서도 조심스럽게 하는 수 밖에.

 

난 아직도 배워야할 것도 깨달아야할 것고 고쳐야할 것도 많은 부족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인정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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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감정조절?

사람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번이 변한다.

그러다보니, 간혹 자기 스스로도 자기의 감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자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런) 표출로 인해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매순간마다의 감정이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 전의 감정이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감정 표출이 없었다면 자신만의 문제로 치부되고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순간의 감정이 표출되었을 때다.

 

그렇게 나타난 감정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그 순간 그 감정 표현에 대한 합리화는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흘러 그 감정이 거짓으로 변했을 때, 그 뒷감당은 쉽지 않다. 솔직하게 그 땐 그랬어라고 말하기엔 뭔가 걸리는게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존심이건 부끄러움이건 자기합리화에 대한 정당성 부여건 간에.

 

결국,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위해서는, 순간 순간 나타나는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하고 어떤 것이 지금 그 순간만의 감정이 아닌 조금 더 오래 지속되어오거나 지속될 감정인지 판단할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 이런 행동들이 지나칠 경우, 가식적이 되거나 자기 속에서 자기가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걸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 적절하게 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걸 내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과연 내가 인간일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든다.

 

결국 난 그냥 그렇게 매 순간 조금은 조심하겠지만 지나치지 않게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가면,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욕먹어가며, 가끔 그런 뒷감당 때문에 가슴 아파하거나 분노하거나 하며, 그렇게 살아가야만 할 듯 하다. 그게 조금 더 진실된 인생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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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인간의 출현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뿌리와 이파리

2005


#1. 이론

세상에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우리가 늘상 말하곤 하는 인간은 합리적일 때.


#2. 현실

그런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두 번째 가정, 인간은 어느 때에는 합리적이지만 어느 때에는 무척이나 합리적이지 못하다.

첫 번째 가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 발생한다. 즉 인간은 복잡하다는 거다.


#3. 다시 이론

그러나 어떠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자할 때, 첫 번째 가정은 유용하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정도 상당히 유용하다. 이론의 설명은 최대한 사회현상을 최대한 단순화해야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1.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선 늘 이기적인 인간이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은 합리적이기때문에 결국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이론상은


#4. 다시 현실

그런데, 현실은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 않다. 왜? 인간은 합리적이기도하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면서 이타적이기도 하고, 그 중간에 있기도 하니까.


#5. 이론과 현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우선,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정도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사용한 이론틀이 진화적 게임이론(인간은 조금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며 진화해 간다)이다.


혈연인가? 유전자를 조금 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객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만 이타적인가? 실험에선 아니다라는 것이 나왔다. 그러면 반복-호혜성인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내게 도움을 주기때문만 인가? 아니다. 반복-호혜성이 전제하는 경제적 인간.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에게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타적 행위를 한다. 그럼 유유상종? 잘난체? 의사소통? 집단선택인가?


여기까지의 많은 이론들이 일정부분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긴하지만 각 가설이 갖는 한계점들이 있다. 하지만, 부분적 유유상종 현상, 이타적 집단이 이기적 집단에 비해 조금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점, 국지화, 모종의 집단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유리한 조건을 생성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6. 이타적 인간

결국 이타적 인간은 실제 존재하고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타적 인간은 존재하며, 여전히 진화 발전해 가고 있다. 즉 이타적 인간이 이기적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집단선택, 국지화된 상호작용, 국지화된 지식전수과정, 의사소통 등 때문이다.


#7. 어떤 식으로 존재? 어떤 경우 강하게 발현? 어떤 역할?

인간은 공평성 혹은 이타심에 근거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는 학습되었다고 봐야한다.(어른과 아이들에게 같은 실험을 했을 경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서 더 많은 이타성을 볼 수 있다)


또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불공평에 징계를 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 집단이 협조적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 경제생활이 시장경제에 통합되어 있는 정도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호의적 제안에 호의적 답을 할 수 있는 호혜적 인간형이 존재하며, 그것은 신뢰가 그 밑바탕에 있다.


이러한 강한 호혜성의 존재는 불완전한 계약이 불가피한 시장 상황에서 시장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강한 호혜성은 집단 내 무임승차 행위를 최대한 억제하며, 집단 구성원 사이의 이타적 협조행위의 가능성을 높인다.


#8. 인간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를 함께 가진 인간에게 조금 더 강한 정도의 이기적 유전자는 학습(의사소통, 사회제도, 교육 등의 요인에 의해)을 통해 이타적 유전자로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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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오면

꽃피는 봄이오면 (2004년 류장하)


#1. 최민식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열정' 이 말 외에는 더 찾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내는 삶은 너무나 진실처럼 보인다. 그 속에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영화는 나의 삶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영화속의 최민식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2. 옛날 그리고 겨울


 겨울은 매우 많이 힘든 시기를 표현하곤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는 또다시 옛날이라는 시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그것도 꽃피는 봄이오면 사람은 힘든 시기가 지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현우에게 우연히 찾아든 도계중학교의 관악교사자리는 그가 엄마에게 말하던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싶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준 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지만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온다. 그렇게 현우의 기나긴 겨울은 끝이 난다.



#3. 사랑


 3 가지의 사랑. 가족에게로의 사랑, 이성에게로의 사랑, 그리고 아이들에게로의 사랑. 현우는 내리사랑과 동시사랑과 치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시사랑을 사랑할 수 없음을 내리사랑에게 풀어버리고 치사랑을 통해 내리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또 다시 동시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이 3가지 사랑은 늘 동시에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현우가 배운 사랑은 우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사랑의 완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현우가 깨닫는 순간 그는 3가지 사랑을 모두 얻게된다.

#4. 꿈


우리는 꿈을 가졌었다. 부모들도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못남으로 인함이라기보다 그것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꿈이다. 우리의 꿈과 아이들의 꿈은 기억되고 이야기되지만 부모들의 꿈은 그렇지 않다.현우가 불현듯 엄마에게 물었던 '엄마 꿈은 뭐였어?' 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고 그러다가 가정이 행복한 것이 꿈이었다고 그리고 현우가 잘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제나 우리 부모들의 꿈은 우리에게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잃어야 할 것과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잃어도 괜찮은 것과 꿈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잃지 말아야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5-1. 호감


 호감과 사랑은 다르다. 이미 사랑중에 있는 이들에게 호감은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더욱 안겨준다. 호감이 언제나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감은 곧잘 사랑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현우에게 있어서의 호감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 상황에 다가온 도피처다. 그러한 도피처는 결국 호감에서 끝날 수 밖에 없다.

#5-2. 질투


 질투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그런 질투가 있기에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6-1. 내기억


 내가 오래동안 살았던 동네는 태백이다. 탄광촌.... 어쩌면 탄광촌이야기라는 것이 나를 이영화로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잠깐 나오는 거리의 모습들과 익숙한 탄광의 모습...그리고 그 속에 있는 광부들...떠나온 곳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에게 잠시 잠깐 추억을 전해주었다. 어느덧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그곳을 다시 나의 기억속에 담아주는 장면들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인지 화를 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련하게 저려온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읽을려고 한다면 감독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사적경험은 이 영화에서 사적인 말을 한다.


#6-2. 떠나는 이와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태백을 떠나면서 난 훨훨 날고 싶었다.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도시에서 느낀 것들은 허전함과 외로움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는 이였다. 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가끔 아주 가끔 찾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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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낭비. 그리고 내 삶.

감정낭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조금 낭비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그저 그렇게 아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난 이제 다시 자신 위주로 삶을 살아가는 유아적 삶으로 되돌아가는 걸까?)

 

그런데, 조절이 안된다.

아까운데, 그 아까운 내 감정이 조절이 안되서 자꾸 낭비가 된다. 그 낭비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그것도 마구. 아픈거 싫다. 그런데 자꾸 아프다. 예전에 아프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났는데, 이젠 화만 나고 눈물은 안난다. 결국 난 유아적 삶을 선택해야만 아프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어쨌건 난 스스로 방어하고 싶다. 아프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감정낭비를 줄여야한다. 감정낭비를 줄이기 위해 난 유아적 삶의 형태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세상인 거다. 그리고 세상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세상을 위해 굳이 날 희생하면서 내가 아파해야할 이유는 이제 없다. 세상을 무시하기로 하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이제는 신경쓰지 않을꺼다. 난 그냥 나의 유아적 삶에 충실하기로 한다.

 

조절이 안되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설프게 이타적인 척 하다 난 상처받고 있다. 난 결코 이타적이지 않다. 난 이기적일 따름이다. 그걸 인정하고 살자. 그냥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살자. 나중에 욕 먹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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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게 베트남 사람은

솔직해지자.

오늘 만난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머리로 솔직해지자' 결국 자신 스스로의 생각을 바램이나 마음이 아닌 머리로 냉철하게 판단해보자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문뜩, 나에게 베트남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가 궁금해졌다. 나의 바램, 나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머리에게. 그리고 나만 아니라 다른 한국 사람들의 머리에게 베트남 사람들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나의 머리에게 베트남 사람은 냉정하게 말해서, 아직은 도움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누군가 욕할지도 모르지만) 난 그 머리의 생각이 싫다. 그런데 현재는 그렇다. 나의 마음, 바램에서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일부러 그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베트남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화가나는 경우가 생긴다. 냉정하게 말해 내가 싫어하는 나의 생각과 거의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헷갈린다. 사실.

내가 베트남 사람을 진정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로 보고 있는 건지, 도와주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나의 바램과 마음은 확실하다 진정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머리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상황이 발생하면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른 한국 사람들은 어떨까? 베트남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직 베트남 사람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 중 딱 한분만은 머리와 가슴으로 베트남 사람을 진정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로 판단하고 있다. 바램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많지 않다. 대부분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제가 있는가? 아직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는 없다.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웬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얼마 안되는 베트남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됐다.

 

그냥. 한국 사람이든 베트남 사람이든 그냥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마음으로 바램으로 머리로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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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주는 관계

가슴이 찟어지는 고통이다.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 당시 만큼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나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다. 단지, 힘든게 아니고 가슴이 찟어질 듯 고통스러울 뿐.

 

내가 주변인들에게 '나 아프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세상엔 너보다 더 힘들고 더 아픈 사람 많다. 너는 행복한거다.' 인정한다. 분명.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다. 그들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과 나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다른 상황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과 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성격도 다르다. 내가 아픈게 그들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그들보다는 아니겠지만, 그들이 느끼는 아픔만큼은 나도 아프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분석들이다. 그러면서 지금 나의 상황은 별 문제 아니고 곧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것도 인정한다. 단지 머리로. 찟어지는 가슴의 고통은 머리로 이해한다고 인정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가끔 묵묵히 듣다가 한 마디 건네는 경우가 있다. 힘내라.

 

사실 난 아마 단지 이 한마디를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비교하거나, 나의 상황을 분석해주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힘내라라는 한마디가 더 좋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딱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힘내라' 난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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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알고 있는 베트남

베트남에 대한 자료들과 책을 많이 모우고 조금씩 보고 있다.

논문도 논문이지만 그냥 무작정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서 베트남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내가 본 베트남관련 한국어 자료는 거의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쟁에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했고, 그로 인해 한국은 경제발전을 했으며, 남베트남의 멸망은 내부의 부패문제이며, 1986년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포기하고 시장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이며, 그로 인해 베트남은 현재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한국기업들에게 조금 덜 개척된 황금시장이며, 한류의 근원지이다. 2006년 WTO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에 편입하였고, 이는 한국에게 기회이자 위기가 될 것이다. 또 베트남의 주식시장은 이제 막 성장단계이므로 조금 더 빨리 투자를 해야하고, 부동산의 외국인 소유가 곧 인정될꺼니까 더 빨리 부동산을 사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경제발전의 모델로 한국을 설정했으니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따라서 한국에서 사양산업이 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들어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베트남은 한자문화권에 속했고, 유교문화가 존재하여 정서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며,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고, 현재 베트남은 한국의 7,80년대와 똑같다는 느낌이 든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데, 특히 한국 사람들은 좋아한다. 이유는 역사적 동질감이 가장 크다.

 

또 한국내 결혼이주민 중 중국국적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노동을 위해 입국하는 이들 중 공식적으로 2번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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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해 베트남과 관련된 자료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와 관련된 문서다. 결국 한국은 베트남 시장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몇 몇 학자들에 의한 사회 문화 정치 등의 분야의 자료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경제문제와 조금씩 관련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들이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각에 있어 과거 한국이 가지고 있던 북베트남에 대한 조금은 적대적인 시각과 영어로된 문서를 통해 알게되는 서구적 시각이 아직은 더 많다. 나 역시 아직은 베트남어로 된 자료를 읽지 못한다.

 

대신 베트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베트남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렇게 나는 베트남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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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의 이유

self control. 자기관리.

 

자기관리의 이유 -자신의 삶에게 성공이라는 단어를 주고 싶어서

 

2. 성공이라는 단어를 주기 위해서는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홀로 우뚝서거나

3. 타인들과 조합롭게 비슷한 위치에 서 있되,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4. 타인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서 하거나

5. 누가 뭐라든 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로 하거나(자기만의 성공을 가지거나)

6.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를 바꿔버리거나(새로운 헤게모니를 창조하거나)

7. 1인도로 옮겨서 살거나

8. 모든 걸 무시하고 그냥 있거나

 

 

 

1.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하기 싫거든, 근원을 없애거나(자기관리 자체를 무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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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라는 나라

2003년 우연히 다가온 베트남. 그 우연이 지금의 나를 이곳 베트남으로 이끌고 말았다. 3년여 베트남과 씨름하며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즐거웠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난 그런 베트남에 대해 불만이 거의 없었다. 아니 있었겠지만 모두 그냥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비바람이었다.

 

짧기만한 베트남 방문으로, 책과 뉴스와 타인의 이야기만을 통해서 듣는 베트남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직접 이곳을 조금 오랜 기간 머물고 싶었다. 시간적, 재정적 상황이 허락한 다는게 고작 4개월하고 20일정도.

 

4개월하고 20일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그렇게 좋게만 보이던 베트남에서 첫번째 벽을 만난 느낌이다. 현재 너무나 혼란스럽지만 나 자신을 추스리고 벽을 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잘 안되지만...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단점도 이해할 수 있게 되듯이, 나라가 좋으면 그 나라의 단점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조금씩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마음에 든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가진 단점에 결국 그 나라의 단접이 되는 것인데..그래서 이해가 되어야하는데...그렇지 않다. 그나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져다 주는 사람과 단점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 어느 나라 사람은 이렇다. 라고 단정 짓게 됨으로써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개인이 무수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중 조금 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나라는 그 무수한 정체성을 가진 무수한 개인들이 있는데, 그 중 조금 튀는 사람을 통해 그 나라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게 오류인것 같다. 아마도..

 

베트남.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할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마 내가 잘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을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이고 이해가 되는 부분은 내가 잘 아는 베트남 사람들을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인것 같다. 이것도 오류가 아닐까?

 

 

베트남을 알기 위해선, 이곳뿐만아니라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아시아를 더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싱가폴을 먼저 갔다. 싱가폴...서울보다 조금 큰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쩌면 엘리트 위주의 사회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불만은 그렇게 많이 들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아시아국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나름의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을 만들려고 하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우면서, 너무 많은 것들이 궁금한 나라였다. 그 싱가폴을 다녀왔다.

 

이렇게 아시아에로의 여행은 시작되나부다. 또 다시 약간의 우연으로 시작된 싱가폴 행이 동남아시아국에 대한 여행으로 그리고 그 여행이 관심으로 그리고 그 관심이 조금 더 나아가게 된다면? 휴...할 일 참 많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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