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선을 앞두고 앞 다퉈 내놓는 ‘공약(空約)’들뿐인 건가요. 아님 정말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려고 하는 건가요. 그동안 ‘복지병’이 생길 거라고 큰소리치던 새누리당도 ‘복지’를 외치고 있고. 그나마 만들어놨던 복지정책들을 다 후퇴시켜놨던 통합민주당도 다시 ‘복지’를 외치고 있으니. 이걸 말 그대로 ‘공약’으로 봐야 할지, ‘진보’로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도 보수주의자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자 모두 ‘복지’를 얘기하고 제도로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2.
하지만 넘쳐나는 ‘복지’ 공약이 되레 걱정되는 건 왜일까요. 한편으론 그동안 싸워왔던 것들이 결실을 맺는 게 아닌가, 기쁘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저 많은 공약들이 제대로 될지 생각해보면. 허참,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은 있어도 무상급식 할 돈은 없다고 생떼 쓰는데. 또 백지수표만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게다가 토인비가 사회서비스를 고안했던 이유가 산업혁명에 의해 초래된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복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와 늘어나는 빈곤층 때문이니.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유해한 국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국가 권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큰 걱정입니다. 또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노감과, 그러한 상황들을 해결하지 못한 기존의 집단행위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행동’(p.185)이 시작됐다기보다는. 눈앞에 둔 표를 잡기 위해 제안되고 있어 더욱 그렇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누군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애기합니다. 또 누군 ‘저녁이 있는 삶’을 애기하구요. 하지만 최근 벌이지고 있는 ‘무상보육’ 논란만 봐도. 그것들이 <복지국가의 사상>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때론 끝내 만들고야 말겠다는 타협 없는 투쟁심, 때론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상과 타협을 거친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비록 그들 모두가 개혁가는 아닐지라도. 또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짧은 시간에 복지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인 이 책을 권하는 건. 데이비드 도니슨David Donnison이 말한 것과 같이. ‘오늘날의 개혁가들로 하여금 사회정책 발달상 다음 단계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공헌할 수 있게 도와줄 이러한 선구자들로부터 오늘날의 개혁가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p.172)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4. 
하지만 이 책 하나로 복지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복지국가라고 말해지는 나라들이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니까요. 급격한 변화를 거친 나라가 있었다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간 나라도 있고. 단선적으로 복지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있다면 때론 후퇴하고 때론 앞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격렬한 계급간 투쟁을 겪은 후에야 복지제도를 만든 나라도 있으며, 이 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복지를 도입한 나라들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하나의 추진력과 방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란 얘깁니다. 그러니 참고는 될지언정 답은 아니겠지요.  
 
5.
또 영국사회라는 한정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상적 변화과정이라는 점. 소개되고 있는 사상가, 15명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고(예를 들어 찰스 부스니 에브니저 하워드, 에뉴런 배반 같은 이들). 또 몇 번 들어봤던 이름들도 알고 보면 잘 모르기도 하니까요(대표적인 이들이 에드윈 채드윅, 윌리엄 베버리지, 리차드 티트머스가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영국 복지국가 형성에 있어 개척자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불과 4-5페이지에 걸쳐 소개하고 있으니. 그들이 어떤 정치.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전 생애를 샅샅이 훑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을 한 권에 다 넣었으니까요. 게다가 15명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복지제도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속속들이 알기에는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책을 소개하는 것 말고도 다른 노력들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작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책 서문에서도 ‘복지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사상가들이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역사와 사상, 정책이나 제도의 발달과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각 나라가 가진 특징을 서로 비교하고, 각 나라가 지나온 발자국을 살펴보고, 사상사로 정리한다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7.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이 우려먹은 것들 중에 ‘복지’만큼이나 짭짤했던 건 없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지’를 강하게 요구 하고 있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시민적 권리가 강화되면서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따라온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게다가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이해득실만 따지는 이들이 만들고 있으니.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요? 아님 이번 기회에 다들 ‘복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쓴 소리나 할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7/20 13:28 2012/07/20 13:28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nongbu/trackback/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