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물고추

from 09년 만천리 2009/08/18 21:16

빨간 고추(8월 10일/무더움 20-30도)  

 

확실히 작년에 비해 고추 농사는 잘 되가는 듯하다. 아직까진. 일단 몇 개가 죽어나가긴 했지만 장마를 별 탈 없이 보냈고, 빨간 고추가 아래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게 이대로만 간다면 꽤나 많은 고추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통풍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이미 달린 고추에 영양을 더 주기 위해서도 곁가지로 나온 고추 잎들을 따주어야 한다.

 

두 시간이나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며 하나하나 일일이 고추 잎을 따니 땀도 많이 나고 무릎도 아프다. 게다가 웬 모기떼가 이리도 극성인지. 아마도 땀 냄새를 많고 모여든 것일 텐데, 땀 식힐 시간이 있다면야 어찌 해보겠지만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그러지도 못한다. 하는 수 없다. 모기가 물든 어쩌든 해질 때 까진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는 수밖에. 

 

첫물고추 - 첫째 날(8월 11일/흐린 후 비 22-25도)

 

오후부터 장대비가 온다고 한다. 이 비는 내일까지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쏟아낸다고 한다. 지난 번 장맛비로 이미 고추 몇 주를 뽑아냈으니 비가 더 온다고 해도 비 피해를 받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또 무더위가 지속될 거라는 장기예보가 있으니 아무래도 첫물고추를 수확해야할 듯하다. 해서 어제부터 시작한 고추 밭 정리를 잠시 멈추고 빨간 고추 수확에 나선다.

 

비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밭에 나왔는데도 겨우 한 시간이나 고추를 땄나.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조금만 더 따면 한 이랑은 딸 수 있건만, 어찌할까 잠시 고민이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가운데 고추를 따게 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몸은 정반대다. 다섯, 여섯 주만 손을 보면 한 이랑을 끝낸다는 눈치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고추를 따낸다.

 

결국 10여분 더 일을 한 후에 한 이랑에 달린 고추를 다 따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에휴. 이게 뭔 사서 고생이람. 그래도 따 온 첫물고추 무게를 재보니 7.3kg이나 된다. 아직 네 이랑이나 더 남았고, 아직 빨갛게 되지 않은 고추들이 빨간 고추보다 세 배는 더 많으니. 오늘만 같으면 아무리 비가 오고 일이 많아도 힘들지 않겠다.

 

* 첫물고추 수확량 - 7.3kg

 

<꼭지를 따내고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물고추 - 둘째 날(8월 13일/무더움 20-32도)

 

계획대로라면 벌써 감자를 다 캐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김장무와 배추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를 두 이랑도 채 다 캐지 못했다. 생각보다 감자 양이 많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고 어제부터 수확하기 시작한 고추에 밀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무와 배추를 심기 전에 퇴비도 넣어주려면 늦어도 이번 주까진 감자를 다 캐야 할 것 같다.

 

감자를 캘 요량으로 호미질을 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그제 내린 비 때문인지 감자에 흙이 많이 묻어난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기다렸다 캐야할 듯하다. 괜히 땅에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캐냈다간 감자 맛이 안 좋을 것 같아서다.

 

해서 비 오기 전, 한 이랑밖에 수확하지 못한 첫물고추를 마저 따기로 하고 고추 밭으로 들어선다. 헌데 더운 날씨만큼이나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고추 따기가 영 쉽지만은 않다. 고추 서너 개 따고 모기 잡고, 또 고추 한 주 따고 모기 잡고. 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신경질만 나는 게, 어째 오늘은 일을 많이 못 할 것만 같다. 결국 한 이랑밖에 고추를 따지 못하고 자전거에 오른다.

 

* 첫물고추 수확량 - 6kg

 

   <옥상에서 잘 마르고 있습니다>

첫물고추 - 셋째 날(8월 14일/무더움 22-33도)

 

오후엔 고추 말리는 데 쓸 요량으로 차광막을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차광막을 깔고 부직포를 덮어 말리면 뒤집어 주는 수고도 덜할 수 있고 희나리도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차광막부터 사려 한 것이다. 헌데 종묘상에 갔더니 특별한 이름은 없지만 고추 말리는 데 쓰라고 나온 게 있다고 한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차광막은 고추 꼭지가 걸려 뒤집기가 어려운데 이건 그렇지가 않단다. 그리고 값도 차광막보단 조금 싼 것 같다. 해서 차광막대신 그걸 사왔다.

 

저녁나절에 또 한 이랑에서 첫물고추를 따왔다. 어제 고추를 따면서 흘낏 봤더니 꽤 고추가 많이 빨갛게 된 것 같아 쌀 포대를 두 개 준비해 왔는데 다행일까. 한 이랑을 다 따고 나니 거의 두 포대에 가득이다. 낑낑대며 자전거 뒤 짐받이에 묶어 세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지만 콧노래가 나오는 건 왜일까. 헤, 이 맛에 농사짓는 건 아닌지.

 

* 첫물고추 수확량 - 11.3kg    

 

  

첫물고추 - 넷째 날(8월 15일/무더움 20-34도)

 

하루에 한 이랑씩 모두 나흘 만에 첫물고추를 다 수확했다. 첫날 따온 고추는 벌써 아파트 옥상에서 일광욕 중이고, 둘째 날과 셋째 날 따온 고추는 마루를 차지하고 앉아 후숙 중이다. 이제 오늘 수확한 고추를 작은 방에 널어놓으면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지금까지 따온 고추 수확량은 28.9kg. 사실 고추가 빨갛게 될 무렵 다 죽어버렸던 작년에 비한다면 이만큼만 해도 대성공이다. 하지만 아직 고추 밭엔 따온 고추보다 더 많은 고추가 달려 있으니 잘만 하면 고추 대풍을 만들 수도 있겠다.

 

저녁나절엔 다음 주 김장 배추와 무 심을 곳을 만들기 위해 고추 수확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감자 캐기에 나선다. 헌데 날이 무덥긴 무더운가 보다. 해질녘에 나갔는데도 불과 한 시간 만에 온 몸이 다 젖고 만다. 정말 밭일하기 괴롭다. 그래도 겨우 반 이랑밖에 캐지 않았어도 감자가 쌀 포대에 가득이다. 덥기도 하거니와 자전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 한 정돼 있으니 이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첫물고추 수확량 - 4.3kg

* 감자 수확량 - 11.9kg

 

감자 수확 - 넷째 날(8월 16일/무더움 20-34도)

 

연일 폭염이다. 어제도 34도, 오늘도 34도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한낮엔 그야말로 땡볕인 셈이다. 덕분에 첫물고추 말리기는 잘 될 듯싶지만 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딱히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음 주 수요일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오늘까진 감자를 마저 캐고 내일은 농협에 들러 퇴비를 사다 넣어야 한다. 해서 오랜만에 삽을 챙겨든다. 감자는 대충 한 포대만 캐고 무 심을 이랑을 만들기 위해서다.

 

확실히 감자 꽃이 많이 올라온 곳이 알도 굵다. 또 알만 굵은 게 아니라 양도 많다. 지금까지 두 이랑을 조금 넘게 감자를 캤는데 씨알도 작고 수확량도 적은 게 역시 꽃도 적게 올라온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감자알이 굵으니 조금만 캐냈는데도 금방 포대가 가득 찬다. 덕분에 무 심을 이랑에 준비해간 삽으로나마 위, 아래 흙을 섞어줄 수 있다.  

 

* 감자 수확량 - 10.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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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1:16 2009/08/1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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