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차는 괜찮겠거니, 하고 기차역으로 나갔답니다. 온통 길 막힌다고 난리들이어야지요. 택시라도 탈 요량으로 길을 나서니. 그 많던 차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길은 텅텅 비었는데. 이런. 차가 통 앞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서울 나들이는 새로 길이 뚫리고는 늘 버스였는데 이번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그래 기차역으로 향한 것이지요.   
 
평일 오후인데도 벌써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습니다. 길이 저 모양이니 다들 역으로 몰린 것이지요. 서둘러 표를 끊으니 12시 50분 차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택시가 거의 기다시피 했는데도 다행히 시간이 조금은 남았네요. 오늘은 편안히 눈 구경 실컷 하면서 가겠거니 싶습니다. 그런데..... 어째 출발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개찰구는 굳게 잠겨있고. 가야할 기차는 아직 플랫폼에 들어와 있지도 않네요. 그리고 역무원도 표만 팔뿐 문 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2시 50분에 출발한다던 기차가 서울에서 오는 도중에 계속 연착을 하면서 늦어져 결국 1시 30분이 되서야 출발을 했답니다. 그리구요. 겨우 한 정거장. 김유정역에 도착해서는 한 시간 가까이나 서 있기도 하고. 그래 성북역에 도착하고 나니 작은 시계바늘이 4를, 큰 시계바늘은 30에 가까워 있더군요. 12시쯤 집을 나섰으니. 아. 기차라고 다 빠른 건 아니네요. 하지만 한참을 머물렀던 김유정역에서는 눈을 밟으며 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는 모양새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백색으로 뒤덮인 산자락들을 보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해를 넘겨 붙들고 있던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책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을 다 읽어 내려갔답니다.   
 
3. 
18세기만 하더라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닥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략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채 10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여성에 대한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60여 년 전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청소’하는 일까지도 벌어졌더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 모든 ‘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돼서도, 용인해서도 안 될 일로 여겨집니다. 노예제도도, 아동노동도, 성․인종 차별도 말이지요. 하지만.
 
산란용 암탉들은 병아리일 때 뜨거운 칼날로 부리를 잘린 채 철사로 얽은 좁은 닭장 안에 밀어 넣어져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곳에서 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 역시 진통제도 없이 꼬리를 잘린 채 곧바로 성장-급식 시설(growing-feeding unit)로 보내져 도축 무게에 이를 때까지 몸도 돌리지 못하는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진 겨우 3일 또는 4일밖에 되지 않은 비일 송아지는 양동이를 통해 젖을 마시기 시작해 철분이 함유됐다는 이유로 반추(反芻 ruminate)하려는 욕구를 차단당한 채 몸집만을 불립니다.
 
두 마리의 코끼리가 사슬로 우리에 묶입니다. 암코끼리는 “LSD 투약 절차와 양을 결정하기위한” 범위-탐색(range-finding) 실험 대상이 됩니다. 코끼리에게는 입으로, 그리고 화살 총으로 약이 투입됩니다. 다음으로 실험자는 2달에 걸쳐 두 마리 코끼리 모두에게 약을 투여합니다. 환각제가 다량 투입된 암코끼리는 옆으로 넘어져 1시간 동안 전율을 일으키며 겨우 숨을 쉽니다. 수코끼리는 LSD를 다량 투입할 경우 공격적이 되었으며 이러한 반복적인 공격적 행위를 “온당치 못하다고(inappropriate)” 서술한 실험자를 공격합니다. 뇌 연구에 생생한 실험도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숭이의 두뇌를 몸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유체 내에서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머리만을 내밀고 고정되는 장치에 놓인 토끼는 실험자가 집어넣는 (표백제, 샴푸, 또는 잉크와 같은)실험 재료를 눈으로 다 받아내야만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화씨 113도까지 체온을 올려야 하는 개와 토끼. 한 물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강제로 목구멍까지 튜브를 주입당하거나 강제로 집어넣어지는 쥐와 고양이.  
 
싱어는 (극단적으로 장인하거나 냉혹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세금을 사용하여 다른 종 구성원들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희생시키는 데 참여하고, 이를 묵인 또는 승인하는, ‘종차별주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시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본적인 도덕 원리에 대한 호소를 통해, 동물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의 근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통해, 종차별주의라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을 선명하고도 분명한,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이는 방법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의 울림은 깊으면서도 크고도 강합니다.      
 
3.
온통 눈 천지입니다. 날이 추운 탓도 있겠지만. 서울은 1937년 적설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하니. 그친지도 열흘 가까이 되는데도 여적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길이 미끄러워 도통 밖에 나가가기 꺼려지기도 하고. 또 딱히 일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눈이 꼭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눈 구경하겠다고 따뜻한 남쪽에서 조카가 올라오고. 베란다 창밖으로 온통 하얀 나무, 산, 길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눈이 참 좋습니다.
 
꽤나 많은 눈이 오면 무엇보다도 찻길이며 사람길이며 항시 길이 문제지요. 하지만 길도 길 나름입니다. 서울은 강남 길과 강북 길에 차별이 있고. 모든 길은 찻길이 먼저 치워지고. 달동네 고갯길은 ‘거기까지 어떻게 제설을 합니까’. 하기사 먹고 살기 바빠 아빠, 엄마 모두 일 나가야 하는데 눈 안 치운다고 100만원씩 벌금까지 내라고 하니. 서해안에는 벌써 많은 눈이 내렸고 여기 춘천도 곧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그것 참. 곱게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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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2:22 2010/01/14 12:22
첫째 날, 남한강을 따라 걷는 길,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2006년 11월 5일)
 
아침 날씨가 공기부터 다르다. 요 며칠 사이 쌀쌀해졌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와서야 실감한다. 나름 옷가지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내일과 모래 사이에 비가 한차례 오고 나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9월, 10월 좋은 날씨 다 보내고 뒤늦게 길을 걷자니 당연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단양팔경의 제1경이라는 도담삼봉에 당도하니 햇살이 많이 퍼져서인지, 바람이 잦아들어서인지 다행히 춥지는 않다. 삼봉을 배경으로 멋쩍은 우편엽서 사진 한 장 박고, 된장국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니 한결 몸이 녹는다.
 
<어찌나 물이 맑던지.....사진으로 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단양읍을 지나 고수대교를 건너니 고수동굴이 지척이다. 당초 오늘 말고 내일 인근에 있는 고씨동굴을 구경할까 했지만 그래도 이름난 곳을 둘러보는 게 제대로 된 동굴구경이 아닌가 싶어 잠시 관광안내소에서 쉬었다 동굴 구경에 나서는데.
 
이런, 동굴 입구 주차장에 가득한 관광버스부터 매표소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에 꽤나 복작복작할 거라 예상은 했어도, 이리 많은 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굴 구경인지라 잔뜩 기대하고 들어섰는데 이거야 원, 뭘 구경하러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들에 밀려 대충대충 눈도장 찍듯 석주며, 석순 등을 구경하는데 그래도 볼만한 곳 여러 군데를 지나고 나니 조금은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사람 숫자가 준다. 다행이다. 빙글빙글 한없을 것만 같이 돌아서는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다시 거꾸로 한없을 것만 같이 아래로 돌아서는 계단을 내려오기도 하며 구경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이다. 초장에 설렁설렁 구경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두 시간도 모자랐을 거다.
 
동굴구경을 마치고 길을 나서니 아침과는 달리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게 입동을 앞두고 매서운 겨울 날씨를 맛보게 하려는 듯하다. 게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고갯길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무척 힘이 부친다. 동굴이 근처여서인지 고개 이름도 고수령이다. 영월까지 44km라는 간판이 보이기는 한데 긴 내리막길이 발밑이어서 걷기엔 수월하다.
 
<첫날 머물렀던 향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만났던 강변 갈대 숲>
 
단양에서부터 이어지는 59번 국도는 며칠 전 모 일간지에 ‘멀미 날 낙엽 길’로 선정되었던 길인데, 그 기사가 아니어도 울렁울렁 멀미가 일 정도로 길 양옆 낙엽 색깔이 울긋불긋하다. 또 푸른 옥빛의 남한강이 줄곧 길을 따라 흐르고, 그 강을 따라 황금색의 갈대숲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기사가 놓치고 지나간 아름 풍경이다.
 
당초 구인사며 온달산성 구경을 위해, 그리고 좀 전의 신문 글을 따라서, 우리가 오늘 머물게 된 향산 조금 못 미쳐 595번 지방도로로 갈아타야 하나 시간적으로나 몸 상태로나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아쉽지만 이름만큼이나 흐르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찍 자리를 잡는다.
 
둘째 날, 여전히 남한강을 따라,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까지(2006년 11월 6일)
 
5분만 가면 아침 먹을 만한 곳이 있다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맛난 된장국에 밥 한술 말아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밥 대신 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저녁을 때워서인지 뱃속이 무척 허해 아침은 제대로 먹어야지 하며 조금은 걱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맛난 밥에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먹도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가 군간교 삼거리를 지나면서는 많이 굵어진다. 또 지난 여름 수해로 여기저기 상처 난 길들을 메우기 위해 질주하는 덤프트럭들로 길을 걷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이야 비옷으로 어찌 해보겠는데 질주하는 차들이 뿌리고 가는 흙탕물을 피하느라 그렇다.
 
결국 영춘면에 들어서서는 얼굴에 철판 깔고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출발할 때보다 더 거세진 빗줄기도 빗줄기이지만 비옷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한 옷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번듯한 면사무소지만 한적하기 이를 데 없어 눈치 볼 필요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비 때문에 두 시간을 허비했다. 해서 발걸음을 빨리 해야 할 텐데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맑은 가을하늘과 어제부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강줄기와, 낙엽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거추장스러웠던 비옷까지 잠시 벗어들고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풍경을 담아내느라 정신없다.
 
 
<잠깐 비가 그친 후 정신없이 걷던 중>
 
열 여섯 번 째 여행 만에 강원도에 들어선다. 이제는 걸어야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훨씬 많다. 뭔가 자축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친 듯 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비옷을 다시 꺼내 입고 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
 
고씨동굴은 어제의 고수동굴과는 달리 관광버스 하나 서 있지 않고 사람들도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여유를 부리며 또 동굴구경에 나서고 싶지만 오전에 두 시간 그리고 좀 전에 또 30분 넘게 걷지 못해 아쉽지만 그냥 지날 수밖에 없다.
 
<바로 왼편이 굴인데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간도. 결국 지나치고 말았지만 대신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고씨굴을 지나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빗줄기도 빗줄기인데 해가 빨리 지는 걸 생각지 못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어둑어둑한 게 후레쉬를 꺼내들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지도상으로는 영월읍내에서 발전소가 그리 멀지 않은데, 이젠 한밤중이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질주하는 차량들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렇게 조심조심 더디게 걸어 영월읍내에 당도하니 몸은 파김치에 옷은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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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21:19 2010/01/10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