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주하면, 당연 ‘돌, 바람, 여자’였는데요. 그게 꼭 어느 가수가 불렀던 노래가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제주를 잘 상징해주는 것이었기에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그리고 제주가 가진 아픈 역사를 오롯이 나타낸다는 점에서도 이 셋은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주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맞습니다. 요즘 제주는 ‘올레길’, ‘7대 자연경관’ 그리고 ‘해군기지’로 이름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 ‘돌’, ‘바람’, ‘여자’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미지 때문인지. 제주를 나타내는 말로 그닥 좋지는 않습니다. 먼저 가장 먼저 이름이 나기 시작한 ‘올레길’만 하더라도. 결코 ‘올레길’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 가졌던 취지나 정신만큼이나 제주가 가진 아픈 역사도 함께 껴안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껴있는 자전거 도로에서 보듯. 자연파괴에 일조하는 유행이 여기까지 퍼진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올레길’은 ‘7대 자연경관’보단 좀 낫습니다. 최소한 출처도 알 수 없는 단체에 전화비로 혈세 몇 십억 원을 갖다 바치진 않으니까요. 또 당장 국제전화 하라 윽박지르는 건 기본이고,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의문만 표시해도 매국노 취급을 받으니까요.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데 까짓, 7위 안에 못 들겠나, 되레 안심이 되긴 하지만요. ‘7대 자연경관’도 ‘해군기지’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평화의 섬’이라 지정하고 다양한 평화 관련 사업들을 추진할 것처럼 하더니만. 선언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강정마을에 대규모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으니. 아무리 전(前) 정권이 결정한 일이라고. 이제는 ‘국책사업’ 논리도 모자라 ‘안보’ 논리까지 들먹이면서 공사 강행을 서두르니. ‘평화의 섬’이란 말이 무색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아무리 ‘올레길’을 잘 가꾸고 제주를 품어 내는 일이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또 겉멋만 잔뜩 든 제주가 아니라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자연경관’을 만드는 일이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또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가며 싸우는 일이 아무리 아프고 시린 일이라도 말입니다. 마땅히 그것들을 해내야만 진정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일 겁니다.

 

각다분하다: 일을 해 나가는데 매우 힘이 들고 고되다.

 

‘평화의 섬’ 제주가 시끄럽습니다. ‘평화’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 때문인데요. 국책사업이라면, 그것도 ‘안보’와 관련된 것이라면 당체 논리나 설득, 대화도 통하질 않는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이후 다시 ‘공안대책회의’까지 열리고. 보수 언론은 ‘안보논리’를 앞세워 연일 분탕질에. 법원은 명분 없는 가처분 결정까지 내리니. 입 막는 것도 모자라 손, 발까지 다 묶었습니다.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데서 주관하는 ‘7대 자연경관’ 투표에는 지랄 맞게 호들갑을 떨며 열심히 손가락으로 버튼 누르라 하면서도 말입니다. 어차피 해군기지가 처음부터 명분 없는 싸움에 우리 젊은이들을 내보내고. 그것도 모자로 한 청년이 먼 이국땅에서 생짜로 목이 달아나는데도 꿈쩍 않았던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것이니. 기지 건설 철회 투쟁이 어찌 각다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쩝니까. 여서 힘이 부친다고 멈춘다면. 공권력이 무섭다고 물러선다면. 제주는 영영 ‘평화의 섬’이 될 수 없을 터이니. ‘평화의 비행기’도 띄우고, ‘평화의 배’도 띄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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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13:46 2011/09/01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