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번째 여행 ②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오롯이 만나다: 10구간 화순-모슬포 올레(2015년 1월 28일)
 
제주에 가면 꼭 가야할 곳으로 두 군데는 일찌감치 정했습니다. 올레길도 마찬가지로 한 구간만큼은 걸어야겠다, 마음먹었구요. 4.3 평화공원은 도착하는 날 그리고 강정마을은 떠나기 전에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해서 여행 첫날엔 세찬 비구름에도 기념관을 둘러봤고, 강정은 이제 내일 가보려 합니다.
 
올레길은 어제 우도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대신 예정 없이 걸었던 21구간은 제처놓구요. 바로 오늘 걸을 10구간만은 꼭 걷고 싶었습니다. 제주 어디라고 그렇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요. 모슬포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 그리고 송악산 자락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아픈 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제주만큼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곳도 많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여전히 가슴 아픈 길을 걷고 있기에 마음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온 곳이면서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될 지경이니 말입니다.
 
화순-모슬포 올레는 이런 제주 역사를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물론 중산간 마을들을 이어주는 다른 곳들에서도, 해안가 마을과 오름들을 걷는 또 다른 길들에서도 제주와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만큼이나 오롯이 역사와 마주설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해서 오늘은 지난번과는 다른 마음으로 올레길을 걷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다들 여기 10구간은 모슬포에서 시작해 화순모래해변으로 걷더군요. 내내 산방산을 품고 걷는 게 좋았다는 사람, 송악산과 섯알오름을 지나고 나면 다소 밋밋한 길이 이어져 마무리가 아쉽다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 걷던 거꾸로 걷던 무슨 상관입니까.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제대로 본다면 말이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요. 맞습니다. 걷기 전에 배부터 든든히 챙깁니다.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시간이 될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먹어야지요. 그래야 힘차게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배 툭툭 두드리며. 엊그제 만났던 것만큼이나 예쁜 모래밭, 이름도 비스므리한 하모라는 해변을 걷는 것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레길에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라는 건 다음 날 알았더랬습니다. 동백꽃이 예쁘다는 위미에서 떼 지어 나돌아 다니는 덩치 큰 개들을 보고 나서 말입니다. 모래밭을 벗어나 소나무 숲길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산만한 개. 딴에는 그저 무심한 듯 쳐다본 것 같지만, 방심하다 어찌나 놀랐던지요.
 
하는 수 없습니다. 찻길로 내려와 돌아갑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혹시나 하며 다시 숲길로 들어섰을 때 개가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숲길이 금방 끝납니다. 별 도리 없네요. 올레길에 빨리 적응해야 할 터인데, 아직은 쉽질 않습니다. 지금은 돌아서 갈 수야 있겠지만 외길인 경우엔 어쩌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알뜨르는 ‘아래쪽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이름인데요. 이름만큼이나 정말 넓디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방산과 섯알오름을 번갈아가며 마주고보고 걷던, 억새가 가득한 그 들판 말이지요. 하지만 이곳이요. 눈에 보이는 표지판 하나 없고, 위성지도를 통해서야 겨우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는, 일본군 비행장이었다니요.
 
19개나 남아 있는 비행기 격납고며 고사포 진지, 탄약고, 지하벙커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곧 만나게 될 송악산 일본군 진지들도 그렇겠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제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던 걸까요. 그저 전쟁이 미치지 않아 다행이었지, 하기엔 그 노역(勞役)이 너무 무거울 따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격납고 안에 세워진 제로센을 먼발치에서 보고 난 후 섯알오름에 오릅니다. 물론 입구에 세워진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묵도(默禱)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모비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 된 200여명의 제주민들의 영령이 새겨져 있습니다. 잠깐 멈췄던 아련함이 다시 밀려옵니다.
 
10구간은 알뜨르비행장에서 섯알오름, 그리고 곧 이어지는 송악산 둘레 일주가 전부라 해도 될 만합니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던가요. 이미 알고 있다면 이 길이 가진 의미를 세 곳에서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 세 곳에서 보는 풍경은 이 길에 보여주는 모든 풍경이라 해도 충분하니,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다만 송악산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좀 어수선합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중산간 지역도 모자라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고 하는 중국인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들.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머리해안은 이미 매표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입장료가 있어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닫힌 문을 보니 들어가 보고 싶네요. 참 사람마음 간사하지요. 하지만 시간도 그렇거니와 해가 뉘엿뉘엿,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엊그제와 같이 예상시간은 그야말로 걷는 시간만을 따진 듯합니다.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볼 수 가 없었던 화석지는 분명 용머리 해안 전이었을 터인데 가물가물합니다. 또 설큼바당과 산방연대, 퇴적암지대는 어둑어둑한 가운데 걸었던 탓에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기질 못했습니다. 다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과 같았던 검은 모래와 조개껍데기만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격납고 안으로 숨은 제로센에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했던 이들을 써놨다던데 왜, 누가 그리로 치웠을까요. 절벽 가까이까지 데크에 계단은 만들어 놓고는 정작 일본군 진지에는 가까이 가보질 못하게 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맞춤법조차 맞지 않고 읽기에는 숨이 찬 섯알오름 유적지 알림판을 제대로 해 놓을 수는 없는 걸까요.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수 있을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세계 평화의 섬 제주’라는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요. 왜 지금 이 순간 ‘재심사’라는 말을 꺼낸 걸까요, 혹시 여전히 ‘빨갱이’들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요.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놔두고 오가는 버스 편도 많지 않은 곳에다 4.3 평화공원을 들여놓은 이유는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 화순항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답 없는 생각들이 떠돕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6/11/17 14:55 2016/11/17 14:55
사용자 삽입 이미지도처에 전문가입니다. 입시전문가, 부동산전문가, 투자상담사 같이 ‘합리성’이나 ‘이성’과는 무관한 ‘짝퉁’ 전문가들도 판을 치고. 장 담그는 것조차 대학교수 정도는 돼야 말 빨이 먹히니 말입니다. 어디 토론회나 방송에라도 나설라치면 학위는 기본, 자격증에 학술논문 몇 편은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처럼 死대강 사업 때도 그랬듯이.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도 어김없었고,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에도 앞 다퉈 나섰지만.
 
천안함 침몰에 이의를 제기한 과학자가 몇 안됐던 것처럼. 死대강 사업이 재앙이라 경고한 학자들을 손으로 꼽았을 만큼.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있었던, ‘관심을 올바른 방향에 두고, 인식과정에 철저한 비판의 메스’(p.92)를 가하던 전문가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체제 측의 프로젝트에 대항할 수 있는 비판능력을 조직적으로 확립하는 일’(p.109)은커녕 ‘어떠한 조직이나 권위에 대해서도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고 모든 문제에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대처’(p.107)하는 과학자가 많지 않았던 겁니다.
 
‘아주 세분화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거기에서 전문가가 되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전문가의 길’(p.65)을 갈 뿐인 전문가들이 ‘인식과정에서 철저한 비판의 메스를 가해야만 사회를 더 나은 쪽으로 나가게 할 수 있는 창조적이 힘이 나온다는’(p.92) 사실을 철저히 외면했단 얘깁니다.
 
타까기 진자부로는 폐쇄된 실험실 밖으로 나와 사회와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의 과학’을 애기합니다. ‘이런 저런 때마다 침묵하다보면 늘 승인하는 것처럼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조차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이른바 ‘일본형 공동체’의 구조’(p.81) 속에서 벗어나, ‘체제 내의 지위를 버리고 자립적인 과학(학문).기술을 지향(p.88)’하자는 겁니다. 
 
“그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거대한 입을 벌리고 덤벼드는 불도저는 문자 그대로 국가권력 자체였고, 그 앞에 맨 몸으로 농토를 지키려고 싸우는 농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나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p.82) 
 
타까기는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행동으로 답을 합니다. 안정된 대학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촉망받는 연구원 신분도 박차고. ‘농토를 지키려고 싸우는 농민’들 편에 서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민과학자’로서 말입니다. 
 
이는 ‘인간의 관심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가를 문제 삼고, 그러한 관심을 전제로 인식이 나아가는 과정을 성찰한다. 그러한 성찰 없이 객관성이라는 명분만 가지고 측정 데이터 등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관심을 올바른 방향에 두고, 인식과정에서 철저한 비판의 메스를 가해야만 사회를 더 나은 쪽으로 나가게 할 수 있는 창조적이 힘이 나온다는 것을 하버마스에게 배운 것’(p.92)이라는 고백을 실천한 것이기도 합니다.
 
MB 정권이 물러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뻔 한 걸 가지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도 눈꼴 시린데. 그것도 토목공학이나 환경학이나 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러고들 있으니. 이젠 보(洑)  철거를 두고 한 자리 또 해먹겠다는 심보들인 것만 같아 한숨만 나옵니다. 대체 우린 언제까지 이런 전문가들 입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08/09 22:16 2014/08/09 22:16

예전에 제주하면, 당연 ‘돌, 바람, 여자’였는데요. 그게 꼭 어느 가수가 불렀던 노래가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제주를 잘 상징해주는 것이었기에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그리고 제주가 가진 아픈 역사를 오롯이 나타낸다는 점에서도 이 셋은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주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맞습니다. 요즘 제주는 ‘올레길’, ‘7대 자연경관’ 그리고 ‘해군기지’로 이름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 ‘돌’, ‘바람’, ‘여자’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미지 때문인지. 제주를 나타내는 말로 그닥 좋지는 않습니다. 먼저 가장 먼저 이름이 나기 시작한 ‘올레길’만 하더라도. 결코 ‘올레길’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 가졌던 취지나 정신만큼이나 제주가 가진 아픈 역사도 함께 껴안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껴있는 자전거 도로에서 보듯. 자연파괴에 일조하는 유행이 여기까지 퍼진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올레길’은 ‘7대 자연경관’보단 좀 낫습니다. 최소한 출처도 알 수 없는 단체에 전화비로 혈세 몇 십억 원을 갖다 바치진 않으니까요. 또 당장 국제전화 하라 윽박지르는 건 기본이고,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의문만 표시해도 매국노 취급을 받으니까요.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데 까짓, 7위 안에 못 들겠나, 되레 안심이 되긴 하지만요. ‘7대 자연경관’도 ‘해군기지’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평화의 섬’이라 지정하고 다양한 평화 관련 사업들을 추진할 것처럼 하더니만. 선언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강정마을에 대규모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으니. 아무리 전(前) 정권이 결정한 일이라고. 이제는 ‘국책사업’ 논리도 모자라 ‘안보’ 논리까지 들먹이면서 공사 강행을 서두르니. ‘평화의 섬’이란 말이 무색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아무리 ‘올레길’을 잘 가꾸고 제주를 품어 내는 일이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또 겉멋만 잔뜩 든 제주가 아니라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자연경관’을 만드는 일이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또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가며 싸우는 일이 아무리 아프고 시린 일이라도 말입니다. 마땅히 그것들을 해내야만 진정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일 겁니다.

 

각다분하다: 일을 해 나가는데 매우 힘이 들고 고되다.

 

‘평화의 섬’ 제주가 시끄럽습니다. ‘평화’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 때문인데요. 국책사업이라면, 그것도 ‘안보’와 관련된 것이라면 당체 논리나 설득, 대화도 통하질 않는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이후 다시 ‘공안대책회의’까지 열리고. 보수 언론은 ‘안보논리’를 앞세워 연일 분탕질에. 법원은 명분 없는 가처분 결정까지 내리니. 입 막는 것도 모자라 손, 발까지 다 묶었습니다.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데서 주관하는 ‘7대 자연경관’ 투표에는 지랄 맞게 호들갑을 떨며 열심히 손가락으로 버튼 누르라 하면서도 말입니다. 어차피 해군기지가 처음부터 명분 없는 싸움에 우리 젊은이들을 내보내고. 그것도 모자로 한 청년이 먼 이국땅에서 생짜로 목이 달아나는데도 꿈쩍 않았던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것이니. 기지 건설 철회 투쟁이 어찌 각다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쩝니까. 여서 힘이 부친다고 멈춘다면. 공권력이 무섭다고 물러선다면. 제주는 영영 ‘평화의 섬’이 될 수 없을 터이니. ‘평화의 비행기’도 띄우고, ‘평화의 배’도 띄워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9/01 13:46 2011/09/01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