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을 법으로 묶으려니 나오는 말은 아닐 터이고. 맞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걸 빗대어 쓰는 말인데요.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위장전입이란 명백한 법 위반 사실을 시인해도, 기소는커녕 기어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최고 수장이 되고.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이 집 지키겠다고 망루에 올라가면 이유불문에 실형은 기본, 아비까지 죽인 패륜아가 되는 현실이 딱 들어맞을 겝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웃긴 현실 하나를 더 들어보자면.

 
얼마 전, 전 세계 3천만 이상 교육자를 대표하는 EI(Education International, 세계교원단체총연맹)가 총회에서 긴급 결의안을 채택을 했습니다. 결의안에는 국제기준에 맞도록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뿐만 아니라, 정치후원금을 낸 교사에 대한 징계를 즉각 중지하고 기소를 철회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이 정도면, 입만 열면 ‘어렌지’를 남발하며 세계화, 국제화를 외치는 우리 정부로선 그야말로 ‘가오’떨어지는 일일 터인데. 쪽팔려서는 아닐 거고. 아마 깔아뭉개는 데 이골이 나서 일겁니다. 되레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로 정당 후원과 관련, 교사 1,363명을 기소했네요.
 
하긴 교사들에게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이번만은 아니었으니. 애당초 들을 턱이 없었겠지요. 수십조 가 넘는 경제유발효과가 있다고 자랑질하던 G20에서도 EI 회장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거절했고. 2009년에도 EI 사무총장이 직접 우리나라에 와 유감을 밝힌 적도 있었거든요. 심지어는 UN 인권이사회 총회에서도 보고서를 채택했었습니다. 항의 서한도 보내고, 결의문도 채택하고, 보고서도 만들고, 면담도 요청했는데. 이거 야 원. 하나도 소용없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말입니다. 교사들에게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치후원금을 내라고 강요해 문제가 된 교장이 재임용 돼 다시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겁니다. 검찰은 불법 사실을 확인하고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교육청은 ‘경고’만 하는, ‘북 치고 장구 치는’ 사이. 보란 듯 교장에 재임용된 것이지요. 어디 이런 사례가 이것뿐이겠습니까. ‘정당 후원금은 불법, 국회의원 후원금은 합법’이란 해괴한 논리로 ‘무혐의’ 처분. 정당가입에 공천신청 혐의가 있음에도 민주노동당에서처럼 당원명부 제출 요구나 압수수색은 가당치도 않고. 교장이나 원장급 정도면 평교사와 달리 유야무야.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고 기소된 교사들 현황을 보니. 글쎄 강원도에도 92명이나 되더군요. 전국적으로는 모두 1,318명이던데. 총 수사 대상 인원 가운데 공소시효가 지난 교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을 불구속이긴 하지만 모두 기소를 한 셈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문제는 앞으로 교과부가 이들 교사에 대해 징계를 하라 시.도 교육청에 통보할 것이 뻔하니. 가뜩이나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검찰, 법원과 싸우기도 힘든 판에. 교육청, 교과부와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니. 이거야 첩첩산중입니다.
 
EI가 이번에 낸 결의안 내용을 보면 말입니다. UN, ILO(국제노동기구),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G20의 회원국인 한국 정부가 시민적 권리로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결사의 권리 보호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ILO 협약’, ‘교사의 지위에 관한 ILO/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권고’, ‘고등교육 종사자의 지위에 관한 UNESCO 권고’ 등 국제 조약을 준수할 의무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라는 건데. 이거 참. ‘남이 하면 불륜’으로 치는 건지. 자기들이 가입하고 비준한 조약들은 통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아니지요. 꼭 이럴 때만 권력과 자본에 기대어 선 이들에게 면죄부로 쓰니. 이건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다. 
 
교사가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게 되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이들이 ‘빨갱이’란 소릴 들으며 학교 밖으로 내쫓기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싸워 쟁취한 노동권조차 ‘행동권’이라는 알맹이가 빠진 채이니. 자유로운 ‘정치활동’이란 지극히 정당한 또 다른 시민적 권리는 언제쯤 온전히 되찾을 수 있을런지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부디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되길 빌며, 더 이상 기본권을 가지고 교사들이 경찰서에, 검찰에, 법원에 들락날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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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15:28 2011/08/16 15:28

1.

‘떼법’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득달같이 달려들며 ‘떼’를 쓰는데 이건 당체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인 셈이지요. 틈만 나면 철거민들에게, 조합원들에게, 농민들에게 “떼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통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되레 상황을 즐기며 ‘떼법’을 부추기고 있고, 때는 이때다, 온갖 흠집 내기 기사들을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전교조 가입 교사가 많은 학교가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유치한 주장에서부터 ‘전교조 소속이란 게 부끄럽다면 해체하던가 탈퇴하라’며 협박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2.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보수언론들이나 또 명단공개에 동참한 학사모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지요. 바로 ‘알권리’. 쉽게 말해 어떤 선생님이 교총 소속인지, 전교조 조합원인지 알아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이 ‘알권리’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순위에 있다고. 또 선생님들의 생각이나 가치관까지 알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하지만요. 우리가 정작 알고 싶은 게 전교조 선생님이냐, 교총 선생님이냐, 인가요. 글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내 아이가 학교에서 과연 선생님과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 아이의 발육과정에 대해 교사와 부모, 아이와 함께 얼마나 공감을 갖고 이해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 지. 교육감에게 잘 보이려고 돈이나 찔러주고,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업체로부터 돈이나 받아먹는.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가해놓고도 버젓이 다시 교단에 서는 교사들과 이를 묵인하는 이들.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해서 모두가 좋은 선생님일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해서 모두가 나쁜 선생님은 아니지요. 다만, 정말 다만,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3.

우리 사회에서 법이란 게 얼마나 작위적이고 편의적이고 권력중심적인지. 법을 잘 지켜야하느니, 우리나라는 법치국가(法治國家)라느니 따위의 말들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이 법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헌법적 가치들을 확장시키거나 혹은 보수(補修)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고 가두어 두는 데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해 통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라는 하위법률에 의해 제약당하고. 사상의 자유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누군가가 모 토론 방송에서 내뱉었던 “위법이냐 합법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참 묘하게도 들립니다. 그래도 그렇지요. 이놈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참 넌덜머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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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6 18:45 2010/05/06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