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열아홉 번 째 여행 - 해파랑길 걷기 ①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네: 옥계에서 묵호까지 34구간(2015년 6월 21일)
 
메르스와 가뭄으로 곳곳이 난리다. 텅 빈 도심과 쩍쩍 갈라진 논밭이 국민들 마음일까.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 이번에도 무능(無能)만을 보여주는 정부. 또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 말이다. ‘살려야 한다’는 문구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마른 논을 향해 소방호수를 부여잡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기가요 순위만큼이나 자주 발표되는 여론조사 지지도?
 
강화도와 경기북부, 강원도 지역은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절반이란다. MB와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분명 가뭄에 도움이 될 거라 했지만. 이제와 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로를 놔야한다고 하면 그건 분명 사기다. 하기야 약속은 자기가 해놓고 보상보육 이행은 지방정부가, 교육청이 하라고 하는 마당이니 아니라 해도 별 탈 없을 듯.
 
다행인지 지난주에 소나기가 몇 번 왔다. 그래서일까. 군데군데 가뭄피해로 보이는 메마른 밭이 보이기는 했지만. 옥계를 벗어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고 만난 들녘엔 초록색 벼들이 씩씩하다. 해갈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들이 있어 걱정을 했더랬는데. 가뭄 속에 걷는 시골길, 그나마 마음이 좀은 덜 무겁다.
 
하지만 산길로 접어드는 길가 밭은 푸석푸석하다. 그 가운데 고추며 옥수수는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대신 감자 꽃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것처럼 꽃대가 축 늘어져 있다. 고구마도 한창 줄기를 뻗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하우스에 토마토만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렇다. 가뭄이 끝나기엔 아직 멀었으니, 오늘은 조심조심 걸어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번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이 끝났다. 2012년 5월에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을 시작했으니 꼭 3년 만이다. 처음 바우길을 걸었을 땐 13구간이었는데 그 동안 2개 구간이 추가됐다. 그 중 동해안 바닷길 걷기를 하면서 11개 구간을 걸었으니 거진 바우길을 다 걸은 셈이다.  
 
이제 7번 국도를 따라 곧장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다행히 심심치 않게 해파랑길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바우길 대신 7번 국도를 따라 해안길을 걸었다면 울진도 더 지났을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바다만 끼고 걷는 것보단 바닷가 마을과 산을 이어주는 길을 걷는 게 훨씬 재미 지니, 것도 괜찮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를 잇는 길이다. 중간 중간 강릉 바우길, 영덕 블루로드와도 겹치고 얼마 전 개통한 동해안 자전거길과도 함께한다. 이 길이 없었다면 7번 국도를 따라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걸었을 터. 덕분에 동해안 이곳저곳을 두루 걸을 수 있으니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다.
 
옥계는 면소재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치 조용하다. 장날이나 되어야 북적부적하려나, 토요일임에도 버스 정류장 말고는 나중에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개조차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해가 쨍쨍 내리쬐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덥진 않다. 한 시간 쯤 후에 만나게 될 산길만 빼면 동네 산책 나온 길인 듯.
 
하지만 계곡물도 바짝 마른 산길 초입에서 개 세 마리가 요란하게 짖는다. 다행히 묶여 있는 것 같은데, 어째 지나가기엔 길이 매우 좁아 보인다. 버젓이 집 방문 앞을 지나는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목줄이 조금이라도 길면 다리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 주인 할머니가 길이 맞으니 쭈욱 올라가면 되고, 개는 묶여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0분쯤 산길을 오르니 여기서부턴 <옷재>라는 이정표와 함께 동해시와 강릉시를 구분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중간에 한 번, 개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쉬었으니 그다지 높은 것 같진 않다.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고, 바람만 안 불었다는 것 빼곤 힘들지 않다. 그래도 제일 높은 데 올랐으니 잠깐은 쉬었다 가야겠지. 
 
조용한 마을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에서 또 잠깐 쉬었다 고개를 넘는데. 이번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멀리서 들리는 개소리에, 숲 속에서 고라니가 먹이 찾는 소리에 오금이 저린다. 고라니는 저도 놀랐는지 길 이쪽에서 저쪽으로 성큼성큼 뛰더니 숲 속으로 몸을 감춘다. 그제야 숨을 내쉬며 주의를 돌아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서둘러 고개를 내려와 여기가 어딘가 살펴보니 약천마을이란다. 한번쯤 들어봤을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은 남구만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가만 보니 유적지 바로 옆 우물이 꽤나 시끄러웠던 곳이다. 여기서 살고 있는 분들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섬뜩한 기분이 드는지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쩔 수 없다.
 
헌데 그 오싹함이 채 가시기도 전, 철조망 저쪽에서 울부짖는 개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한 , 두 마리가 아니다. 게다가 멀리 앞서 걷던 아주머니들이 되돌아 나오시는 모습이 꼭 개에 놀란 듯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주인이 어디를 가려는지 차를 빼 나오고 있어 개를 막았으니 망정이지. 산만한 개와 맞닥뜨렸을 뻔.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고개를 넘는다.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일락 말락. 아무래도 인적 많은 곳엔 개가 없겠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 웬 걸. 이번엔 줄까지 풀린 개들이 떼로 몰려온다. 그나마 아까 만난 개들에 비한다면 강아지 수준. 그래도 앙칼지게 짖으며 발목까지 달라붙는데, 아무래도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십리도 넘는다는 망상해변에서 숨도 고를 겸, 바다도 볼 겸 한참을 쉰다. 아직 물놀이하기엔 이르지만 그래도 꽤 북적북적하다. 망상역을 지나고부터는 쭉 왼편에 바다를 끼고 걷는다. 동해안 자전거길 위에 해파랑길이 얹혀있다. 간간이 자전거들이 내달리긴 하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고. 차도하고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걷기에 좋다.
 
보드타는 사람들이 꽤 있던 대진항을 지나고, 낚시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어달해변도 지나고나니 곧 묵호항이다. 묵호는 태백 살 때 거의 매주 놀러왔던 곳이다. 덕분에 논골담길은 수도 없이 올랐고. 까막바위며 등대, 방파제 역시 눈에 닳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와서인지 못 보던 전망대가 새로 생겼으니 거기부터 가봐야겠다.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지나온 바닷길도 손 짚어 되 걷기도 하고. 등대로 오르는 논골담길도 손 짚어 올라보기도 하다가. 다시 방파제로 내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기도 하고. 해가 뜨는 동쪽 바다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놀이 신기해 한참을 보기도하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인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진 길이다. 처음 동해안 걷기를 시작했을 땐 얼마 되지 않은 구간만 있었는데, 어느새 길을 다 잇고 번듯한 이름까지 생겼다. 덕분에 열아홉 번째 여행부터는 해파랑길이 길잡이가 됐다. 해파랑길 34구간은 동해시 묵호역에서 강릉시 옥계면 시장까지 18.9km로 제법 길다. 점심 먹고 출발해 저녁 먹기 전에 도착했으니 대략 5시간 20분 남짓 걸린 셈인데. 고성에서 내려가고 있었으니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 가고, 오고
출발지였던 옥계까지는 강릉 시내버스를 이용했으나 올 때는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묵호에서 옥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옥계에서 다시 강릉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 맞추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도 시외버스보다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옥계에는 모텔이 한, 두 개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면사무소와 시장 주변에는 식당이 여럿 있다. 이후 망상까진 마을을 몇 군데 지나긴 하나 슈퍼 하나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후 망상부터 묵호역까진 숙박시설과 식당이 늘어서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7/02/12 16:49 2017/02/12 16:49

첫째 날, 하늘빛 따라 눈부시게 파란 바닷길(2015년 5월 25일)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正) 동쪽에 있다는 정동진을 어떻게 기억할까. 드라마 ‘모래시계’에 잠깐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 여배우 이름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 곳? 새해가 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해 뜨는 것 보러 가는 곳? 세상에서 그 어느 곳보다 바다가 가까운 역(驛)? 젊은 시절 밤기차 타고와 벌건 눈으로 깡소주를 마시며 새벽을 맞이하던 곳?

 

작년 이맘 때 한 청년이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 ‘해가 뜨는 곳’에서,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승리하길 기원하면서. 그 청년은 자신을 이곳에 뿌려 달라 했다. 하지만 유언을 배반하도록 부추긴 자본에 의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뿌려졌고. 그렇게 정동진에는 자본이 세운 거대한 모래시계만 남았다. 

 

씁쓸한 모래바람이 산 쪽으로 휘몰아치는 정동진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 산길, 만만치가 않다. 헉헉 숨을 참고 뒤돌아 멀리 바다를 볼 땐 좀 낫지만. 저기가 끝이겠지 싶은 고갯길이 계속 이어지고. 이건 숫제 등산이다. 그나마 등에 짊어진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으니 망정이지. 만만하게 봤다간 딱 큰 코 닥치게 생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보니 높이 올라온 만치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또 산길을 다 내려와 만나는 심곡항 바다색은 눈이 다 부시다. 뭐, 이제 바닷길을 걷겠거니 싶었는데 또 숨이 꼴딱 넘어가는 고개를 넘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아까 지나온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보상치곤 꽤나 크다.

 

헌화로(獻花路)는 신라시대 강릉 태수로 부임한 순정공(純貞公)과 그 부인, 그리고 한 노인이 얽힌 일화로부터 붙여졌다고 한다. 예컨대 순정공 부인이 절벽에 핀 철쭉을 탐냈고,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릎 쓰고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라는 설(說)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여차하면 바닷물이 넘쳐 길을 덮치는 헌화로는 옥계면 낙풍리에서 정동진리 정동진역 삼거리까지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정동진에서 산길을 타는 바우길만 아니었다면 이 헌화로를 따라 쭉 왔을 것을. 때론 에둘러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색다른 볼거리를 주긴 해도. 이번처럼 때 아닌 고생길이기도 하다.

 

여름 피서철에는 북적이는 차들로 몸살을 앓았겠지만 다행히 지나는 차도 드물다. 덕분에 심곡에서 금진해변까지 헌화로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해안 단구와 해안 절벽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바위들, 떡두꺼비바위, 구선암, 괴면암, 합궁골, 저승골, 백두대간, 해룡신전, 공룡가족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진항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 보인다. 옥계까지는 해변길과 솔숲길, 아스팔트길을 차례로 지나야하지만 평지길이라 해 넘어가기 전에 갈 것도 같고. 하지만 곧 금진초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좀 전에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게 탈났나보다. 딴 건 몰라도 이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날, 바우길 안녕(2015년 5월 30일)

 

분명 비가 오질 않는다고 했는데 오락가락한다. 버스 안에서도 그랬고 종점인 여기 금진초등학교 앞도 그렇다. 비 핑계 삼아 어디 먹을 데 없나 찾아 두리번 두리번. 다행히 지난 번엔 문을 닫았던 바로 앞 카페가 문을 열었다. 떼 지어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입구에서 왁자지껄하지만 재고자시고 할 것 없다. 일단 문 열고 들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행이 요기를 하고 나니 요란한 오토바이들도 안 보이고. 하늘을 보니 잔뜩 흐르긴 해도 비는 그친 듯. 솔숲 길로 접어들어 발걸음을 빨리 한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될 듯해도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니. 게다가 얼마 전 오염물질 유출로 크게 문제가 됐던 곳이 코앞이라.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해도 서둘렀을 터.

 

오랜만에 갓길도 좁은 2차선 도로를 걷는다. 때맞췄는지 잠잠하던 하늘에 비가 다시 내리고. 산만한 덤프트럭들은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질주한다. 급기야 도로 공사로 한 차선이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갓길도 없다. 그래도 지난 번 해질 녘에 멈추길 잘했지. 어둑어둑한 시간에 여길 지났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행히 옥계IC를 지나면서부터는 동네 마실 나온 듯. 농로를 따라 이제 막 모내기한 논 사이를 걷기도 하고. 한참 잘 여문 마늘밭과 이제 막 모종을 옮겨 심은 옥수수밭도 곁을 지나고. 옥계초등학교 옆으로 난 길을 놓치긴 했어도, 이제 딱 한 시간 지났으니 딱 여기까지다. 그래도 바우길이 이제 끝이다 싶으니, 좀은 아쉽다.

 

 

* 열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 걷기는 끝이다. 바우길 9구간 헌화로 산책길은 12.8km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정동진에서 심곡항까지는 등산에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한다. 첫날은 등산을 한데다 여기서 쉬고 저기서 쉬고, 밥 먹고 어쩌고 하느라 5시간 정도 걸렸고 다음엔 동네 산보 하듯 2시간 정도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정동진에는 너무 복잡하다 싶을 만치 식당도, 숙박할 곳도 많다. 이후 심곡항, 금진항, 옥계로 이어지는 길에는 제법 맛집들이 있으니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6/04/07 14:43 2016/04/07 14:43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⑪ 산 우에서 파도 소리 들어봤는겨? (2014년 9월 10일)
 
추석 연휴 전부터 말 많았던 대체휴일이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휴일 규정만 바꾸면 그만인 것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남들은 하루를 더 쉬네, 내는 대체휴일은커녕 추석에도 일 나가네. 결국 일하는 사람들끼리 헐뜯게 만든 그 대체휴일 말이다. 덕분에 모처럼 나선 길마저 쪼매 찜찜하다.
 
뭐, 그래야 부려먹기 쉽고 짜내기 편하니 쉽게 바꿀 턱도 없겠고. 또 하루라도 더 일을 시켜 이윤을 남겨야겠으니. 지금보다 노는 날을 늘릴 리 없으리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 모르긴 몰라도 이미 생색은 있는 만큼 낸데다 갈라치기는 또 그것대로 성과를 거뒀으니. 어디서 쾌재들 부르고 있겠지.
 
안인항은 강릉과 가깝지만 잘 알려져 있진 않다. 근처에 등명락가사란 절도 있고 하슬라아트월드라는 볼거리도 있지만 여기까진 발길이 안 오나보다. 하지만 산우에 바닷길이 시작되는 곳부터는 한 두 사람 보이더니.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숨이 쪼매 찰 때쯤 만나는, 이 구간에서 최고 좋은 전망을 자랑한다는 활공장에 이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품새가 멀리서 부러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쪼매난 아이들까지 데리고 동네 뒷산 산책 나오듯 한 사람들도 있고. 바우길 걸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 만나기도 처음이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호젓함 대신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나 실컷 구경해야지. 어찌나 북적대는지 다리쉼도 편히 못할 지경이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까이는 안인항에서 저 멀리 주문진까지 지나온 길을 짚어보기도 하고. 또 가까이는 쪼 앞에 뾰족하게 서 있는 방송송신탑에서 쩌 멀리 정동진까지 오늘 가야할 길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더 가까이는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포말에서 멀리는 오징어 유혹하는 전구가 줄줄이 달린 뱃머리를 보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활공장에서 보기엔 금방이다 싶었는데, 송신탑까지 가는 길이 꽤나 길다. 그래도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라 아까만치로 힘이 부치지는 않다. 또 여태까지 봐 왔던 것과 다른 키 작은 소나무 사이로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들리는데. 산우에서 파도 소리 들어는 봤는겨? 워디 그걸 말로 할 수 있간디. 걍, 뭐랄까, 아래서 보다 훨썩 좋다니께.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능선을 타고 쾌방산을 지나 방송탑을 에두르며 오르락내리락. 통일공원과 등명락가사, 하슬라아트월드를 지날 땐. 내려가는 길목에서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걸을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려가면 다음에는 다시 여기로 올라와 걸어야 하니. 이것도 못할 짓이지 싶어 그저 잠깐씩만 쉬다 또 걷는다.

 
당집을 지나서는 아예 다리 펴고 누워 쉬기도 하고. 힘이 좀 든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파란 바다를 보여주는 바위들 위에서는 사진도 찍고. 비록 능선을 타고 가야하는 등산이지만. 산우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를 길동무삼아, 멀리 정동진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183봉까지 내처 내닫는다. 거기서 바다는 금방이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산 우에 바닷길은 해파랑길이기도 하다. 길이는 9.3km로 짧지만 넉넉히 6시간 정도 잡아야 할 만큼 만만치 않다. 뒷산에 산책 간다는 생각보단 가볍게 등산하는 것처럼 준비해야 할 듯.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안인항과 끝나는 정동진에는 식당도, 숙박할 곳도 많다. 물론 중간엔 아무것도 없다. 간식과 물은 반드시 챙겨가야 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7/09 15:32 2015/07/09 15:32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 날, 꽃보다 할매, 할배(2013년 10월 5일)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큰 화제였던가. 할배들에 이어 누나들까지 나왔으니. 호감 가던 사람이 만든 거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점. 굳이 돈까지 안 줘도 몇 번씩은 나다닐 만치 돈 깨나, 시간 깨나 있는 연예인 할배들이 나온다 해서 마땅찮았다.
 
그래도 한두 번은 봤던 것도 같은데, 통 기억에 남질 않는다. ‘꽃보다 할배’라는 말을 만든 나PD에겐 미안하지만. ‘꽃보다 할배’들은 그들이 아니란 생각이 내내 맴돌았기 때문일 듯. 모처럼 걷기여행에 나섰던 오늘도 마찬가지. 이 세상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할배들, 할매들은 딴 곳에 있음을 알았으니. 
 
일단, 학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출출하다. 지도를 보니 면사무소까진 마땅히 요기할 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가방에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넣어오긴 했어도, 일단은 식후경이다. 게다가 높은 하늘, 뭉게구름 사이로 가을 햇볕이 따갑다. 밥도 밥이거니와 아무리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찌감치 벼 베기가 끝낸 논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굴산사 당간지주는 보물치곤 좀 허술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달랑 안내문 하나가 전부니. 그렇다고 요란하게까진 필요 없겠으나. 이웃한 곳에 굴산사지와 부도, 석불좌상 등을 엮어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단순히 표지판만 세워놓는 걸 넘어서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인가 뭔가도 있으니.
 
바우길을 걸으며 한 시간 넘게 아스팔트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포도, 사과, 복숭아 과수원 들을 차례로 지나 널따란 양배추 밭 끝 금광초교까지. 발바닥이 다 후끈하다.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 가야지. 좀 더 가면 솔 숲길이니 내처 걸을 수도 있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신발부터 벗고, 발 쭉 뻗고 드러눕는다.
 
교전교를 지나 농로를 따라 5분이 넘게 딴 길을 걸었다. 분명 숲길이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이런 아스팔트길에서 왕복 10분길은 치명타다.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데, 이번엔 알림판 때문에 또 헤맨다.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제 길을 찾았을 터인데. 요상하게 한 길로 난 곳엔 표시가 잘 돼 있는데 갈림길엔 안 그렇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정감이마을 등산로에 접어드니 구름이 많아진다. 나무그늘 하나 없을 땐 해가 계속 등 뒤에서 쫓아다녔는데. 솔숲에 구름이라, 영 날씨가 그렇다. 그래도 딱딱한 길을 벗어났으니 발걸음만은 가볍다. 키 작은 소나무 사이로 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머리 위 송전선만 없었으면 금상첨화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밀양에 들어설 송전탑 아래선 전기 없이도 등이 켜진다고 한다. 대도시에서 대량 소비하는 전기 때문에 세워질 거대한 탑. 결코 우리 세대에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그 송전탑. 지금 머리 위에 있는 저 송전선은 몇 kV일까. 윙윙, 듣기에도 저리 소름이 끼치는데. 밀양은 오죽이나 할까.
 
누군들 얼마 남지 않은 삶, 한량하게 유람이나 하고 싶지 않을까. 매일 제 무덤이라 파 놓은 구덩이로 올라가는 할매들. 제 목멜 동아줄을 다시 묶고 또 묶는 할배들. 자식들, 손주들이 살 세상엔 핵폐기물을 남길 수 없다고. 한 평생 일군 땅과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외치는 그들이 새삼 ‘꽃보다 할매.할배’란 생각이 든다.
 
송전선 따라 난 산길을 한참 걸어 강동면사무소에 도착하니 때 마침 버스가 온다. 허겁지겁 올라 어디까지 가는 버스인가 하고고 보니, 바로 집까지 간다. 그제야 맥이 탁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데. 그렇게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릴 때다. 멀리 대관령 너머로 빨간 노을이 진다. 오늘 ‘꽃보다 할매, 할배’들은 안녕할까.
 
둘째 날, 철길, 습지, 사구, 바다를 차례로 걷다(2014년 6월 6일)
 
바우길 요 몇 구간은 두 번에 나눠 걷게 됐다. 집이 가까워서인데, 학교 앞에 사는 친구들이 지각한다는 말이 딱 맞다. 일찍 나서 중간에 밥 먹고 또 걸으면 넉넉했을 길을. 늘 느지막이 걷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아마 딴 데서 기차타고 왔으면 서둘렀을 테고. 모르긴 몰라도 정동진까진 갔어도 이미 갔을 것 같다.
 
풍호연가 길도 그렇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걷지만. 서울서 온 친구와 점심까지 먹고도 한 참이나 더 놀다 겨우 강동면사무소에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은 길을 따지자면 동네 한 바퀴 마실가는 셈밖에 안 되고. 이제 바우길도 두어 번만 더 걸으면 끝이니. 천천히 느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유월치곤, 또 곧 있으면 넘어갈 해치곤 제법 따갑다. 그래도 금방 시원한 바람을 내주는 숲길로 들어서니 좀은 낫다. 언뜻언뜻 부는 솔바람이 언덕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며, 따가운 등이며,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까.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솔숲을 내주는, 바우길만이 가진 매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숲길을 지나니 이번엔 왜 풍호연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길이 기다린다. 바로 바람을 머금고 있는 드넓은 연꽃 습지가 펼쳐져 있는 것. 아직은 연꽃은커녕 연잎도 많지 않지만. 바다 쪽에서인지 산 쪽에서인지 부는 바람이 호수 위 연잎들을 휘감아 도는 곳. 이만하면 이름 한 번 제대로다.

찬찬히 습지를 둘러보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면 모래언덕이다. 헌데 사구(砂丘)라는 이름만 남았지 다른 모래사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동해안에 무려 30개가 넘는 해안 사구 가운데 그나마 생태.경관 보존지구로 지정됐다는 곳이 이러니. 당장 보기에도 안 좋고 야생동물들이 지나기도 힘든 저 절책부터 없애던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안인항을 휘돌아 철길을 건너면 길은 산우에 바닷길로 연결된다. 막바지에 비릿한 바다냄새 대신 코를 쥐게 하는 악취와 길을 다 차지하고 다니는 대형트럭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바람이 불고 연꽃이 피면 꼭 다시 걷고 싶은 길. 시원한 바람이 손등을 타고 간질간질 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풍호연가길은 17.5km이다. 시작은 6구간 굴사사지길 마지막 굴산사지며 끝은 8구간 산 우에 바닷길 시작인 안인항이다. 풍호연가길은 땡볕이긴 하지만 풍호마을 연꽃 밭에 연꽃이 한창 피는 8월이나,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에 몹시도 한들대는 10월이 좋겠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을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 그리고 풍호마을 등에 식당이 꽤 있고, 안인항 주변엔 숙박할만한 모텔도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3/31 16:31 2015/03/31 16:31
첫째 날, 강릉 단오축제날, 굴산사 가는 길을 걷다(2013년 6월 7일)
 
강릉항은 안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항이나 해변보단 거피 거리로 통한다. 그게 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덕에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데. 가만 들여다본다면, 여기라고 예외가 있을 리가 있나. 사람 많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대형 체인 커피전문점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어 사뭇 눈에 거슬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이만큼이나 바다를 가까이 마주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싶은 것만 빼면. 홍대 앞이나 여느 대도시 커피 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바글바글한 차들로 걷기조차 힘든 해변길만큼이나 브랜드 커피 집만 바글바글하니.

 
하지만 어느 때고 대관령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솔바람 다리를 건너서 만나게 되는 남항진은, 가까운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투기가 떠다녀서 그렇지. 요란한 대신 호젓함이 있어 머물고 쉴만하다. 떠들썩한 노랫소리가 나오는 횟집도 없고, 길을 다 차지하고 서있는 차들도 보이질 않으니.
 
7번 국도를 따라 걷자면,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는 비행장 때문에라도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데. 마침 바우길이 굴산사지 가는 길로 이어주고 있다. 조금은 요란한 강릉항과 호젓한 남항진이 다리 하나를 두고 시작해, 강릉 시내를 거쳐 꽤 먼 거리를 가야 길이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은 좋다. 게다가.
 
중앙시장은 출출할 때쯤 딱 맞춰 지나게 되니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고. 임영관과 객사문, 칠사당은 한 낮 더위를 피하며 쉬어가기 좋다. 또 단옷날쯤 맞춰 걷는다면 단오관 근처와 둔치 벌어지는 강릉 단오 축제 구경에 하루 쯤 더 시간을 내야하고. 길 끝에서 만나는 굴산사지를 둘러싼 이야기까지. 강릉이 가진 또 다른 맛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 왼쪽으론 솔숲이, 오른쪽으로는 아파트가 맞대어 있는 숲길은,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맞춰 열린 환경영화제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면, 이거야 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오늘은 성미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춤추는 숲>을 볼 수 있으니, 걷는 길과 영화가 꼭 맞춘 듯하다.
 
하지만 굴산사지 길은 시내로 향하는 도중, 왼쪽으론 하천을 경계로 군부대에서 나는 총소리가 요란스럽고. 오른쪽으론 논, 밭, 과수원을 경계로 개 짖는 소리가 또 요란스러워 정신이 없는데다. 잘 못 날을 택한다면 뜨고 내리는 전투기까지 덧 들린다면. 이건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 호젓함이 다 날아가니. 그럴 땐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래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향과 아파트 숲에서 불어오는 솔향을 맡으며, 시장 통에서 어깨를 부대끼며 느끼는 맛과 사람들. 천년을 이어온 축제와 오늘은 지켜낸 싸움까지 보고 나면. 강릉이 가진 진면목을 다 보고 간다, 말하려면. 분명 빼놓지 말아야한다.
 
둘째 날, 두 번씩이나 길을 잃고서도 끝내 만나지 못한 굴산사지( 2013년 9월 3일)
 
고성에서부터 바닷길을 따라 내려온 지도 그새 2년이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걸었는데, 아직도 강릉 언저리니. 울진 앞바다와 감포, 해운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싶다. 머, 저 땅끝에서 7년 넘게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부산이 대수일까. 거제, 남해를 돌아 여수, 목포, 태안을 거쳐 도라산도 금방이겠지.
 
그리고 어쩌다 태백을 거쳐 강릉에 와 사니 딱 맞춘 듯. 모두를 다 잇지는 못해도 향호에서부터 묵호까지 바우길을 걸을 수 있고. 딱딱한 아스팔트 7번 국도 대신 해파랑길과 저 아래 영덕 블루로드도 걸을 수 있으니. 생각했던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굴산사 가는 길은 시내 한복판을 지난다. 덕분에 오늘은 집에서부터 걷는데, 실은 지난 번 걸을 때 때맞춰 열린 단오 축제를 구경하느라 단오문학관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해서 중앙시장이나 임영관지는 몇 번씩 둘러봤고. 잠수교도 지난 번 단옷날 축제 때 건너봤으니 건너뛰고. 쭉 남대천 둔치를 따라 걷다 단오관에서부터 7코스로 들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교육청을 지나고 노암초 담장을 따라 걸으니 곧 다른 풍경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여느 도시나 다름없었는데.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심어져 있는 밭은 물론이고 벼이삭이 팬 논이 펼쳐지고 있으니. 간간이 솔 숲 사이로 난 길을 걷기도 하고, 꽤 가파른 산을 10분이나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저수지를 따라 논두렁길에 이를 때쯤엔, 대체 여기가 어딘가도 싶다.
 
그래서일까. 지도도 챙겼고, GPS도 가져왔는데 길을 두 번이나 잃었다. 한 번은 정신없이 개 피해 어디로 갈까 허둥대다가 또 한 번은 심하게 좌, 우로 뒤로 가야 하는 곳에서. 나중에 해가 지고 버스를 기다리며 든 생각인데. 여기서 헤매지만 않았다면 굴산사까진 갔겠지 싶다.
 
그러나 저러나 동네 길이라고 생각하고 준비 없이 나선 것도 아니고. 딴 데 걸을 때처럼 똑같이 준비했는데도 길을 잃었으니. 어디 가서 강릉 산다고 말하긴 이른가 싶다. 하긴 아직 가본 곳보단 안 가본 데가 더 많다. 구정이나 강동 같은 데엔 근처에도 안 가봤고. 가을이면 그렇게 단풍이 좋다는 소금강도 못 갔으니.
 
그래도 그렇지, 웬만한 곳은 처음 가도 길을 헤매진 않은데. 지도니 GPS를 가지고 다닌 게 되레 방향 감각이나 주변 지형을 보는 눈을 잃게 만든 건 아닐까도 싶다. 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기웃기웃 했는데. 요즘은 조금 걷다 갈림길이 나오면 지도 펴고 GPS 보는 게 습관처럼 됐으니 말이다.
 
점심 먹고 출발해 담 넘어 ‘정의윤가옥’ 구경하고 학마을에 도착하니 부쩍 짧아진 해가 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나올 땐 굴산사지에 당간지주까지 구경하고 차 탈 생각으로 버스 시간을 알아왔는데. 다행히 맛난 감자전에 동동주 한 사발 마시고 나니 바로 앞이 정류장. 시간도 딱 마지막 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열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강릉항에서 시작되는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중앙시장, 임영관, 객사문 등이 있는 시내를 지나 굴산사지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18.5km로 두 번에 나눠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먹을 곳
중앙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09/24 11:29 2014/09/24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