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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증후군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약간의 우울증을 겪었다.

 

또 한해가 가는구나...하는 회한과 더불어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편안하다.

당분간은 나이가 내게 큰 차이를 가져다주는 숫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여전히 혼자인 내 위치가 참 편안하다.

 

야호!!

 

아래는 작년 연말에 썼던 글.

 

올해가 지나고 내년을 맞이하면서야 서서히 이런 경지로 다가가고 있는

 

날 느낀다.

 

친밀감에 대한 희구, 제도로서의 결혼, 관계에 대한 부족한 상상력, 생물학적 존재로서 가지는 성적 욕망,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간섭의 위태로운 경계...이런 복잡한 계산 속에서 빠져, 어느덧 실제 원하는 것은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해 버렸다. 스스로가 안쓰럽다.

 

가부장제가 어떤 관계를 통해(배타적인 이성애 결혼, 낭만적 사랑)여성을 구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관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굴러가게 하는 관계의 각본을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허용 가능한 관계를 제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친밀한 만남의 가능성과 종류. 그것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친구, 아니면 애인, 아니면 부인과 남편, 그것도 아니면? 정부?!

 

어떤 새로운 사람이 내 삶의 반경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 상대방 자체를 느끼고 알아가는 여정으로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대신,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관계의 종류들 중에서 그와 내가 어떤 종류의 관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느라 한동안 강박에 시달려야 한다. 친구로 남을 것인가, 연애를 시작할 것인가, 결혼까지 해야하는 것인가...

 

그 결정을 끝마치면 '종류'에 따른 관계의 수위와 내용을 적용시키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그 관계는 안정되고 익숙한 트랙 속으로 들어와 정해진 경로를 돌기 시작한다.

 

이 정해진 트랙 위에서 잠시 무장해체되고 싶었다. 관계에 이름짓기 하는 걸 잠시 멈추고 그저 상대를 풍부하고 섬세하게 알아가는 과정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상대와 시작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하느라 연애시절의 반을 써버리고, 그 상대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느라 그 나머지 반을 써버리는 연애와 결혼의 각본을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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