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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24
    이해찬 딸. 노무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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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2/23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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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2/19
    "남성들이여, 춤을 추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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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2/16
    정의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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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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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에 대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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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2/04
    종교의 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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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딸. 노무현 아들

흠..아마 나를 '꼴통'으로 지목한 연세대 유석춘 교수가 이 글을 보면 "네가 그러니까 꼴통이지" 할 듯 싶다.

 

오늘 1급이상 고위 공직자 재산등록 자료가 언론에 공개됐다. 이 자료는 25일 관보를 통해 게재된다.    



1년동안 81억1천여만원의 재산을 불린 홍석현 주미대사 동생인 홍석주 인천지검장도 놀랍고, 국무위원중 재산이 가장 적은 김근태 의원의 재산이 4억여원에 이를 정도로 다들 억대의 재산을 모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어쨌든 이날 나의 배배 꼬인 심사를 자극했던 것은 우선 노무현 대통령 아들 건호씨가 지난 한해 봉급을 저축해 1천9백64만4천원의 재산을 불렸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2년 LG전자에 입사했고, 결혼 4년차, 딸을 하나 둔 가장인(맞벌이 부부도 아니다) 장남 건호씨의 예금액 증가부분에 대해 김종민 대변인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정도로 특별히 큰 금액은 아니라고 본다"며 "봉급을 착실히 저축할 경우 이 정도 저축액은 가능하지 않냐"고 밝혔다.

 

근데 오후 늦게 발표된 자료를 보다가 노건호씨보다 더 착실히 저금을 잘한 이를 발견했다.

 

바로 이해찬 총리의 외동딸이다. 이 총리의 외동딸은 용돈을 모아 1년 동안 1천2백24만4천원의 재산을 불렸다. 98학번인 딸의 재산 증가 부분에 대해 용돈 저축이라고 밝힌 것을 보아 직업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총리 딸은 지난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지난해 6월 총리에 취임하고 재산등록을 하면서 딸의 재산은 은행예금 1천2백4만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상당수의 공직자가 공직자윤리법상의 허점(?)을 이용해 자녀나 부모 등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해왔던 것과 비교해 보면 여러모로 개선된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총재는 장남 정연씨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었다.)

 

또 이들 VIP 급 자녀의 재산이 1천만원대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칭찬받아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불리진 않았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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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

어제 좀 이상한 날이었다.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린 눈/비와 음산한 바람과

 

오후 늦게 전해진 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은주의 팬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강인해 보이던 그녀가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했다는 게 섬뜩했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 우리 회사 대표가 평 기자들에게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음산한 날씨를 헤치고 용산 국방부 뒷골목에 위치한 '봉산'이란 고기집을 찾았다.



평소 맛보단 찾아가기 수월한 장소를 선호하는 편이라 가는 내내 속으로 툴툴 거렸더랬다.

(공간지각력이 떨어져 길을 잘 못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어렵사리 찾아간 술집은 손님들로 그득찬 걸 보니 소문난 집인게 확실하다 싶었다.

 

그리하여 그 맛있다는 음식맛을 맛보려는 찰나,

 

회사 후배가 잠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였다.

 

유 교수는 내 기사를 잘 보고 있다며 대뜸 "사람이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 질문했다. 뒤 이어 "어릴 때 성장기가 불행했냐" "나도 보수 꼴통이란 소리를 듣지만, 홍 기자도 진짜 꼴통인 거 같다"고 나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면서 소주를 쉴새 없이 권했다. 

 

결국 그날 난 그 집 고기는 한점도 못 먹고 양배추를 안주 삼아 깡소주를 들이켜야했고, 일찌감치 취해버렸다. 쩝;;;

 

건 글코...내 글을 보면 내가 글케 꼬여 있는 거처럼 느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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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여, 춤을 추자"

"남성들이 춤을 멀리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엊그제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이런 저런 책을 훑어보다가 <무용의 현대>라는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들게 됐다.

 

늦은 나이에 발레에 미치게 됐다는 일본 문예평론가 미우라 마사시(三浦雅士)가 쓴 춤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부터 무대예술의 중심이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하면서 마사 그레이엄(1893-1991. 미국 현대 무용의 개척가. 그의 이름을 딴 마사 그레이엄 무용학교와 무용단이 있다),  조지 발란신(1904-1983. 뉴욕시티발레단을 만들었으며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 유리 그리고로비치(1927.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 볼쇼이 발레단에서 33년간 수석 안무가를 맡았었다) 등에 대한 평을 실었다.

 

서점에서 잠시 저자의 무용관을 밝힌 부분인 '지금, 왜 춤인가'라는 글을 읽었는데, 춤과 산업화와 신체의 표준화에 대한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끔 방송에서 일부 아프리카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직도 부족사회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춤이 그 사회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사회에서 춤은 특정 성별이나 연령, 계층이 향유하는 예술이라기 보단 온 부족이 기쁨, 슬픔, 분노 등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소통 수단이다.

 

저자는 남성이 춤을 추지 않게 된 것은 산업화 이후로 그 이후 노동자 남성들에겐 춤 대신 '체육'이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고 밝혔다.

 

춤의 궁극적 목적이 몸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체육은 인간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저자는 또 체육은 인간의 몸을 표준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동시에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산업화로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되면서 똑같은 기계를 사용해 생산을 할 수 있는 표준화된 노동자들이 대거 필요하게 됐다. 규격화된 신체를 가진 노동자들을 확보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산업화 이전 사회구성원들의 몸의 다양성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다.

 

저자는 또 남성들의 신체를 표준화시키는 것은 근대 국가의 '군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로 남성들이여, 춤을 춰라.

 

당신의 몸과 감성 체계를 정해진 틀에 몰아넣으려는 자본과 국가의 음모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춤을 함께 추자.

 

고백의 글

 

난 거의 모든 종류의 운동에 소질이 없지만 춤추는 것은 좋아한다. (결코 잘 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난 공을 가지고 승패를 가르는 종류의 운동은 싫어한다.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 권투 등 힘을 쓰는 운동도 싫어한다. 맞으면 아프기 때문이다. 스키, 사이클, 롤러브레이드 등 바퀴가 달린 것을 타는 운동 역시 싫어한다. 넘어지면 다친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혼자 하는 달리기나 등산이 유일하게 부담을 갖지 않는 스포츠다.

 

춤은 다르다. 춤은 경쟁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만족이 목적이다. 춤은 신체의 한계에 도전한다기 보다 몸을 내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춤을 출만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어디서 춤을 추냐고?

 

좀 호사스런 취미라고들 할지 모르지만 내 취미 중 하나가 '발레'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건 1년반 정도 지났다.

 

일주일에 두번 집 근처의 발레스튜디오에 가서 천근만근 무게의 다리를 들어올리며 뒤뚱뒤뚱, 1시간 반 가량 땀 흘리며 춤추는 게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춤과 함께 춤추는 여자들의 수다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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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행복

오늘 한겨레에서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이 칼럼은 물론 '철학적' 탈성장의 관점에 기반한 글이다.

 

"물질이 어느 정도나 있으면 우리가 행복해질까? 우리는 부가 늘어나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물질의 증가를 행복의 전제로 두는 점에서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는 큰 차이가 없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두고 생각이 갈라질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 세계 각국의 부와 행복지수를 나타낸 도표 한 장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자나라가 될수록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필리핀이나 브라질 국민들은 그보다 훨씬 잘사는 포르투갈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사람들도 미국보다 ‘못살지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 칼럼과 또 이 칼럼을 진지하게 읽는 나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사회가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변했다는 거다. 나 자신도 그렇고.

(물론 간혹 어떤 사람이 '행복하세요' 이런 류의 인사를 하면 아직도 낯 간지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 자체가 참으로 '생뚱맞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에 앞서 '우리(나)는 정당한가'가 질문돼야 한다고 믿었더랬다.

 

어쨌든 조효제 교수는 이 칼럼에서  리처드 레이어드의 <행복의 경제학>이란 책을 인용,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전후 50년 동안 무려 6배나 잘살게 되었지만 행복지수는 변치 않고 있으며 여기에는 행복의 복잡한 사회심리적 요인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국민소득 1만5천달러를 분기점으로 하여 더 잘살게 되어도 행복은 거의 제자리걸음 또는 심지어 퇴보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윌킨슨은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발전보다 오히려 사회의 응집력과 평등이 그 사회의 건강도와 행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장과 평등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 대한 어떤 암시를 얻는다...1만5천달러의 고지를 눈앞에 둔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진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의 꿈으로 비웃지 않을 만한 집단적 지혜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어쩌면 결론은 '우리(나)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르며, 심지어 결과조차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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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법

그냥 지나가야 한다

말 걸지 말고
뒤돌아 보지 말고
모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
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
누구였던가에 관심 두지 않도록
슬쩍 지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몇 번을 죽을 수도 있지만
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
삶에 미련두지 말고
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
빛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배당받는 것이다
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
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
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상을 한 번, 휙~
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끝끝내
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

 

엑스트라 / 정해종



난 정해종(41)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 지난 91년 등단해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이란 두권의 시집을 냈으며 삼십대 중반이 넘어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돼 지금은 '터치아프리카' 대표로 있으며 국내에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전부다.

 

"정해종의 시는 즐겁지 않다. 때로는 착잡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이미 청춘의 꿈의 내용대로 우리 일상을 채워갈 수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또한 버릴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데서 온다.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시인에게 희망은 막막하고 절망은 구체적이다."

 

그의 시에 대한 비평이다.

 

무엇보다 난  그의 직설법이 마음에 든다. 폐부 깊숙이 우려난 냉소와 비관을 빙 둘러 말하지 않고 확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니 머리 속에 팍팍 새겨진다.

 

절망을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게 그가 가진 희망이다.  

 

을지로 순환선
                                정해종

 

구멍난 도시의 심장을 여러분께선
관통하고 계신 셈인데, 관통을
자꾸 간통으로 알아듣는 이가 있다
혀가 짧은 것도 아닌데 순환선을
수난선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그는 종일 간통죄 폐지의 거론과
도덕의 수난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잠실과 신도림이 은밀하게 연결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교통과 고통을 얼버무리고
다 그게 그거라고, 우리말 사전의 몇몇
어휘들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90년대에 이르러 그는 문명과 문맹을,
利器와 利己를 얼버무려 놓았다.

이제 그는 없다, 언젠가 그가 바람난 서울을
떠나겠노라 했을 때 아무 말하지 못한 건
관통과 간통의 일맥상통을,
소득수준과 소비지수가 다른
잠실과 신도림의 은밀한 밀회를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숨막히는 호흡의, 팽창하는 성감의 서울
간통죄 폐지의 거론과 도덕의 수난을
생각하며 마크네틱 테잎 들이밀 때
나는 문명의 진공 속으로 빨려드는
담배꽁초가 되고, 아랫배에 힘주어
바리케이드 밀고 나오면
그렇다, 이건 영락없는 문명과 이기의,
간통

 


연애편지를 쓰는 밤 

                             정해종


당신이 마련하신
기쁨과 고통의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몇 명이 다녀가셨다지요
꽃을 준비하지 못한 건
시들지 않는 기쁨을
선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시들지 않는 꽃이란 게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이란 게
있기나 하던가요
살아 있음을 인생이라 하고
피어 있을 때만이 꽃이라 하고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요
믿을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 건
이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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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에 대해

"봉사야 말로 나의 종교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요 며칠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에 관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앙리 스테른 지음. <비폭력>-마리 아네스 꽁브끄 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최근 지율스님의 단식을 겪으면서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게 된 책들이다.



간디에 대해선 어린 시절 전기와 그의 삶을 다룬 영화를 통해 접한 지식이 아마 그에 대한 전부였었다.

 

또 서른 한살때부터 종교적 수행을 위해 부부 관계를 갖지 않았던 간디가 쉰 여섯의 나이에 당시 자신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온 33세인 영국인 매덜린 슬레이트와 나눈 애틋한 '정신적 사랑'에 대한 전기적 소설(<미라와 더 마하트마>. 수디르 카카르 지음)이 출간됐다는 기사를 통해 간디를 다시 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는 인간적인 간디의 모습을 말이다.

 

간디가 미라(매덜린은 이후 신화 속의 여성 양치기이자 힌두신 크리슈나의 연인인 '미라'로 불렸다)에게 보낸 편지엔 격정적인 그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신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 러보다 문득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 힌두 성가를 영어로 옮기면서 행복에 겹습니다. 내가 때로 격정에 사로잡혀 당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가요?"

 

이런 사랑은 인도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금욕적 생활을 추구하는 그에게 기쁨이자 동시에 크나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반면 이번에 읽은 간디의 잠언집은 운동가이자 구도자로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자질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말하기 좋아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누군가를 '좋아한다' '존경한다' 이런 표현(특히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 있는 경우)은 거의 쓰지 않는데, 간디의 의지와 결연함이 묻어나는 그가 남긴 짤막짤막한 글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억하고픈 구절들을 옮겨보았다.

 

"노동자가 그토록 자구 실패하는 것은 비협력을 통해 저항함으로써 자본가를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자본을 탈취하여 스스로 자본가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럴때 유리한 입장에 있고 잘 짜인 계획을 가진 자본가는 언제나 노동자들 가운데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지원자들을 찾아낸다."

 

"모든 유형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나 들짐승처럼 모든 사람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욕구를 채울 권리가 똑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권리에는 공격에 대처할 수단과 의무가 따르듯이 우리는 근본적인 평등과 승리를 보장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비폭력 수행자의 무기 가운데 가장 주된 무기인 단식을 남용할지도 모른다는 구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폭력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생각해낸 단식은 아직까지 시작단계에 있으므로 좀더 완벽하게 보완될 수 있다. 나는 비폭력을 생각해낸 사람으로서 어쨌든 비폭력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인 단식을 포기할 수 없다."

 

"집착 때문에 행하는 모든 행위를 스스로에게 금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많은 위험을 피하게 해줄 황금률이다."

 

"비폭력은 결코 현실에서 악의와 맞서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결 능동적인 투쟁 형태이다. 악의를 늘릴 뿐인 폭력적인 반격보다 훨씬 현실적인 투쟁 형태이다."

 

"비폭력과 비겁함은 함께 갈수 없다. 무기를 소유한다는 것인 두려움이나 비겁함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면 진정한 비폭력은 전적으로 두려움이 없을 때에야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란 물리적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굴의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의지 굳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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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힘

어제 정부 측 대표인 남영주 국무총리실 민정비서관이 최종 협상안을 들고 지율스님이 계시는 정토회를 찾았다는 소식에 '비상대기'하며 간디의 잠언을 모은 책을 읽었다.

 

새만금 삼보일배도 그렇고, 지율스님의 단식도 그렇고,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조차 힘든 테크노크라시 시대에 '자연'이라는 오래된 주제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종교인들의 몸을 던진 수행이었다.

 

물론 그간 환경단체의 공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심이 없기에 단순명확하고, 신심을 담았기에 비타협적이며, 마침내 타인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오랜 수양과 명상을 한 살아있는 현자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개굴님의 [터널이 아닌, 당신들의 막힌 귀를 뚫으십시오] 에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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