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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영화 <밥,꽃,양>에 관하여

아래의 글은 약간의 사연이 있다.

2000년 당시 난 한 시민단체의 기관지 기자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마음이 맞는 편집장이 있었던 관계로 꽤나 재미있게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2000년 12월에 입대하기전까지 일을 했다.

10월달에 고 편집장과 함께 울산과 부산 등지에 출장을 갔다. 그 이유는 영화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서 였다.

부산에 가서는 달맞이 고개 부근에 있던 라넷 작업실에 가서 감독과 스탶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울산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많은 <밥, 꽃, 양> 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울산에 위치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미 울산인권영화제의 사전검열 논란은 이미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일보직전에 와있었다.

출장 후 바로 글을 하나 쓴 것이 밑의 내용이다. 사실 출장의 이유였던 기관지에 싣기도 전에 내가 임의로 써 버린 기사때문에 고 편집장이 곤혹을 치렀다. ^^ 뭐 항의공문 정도?(어디서 왔는지는 당시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알았다. 내가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울산의 모습을. 그 완장의 힘을. 솔직히 이런 임팩트가 큰 기억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그 모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



처절한, 그러나 아름다운 기록들 : <밥 꽃 양> 사태 관련 일지

정리 : 김상철 (nilblue@orgio.net)

 

9월 7일 라넷 [LARNET-Labor Reporters' Network]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상영을 거부합니다> 발표

9월 8일 영화제 참가 단체였던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여성들' 조직위 탈퇴

9월 9일 라넷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상영거부에 이르게 된 경위 1> 발표

9월 10일 영화제 집행위 <'밥꽃양' 상영거부 사태에 대한 집행위의 입장> 발표.
9월 10일 영화제 명칭 변경.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제2회울산영화제'에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울산영화제'로 변경

9월 11일 인권운동사랑방 <울산영화제 '밥꽃양' 사태에 대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입장> 발표.
9월 11일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여성들 <경과 1> 발표

9월 12일 영화제 집행위 <문제제기의 내용에 대하여 밝힙니다>라는 글 발표
9월 12일 현대중공업노동자영상패 <'밥꽃양' 사전검열에 대한 입장> 발표

9월 13일 영화제 참가 단체였던 울산참여연대 ,<밥꽃양 사태에 대한 입장>발표

9월 14일 페미니스트 웹진 달나라 딸세포 "밥꽃양의 상영거부의 핵심은 사전검열 요구에
있다"는 입장표명

9월 15일 김진균 교수 <검열 없는 영화제를 위하여> 발표
9월 15일 삼호중공업 문화패 영상분과 <가짜 인권영화제를 중단하라>발표
9월 15일 사회당 <울산영화제 집행위원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규탄한다> 성명 발표
9월 15일 영화제 개막작 <아시안 블루> 상영 철회

9월 16일 영화제 상영작 <애국자 게임> 집행위 측의 심의는 사전검열이라며 상영 철회
9월 16일 영화제 상영작 <들불의 노래> 논란 있는 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없다며 상영 철회
9월 16일 조성은 <밥.꽃.양 사전검열에 대하여 - 울산의 1998, 그 침묵의 카르텔에 대하여> 발표

9월 17일 진보평론 <인권장사치들의 몸부림 - 사전검열에 대한 입장> 발표

9월 18일 노혜경 <밥.꽃.양보고 와서 잠못 이루는 밤-이것은 말하게 해줄 의무에 관한 영화다> 발표
9월 18일 대우자동차 영상패 '인권영화제 사전심의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 발표
9월 18일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김백영 <누가 인권을 말하는가> 발표

9월 19일 노동문화정보센터, '집행위에서 취한 태도는 명백한 사전검열이며 집행위에 문제제기를 했던 단위는 공개적으로 문제가 뭔지를 드러내길 촉구한다'는 입장 발표
9월 19일 연대를 위한 노래 모임 '좋은친구들', '집행위는 이제라도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외압의 실체를 밝혀야 할 것'이며 '외압을 행한 단위 또한 공개적인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하며 외 압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 발표.
9월 19일 영화제 집행위, <제2회 울산영화제 개최시기를 연기합니다> 발표. 영화제 개최를 연기 하고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토론회를 제안한다는 입장 표명.
9월 19일 김희균, <토론회 보이콧과 역 제안> 발표.
9월 19일 집행위원장, <집행위원장직을 사퇴하며> 발표
9월 19일 집행위원장, <최초의 문제제기자와 제기될 수 있는 문제> 발표. 최초의 문제제기자는 총괄 프로그래머이며, 문제의 내용은 '노노갈등의 문제'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 '영상 자료 사용 문제'였다고 발표
9월 19일 전명산, <7 가지 질문- 집행위원장의 발표에 대한 반론> 발표.
9월 19일 평등세상을여는울산여성들, <집행위는 답해야 합니다> 발표. '밥·꽃·양'에 대한 '상영 결정'은 분명한 사실로서, 다른 작품의 결정과정을 통해서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며, 집행위는 특정장면에 대한 애초의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는 입장 발표.

9월 20일 라넷, <영화제, 거짓말, 그리고 프라이버시> 발표. 집행위가 새로이 발표한 문제의 내용 와 최초의 문제제기에 대해 문제제기의 실체와 경로를 명확하게 밝힐 것과, '영상 자료 사용 문제'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해당자를 통해서도 확인된 사실무근의 거짓말 이므로 본질을 은폐하고 제작팀을 모욕하는 음해성 발언은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 발표.
9월 20일 문화과학, <울산인권영화제의 사전검열 행위는 반인권적이고 반소수자적이다> 발표.
9월 20일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울산인권영화제 집행부는 사전검열 행위에 대해 공개 사과하 라!> 발표.
9월 20일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밥,꽃,양> 사전검열에 대한 민의련'의 입장> 발표.

9월 21일 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98년, 추악한 기억을 드러내라!> 발표.
9월 21일 제2회울산인권영화제, 갑작스런 영화제 사이트 폐쇄.
울산인권연대 비공식 문건 배표.

9월 23일 항의 사이트 검열영화제(http://larnet.jinbo.net) 개설.

9월 24일 록밴드 천지인 <울산인권영화제에 대한 록밴드 천지인의 입장> 발표.

9월 27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영상패 '창' <울산 인권운동연대 홈페이지 폐쇄에 대한 입장-
'밥·꽃·양'의 울산상영을 제안하며> 발표

9월 28일 평등여성이 울산인권연대의 비공식문건에 대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울산영화제,
정녕 어디까지 가려하는가?>발표

9월 30일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 <울산 영화제 주최측의 반인권적인 행위를 규탄한다.>발표
10월 5일 현자노조식당운영위원회 <<밥.꽃.양>에 대한 현자노조식당운영위원회의 입장>발표

10월 8일 문화개혁시민연대, 민주노동당, 인터넷신문대자보, 진보네트워크센터, 평 화인권연대, 학생행동연대정보통신모임I'm,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 합의 공동 성명서 <울산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속한 모든 단체들은 <밥꽃양> 사전검열과 홈페이지 폐쇄에 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라> 발표

10월 10일 라넷 <밥 꽃 양> 울산 상영계획 발표

10월 12일 현차노조식당 2차 성명서 <마녀사냥의 글에 대한 노조식당의 입장> 발표

10월 14일 역사학연구소 노동사분과 <진정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라넷'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며> 발표
10월 14일 꽃다지 <라넷의 싸움은 우리 모두의 싸움입니다> 발표

10월 16일 민주노동당 울산지부의 게시판을 통해 17일 공청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 최초 확인

10월 17일 라넷 <울산인권영화제의 '공청회' 개최는 부당합니다>발표
10월 17일 공청회 연기 발표
10월 17일 노조식당 현장복귀자 모임 38여성회 <<밥꽃양>제작팀에 드리는 공개 제안>을 통해 울산상영회전 사전 상영 요구.
10월 17일 민주노총 울산본부 <인권과 평화를 위한 울산영화제 논쟁에 대한 의견>발표
10월 17일 평화를 여는 울산여성들 <또 하나의 충격!!-공개토론회 파동> 발표

10월 19일 임인애 감독 <38여성회 회장 조희숙님께> 발표. 사전 상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 음에도 제안서를 띄운 이유에 대한 질문함.
10월 19일 노조식당 현장복귀자 모임 38여성회 <<밥꽃양> 임인애 감독 보세요!!> 발표. 제안에 대한 답변을 재요구.

10월 22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밥꽃양>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 발표
10월 22일 민중의료연합 <<밥꽃양>은 어떠한 압력도 없이 상영되어야 한다> 발표

10월 23일 페미니스트 웹진 '달나라 딸세포' <<밥꽃양>의 울산상영을 지지합니다>발표
10월 23일 <밥 꽃 양> 울산 상영.

<밥 꽃 양>과 그 사건을 보는 한 독법

 


김상철(nilblue@orgio.net)

 

사진출처: 여성신문

[노동자노래단] '딸들아 일어나라' 노래듣기

[민중연대전선] '전진하는 여성노동자' 노래듣기


1. 말해야 하는 의무

오늘은 23일, <밥 꽃 양>의 울산 상영이 있었던 날이다. 이처럼 글을 쓰면서 시간에 신경이 쓰인 적이 있었던가. 아래의 글들을 쓰면서 몇 번이고 검열영화제 홈페이지(larnet.jinbo.net)의 게시판으로 달음질 쳤는지 모른다. 늦은 시간, '울산상영회 잘 마쳤습니다'라는 글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안도를 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내가 <밥 꽃 양>을 보았던 그 시간, 아니 각각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대다수 -아직 <밥 꽃 양>을 보지 못한 이들- 에게 미안한 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진심은 '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노혜경 시인의 말처럼 '말해야 하는 인간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선 전제를 하고픈 것이 있는데, 영화 <밥 꽃 양> 자체와 <밥 꽃 양>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이 이미 영화로서 <밥 꽃 양>의 함의를 훨씬 넘어서는 논쟁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어쩌면 영화로서 <밥 꽃 양>을 중심에 놓았을 때 놓치게 되는 일종의 권력관계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의 불을 당긴 화인으로서 영화 그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분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영화가 아닌데요!"라고 말했다는 임인애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의 '한' 얼개로서 이를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엄밀히 영화가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논란의 지류들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얼키고 설켜 있는 이 논란의 장에 입문을 하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 혹은 하나의 길이었으면 한다. 나아가 많은 이들이 직접 말하면서 이 논란에서의 장에서 '시민권'을 얻었으면 한다.

 2. 지도 그리기 1: '사전검열' VS '자기검열'

우선 <밥 꽃 양> 사건이 불거진 원인을 살피기 위해서는 간단한 셈에서 시작해야 한다. 9월 2일, 9월 6일, 9월 7일이 그렇다. 9월 2일은 <밥 꽃 양>제작팀인 라넷에서 '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해 먼저 보면 안되겠냐'는 말을 들은 시점이다. 그리고 9월 6일은 울산영화제에서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라넷의 성명서가 발표된 날이다. 그리고 9월 7일은 영화제집행위에서 말하는 영화 상영작을 결정하는 날로서 제2차 집행위 회의가 열린 날이다. 왜 이 1주일의 시간이 중요할까. 그것은 초기 논란의 핵심이 되었던, '외부의 문제제기가 있어서'라는 말이 '집행위 1인이'로 다시 말해서 '외부의 검열'이 '자기 검열'로 돌아서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제 집행위는 9월 10일 발표된 사건 개요서를 통해서 문제제기의 부분을 "8월 22일 집행위 회의 후 후보작에 대한 상영작 검토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밥 꽃 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제기"가 있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외부의 문제제기가 있어'라는 표현이 '문제제기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물론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이 있을 수도 있고 맥락을 빼놓을 수도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이 집행위를 구성하고 있던 핵심적인 인사들이 활동을 접은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위의 일주일에 나왔던 말들의 진위를 확인하면서 '진실에 가까운 것'을 추려내는 방법만이 남는다. 우선 집행위는 <밥 꽃 양>이 상영작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후보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울산에서 지난 15일 만난 평등여성의 관계자는 "말도 안된다"고 잘라 말한다. 그 근거로 울산영화제에 상영 예정이었던 <아시안 블루>와 <1991년 1학년>은 9월 7일 회의 전에 공식홈페이지에 '상영이 확정되었다'고 공지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이중 <1991년 1학년>이라는 작품이 이전에 상영 결정되었다는 것은 울산영화제 게시판을 복구해놓은 현재 검열영화제 첫 화면 하단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두 개의 영화가 집행위의 공식적인 사전 상영을 거친 것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래머의 사전 조율에 의해 '단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십분 집행위의 입장에서 고려했을 때, 다음의 상황이 가능할 수도 있다.  위의 두 작품이 8월 22일 제1차 집행위를 통해서 결정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밥 꽃 양>이 여성부문 프로그래머와 연락을 한 시점이 7월말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차 집행위 회의 때 <밥 꽃 양>의 상영결정은 왜 안 내려졌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상영작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외부의 문제제기'라는 말실수를 주워담기 위한 하나의 트릭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므로 뒤에 집행위에서 밝힌 '자기검열'이라는 말 자체를 진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는 '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한 사전 검열'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것이 설사 자기검열이라고 하더라도 타 상영작에는 행하지 않은 절차를 <밥 꽃 양>에 강제하게된 것은 분명 진공상태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외부'의 힘이 유형적인 것이었던 무형적인 것이었던 중요한 것은 하나의 '예외'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존재했으며, 바로 그 점이 이번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을 만들어낸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3. 지도 그리기 2: <밥 꽃 양> 논란을 가로지르는 몇 가지 것들

그렇다면, 영화제 집행위가 그런 예외를 두게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검열 영화제 게시판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몇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존재다. 울산에 현지 취재를 갔을 때 놀랐던 대답 중에 하나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울산 지역의 대다수 시민단체는 그 정도가 문제지 현대자동차 노조로부터 자유로운 단체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영화제 집행위를 탈퇴한 단체들이 그나마 자유로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서 한 10배쯤 그 심각성을 높여야지 울산의 '현지'에 대한 정확한 느낌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남한의 노동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상징적이다. 80년대의 '골리앗 투쟁'이 그렇고, 매해 각 단위 사업장의 임단협이 현대차 타결 내용을 기준으로 논의된다는 일반적인 관행에서도 그렇다. 그런 상징물이 실제 작동하고 있는 공간에서는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한다. 물론 권력 자체를 백안시하는 관점은 위험하다. 특히나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란 것이 대개가 절대적인 우위의 권력에 저항하는 힘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가 우려해야 될 것은 오히려 역편향의 움직임이다. 실제로 게시판에는 '단병호 위원장이 잡혀간 시점에 이런 영화를 개봉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들이 지속적으로 게재된 적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밥 꽃 양>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 단병호 위원장의 재구속 시점과는 분명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에 현대자동차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이 실명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맥락과 연관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밥 꽃 양>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들인가. 검열 영화제 홈페이지에 올라온 영상 클립들을 계속 살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는 98년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부터 2000년도 1월 노조식당 아주머니들의 단식 투쟁을 마감하는 시점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4분하고 있는 정파들의 핵심간부들이 쏟아낸 말들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는 점이다. 98년 당시 7대 위원장에서부터, 99년의 8대, 2000년의 9대까지 적어도 3대에 걸친 노동조합 집행부의 행적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노조식당 아주머니의 투쟁을, 그리고 그 시선에서 당시의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임인애 감독이 말했듯이 "당시 사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일 따름이다."

인터뷰를 해본 결과 문제가 된 장면은 '모모씨가 한 발언이 영화의 전후 관계상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혐의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 영화를 보면서 '문제의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꼭 그렇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속내야 어떻든 간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98년도 정리해고 투쟁에서 제한적이나마 정리해고를 수용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이 같은 조건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던 간에 '외부로부터의 문제제기' 당사자로 지적되는 것은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덧붙여 반드시 지적이 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앞서 지나가면서 언급한 것이지만,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문제의식 수준에서 연대의 방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적 구성의 측면에서 결합되어 있다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진보진영 자체를 갉아먹는 한 원인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방식에서 파생된 것이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에 대한 '오해'와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사회> 10월호의 '오보'다. 먼저 인권운동사랑방에 관해서는 울산영화제와의 관계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영화제라는 형식을 최초로 공식화시킨 것은 물론, <레드 헌터>상영과 관련된 문제로 인하여 서준식 당시 대표가 형사상의 고발 조치까지 당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그 후 각 지역에서 인권영화제 형식의 문화활동이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확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래 울산영화제의 명칭은 울산인권영화제였다. 그것이 인권운동사랑방의 항의에 의해 울산영화제로 변경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월 11일 '울산영화제 '밥 꽃 양' 사태에 대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바로 여기까지가 울산영화제와 인권운동사랑방이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은 전부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난 달 14일과 15일 취재 당시 들었던 얘기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 1인이 내려와서 공청회를 조직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실제 울산에 가서 들은 얘기로는 울산대의 모 교수가 "그런 사실 모르고 있었냐."면서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라고 했다. 라넷의 서은주 감독은 <밥 꽃 양> 상연 소식도 직접적으로 서준식 전 대표의 메일을 통해서 알렸었고, 이 사건이 터진 다음에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냐는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밥 꽃 양>이 문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내부의 의사소통 문제가 있을 테니-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생긴다. 검열 영화제 게시판에서 전명산씨는 인권운동사랑방에 '울산에 내려와서 비공개적으로, 그것도 당사자인 라넷이나 평등여성도 만나지 않고 오직 울산인권운동연대만 만나서 공청회 얘기를 한 이유가 뭐냐'는 던진 후, 이에 대한 인권운동사랑방의 답을 올려놓았다. 거기에 따르면, 인권운동사랑방은 '현장조사차 내려간 것이며, 공청회에는 전혀 개입하고 있지 않고 다른 당사자들은 금방 접촉하여 조사 작업을 할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일차적인 질문은 영화제 제목에 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인권운동사랑방이 '공청회 개최에 자신들이 개입했다.'는 오해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해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현재 인권운동사랑방이 서준식 대표의 사임 이후 조직 편제에 대한 고민과 국가인권위 문제로 많은 고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활동가까지 파견해서 현장 조사를 하고자 했다는 인권운동사랑방의 태도 자체가 모순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어떻게 초기의 불개입 원칙이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없이 비공개적인 현장 조사로 귀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도저히 해명이 되지 않는다.

다음은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사회> 10월호에 차미경 편집위원이 쓴 최종희 노조식당 운영위원장 인터뷰에서 나온 '오보'다. 참여연대에서 해명하고 있듯이 이번 인터뷰는 <밥 꽃 양>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종희 위원장 개인에 대한 인터뷰의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 기사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인터뷰 말미에 차미경 편집위원이 나름대로 <밥 꽃 양>사태를 해설한 짤막한 내용이다. 해당 부분에서 차미경 편집위원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노조식당의 관계를 '서운한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가야될 대상'이라는 해석을 내리면서, 이번에 불거진 문제를 '외부의 개입'으로 언급했다. 다시 말해서 별 이상이 없는 관계인데도 쓸데없는 논란을 만들어와 불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달 15일 만났던 최종희 운영위원장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수많은 전화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분명 자신의 뜻을 잘못 이해한 '오보'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다. 문제는 차미경 편집위원이 그런 해석을 하게된 배경이다. 울산참여연대의 관계자는 "당시에 해당 편집위원이 어떤 연락도 한 바가 없다."고 전했다. 물론 참여연대가 반드시 울산참여연대에 방문을 해야된다는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울산참여연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영화제 집행위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던 몇 안 되는 단체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부분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미경 편집위원의 그러한 해석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과연 단순한 오해였을까. 아쉽지만, 인권운동사랑방과 참여연대의 활동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 멈춘다. 더 해명할 수 있는 원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단서는 있다. 각각의 시민단체가 각 지역의 시민단체와 맺고 있는 유대감의 한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 속성은 인적 구성의 문제, 다시 말해서 친밀함이라고 하는 사적 관계가 공적 관계를 압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다. 우스개 소리로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진보진영이 아무리 성장했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다 친족관계더라는 것 말이다. 실제로 현지 취재에서 놀란 것은 울산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상근을 하는 활동가들은 대개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특정 정파와 혈연 혹은 친분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라는 '거대 노조'의 영향력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런 의혹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솔직히 당시에 들었던 생각은 황당하지만 '진보진영 족보도 그리 수 있겠구나'라는 실없는 것이었다.

4. 지도 그리기 3: '소수자'라는 문제설정의 함정에 대해

그럼에도 나는 이번 <밥 꽃 양>문제를 '소수자'의 문제설정으로 보는 것에 유보적이다. 위에서 언급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도 그렇고 인권운동사랑방도 그렇고 참여연대도 모두다 규모나 영향력의 측면에서 '기득권'이라고 부를 소지는 다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 특히, 노조식당을 중심에 놓고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수자'라는 문제설정을 중심에 놓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한 때 검열영화제 게시판에 '월장' 문제가 불쑥 나오거나, '100인 위원회' 얘기가 간간이 썩여 있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밥 꽃 양>을 둘러싼 논쟁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리 적절한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선은 최종희 운영위원장을 찾아갔던 '울산 여성의 전화' 얘기를 참조해보자. 최종희 위원장은 9월 중순쯤 '울산 여성의 전화' 활동가 몇 명이 자신을 찾아와서, '사전 검열은 없었으며, 애초의 문제제기는 영화에 나오는 한 여성의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이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최종희 위원장은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이었다."고 말하면서 '프라이버시 문제의 당사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미 말한 상태고 더더구나 그런 문제는 당사자끼리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면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것은 그 전에 서울에서 가졌던 상영회 때문이었다는 것이 공통된 문제제기다. 이때 거론이 된 사람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전직 위원장과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매개가 된 것도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었다. 우리가 <밥 꽃 양>의 문제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만 보게 될 때 놓치게 되는 부분은 여성 내부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방향 즉, 폭력이 행사되는 다차원인 층위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노조식당의 경우에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비교했을 때 '소수자'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지, 기타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교하였을 때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이 점은 최종희 위원장의 분명한 대답에서 얻어진 결론이다. '어떻게 이런 힘든 투쟁을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거대 노조'의 조합원이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해줬다. 물론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분명히 한 축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이슈화되는 사건과 이슈화되지 않는 사건이 지니는 차별적인 영향력의 관계다. 우리가 '소수자'의 문제설정을 그렇게 갖다댈 수 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노조식당 사이에서 찾아질 수 있는 분명한 경계선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식당을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본다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가졌던 관계가 쉽게 역전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수자'로서 노조식당을 등치시키는 것은, 세밀하게 작동중인 다양한 관계망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기성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경직성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4대 의결기구라는 절차상의 형식- 문제는 소수자의 문제설정에서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설정은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과는 한 차원 떨어진 문제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문제 제기가 '그 절차' 자체로 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5. 문제는 덮개를 여는 것이다

10월 23일의 울산 상영회를 기점으로 <밥 꽃 양> 논란은 분명 한 장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영화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줄어 들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살펴본 문제들 마저 즉각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밥 꽃 양>은 우리가 잊고 있는 아니, 오히려 잊고자 했던 기억들을 우리 앞에 던져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의 배경은 진보진영의 '은폐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남인가'라는 식의 무원칙적인 '패거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음지의 것들을 양지로 꺼내놓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의 인적인 밀월관계, 그리고 '딴 동네 얘기에 참견하지 마라'라는 식의 배제의 원칙들이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공개적인 논쟁의 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밥 꽃 양>이라는 기록이 담고 있는 '사실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복원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기억들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유되면서 하나의 각인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가 벌써부터 '이론의 마개'로 채워지는 것을 무엇보다 우려된다. 임인애 감독이 바란 대로 <밥 꽃 양>이 좀 더 많은 장에서 보여지고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밖의 것들, 수많은 제2의 제3의 노조식당들이 기억 저편에서 건져지고 우리 눈앞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밥 꽃 양>은 진행 중이다.(00.10.24)

※ 이 글은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문화연대』특집기사 차 부산과 울산을 방문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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