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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난한 자의 꿈을 이용한 약탈적 머니게임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가난한 자의 꿈을 이용한 ‘약탈적 머니게임’
ㆍ‘모기지 피해자’ LA서민 루세로 이야기

# 빚내서 산 집들, 화재로 타 버려

로스앤젤레스의 국제공항에 도착했던 지난 15일 밤 9시. 백발의 택시 운전기사는 “좋지 않은 시기에 LA를 찾았다”며 “경제도 좋지 않은데 북쪽 지역에 큰 불이 나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화재 소식부터 전했다.

플로리다, 네바다주 등과 더불어 미국 전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 뉴욕 월가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동안 이곳의 많은 가난한 이들은 다른 꿈을 키웠다. 돈이 별로 없어도 내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그러나 월가가 몰락하자 그 알량한 집은 빚더미로 변했고, 길거리로 쫓겨나야 할 판이 되었다.

한인타운까지 가는 약 15분 동안 택시 기사는 “불이 난 지 벌써 3일째인데 불길이 쉬이 잡히지 않고 오히려 번져가고 있다”며 뉴스를 전해주었다. 속수무책으로 가치가 하락해 주인들의 가슴을 까맣게 태우던 집들. 그 집들이 화마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설상가상이었다.

‘ 압류’ 딱지 붙은 채 방치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 신도시 란초쿠카몬가의 한 주택이 지난 17일 은행의 ‘압류’ 간판이 세워진 채 방치돼 있다. 이 지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채 떠나면서 빈집들이 속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 저소득층 거주지가 바로 금융자본의 표적

16일 ‘뉴 스타’ 부동산의 중개인을 만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피해 현장을 묻자 몇군데를 꼽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부실은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 구조와 맞물리며 전세계에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근원으로 지목됐지만 피해 지역은 제한적이었다.

뉴 스타의 남문기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가 소득이 적고 신용이 나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지 않았느냐”며 “예외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소득층들이 특히 많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17일 찾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란초쿠몬가(Rancho Cucamonga)시.

이곳은 남 회장이 지적한 ‘저소득층이 많이 살았던 지역 중의 하나’이자 일본의 저널리스트 쓰쓰미미카가 그의 책 <빈곤대국 아메리카>에서 말한 ‘과격한 시장 원리로 경제적 약자가 희생당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뜨고 지는 동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집을 지켰지만, 경제적 약자들은 3~4년의 단꿈 끝에 영원히 희망을 잃었다.



# 희망이 꺾인 자리, 황량한 ‘신도시’

동네 입구 쪽에 위치한 2층 집 앞 잔디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뻗었다. 시들어버린 잔디밭 위로 솟은 집 세일 광고판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광고판에는 은행의 전화번호가 선명했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 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던 사람이 은행에 대출금을 내지 못해 압류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포기를 선언하면, 집은 대출을 해줬던 은행으로 넘어간다.

이 동네에 이런 식으로 은행차압매물(REO·은행소유집)이 매물로 나와있는 게 약 7채 중 하나 꼴이었다. 그는 “은행집으로 나와있는 빈집이 이 동네에만 무려 250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는 사람 냄새보다는 냉기가 돌았다. 동네를 돌아보는 동안 5분 단위로 집을 내놓은 은행의 광고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집들은 전부 빈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새집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집의 유리창이 깨져 있기도 했다. 그는 “비싸게 산 집을 뺏기고 나가니까 화가 난 사람들이 분을 삭이지 못해 유리창을 깨거나 집을 부수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 말 한 마디 걸기 힘든 냉랭한 동네

오가는 사람들은 말 한 마디 걸어보기 힘들 정도로 냉랭했다. 겨우 한마디 나눌 수 있었던 동네 주민 얄루(43·여)는 “지나가다가 잔디가 죽어서 누렇게 된 집을 보면 자연스럽게 저 집도 버티지 못하고 어디론가 쫓겨났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 집도 은행집, 저 집도 은행집, 이렇게 늘어나는 은행집들을 보다보면 서브프라임 대상이 아닌데도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나까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빈집 내부는 더욱 엉망이었다. 벽면 가득 써 있는 알아보기 힘든 낙서들. 주먹으로 몇번이나 내려쳤는지 우그러져 있는 곳곳의 벽면. 이사가는 사람들이 붙박이 형태로 되어 있는 에어컨과 가스 오븐레인지를 억지로 떼어가 칠이 벗겨진 벽도 흉하게 드러났다.

란초쿠카몬가는 본격적으로 주택 공급이 시작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신도시다. 로스앤젤레스 도심부에서 약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도심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 게다가 대량으로 주택이 한꺼번에 공급되자 이 주변의 집들은 30만달러에서 50만달러 사이의 비교적 저렴한 수준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한창 미국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2004년. 은행은 앞다투어 사람들에게 이 집들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해 팔았다. 란초쿠카몬가뿐만이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 지역의 팜데일·코로나·폰타나 등의 신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주택들이 완공되어 매물로 나왔다. 은행은 주택 공급은 계속되는데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중산층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연히 집 없는 저소득층을 향해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민자와 저소득층 미국 시민들은 생애 첫 주택의 꿈을 이곳에서 이뤘다. 이들은 저소득층이 밀집해 살던 도시를 탈출해 이 신도시에 새 집을 얻었고, 안전을 얻고, 자녀들은 좋은 학군을 얻었다. 한때나마 신도시들은 환희가 가득하던 땅이었다.


#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리사츠 루세로(37·여)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팜데일에 처음 집을 사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띄엄 띄엄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행복했고…흥분됐고…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운지 처음 몇분 동안 루세로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리사츠는 1989년 남편과 과테말라에서 이민왔다. 가진 돈이 없었던 그녀는 15년 가까이 월 1500달러에서 2000달러 되는 월세 집을 전전했다. “미국에 이민와서 살면서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꿈’ 그 자체였어요. 삶을 살아가는 최종 목표이기도 했죠. 그런데 4년 전에 저처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거예요. 나도 가능할까? 은행에 문의를 해봤죠.” 조바심을 냈던 것과 달리 은행에서는 빠르게 서류 작업을 끝냈다. 마침내 35만달러짜리 집을 샀다. “정말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어요.”


# 가난한 자의 꿈을 이용한 약탈적 금융

은행과 모기지 업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저소득층에게 팔면서 집요하게 그들의 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이 집을 사는 꿈을 포기할 수 없도록 유혹하기 위해 사려는 집의 담보 가치를 100%로 잡아 대출을 해주는가 하면 처음 2년 간은 획기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매겼다. 대출 불가능한 요소들은 모두 없앴다. 저소득층을 겨냥한 약탈적 금융 게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달에 1000달러 안팎의 돈을 지불하면 됐어요. 은행에서는 집 값이 오르면 그 오른 돈으로 대출이 가능하니까 제 사업도 더 잘될 거라고 격려했어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루세로와 남편은 집을 산 후 수입의 절반을 대출금으로 냈다. 다행히 페인트 칠을 하며 집 리모델링 일을 하던 남편은 주택 경기 붐을 타고 호황을 맞았다. 우편물을 포장해 보내는 일을 하는 루세로의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평생 살 내 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아끼고 아껴 정원을 꾸미고 아이들 놀이방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초부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005년 정점을 찍은 집 값은 서서히 하락세를 보였고 늘어난 대출금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루세로도 대출 상환 압박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집 값이 하락하면서 은행은 기존에 내던 대출금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한달간 남편과 벌어들이는 돈을 고스란히 대출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생활이 불가능해졌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 했고, 세 아이들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는데 말이죠.”


# 친철하던 은행이 느닷없이 집을 가압류

주택경기 침체는 남편의 수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2008년 1월부터 4개월 동안 대출금을 내지 못했다.

“제일 화가 나는 건 은행의 태도였습니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는 집값은 계속 오를 테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주었죠. 아무것도 몰랐으니 믿었지요.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수입이 줄어 한달에 1000달러씩 내는 게 힘들다고 하니까 500달러로 낮추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한달에 500달러 지불로 서류 작업까지 끝냈는데 느닷없이 2주 후에 집은 가압류될 테니 나가라고 했어요. 은행은 더 이상 저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포기할 수 없었던 루세로는 그 때부터 필사적으로 대출금 막기를 시작했다.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며 임시변통을 했다. 카드에서 더 이상 돈을 뺄 수 없을 때가 됐을 때는 삼촌에게 돈을 빌리며 버텼다. 그러나 이미 집은 루세로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은행에 집을 빼앗기고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빨리 집을 팔려는 은행이 집 가격을 낮춰 급매물로 내놓으면서 동네 집값은 평균적으로 40%나 떨어졌다.


# 눈물로 기도하던 나날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매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다섯이나 되는 가족들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버텼죠. 남편과 저는 열심히 일했고, 집에도 계속 정성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제편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집을 떠나고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동네에 도둑이 들끓었습니다. 한번 도둑 맞았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두번째 도둑이 들어 집이 엉망이 됐습니다. 그 때 확실히 알았어요. 이제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날 때라는 것을.”

그렇게 루세로는 올해 초 집에 대한 포기를 선언했다. 집은 은행 소유로 넘어갔다.

전미 모기지은행가협회(MBA)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주택소유자 중 300만명가량이 대출을 연체 중이며 마리사츠의 경우처럼 주택을 가압류당한 경우는 100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올해는 전년에 비해 가압류 당한 수가 50%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캘리포니아주는 주택 242가구 가운데 1가구 꼴로 가압류 절차가 진행중이다. 10월20일 발행된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렇게 쫓겨난 이들이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온타리오 텐트촌에서 텐트를 치고 난민처럼 살며 1930년대의 대공황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다른 사람처럼 길거리 쫓겨나지 않아 다행

루세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 사무실에 딸린 방에서 몰래 살고 있을 때 건물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도움을 줬어요. 미국에서는 가족 다섯명이서 한 방에 살 수 없게 금지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외곽 지역에 월 1300달러의 집을 얻어서 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길거리로 나앉지 않았죠.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지지도 않았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그러나 앞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다시 집을 살 수는 없겠죠. 제 신용은 이제 엉망이거든요. 하지만 그 건 당장 큰 걱정이 아니에요. 크리스마스가 오고 연말이 오면 제가 하는 우편물 사업은 더 잘 될 텐데 빈털터리가 된 저는 당장 사무실을 얻을 돈도 없네요.”

이야기를 마친 후 루세로는 한참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운을 뗐다. “당신은 한국인이죠. 한국인은 똑똑한 것 같아서 부러워요. 이곳에 이민와서도 다들 좋은 집을 사서 잘 살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은 왜 그렇게 안될까요. 열심히 살아도 안좋은 일만 따라다니네요.”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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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국을 가다..파생상품 판매인 코그네티의 증언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1부-2. 미국을 가다…파생상품 판매인 코그네티의 증언
ㆍ“전 세계가 탐욕에 눈멀어 빚잔치를 벌였다”
ㆍ과도한 차입 의존 투자방식이 화근…“시스템의 위기”
ㆍ사무실 대출 등 터질 문제 많아…‘L자형 침체’ 예상

월가 생활 7년째인 코그네티(37)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터지기 직전까지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미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은행의 판매부서가 그의 자리였다. 부서 내의 트레이더들이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그것을 섞고 짜깁기해(구조화) 상품을 만들면, 그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모기지 부실이 드러나며 일하던 회사의 부서가 구조조정돼 없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월가를 나와 새출발을 한 그는 적응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를 미국과 월가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의 경우만 해도 그렇죠. 월가에서 이것을 만들고 팔았지만, 누가 사갔습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사갔거든요. 그들도 이게 위험자산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월가 사람들처럼 많은 돈을 벌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욕심이 모이다 보니 전 세계에서 위험한 금융자산의 비율은 점점 더 커져간 거죠.”

이번 금융위기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탐욕에 빠진 결과라고 그는 강조했다. “월가 밖의 사람들도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만약 월가 사람들의 탐욕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저 역시 세계 각지의 사람들도 탐욕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동안 월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었죠. 저 역시도 1년에 20만달러 이상의 돈을 받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권을 누리고 살았어요. 하지만 월가의 금융회사는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어요.”
월 가에 켜진 ‘빨간불’ 지난 14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로 호황을 누리던 월스트리트는 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전락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파산하고 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밥먹을 틈도 없이 일했던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서로 경쟁하면서 많은 수익을 내려고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했죠. 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겪은 월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 위기를 초래한 것은 월가 사람이라기보다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과도한 레버리지(leverage·차입)에 의존한 투자방식이 문제였죠.”

그는 위험하게 질주하는 월가를 보며 “언젠가는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동안의 월가는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판이나 다름없었어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활용해 공격적으로 투자했죠. 월가에서는 레버리지로 돈을 버는 게 투자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었어요. 너도 나도 빚잔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자본력이 약한 사람들조차 빚을 내서 돈을 벌려고 했어요.”

막상 문제가 터지자 정신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고, 나에게 이렇게 빨리 그 불똥이 튈 줄은 더더욱 몰랐다”고 했다. “올해 초 회사에서 근무하던 부서가 구조조정으로 없어지고, 최종적으로는 그 거대한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것까지 보면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넋놓고 며칠을 보내다가 어떻게든 다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올해 3월 그는 부동산 관련 회사에 다시 직장을 잡았다. 그는 “지금도 사실 적응 중이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별 수 있나요. 이제는 일한 만큼 버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해 낙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터질 게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을 직접 팔았고, 또 그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취급했던 그 상품들이 다 드러났나 하고 생각해보면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주택 외에도 사무실 대출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아야죠.”

한창 이야기를 하던 그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공중에 영어 알파벳 L자를 그렸다. “보통 U자형을 이야기하죠. 바닥을 찍었다가 회복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이번 위기는 L자형 침체의 지속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대공황까지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주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진행이 될 것으로 봅니다.”

<뉴욕 | 유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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