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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코니 윌리스의 "세상이 지난 주 화요일에 멸망하지 않은 이유"(mirror.pe.kr)을 보고 즉흥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오마쥬 물.

 

모티브는 현재 소고기 촛불집회가 결국은 한국혁명의 출발점으로 장치되었다는 가정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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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왔다. 대학 시절부터 청와대에 깃발만 꽂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던 선배의 말은, 그 선배가 연애엔터데인먼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무한도전' 같은 일이었다. 오늘 회의를 통해 그동안 준비해온 혁명의 날을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그것을 확인하는 최후의 날이다.

 

박치우: 늦었군.

 

조선 대표도 참석한 박치우 선배가 도착했다. 일제시대때부터 선택받은 자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장치들을 설치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뒷말로는 내가 '한국 혁명 위원회'의 현지 담당자로 뽑혔다고 공고가 나갔을때 '머리에 피도 안마른 그 놈이 뭘 안다고 그런 중책을 맡기느냐'며 마르크스 동지의 수염에 매달려 항의를 했다한다. 그것을 본 신채호 선배가 "역시 저런 국가주의자하곤 상종하지 않는 게 최고다"며 크로포트킨 동지와 함께 플라잉 낚시를 하러 떠났다는 소문까지 덧붙여 졌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부터 세계 혁명 위원회에서는 박치우 선배를 특별히 '특별한 참가인' 자격을 주었다. 흔히들 '특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세계 혁명 위원회도 보통 세혁위라고 불리었고, 한국 혁명 위원회도 한역위라고 불렸다. 세혁위는 세계를 대표한다는 권위로 세르비아 혁명 위원회를 '세르혁위'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물론 한혁위도 원래는 '대한민국 혁명 위원회'였지만, 큰 대자를 쓰는 것에 대해 중국의 쑨원 동지가 콧웃음을 날린대다가, 대만 혁명 준비위원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한혁위가 된 것이었다.

 

나: 아 네, 원래 약속시간에는 다 늦지 않나요? 그나 저나 선배, 점점 더 때가 도래하는 것 같아 기뻐요. 최근엔 광화문의 촛불이 거리를 점거했다잖아요. 이건 분명 전조라구요.

 

박치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 우리의 정치문화와 우리 국민의 소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가 아직 청산이 되었나 의심스럽네.

 

내가 지난 회의에서 이번 소고기 시위와 관련한 보고를 하면서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않았던 10대들이 1960년의 정세와 유사하게 전면에 등장한 점이며 특히 인터넷 까페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졌다'고 했더니, 박치우 선배는 "도대체 그 까페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주위의 동정을 사기도 했었다. 그 때부터 박치우 선배의 이야기는 왠만하면 대꾸를 아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늦었네, 늦었어. '다함께' 애들이 계속 붙잡는 바람에 말야."

 

막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트로츠키 동지였다. 요즘 한국 출장이 잦다. '다함꼐'라는 혁명 동아리가 아무 글이나 써놓고 그 밑에 '트로츠키'라는 이름을 써놓고 출판한다고 짜증이 부쩍 늘었다.

 

트로츠키: 그나마, 이 쪽 근처에 와있어서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어.

 

트로츠키 동지는 커피메이커의 커피를 따라 홀짝거리며 마셨다. '역시 커피는 남미산이 좋은데 말이야...' 나는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커피가 어디 산인지 모른다. 방금 남미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 요즘도 '다함께' 동아리때문에 바쁘신가요? 그 쪽도 최근의 혁명적 상황에 대해 한껏 고무되어 있겠죠? 어떻게 준비하고 있던 가요?

 

트로츠키: 아~ 그건 물어볼 새도 없었어. 몇 년전부터 자율주의인가 뭔가하는 동아리와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더군. 뭐 '비물질 노동'이 있느냐 없느냐 부터 해서, 다중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고 난리더군. 내게 훈수를 요구하는 건 대개 이쪽 부분이던걸?

 

박치우: 아니 그건 또 뭔말이오? 트로츠키 동지. 생산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로 형성되는 계급 개념이 비물질적 노동에서 나오는지 물질적 노동에서 나오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오? 거참.

 

트로츠키: 아, 박치우 동지였구만. 난 사무실 아가씨와 너무 열심히 농담 따먹길 하길래, 뭐 하는 사람인가 했다우. 하하~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 다 웃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뭐 다함께 후배들이 찾는 건 대개가 맑스 형님께 물어야 할 것들이라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지 뭐.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들어오자 마자 모자를 벗고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콧수염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훵하니 드러난 대머리와 대조되었다.

 

트로츠키: 아이고, 레닌 동지. 오느라 수고 많았소. 요즘 한창 바쁘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렇게 정정하게 보니 반갑네 그려.

 

그도 그럴것이 레닌 동지는 지난 1989년 세계 곳곳에 있는 자신의 조형물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폐증까지 걸렸었다. 그 때문에 지난 10년이 넘도록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고, 한동안 자살설까지 떠돌았던 터였다.

 

레닌: 뭐, 그다지 바쁠 건 없고. 요즘 계속해서 1916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들어선 때를 꿈속에서 본단 말이야. 이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모르겠어.

 

한켠에서 새우깡을 먹던 박치우선배가 레닌을 보더니 말을 꺼냈다.

 

박치우: 그런데, 스탈린 동지는 만나시나요? 요즘 도통 안보이던데.

 

나: 박 선배... 아하하. 레닌 동지 이해해 주세요. 이번 한혁위 모임에 처음 나오셔서 그래요. 그리고 최근 헤겔 공부를 다시 시작하신다고 금강산 언저리에서 수학하신게 길어서 잘 모르세요. 아하핫.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레닌이 박치우 선배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트로츠키: 아이고 박치우 동지. 레닌 앞에서 스탈린 이야긴 하지 않는게 불문율이요. 뭐, 다시볼 생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되지만 말이야.

 

박치우: 그렇게까지 볼 건 없다구요. 저나 특히, 혁명 이후 소련을 방문했던 백남운이 같은 친구들은 당시 소련의 혁명 지원에 얼마나 감사해 하고 있었는데요. 일본 혁명 그룹도 다 스탈린 동지가 힘써준 덕분에 우리같은 사람들을 도와준 거라구요.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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