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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아직도 양심수가 감옥에 있어야하나

양심수의 존재는 정권의 민주성을 가늠해

명숙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발행 2017-11-30 18:30:45
수정 2017-12-01 00: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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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가 629 선언으로 다 풀어줬어. 재판이 안 끝나도 풀어주고 기소 중인 사람도 다 나왔지.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새 정부로 바뀌었다는데 양심수가 아직도 감옥에 있을 줄 몰랐어.”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정순녀 님이 말했다. 80년대 그녀의 딸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후 민가협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딸은 풀려났다고 했다. 군부정권조차 대대적인 양심수 사면을 했는데 어찌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이럴 수 있냐고 했다. 말을 들을수록 씁쓸했다.

1987년 7월 9일 사면조치된 시국사범은 김대중, 백기완, 문익환 등 2천명이 넘고 1988년 12월 21일 사면자는 김남주, 문부식 등 천명이 넘는다. 김영삼 정부도 많은 양심수를 석방하였다. 독재정권이나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민주적인 외양을 갖추고자 특별사면을 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중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를 수렴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속이구선언’이라 일컫는 629선언에서도 “모든 시국관련 사범들도 석방되어야”한다며 양심수석방을 언급했던 것이다. 이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 양심수의 존재가 정권의 민주성을 가늠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지난 2014년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에서 어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양심수 석방과 인권, 민주주의 증진을 촉구하고 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9월23일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4년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에서 어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양심수 석방과 인권, 민주주의 증진을 촉구하고 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9월23일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됐다ⓒ김철수 기자

집회시위의 자유와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특사)이 성탄절을 앞두고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특사 대상자는 ‘정치인 사면·복권, 법무부가 특정한 집회 참가자 등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자, 생계형 범죄자’라는 보도가 나온다. 특히 법무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반대집회,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용산 화재 참사 관련 시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등 5개의 집회 참가자에 대해 특사 검토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검토 중인 시국사범이 대부분 집회 참가자라는 점은 이전 정부가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했는지를 보여준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는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정도와 맞닿아 있다. 특히 돈과 권력이 없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요구를 알리는 수단이 집회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해 정책의 부당함을 알리고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힘 있는 사람이나 다수자-기득권 세력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억압되기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된 기본권이다. 집회시위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모이고 행동할 수 있는 기본 인권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대법원 판례들은 집시법이라는 현행법을 위반했더라도 ‘평화로운 집회 시위 그 자체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라면 불법이라 하더라도 보장해야 한다고 판례들은 말한다. 그런 점에서 5개 집회 참가자들을 구속 또는 기소한 것은 애초부터 반인권적인 조치였다. 이제라도 사면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왜 5개 집회에 한정하는지 묻게 된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노동자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안은 5개 집회에 한정할 수 없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시켰던 민중총궐기 집회가 대표적이다. 민중총궐기는 노동개악에 국정화 조치까지, 박근혜 정부의 인권후퇴적 정책에 대해 11대 요구안으로 모인 대규모 집회였다. 당시 민중총궐기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경찰의 탄압은 심했다. 집회와 행진을 불허하고 도심을 차벽으로 막은 상태였다. 그에 대항하기 위한 행동들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 맞는지 국제사회는 물었다.

2016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합법여부가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방한을 마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실제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 인기가 높은 권리는 아닐 수도”있으나 “이러한 권리는 소수 그룹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좌)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좌)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민중의소리

한상균과 통합진보당 관련자까지 석방돼야

그런데 어떤 집회는 사면대상이 되고 어떤 집회 참가자는 안 되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보장돼야 하는 것이 모여서 행동할 권리다. 집회시위만이 아니라 결사의 자유를 억눌러왔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기간 구속된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반인권적 정권이 자신의 정책과 다른 입장을 갖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잡아간 사람들은 다 사면 대상이 돼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결사의 자유를 막은 대표적 사례가 노조탄압이고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이들이 그대로 감옥에 갇혀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그만큼 답보상태라는 뜻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점과 기조이다. 과거 정부에서 탄압받았던 양심수를 다 석방한다는 기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결국 새 정부도 ‘온갖 이유로 기본적 인권을 제한했던 과거의 기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번 성탄절에 양심수가 모두 석방되는지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현 정부가 얼마나 민주적인가, 얼마나 인권을 보장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 잣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명박 박근혜 때보다 낫다는 평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새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하려면 좀 더 분명하게 인권 보장을 향한 기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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