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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오바마 '아시아로의 귀환' 길잡이 돼야

"'박근혜 독트린', 역사적 행운을 놓치지 말라"

[한완상-김민웅 대담] 朴, 오바마 '아시아로의 귀환' 길잡이 돼야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07 오후 1:16:40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안보 위기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타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3일 1993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와의 대담 자리를 마련해 현재의 위기를 진단하고 이 위기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 봤다.

한 전 총재는 한반도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큰 그림에 이 모든 사태를 수렴시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관계와 관련해 보수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박근혜 독트린"을 선언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겉으로는 위기이지만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현상 타개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위기관리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에 비해 중국의 역할은 비약적으로 커졌으나 오늘날 북한이 마냥 중국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불신과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음도 아울러 언급했다.

한 전 총재는 핵무기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주시하면서, 목표는 경제발전의 여지를 만들겠다는 것인 만큼 이러한 점을 잘 파악해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의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할 경우 (미·중간 경쟁에서) 미국과 베트남의 경우처럼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과정에서 북한의 핵무기 문제도 해결되는 통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완상 전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북-미 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주도권을 행사한다면 민족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을 수 있다면서, 5월 방미 시,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이 한-미-일 대 중국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중국과 협력적으로 만들어지는 국제질서가 되어야 함을 설득해야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의 MD 참여는 미·중간 대결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4월 말, 한미 군사합동 훈련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상황타개의 분위기가 다시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대담은 지난 4월 3일 오후 한완상 전 총재의 자택에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함께 진행되었다.<편집자>
 

▲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여전히 건강하시니 반갑다. 우선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 진단해보자. 정말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인가? 동북아 전체 관련 지역에 각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에 평화의 길이 보이나 싶었는데, 최근 상황을 보면 불안한 정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설마 뭐 별일이야 있겠어?' 라는 분위기도 있지만 '이거 아닌거 같다'는, 위험에 대한 민감함도 높아지는 것 같다. 특히 언론에서 북한의 대응에 대해 보도하는데, 이것이 '정치적 수사'라는 차원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거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건 예전과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에서 관건을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인데, 미국에서 평화적 해법을 위한 제안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제대로 관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오늘의 문제는 과거에 뿌리가 있다. 현실적 대안을 내놓는 것과 함께, 현안에 대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한 시점이다.

한완상 : 개인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건강은 심상치 않게 보인다. 남북관계에 항상 노심초사했던 사람으로서 현 상황이 안타깝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정전 60주년이다. 우리는 정전 상태를 너무 오래 끌었다. '한국 전쟁'이라는 열전의 시기 3년까지 보태면 총 63년이다. 이제는 이렇게 너무 긴 전쟁을 끝내야 할 때가 됐는데 최근에 더 악화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20년 전 이맘때, 1993년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
취임한 뒤 김영삼 대통령에게 과감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자고 건의했다. 취임사에도 이런 사항들을 강조했다. 그런데 말로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실제로 추진한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장기수로 복역했던 이인모씨 북송 문제를 거론했다. 이인모씨 북송 문제는 전 정권인 노태우 정부 때 남북 간 현안의 하나였다.

당시 남북 간 현안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북한 핵 사찰 문제, 두 번째는 팀스피릿 훈련 재개, 마지막으로 이인모씨 북송 문제였다.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음에도 이 세 가지 현안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됐다. 그 시기에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그래서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 것이고 실행에 옮기려고 한 것이다.

이 중 북한에 심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이인모 북송문제를 꺼내 든 것이다. 당시 3월 11일 오후에 이인모씨를 북한으로 보내겠다고 결단을 내렸는데 바로 다음날인 3월 12일 오전 10시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충격이었다.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순간, 북한의 NPT탈퇴가 악재로 터지면서 상황이 뒤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만 20년이 지난 오늘, 상황은 그때보다 더 악화됐다.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그나마 노력해서 이뤄놓은 성과들도 홍수에 휘말려 떠내려가는 것 같지 않은가?


김민웅 :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전쟁이라는 대재앙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돌이켜 보면, 그래도 당시 문민정부가 대북관계를 풀기 위한 의지가 강력했고, 그것에 대한 하나의 표시로써 이인모씨 송환이 결정된 것 아닌가. 아무리 북한과 관계가 좋지 않아도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그런 의지가 결국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틀까지 짜려는 쪽으로 이어진 것 아니었나?

한완상 : 문민정부 초기엔 그랬다. 하지만 문민정부의 내각이나 집권당 전체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YS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도와줬던 분들 가운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몇만 그렇게 생각했다. 북한의 NPT 탈퇴만 없었더라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남북관계를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든 확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태가 터지니까 YS 정부의 출범을 굉장히 불안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특히 '어떠한 동맹도 민족을 우선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취임사를 보고 우려했던 사람들이 '이제 북한에 대응하고 공격할 수 있는 흐름이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들이 힘을 얻어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좌절시키는 일을 줄기차게 해왔다. 평화적인 해법에 대한 역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국민들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또 어떤 면으로 보면,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의 핵 시설을 정면 폭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시기의 국민적
불안감보다는 지금이 낮은 것 같기도 하다.

김민웅 : 지금은 이중적인 구조가 있는 것 같다. 북한의 대응이 상당히 강력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과, 한국의 국제적 가치나 역량이 높아진 상태에서 전쟁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게 겹쳐 있다. 불안과 희망이 애매하게 교차되는 불확실한 상태다. 어느 쪽으로 상황이 기울지 사실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때는 김영삼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니까 그나마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국민적으로 확대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한완상 : 당시 YS 정부 내에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할 만한 구조적인 힘은 없었다. 하지만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YS의 대통령 취임사를 읽고 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클린턴 정부가 협상을 제시하기 전에 이미 김일성 주석은 남측 정부와 일괄 타결할 생각을 했다. 이렇게 보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그것이 어떤 징조로 나타났느냐 하면, NPT 탈퇴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교착관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주석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10대 강령을 4월 말에 발표하고 이어 5월 25일경 부총리급
인사로 특사교환을 제안했다. 강성산 총리가 제의했던 통지문을 보면 '남한에도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남북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 라고 되어 있었다. 여기서 "포괄적"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핵문제'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남북간
기본합의서에 비핵화 선언이 있다. 남북간 합의된 기본 합의서와 비핵화 선언을 위시한 이 문제도 남한 정부와 논의하면서, 최고위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는 통일을 전담하는 부총리급으로 특사를 교환하자고 했다. 이것은 총리 회담의 대안이었다. 1991년 총리 회담으로 남북기본합의서까지는 만들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었고, 노태우 정부 마지막에 세 가지 현안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기만 했다. 이제는 포괄적으로 하자, 최고위의 의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특사로 해서 문제 해결하자, 이렇게 북쪽도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YS의 의중을 알았지만 YS는 내 의중을 몰랐던 것 같다. 안타깝지만, YS와 그 주변 참모들은 남북관계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끌고 가자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북쪽의 제안을 잡아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추진력이 떨어졌고 취임사 정신에서 날이 갈수록 이탈하게 됐다.


김민웅 : 결국 위기 해결에는 최고 결정권자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그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었다 해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자는 것 까지는 일정한 궤도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한완상 : 김일성 주석의 돌연한 사망으로 무산되기 했지만, 1994년의 남북정상회담은 김영삼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공헌이 크다. 카터가 남북 상황을 보니 전쟁이 날 것 같이 보였던 거다. 클린턴도 북한의 핵시설이 있는 영변에 정밀 폭격 하겠다며 작심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니 카터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 때 마침 레이니가 주한 미 대사였다. 레이니, 카터 둘 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견이 같았다.

당시 레이니가 참으로 현명했다. 8군 사령관이었던 개리 럭 장군과 긴밀한 소통, 네트워크를 만들어 의견을 수렴했다. 그때 럭 장군 또한 판단을 잘 했다. 럭 장군은 만약 북한 핵시설에 정밀 폭격을 하면 평양은 전면전으로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럭 장군은 전면전이 발발하면 개전 후 며칠 사이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죽는다고 예상했다. 이건 클린턴으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군사비용은 1000억 달러, 경제 손실은 1조 달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클린턴이 이런 비싼 전쟁을 왜 정밀폭격을 하면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면서 카터가 북한 방문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클린턴도 입장을 전환했다.

94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레이니와 카터가 기본적인 추진
동력을 만들어 냈다. 사실 그때 클린턴은 아주 미온적이었다. 게다가 카터가 방북한다고 하니까 청와대에서 한국에는 오지 말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카터는 한국에 왔다. 남쪽에서는 냉대를 받다시피 하고 북으로 갔던 카터는 귀국 길에 YS에게 북한 김일성과 정상회담에 대한 합의를 보고 왔다고 전했다. 그제야 YS가 깜짝 놀라면서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정상회담이 내부의
기획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추진되어 갔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카터의 "평화적 개입"으로 정상회담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올라가고 있는 판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이 사안을 잘 정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 북한에 조문을 가냐 마냐를 두고 이른바 "조문 파동"이 터졌다. 상중에 있던 북으로서는 남쪽의 조문 파동으로 격앙해버리고,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던 것이다.

20년 전과 지금은 닮은 듯 다르다


김민웅 : 듣고 보니 참 아슬아슬한 고비들이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엎치락뒤치락 이다. 남북관계의 특징이란 것이, 잘 풀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할 수 없는 복병이 있게 마련이고, 그럼에도 또 쉽게 무너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또 하나는 내부에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겠다는 동력이 설사 약하거나 없다 하더라도, 워낙 한반도 문제라는 것이 국제적 규정력이 압도하기 때문에 제3의 평화적 개입이 가동된다면 나름대로 활로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평화에 대한 의지를 끌어내는 누군가의 역할이 계속 축적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성과와 실패가 혼재되고 있기는 하지만 20년 동안 북한과 굉장히 많은 대화와 접촉이 축적되어 오지 않았는가? 국제관계도 달라졌고.

 

▲ 대담은 한완상 전 총재 자택에서 진행됐다. 왼쪽부터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 ⓒ프레시안(최형락)


한완상 : 우선 북핵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때 미국이 염려했던 것은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하는가였다. 비핵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즉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아무리 국제사회나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가로 인정 안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비핵화를 추구해야하겠지만, 지금의 단계에서는 일단 비핵에서 비확산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또 하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적인 평화적 개입의 가능성도 달라졌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할지에 대해 우리 자신이 별로 인식하지 않았다.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어떻게 움직이느냐, NPT체제를 어떻게 지키느냐 등의 문제가 중심이었지 중국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었던 시기였다.

김민웅 : 그렇다. 게다가 중국도 남한에 대한 지렛대가 없었다.

한완상 : 당시 한중 국교가 정상화 된 지 1년밖에 안 됐었다. 서로 경제적인 의존도가 어느 정도 심화될지 예측도 못할 단계였으니까.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중국은 G2의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 여기에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미국은 2011년 말부터 소위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언급하며 대외정책의 중심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옮긴다는 정책을 세웠다. 이에 따르면-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에 따라 다르지만-민주당은 대중국 견제를 위한 포위망을 전제로 하면서도 포용과 협력의 입장도 취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만치 중국이 가진 경제적 파워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 안정을 가져오는 데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됐다. 지금은 미·중이 어떻게 공조해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관건이 된 셈이다. 공조 방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북에 대한 제재를 세게 가하는 방법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대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지난 한 달간은 중국이 미국과 제재를 하는 쪽으로 공조를 했다. 그러니까 북한이 불쾌하고 불안해했다. 북의 고강도 대응은 그 불안의 표출이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는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2006년 김정일 위원장이 후진타오의 요청대로 남방순회를 하고 상하이를 보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북한의 경제개방 계획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극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실천하는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임명한 신의주 경제개발특구의 책임자 양빈을 중국이 감옥에 넣으니까 북·중관계가 냉각되고 말았다. 당시 중국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신의주 특구에 미국 자본까지도 수용하겠다는 식이었으니 이것이 혹 동북 3성에 대한 북한의 전진기지 마련이라고 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잘 따지고 보면 이때 김정일 위원장의 신의주 특구 기획은 오히려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의 의미가 컸다는 느낌이다.

결국 북·중관계가 속으로 곪아 들어가면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이 평화회담 주체를 3자 혹은 4자로 하자는 이야기까지 거론하게 된 것이다. 주체를 3자로 하자는 얘기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은 결코 뺄 수 없으니 결국 중국을 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북한은 중국에 대해 내심 불만과 경계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5~6년 이후 현재 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는 데 이번에는 G2가 힘을 합치는 것을 보고 북한 엘리트, 특히 김정은 제1비서는 2006년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역지사지한 것 같다.

김민웅 : 20년 전과 지금의 차이가 좀 있는 것이, 예를 들자면 김영삼 정부 때는 북한에 김일성이라는 절대적인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는 힘이 존재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김일성 이후의 북한체제를 빠르게 안정시키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다. 이런 요소들이 남북관계의 안정성에 기여를 했던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점에서 정권 초기의 취약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북의 대응 능력을 시험해보려 하고 김정은 정권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는 수준으로 가는 상황이다. 한반도 정정 불안이 이렇게 쌓이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남이든 북이든 안정적으로 체제를 이끌고 가면서 평화정착의 힘을 만들어내는 일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완상 : 1993년 1차 핵위기 때 김일성이라는 중심인물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라고 하셨는데, 93년 2월 25일 김영삼 정권 취임사 보고 감동했다는 김일성 주석이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을 보고 당시 정세를 김일성보다는 군부가 장악했다고 봤다. 물론 김일성에게는 군부를 장악한 김정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미 그때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기는 했지만 체제의 안정성은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년 후인 지금의 김정은이 얼마나, 어느 정도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월 12일 핵실험, 이 두 가지가 김정은의 리더십을 공고화시키는 데에는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가 이 두 차례의 실험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강경한 발언도 나오는 듯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강경한 발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가 이다. 미국은 이번 훈련을 통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핵과 관련한 신(新)무기 3가지를 선보였다. 괌에서 발진한 B-52 폭격기는 신무기는 아니지만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도 이에 대한 북의 공포심이 대단했다고 알려져 있다. 1976년 판문점 미류나무 도끼살인 사건 당시 미군 장교의 죽음에 분노한 키신저는 핵무기를 탑재한 B-52를 휴전선 부근까지 보낸 적이 있다. 이틀 후 김일성은 미국에 대해 사과성명을 냈다.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위협적인 무기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폭격기가 날아왔고, 스텔스 폭격기인 B2가 미국 본토에서 한반도 영공에 진입했다. 또 F-22 전투기는 일본의 가데나(嘉手納) 기지에서 한반도로 출격했다.

그런데 무기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 출격지가 매우 주목된다. 미국의 최첨단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괌에서, 미국 본토에서, 그리고 일본의 미군기지에서 날아왔다. 미국은 북한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대해 '우리는 어디서든 발진할 수 있고 짧은 시간 내에 목표지점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은 글로벌 체제를 새로운 무기로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의 역량을 과시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대단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공포심 앞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과잉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닌지 싶기도 하지만 그런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현 사태의 해법을 찾는데 일차적으로 필요한 시선이다.
 

▲ 미국 B-2 스텔스폭격기 ⓒ뉴시스


김민웅 :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북한이 반발하는 맥락을 '역지사지'를 통해 판단하는 시도 자체를 '종북'이라고 낙인찍는다. 방금 말씀하신 시선의 문제는, 그로써 북의 행동 방식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동기를 보다 과학적으로 인식하자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해법도 정확히 나올 것이다. 개인적 갈등과 대립에서도 상대의 대응에 깔려 있는 심리적 동기나 상황적 요인을 객관화시켜보려는 노력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유독 남북관계만큼은 그런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면 날이 갈수록 갈등이 깊어질 것만 같다.

한완상 : 우리나라 사람이야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지 않았나. 사이버 해킹도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최근 희망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 미국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발언이다. 이들은 이번에 미국이 신무기를 공개한 것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방어적 성격인 동시에 남한의 대북 강경대응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것처럼 언론에 흘리고 있다.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남한을 보호할 테니 남쪽이 북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든가 또는 핵무기 개발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다.

김민웅 : 남쪽의 대응이 강경해지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질적으로 북의 반발을 일정하게 누그러뜨리면서도 여전히 신무기 과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와 동시에 남쪽도 관리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지배전략이 가지고 있는 특성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나

김민웅 : 그런데 이는 결국 상황의 주도권은 미국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데 그 주도권의 성격이 문제라고 여겨진다. 북한 내부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과 핵 탑재가 가능한 스텔스 폭격기로 정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북한의 반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보면, 미국은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그 주도권을 발동해야 할 텐데 아니지 않은가?

과거의 경험상 시기적으로 놓고 보면 한반도 상황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5, 6월 국지적 충돌이다. 이런 시기적 변수와 현재의 긴장 분위기가 겹쳐지면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 전쟁이라는 것은 뭔가 미리 준비해서 체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작은 우발성이 큰 전략의 틀과 맞물려 점화되면 감당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전과 다른 것이 지금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 '핫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위기 시 발동시켜야 할 핫라인 장치들이 하나하나 해체되어 왔다. 북한이 3일 개성공단 관련 조처도 여기에 포함되는 사례로 보인다. 이렇게 되다보면 결과적으로 대화의 공식, 비공식적 통로 자체가 소멸되고 말 텐데, 이것이 우발적 충돌에 평화적 해법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라지게 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완상 : 현재 상황을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민웅 : 비관적으로 보겠다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 쌓여가고 있는데 여기에 제동을 거는 힘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 관측을 할 만한 요소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여쭙는 것이다.

한완상 : 그래도 한두 가지 좋은 징표가 있다. 북한이 이전과 달리 다소 강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도발의 의지를 보인다기보다는, 최악의 상태가 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오는 겉보기의 강경대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4월 말이 지나면 사태가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군사훈련이 4월 말까지로 예정돼 있는데 너무 길다. 하지만 이 훈련이 끝날 때까지 북한은 좀 거친 반응을 계속 보일 것이다. 훈련이 끝나면 조금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본다. 물론 4월 내내 북한은 개성공단을 관리하면서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생산 원료 물자를 실은 차량도 못 들어가게 할 것이다. 언제까지 못 들어가게 할지 지켜봐야겠지만.

또 하나 면밀하게 읽어야 할 것은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하면서 경제개발과 핵무기 개발을 병진하겠다고 한 사실인데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정권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논리적이고 대담한 발언이다. 왜그러냐 하면, 김정은은 핵개발을 하면 국방비가 싸게 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즉 군비를 줄여 살림살이를 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핵개발과 경제 발전을 상호 보완적 관계로 제시한 것이다. 핵무기 개발이 북한의 경제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이야기다.

원래 북한이 핵을 이야기할 때의 논리는 '미국과 협상을 해보니 말로는 안 되더라. 핵무기를 만들어야겠다.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기가 있어야 저 사람들이 우리말을 존중해준다'는 것이었다.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유리한 방법을 개발해낸 것이 핵 개발이었다.

여기에 우리와 서방은 왜 북한 인민들을 굶겨가면서 핵개발 하느냐'라는 논리로 맞섰다. 그런데 이번 김정은의 발언은 우리의 이런 논리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북한 인민들을 잘 먹여 살리기 위해라도 국방비 아끼려고 핵개발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재래식 무기 개발로 드는 비용을 줄여 이걸로 북한은 안전보장도 하고 경제문제도 동시에 푸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4월 이후 남북관계가 나아질 것을 예고해주는 또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김민웅 : 그 메시지를 좀 더 깊게 해독해보자면, 그래서 '현재 김정은 체제는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체제는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국제정세의 불안요인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 프로세스를 가동을 하고는 있지만 가동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라고 말해도 되나? 결국 그러면 안전보장의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는 지점에서 동북아시아의 경제권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내다본다면 그것이 고리가 돼서 국제관계에서 여러 가지 평화적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될 수 있을 것 같다.

한완상 : 우리 사회에서는 잘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김정은은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통합력을 보여주는 "지혜"가 있다. 우선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계승해서 인민들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게 하는 소망을 자기가 이룩하겠다는 경제 분야의 목표가 있다.

다음으로 자기 아버지인 김정일의 이미지 계승이다. 김정일은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했다. 이렇게 군을 장악하는 능력을 김정일에게 이어받고 싶은 것이다. 김정은은 이 위기를 통해 그 두 가지, 경제와 정세안정을 얻으려고 한다.
 

▲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게 결국 북한이 계속 지향해 왔던 것인데, 남한이나 미국과 협상할 때의 궁극적 목적은 항상 평화체제수립이었다. 이게 핵심이다. 평화체제 만들면 안전보장이 따라오지 않나. 그리고 경제발전의 토대로 만들고 말이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고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까지 가려는 것이다. 이걸 잘 파악해야 대북관계의 기준과 지침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해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핵 원료를 만드는 것은 힘으로 옥죄는 것이 가능하지만, 비확산의 문제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관리범위가 확장되고 통제불가능의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이것을 가장 우려한다. 김정은은 5월이 되면 미국의 우려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입지를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상황을 협상 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다.

김민웅 : 그렇게 되면 좋은데 염려가 되는 사항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협상이 불가피하다면 그 전에 상대방의 협상력을 최대한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들의 군사적 위협의 능력수준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협상 전에 이 수위를 서로 어떻게 조절하면서 풀어나갈 것인지가 주목되는 고강도의 '긴장된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 한국전쟁은 통상 3년이라고 했지만 전체 기간은 37개월, 휴전 협상만 25개월을 했다. 휴전협정 기간에 전투를 일단 멈춘 것이 아니라, 전투는 더욱 치열했다. 협상 이전에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걸 보면 결국 각자가 협상력을 최고로 높이기 위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유형이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상대의 협상력을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분쟁이나 희생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그 다음단계인 협상으로 아예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평화적 개입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주도권을 쥐고 평화적 개입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한완상 : 협상 원칙과 신뢰문제라고 생각한다. 클린턴부터 오바마까지 20년 동안 민주당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 내 정치 환경에 있다. 미국 내 공화당이 이제는 굉장히 원시화가 됐다. 미국 정치가 후퇴해서 근본주의, 원리주의적인 대결이 돼버렸다.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위기에 처해 있는 국면에서 거의 옛날 한국 정치문화 수준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 현 정부가 공화당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오바마 1기 때는 하나도 진전 못하고 한반도 정책은 MB한테 다 맡겨버리지 않았나. 이른바 '전략적 인내' 5년에 북한은 로켓 쏘고 핵실험 성공했다. 이제는 햇볕정책이 핵무장을 강화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퍼줘서 핵무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결주의만 강화한 결과다.

그런데 오바마가 이제 2기에 들어왔다. 자신의 역사적 유산을 생각해야 할 단계다. 오바마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수준까지는 못 가더라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의 강경책을 강자의 입장에서 포용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쥔 주먹을 펴게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악수를 하지 않고 대결적 관점에서 상호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텔스기는 북한에 대한 공격신호가 아니라 북의 도발에 대한 방어라고 하면서 평화적 접근의 제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신념을 갖고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과 협상이 확 트일 것이다.

북한의 벼랑 끝 강경책의 핵심은 대화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베트남과 중국처럼 대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도 중국과 베트남처럼 개발해보자' 이런 말이다. 지난 3차 핵실험 이후 카펜터라는 사람이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썼는데 '핵 갖고 있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는 주제였다. 그는 '북한의 핵이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비확산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해법을 선택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식은 과거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 1971년 닉슨이 마오쩌둥을 만나 핑퐁외교를 했다. 당시 반공주의자인 닉슨이 중국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미ㆍ중관계를 정상화시켰고, 이 미ㆍ중관계 정상화가 소련과 대결에서 대단히 큰 전략적 자산이 됐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1996년 클린턴이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을 우방으로 만들면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미·중간 영향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던 것을 언급했다. 이처럼 오바마는 닉슨과 클린턴의 결단과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을 미국의 우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인규 : 일전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그런 지적을 했었다. 미·중간 균형에서 북한을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면 미국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즉 미ㆍ북간 관계정상화가 미국에도 대단히 유리한 전략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웅 : 맞다. 사실 북한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이득을 주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온 것이 아니었나. 어찌 보면 이전의 북한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친미적 국가로서의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친미란 종속적 친미와는 다른, 미국과 상당히 친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대중관계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한반도의 두 세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걸로 대중국 관계에서 지렛대의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한완상 : 오래 전부터 나도 그랬고 카펜터도 최근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좋게 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정권 초기부터 기틀을 확고히 잡고 신념을 가지고 하지는 못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금융위기를 해결해야 했고,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부시의 강경한 군사적 대외정책이라는 여러 상황적 요인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당장 시급하게 발등에 불이 떨어질 판인 국내적 위기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정부가 고강도의 압박정책으로 한반도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60년 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역사적인 업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자극을 주기에 가장 좋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국내 보수 세력도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김민웅 :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제안에 관해서는 잠시 뒤 조금 더 정리해보도록 하자. 아까 말씀하신 대로 북한이 미·중, 미ㆍ베트남 같은 형태로 자신들과 미국의 미래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신의주에도 금융 특구를 만들어 미국의 금융자본을 들여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지 않았나. 원산의 미군기지조차 가능성까지 흘렸던 상황도 있었다. 북한의 특구에 미 금융자본이 들어오면 미국에 있어 북한은 공격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한반도 냉전체제를 근본적으로 깨는 엄청난 변화다. 그런데 북이 이런 전략을 구사했지만 미국이 이걸 잡아서 활용하지 않았고, 결국 평화체제로 전환되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는 보통 이 상황을 '핵문제'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평화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다. 중요한 말씀이다. 사실 핵무기를 만들었던 세계 여러 나라들과 달리 북한 핵무기 관련 정책은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핵보유 국가 모두가 다 핵 보유의 영구성을 주장했는데 북한은 미국과의 안전보장만 이루어지면 핵 포기할 수 있다는 조건부 핵무기였다. 이것은 핵무기 역사상 이례적인 선언이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미 핵보유국가가 된 상태에서 이것이 단지 협상력으로 존재하고 폐기될지, 아니면 그대로 갈지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협상은 늘 그래왔었다. 지난 시기에 미국은 이 과정의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한완상 : 2007년 2.13합의, 10.4합의가 됐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바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잘만 하면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 라는 기대 말이다. 그 때 까지만 하더라도 평화 체제를 먼 미래의 일로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 보장만 된다면 핵을 내려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 ⓒ프레시안(최형락)

91년인가 남북기독자협의회 때, 남북이 유엔 동시가입하던 그 기간에 북한 유엔 대표부 대사를 지냈던 한시해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북한하고 미국하고 관계가 좋아지는 쪽으로 미국 친구들에게 설득 좀 해달라." 그 때가 91년 5월로 기억하는데 그런 마인드를 북한의 지도자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 최강국과 친해지는 것은 당연히 여러모로 북에게 이롭지 않겠는가.

지금 북한은 '우리 이미 핵 가졌으니까 비핵 이슈 날아갔다. 비핵화 논의는 지금 적절치 않다. 단지 비확산에 대해서 협의를 할 수 있다. 이 협의의 기준은 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협상을 핵보유국의 위치에서 하겠다는 의미다. 북으로서 가장 절박한 현실 문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평화회담인데 그것을 위해 핵개발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설득해야

김민웅 : 핵무기가 협상용의 의미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핵무기 폐기와 비핵화가 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큰 그림이 안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본다. 60년 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그림이 있다면 모든 것은 거기에 수렴되는 과정으로 들어갈 텐데.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이라고 하는 이 과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최대의 과제로 보인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박근혜정부는 그 국내외적인 위치상 잘만 하면 평화체제로 넘어갈 수 있는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제안의 차원에서, 어떤 로드맵을 설정해야 할까?

한완상 : 국제정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정책에 한국과 일본만 들어가 있다. 여기에 중국이 들어가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5월에 방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를 만나면 우선 '아시아로의 귀환'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중심은 한국, 중국, 일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여기에서 중국을 뺐다는 것은 미국의 대외 정책 큰 그림에 있어서 결격 이유가 된다고 알려줘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체제로 가는 데 중국과 미국이 갈등을 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당연히 오기 힘들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이 서로 땅을 갈라 먹으려고 싸울 때 우리는 항상 갈라지고 불안했다. 강대국의 대리전쟁을 하다가 지금 한반도가 이렇게 됐는데 이걸 회복하기 위해 평화체제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을 아시아 정책에서 중심으로 삼아 협력체제를 만들라고 미국한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과 베이징의 사이가 좋아야 남북간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에게 동아시아의 평화 주도권을 강화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북한도 생각할 바가 있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에 대한 수정이다. 이 정책은 사실 2007년 10.4 선언으로 끝난 것이다. 북한은 미국, 중국과 좋아지려면 남측과도 좋아져야 한다. 일본과 관계 정상화도 필요하고. 변화된 국제정세 위에서 사고해야 한다.

김민웅 : 여기서 하나 짚어볼 것은 교차관계 불균형의 문제다. 냉전 종식 이후 우리는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했는데 북한은 미국, 일본과 여전히 국교가 공식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교차 승인의 구조가 불균형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결국 북의 고립을 강제화하는 것이자 한반도 불안정 요인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 문제와 평화협정체제가 함께 풀려나가야 동아시아 평화의 기본구조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한완상 : 그렇지 않아도 바로 그 교차승인의 국제관계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얼마 전 방한했던 도널드 그렉과 나누었다. 그가 주한 미 대사했을 때가 노태우 정권 때다. 노태우 정부에서 가장 칭찬받을 만한 일이 북방정책인데, 이 정책이 사실 아버지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탈냉전을 하면서 그 여파로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그렉이 다리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 교차승인의 출발점이 사실 여기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지난 3월초 그렉이 서울에 왔을 때 내가 물었다. 서울과 베이징, 서울과 모스크바는 관계 정상화되고 잘 되는데 평양과 워싱턴, 평양과 도쿄는 왜 안 된 거냐고. 그랬더니 그렉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더라.

묻는 김에 하나 더 물었다. 왜 1992년 가을에 팀스피릿 훈련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냐고(당시 남북대회 진전을 위해 중단하기로 약속했던 팀스피릿 훈련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개됨으로써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이듬해 북한이 NPT를 탈퇴하는 주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당시 청와대 안보수석을 했던 분한테 물었더니 남북 협상 시 팀스피릿 훈련은 향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옵션 중에 하나였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건 남북 협상의 원리상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렉은 당시 국방장관인 딕 체니였고 그가 팀 스피릿 재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네오콘을 비롯한 미 공화당의 매파들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세력, 즉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야만 이득을 보는 세력들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런 힘들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노력해야 하고 우리도 그걸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 일본과 관계 정상화하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 핵문제는 그냥 계속 너 먼저 핵 포기해라 하는 식이 아니라, 이런 구조와 맥락 속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답일 것이다.

김민웅 : 말씀을 들으면서 정리해보자면 두 가지로 압축이 될 것 같다. 하나는 평화협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초석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이렇게 동북아시아의 교차승인관계가 불균형하게 되어 있는 것 자체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따라서 이 부분을 풀면 자동적으로 교차관계의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국제관계망이 생겨난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평화협정과 교차승인의 균형을 토대로 하는 아시아로의 귀환"이라는 것을 중심에 세우면 동아시아의 정세는 일변할 것이다. 그러니 이 두 가지를 하나의 궤도 위에 올려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한완상 :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설득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다. 한중 관계 20년 동안 양국의 경제관계가 강화됐다, 우리에게 미ㆍ일 시장을 합친 것보다 중국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 결국 중국과 우리의 총체적 관계가 돈독하게 되어야 남한의 경제적 안정과 평화,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과 평화가 올 수 있다, 그러니 이 점을 고려해 달라. 이렇게 박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설득해야 한다. 북한과의 적대적 긴장은 이를 해친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방인 한국의 안정에도 긴요하고 그 안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에 필요한 동아시아의 안정적 기반의 강화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간 고리로 북한을 평화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이 우리에게 MD 시스템에 들어오라고 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거기 들어가는 순간부터 중국과 군사적 대치관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 경제인들부터 중국시장을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은 한국을 MD 체제로 편입시키려고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MD 시스템은 중국 봉쇄, 압박 전략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를 도와서 한반도의 평화가 이루어지면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싸울 이유도 없고 러시아 견제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해서 남은 힘을 중동 문제 푸는 데 집중할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제일 골치 아픈 게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이 어떻게 연계되고 상호 강화될 것인지의 가능성 문제다. 북한과의 관계가 해결되면 이 문제는 자동적으로 풀려나간다.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때. '박근혜 독트린'을 만들자

김민웅 : 위기의 성격을 이야기했고 이것이 위험강도가 높은 것 같지만 잘하면 길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과 전망도 세워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그려야 할 그림이 확실해지면 그 그림으로 이 모든 위기상황의 해법을 수렴해보자 라는 이야기로 정리됐다. 그럼 이것을 하기 위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 보면 박근혜정부 내에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국내정치 지형의 문제다. 한반도 평화는 민족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문제만큼은 박 대통령이 진보 보수를 아울러서 지혜를 구하고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동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그렇다면 진보 진영도 박근혜정부에 대한 평가나 자세와는 별도로,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풀어야 할 의지를 가져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남북관계를 위해 애써왔던 모든 힘들이 모아져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적극 협력하고 그림을 구체화시키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한반도 평화 정책과 관련해서 박근혜정부를 정말 도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 동력은 민주 진보진영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이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통령 본인이 인식의 지평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한완상 :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내정치를 할 때 쓰는 방식을 쓰면 어렵다고 본다. 대외정책, 한반도 정책, 대중, 대일, 대미정책 등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 수첩만 바라보면 곤란하다. 통합적으로 인재를 모아야 한다는 김 박사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진보진영에서도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평화협정체제를 만들기 위한 우리 사회 내부의 세력화가 생겨야 한다.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여론이 정부를 비판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 흐름을 받아들여서 정책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청와대나 내각에서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 자신도 남북관계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하겠다는 건데 정작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없는 것 같다. TF를 청와대나 통일부에 세워야 한다. 신뢰 프로세스의 시작은 정상끼리 합의한 것부터 시작해서 남북간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하기 위한 실용적 대화 구축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북한은 할아버지-아버지로 이어져 온 세습 정권이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이 선언한 것은 최고의 수준에서 신성하게 보는 측면도 있다. 즉, 그쪽에서는 선대가 만들어 놓은 합의에 대한 이행을 더 강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6.15 선언과 10.4 선언, 우선 이 두 가지라도 실천하는 각론적 실무회담 추진반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게 곧 신뢰프로세스의 실제적 가동이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해야 할 실무적인 조치는 5.24조치 해소,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될 것이다. 이러면서 동시에 정상회담을 실천하는 실무 대화 추진반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적 지혜를 모아서 박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정전협정 종식시키고 평화협정 체제를 만들어서 글로벌 탈냉전을 이뤄야 한다. 한반도의 대결상태가 종식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냉전 종식의 마침표가 될 것이니까.

1989년 부시 아버지와 고르바초프가 몰타에서 탈냉전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아직 미완이었다. 글로벌 탈냉전의 마지막 도장을 찍는 세계사적 일을 박 대통령이 중심이 돼서, 오바마 대통령을 끌어들여서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은 전 세계에 냉전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도장이다. '박근혜 오바마 선언' 혹은 시진핑까지 함께, 즉 남북한과 미ㆍ중까지 함께 평화체제 선언을 하는 거다.

김민웅 : '박근혜의 평화체제 독트린'이라는 형태로?

한완상 : 바로 그거다. 1993년 통일원 장관 취임 후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한반도 탈냉전 선언이었다. 이른바 '김영삼 독트린'이다. 이걸 하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접게 됐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햇볕정책으로 이어지더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한 거 보면서 "그때 잘했으면 YS가 받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93년 5월 부총리 특사 제의에 포괄적으로 문제를 해결, 비핵화 선언 남북 합의서, 최고위급 실무자 대화 등등을 거치면서 내가 당사자로 지목됐다. 그래서 함부로 나서질 못한 측면도 있었다. 내가 나섰다면 사실 보수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진보진영 인사는 그런 점에서 국내 정치와 이념의 지형상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김민웅 :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굉장히 유리한 것 아닌가?

한완상 : 그렇다.

김민웅 :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 박 대통령이 신경 써야 할 것들은 뭐가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보수세력의 공격을 신경 써야 했었는데, 박근혜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한완상 : 지금은 바른말 해줄 수 있는 사람,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김민웅 : 적어도 그걸 위해 남북간의 교착과 위기 상태를 해결하는 문을 따는 조치 정도, 일을 좀 풀 수 있는 사람은 없나?

한완상 : 안타깝지만 주변에 별로 그런 사람 없는 거 같더라. 청와대에서 원로 모임 보니까 뉴라이트 쪽 사람들만 불러서 듣더라.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것 같다. 근데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행동방식을 보면, 위기에 빠진다는 위험을 느낄 때 그 반대로 확 돌아서는 순발력은 대단한 것 같다. 지난 선거 때도 경제민주화 같은 야권의 성과물을 자신의 자산으로 그대로 가져가지 않았나.

박인규 : 본디 위기란 위험과 기회가 함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최근 수개월 동안은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위험 상황이지만 우리가 잘 대처하기만 한다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수십 년 묵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누가 현 상황을 깨는 주도자가 될 것이냐는 것이다. 1994년에는 카터가 그 역할을 했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는 오바마인가, 아니면 한국의 박근혜인가. 두 분의 말씀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북·중이 앞에 말한 큰 그림을 보고 대담한 발상을 추진할 수 있는지 우려스럽다. 오히려 한 전 총재가 걱정한 것처럼, 북한의 핵 위협을 막아달라며 미사일 방어망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면서 남북관계 악화는 물론이고 미ㆍ중간 대결의 인질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김민웅 : 보수세력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일동 웃음)

한완상 : 내가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우리가 제안한 것을 소화할 만한 확고한 자신의 가치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위기에 몰렸을 때 순발력 있게 유턴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이건 내 가치관이다, 신념이다' 라고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좀 염려스럽다.

두 번째로는 오바마가 염려스럽다. 1기 때는 재선 때문에 못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MB가 한 이야기를 어떻게 저렇게까지 받아들일까 싶었는데 이게 계산된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MB의 말을 들어주며 FTA를 통해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얻어내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역사적인 유산을 걱정해야 할 집권 2기가 도래한 상황에서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은 시퀘스터(자동예산삭감) 때문에 국방비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군사비용을 해당국에 넘기려고 할 것이다. 또 어떻게 하든지 중국이나 한국에 무기를 팔려고 할 것이다.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장사니까. 그래서 긴장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무기 사달라고 부탁할 가능성도 높다. 일본과 한국의 국방예산을 많이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박 대통령을 설득하고 박 대통령도 거기에 동조하면 우리가 계속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김민웅 : 사실 최근의 상황도, 미국의 군수산업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군사적 긴장의 지속적 창출전략과 맞물려 있지 않은가? 무기 체제의 증강이라는 방식으로 전쟁체제가 더 강화되는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설득의 논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완상 : 기본적으로 오바마의 역사적 유산은 평화라고 박 대통령이 크게 평가해줘야 한다. 또 그런 점에서도, 박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일본과 우리와 관계가 독도와 위안부, 역사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미국의 대외정책인 아시아로의 귀환에도 결함이 생긴다고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극우세력이 북한을 미워한다고 해서 일본 극우세력을 좋아하는 거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ㆍ일간 역사적 문제는 심각한 문제고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의 한ㆍ미ㆍ일 구축은 더욱 안 된다. 이걸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구성원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평화정책의 수립이 오바마 정부의 세계사적 기여라는 점을 적극 설파해야 한다.

케네디 딸을 주일 대사로 보낼 것 같다는 외신 보도를 봤는데, 케네디 딸 정도면 미국에서는 상징적인 거물이다. 영국이나 중국쯤에 보내야 할 인물인데. 이 인물을 일본에 보내는 미국의 결정을 보며 우리는 대체 뭔가 싶다. 이런 걸 보면 미국정부가 우리를 너무 홀대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미국에 불만도 표현해야 한다.

이번에 박 대통령이 방미할 때 좋은 참모를 데려가서 오바마와 이야기할 때 이런 이야기들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김민웅 : 대통령 본인에게 큰 그림이 있고 그림에 맞는 사람을 앉혀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박인규 대표가 압축했듯이 한반도 상황이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잘 돌파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완상 :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을 빼고 모든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역사에 남는 일을 하고 싶어서 대체로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도 7.4 공동선언 만들지 않았나. 어디까지가 정말 진심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치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안됐지. 진보적인 두 대통령도 사실 수구세력의 반대로 크게 평화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나마 정상회담을 하기는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적 행운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찾아온 것 같다. 본인이 잘 생각하기에 따라서 평화 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의 성취 기회가 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에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냉전 수구세력들의 이야기를 참고는 하시되 귀를 기울이지는 마시고, 전 세계적인 평화체제, 탈냉전을 통한 전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이루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오늘날 세계의 중심이 동북아시아로 모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힘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고 일본과 러시아도 가세해 있다. 이 한복판에 우리가 있다.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이룩해서 서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국가연합단계까지 진입해서 통일의 효과가 나오면 우리는 세계의 G4가 될 수 있다는 벅찬 상상이 되지 않는가? 8천만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넘는 나라가 미국, 일본, 독일밖에 없지 않나. 이런 절묘한 역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박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신념과 자신을 가지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조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지역의 평화를 최우선의 가치와 목표로 놓고 우리의 경제적, 군사적 안정을 위해 보다 단호한 태도로 의사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김민웅 :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 시기에 어떻게 보면 우리 나름만의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비관해도 미래에 대한 의지를 낙관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한계를 밀고 나가는 태도가 아닌가 한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진보진영이 오늘의 현실에서 박근혜정부의 평화정책에 힘을 보태겠다면,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한반도의 평화는 진보 보수를 떠나 모두의 생존과 미래가 걸려 있다. 전쟁의 먹구름을 뚫고 평화의 햇살이 환히 비치기를 우리 모두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은가. 오늘 긴 시간 동안 감사하다.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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