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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28일 별세

이제 생존자는 23명 뿐..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시민장’으로 치뤄져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1-29 00:09:10
수정 2019-01-29 00: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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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 할머니가 3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b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 할머니가 3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밤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정의기억연대는 28일 오후 10시 41분 경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최근 암투병을 해오신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진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뤄지며, 발인은 2월 1일 이다.

추석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303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김복동 할머니가 집회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추석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303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김복동 할머니가 집회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김 할머니는 1926년생으로 경남 양산 출신이다. 1940년 만 14세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고초를 겪었다. 1947년 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전세계를 돌며 활발히 국제 활동을 펼쳤다. 매주 '수요시위'에 나가 시민들을 만나고 연대활동을 펼치며, 전쟁없는 나라, 전쟁 성폭력 피해자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했다. 줄곧 일본 정부를 향해 진정한 사죄, 제대로 된 배상을 촉구해왔다. 2012년엔 전시성폭력피해자 지원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2015년엔 국경없는기자회와 AFP가 선정하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으며,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도 받으셨다. 2017년엔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7년 김 할머니는 사후에 모든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최근 '바른의인상' 등 수상을 통해 받은 상금 역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모두 기부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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