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순 소박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아미시들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진행한 거투르드 앤더스 헌팅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20세 중반까지도 그들의 문화가 인류역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 커녕 매 20년마다 두 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뜻 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선교부 김복기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살아온 오랜 방식’ <공동체를 말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최근 국내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급중하면서 마을공동체운동의 원조격인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가 열리자 150여명의 청중들이 참가해 5명의 목사와 교수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띤 질의응답을 펼쳤다.
산상수훈 부르심에 응답한 삶 선택
» 김복기 목사아나뱁티스트는 ‘재세례파’는 뜻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 의지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500년 전 루터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이 관주도개혁에 머무르자 초기교회의 공동체적 모습 그대로 따르려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이에 대해 발표자인 김난예(침례신학대)교수는 “산상수훈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로 정의했다.
아타뱁티스트들은 전쟁과 폭력을 철저히 반대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살상과 총기와 유아세례를 거부해 군부와 가톨릭, 주류 기독교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고 쫓겨다니면서도 예수의 본질적인 사랑과 비폭력의 삶을 이어오며 인류사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1735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던중 배가 뒤집어질질뻔한 풍랑을 만나 자신을 비롯한 승객들이 두려움에 떨고있을 때 모라비언들만이 태연하게 찬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그 모라비안들이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선조들이다. 2006년엔 미국 필리델피아 아미시의 한 학교에 침입한 범인이 10명에게 총기를 난사에 5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아나뱁티스트의 일종인 아미쉬인들이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범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아내와 세자녀에게 먼저 할애해줄 것을 요청하고, 범인의 가족들을 식사에 초대해 위로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혼삶 시대에도 왜 공동체로 사는 사람이 늘까
» 김난예교수 아나뱁티스트로는 국내엔 부르더호프공동체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더 많은 아나뱁스트들 그룹인 후터라이트와 아미시,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모라비안의 후예로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해 14가정씩 개인소유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후터라이트인구는 1980년 2만4천여명이었으나 현재 4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아미시는 농촌지역에만 거주하며 자동차 등을 거부한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시는 1900년엔 6천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3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메노나이트는 교회 그룹으로 확산돼 현재 9624개 교회에 146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설은주 목사
산업화, 도시화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면서 핵가족화와 혼삶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공동체적 삶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설은주 ‘하늘숲-좋은나무공동체’ 목사는 “관계가 깨져가고 있는데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의 분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난예 교수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며 생긴 불평등으로 인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공동체에 있고,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등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않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동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복기 목사는 “통상적인 조직들은 실패하면 서로 욕하고 흩어지기 마련인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공과 실패까지 공유해왔다”고 지속성의 비결을 설명했다.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어떻게 함께살까
» 최철호 목사 컨퍼런스에선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등에서 300여명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 목사도 발표했다. 최 목사는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라며 “일상에서 늘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해 생명을 고갈시키는 시대 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과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 삶에서 하나님 나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개인이나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망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스 .
크리스 라이스 메노나이트 동북아책임자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는 미국 미시시피주 수도 잭슨에서 백인과 흑인들이 섞여살던 ‘갈보리의 소리’라는 공동체에서 겪은 갈등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잘 통합된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흑인들이 ‘화해모임’을 조직해 ‘인종차별은 사회에 있기에 앞서 우리 공동체 안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며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백인으로써 인종문제를 다루는 것은 선택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즉 언제든 부유한 백인은 다른 부유한 백인 교회로 옮겨갈 수 있었으나 흑인 형제 자매들은 그런 선택이 없었으며, 백인들이 그런 특권을 이용한 해결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얕은 해결책에 머물지않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3단계 과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긴장과 트라우마의 진실,억압, 특권을 극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번째 진실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를 갈라놓고 망가지게 하는 것을 대면하지않는 화해가 있을 수 없으므로 괴로움과 분노의 과정까지 거치면서 진실과 사랑을 함께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공동체 화해의 핵심에는 자기부인이 있어야 한다.”
고독의 시대, 공동체는 어떻게 세상을 돕는가
이날 컨퍼런스에선 아나뱁티스트들이 공동체적 삶의 전통과 지혜를 살려 현대사회인들을 구제하는 사역들이 소개됐다. 6곳에서 운영되는 ‘그린크로프트’라는 ‘돌봄의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이 공동체 중 한곳은 1922년 인대애나주 뉴 칼리슬의 30만평 숲에 만들어져 150명의 메노나이트 도우미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함께 총 270명이 살아간다. 또 고센 공동체엔 550명의 전문의료인 및 간호인을 포함해 노인등 1200명이 살아간다. 공동체 내엔 예배당과 소규모 예배실, 상담실, 도서관, 컨퓨터실, 영화관람실, 오락실, 각종 모임방 등이 있고, 건강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에 나선다. 김복기 목사는 “돌봄의 공동체는 양노원이 아니라 메노나이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청지기의 삶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이 공동체들은 외진 곳에 있지않고 도시 끝자라에 위치해 도시 내 자녀들 및 친척들과 공동체성을 잃지안하고 연결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노령화와 혼삶으로 소외와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한국사회에도 필요한 돌봄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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