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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194호 사설]
가짜뉴스의 역사는 길다. 유언비어에 시달려온 로마 황제들은 유언비어 감시자를 임명해 매일 시중의 소문을 듣고 궁정에 보고토록 했다. 64년 폭군 네로가 미쳐서 로마를 불태웠다는 뉴스도 반대파들이 조작한 가짜뉴스였다. 가짜뉴스는 소크라테스까지 죽였다. 그는 그리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반역을 선동했다는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됐다.
징기스칸은 항상 공격에 앞서 첩자들을 적지에 먼저 보내 몽골 병력 수와 그들의 잔혹·무모함을 과장해서 퍼뜨렸다. 실제 징기스칸 부대는 기동력 있는 소규모 기마대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는 1964년 3월14일자 1면에 새벽에 귀가하던 28살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살해되는 걸 목격한 이웃 주민 38명 누구도 신고도, 돕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전날 새벽 3시30분께 약 30여분 동안 뉴욕 퀸스의 한 아파트 앞에서 제노비스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다. 뉴욕타임스는 첫 공격 뒤 누군가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범인이 잠시 도망갔다가 아무도 키티를 도우러 나오지 않자 다시 나타나 키티를 흉기로 난자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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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3월14일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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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뉴욕타임스 도시판 편집자 로젠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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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목격자가 너무 많으면 ‘나 아니라도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방관자가 되고 만다는 심리학 용어 ‘방관자 효과’의 대표 사례로 50년 넘게 인용돼왔다. 이 사건은 미국 100여개 심리사회학 교과서에 사례로 실렸고, 이 사건으로 911 신고전화가 가동됐다. 그러나 동생 빌 제노비스가 십수년을 추적한 결과 뉴욕타임스 보도는 가짜뉴스였다.
피해자의 남동생 빌 제노비스는 2004년부터 누나 죽음의 진실을 추적했다. 12년 조사 끝에 남동생은 2016년 뉴욕타임스 보도가 가짜였다며 다큐멘터리 영화 ‘목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공개했다.
애초 38명이나 되는 목격자는 없었다. 범인이 제노비스를 흉기로 공격하는 걸 본 주민은 6명에 불과했다. 피해자 비명에 4명은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했고, 2명은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다. 특히 소피아 파라르라는 여성은 키티를 도우러 뛰어 내려왔고, 키티가 숨질 때 그녀를 안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처음엔 이 사건을 단신처리했다가 주민들이 방관했다는 얘기를 들은 데스크 손에 커졌다. ‘도시의 방관자’라는 프레임을 고집했던 데스크 로젠탈은 자기가 듣고 싶은 팩트만 끌어 모으다가 대형 사고를 쳤다.
수천년 계속된 가짜뉴스에 대응법은 두 가지다. 더 큰 가짜뉴스를 만들어 기존의 가짜뉴스를 덮거나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거다. 전자는 대부분 권력자들이 애용했다.
궁지에 몰린 네로는 자기보다 더 큰 증오의 대상이었던 기독교인이 불을 냈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려 위기를 모면했다. 늘 여성과 이주민 같은 소수자가 더 큰 가짜뉴스의 희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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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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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후자를 택했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52년만에 제노비스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아직도 뉴욕타임스가 해야 할 사과기사는 많이 남아 있다. 불황에 일자리 잃은 노동자들의 생존시위에 붉은 칠을 하고 모두가 이탈리아 놈들이라며 총알 밥을 먹여야 한다고 퍼부었던 섬뜩한 사설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 만큼 뉴욕타임스의 사과는 그냥 나오지 않았다. 제노비스 동생과 1인 미디어의 집념과 함께 미국민들의 높아진 인식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제 아무리 팩트체크 매체가 늘어도 이를 비웃듯 늘어나는 가짜뉴스 홍수를 막으려면 국민들 인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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