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청줄청소놀래기 확인…연어·잉어도 ‘죽을 뻔한’ 장기 기억 간직
» 포식자인 곰치의 입에 들어가 기생충과 죽은 피부 등을 떼어먹는 청줄청소놀래기. 거울 테스트 통과에 이어 장기 기억력이 있음이 확인됐다. 실크 배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붕어의 기억력은 3초’라는 속설이 있다. 미끼를 물었다 낚싯바늘에 혼이 난 붕어가 금세 또 미끼를 문다는 얘기다.
이런 속설이 근거 없다는 연구는 적지 않다. 최근 야생에서 청소놀래기가 11개월 전 일을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제그니 트리키 스위스 뇌샤텔대 생태학자 등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보초에서 다른 연구 목적으로 외딴 산호초의 청줄청소놀래기를 채집했다. 다이버 한 명은 그물을 잡고 다른 한 명이 놀래기를 몰아 그물에 걸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청소놀래기는 포식자 물고기의 입이나 아가미 속을 자유자재로 들어가 기생충을 잡아먹는다. 다이버의 입에 들어오기도 할 만큼 다이버를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듬해 연구자들이 다시 놀래기를 그물로 잡으려 하자 절반이 산호 틈에 숨어 나오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물을 치웠더니 다시 나타났다. 산호초의 다른 지점 4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포획을 시도했을 때 이런 도피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 청소놀래기는 청소 터를 찾는 포식자를 일일이 기억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영역을 중시하는 청소놀래기의 습성에 비춰 이들이 11달 전 그물에 걸렸던 나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과학저널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장기 기억은 동물의 생존에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환경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저장했다 꺼내는 일은 생존과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인간 동물 가운데 이런 장기 기억 능력이 확인된 동물이 적지 않다. 그 기간이 작은 새인 명금류는 8달∼3년, 하이에나 1년, 원숭이 3년, 코끼리와 돌고래는 수십 년에 이른다.
물고기 가운데서도 학습과 기억 능력이 잇따라 확인된다. 무지개송어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먹이를 얻으려면 단추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3달 뒤에도 기억했다. 이웃 웅덩이로 옮겨진 망둥이는 자기가 살던 웅덩이를 기억해 40일 뒤에 돌아갔다.
이번 청소놀래기처럼 죽을 뻔 한 나쁜 기억은 단 한 번이라도 오래 간다. 낚시에 걸린 연어와 잉어가 1년 뒤에도 바늘을 꺼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청소 서비스를 받는 물고기와 일종의 ‘사회 계약’을 맺는 청소놀래기는 자기 인식 테스트로 통과했다. 닉 홉굿,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청소놀래기는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정한 장소에서 하루 수십 마리의 ‘고객’ 물고기를 상대로 기생충을 잡아먹거나 죽은 피부를 청소한다. 놀래기는 대형 물고기와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상정보를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Zegni Triki, Redouan Bshary, Long‐term memory retention in a wild fish species Labroides dimidiatus eleven months after an aversive event, Ethology, DOI: 10.1111/eth.129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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