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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격추로 분노한 시민들...알자리라, "이란 정권, 정당성 위기"
이란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암살 혐의로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3일(현지시간) 이란 사법부 수장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 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한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을 국제재판소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라이시는 "우리는 미국 대통령이 주요 용의자로서 벌인 행위를 해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트럼프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국제재판소에 서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이시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국제기구에 트럼프 대통령을 제소할 계획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박한 위협' 때문에 솔레이마니를 제거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 작전을 '조건부'로 무려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 허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NBC 방송은 5명의 전현직 관료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인을 살해한다는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라는 조건을 붙여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난처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트위터를 통해 "솔레이마니의 끔찍한 과거로 볼 때 '임박한 위협'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강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할 근거를 찾기 어려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조차 '임박한 위협'에 대한 첩보를 본 적이 없다고 시인했다.
이 와중에 '초당적 조언자'로 알려진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적극 옹호하면서 '정치군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CNN방송은 솔레이마니 작전의 근거로 제시된 첩보와 관련해 정보 당국의 보고를 받던 하원의원들은 밀리 합참의장의 완고한 태도에 발끈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밀리 합참의장이 첩보가 정확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 측을 대변하는 수준이 도를 넘어섰다"고 질타했다. CNN은 "밀리 합참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옹호하면서 위험할 만큼 정치 영역에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여객기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AFP=연합
테헤란기자협회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은 국제법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자국의 군사영웅 솔레이마니가 미국에 의해 암살당한 비극을 반미대열에 국가적 역량을 집결시킬 호재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했다.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미군기지들에 미사일 공격을 하다가 자국민이 대거 탑승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시킨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려다가 체제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집회 차단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이란의 젊은이들 수천명이 정부가 '미사일 격추'를 공개시인한 지난 11일부터 사흘째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중동의 <알자지라> 통신은 13일 "이란의 여객기 격추에 대한 항의시위: 정권의 정당성 위기'라는 분석 기사를 통해 "솔레이마니 암살로 조성된 연대감이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분노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과 중부 주요도시 이스파한 등에선 각 도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정부 규탄 집회가 열렸다. 테헤란 샤리프공대에만 수천명이 모였다. 이번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고 희생자 중 14명이 샤리프공대 졸업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은 "여객기 격추 사건의 원인을 '기계적 결함'으로 얼버무리며 은폐하려던 지배체제의 무능과 거짓말에 대한 이란의 민심이 분노로 변했다"면서 "이란 정부는 3일 동안 여객기 격추 사건의 진실을 감추었다"고 지적했다.
테헤란 소재 알라메흐 타바타바이 대학교의 학생시위를 주도한 미트라 자파리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 사고로 자국민들이 희생된 우크라이나와 캐나다 등 외국 정부들이 이란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이란 정부가 사고의 진짜 원인에 대해 시인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진 지배체제 자체에 대해 지속가능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어느 진영에 속하건 게임은 끝났다", 우리의 치욕, 무능한 지도자는 물러나라', '국민투표로 나라를 구하자' 등 수위 높은 구호를 외쳤다. 심지어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를 신격화하는 근본적 이념인 신정체제의 원리를 부정한다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시위 주도자 자파리는 "이번 시위는 보다 근본적인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있었던 시위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언론인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여객기 추락은 기술적 결함 탓이라는 정부 주장을 받아 썼던 이란 국영 TV와 라디오 방송국에선 보도국 관계자 일부가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이란국영TV 채널2의 인기 진행자인 겔라레 자바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시청자들에게) 사과한다"면서 "지난 13년간 TV에서 거짓말을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한다"고 썼다. 테헤란기자협회는 "우리는 국민들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성명을 냈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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