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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재판부 사찰’의 본질은, 대검찰청 ‘정보조직’에 있다

윤석열도 몸담았던 검찰 ‘정보조직’의 역사...끊이지 않았던 사찰 논란

김동현 기자 abc@vop.co.kr
발행 2020-11-30 09:11:24
수정 2020-11-30 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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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자료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사유 중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재판부 사찰 의혹’이 떠올랐습니다.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이 문건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성자와 작성 지시자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건이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작성됐다는 말입니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을 폭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해당 검사의 행위가 위법한지 여부는 ‘정보 수집을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여하’, ‘수집된 정보가 공개된 정보인지 여부’ 등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검사의 직무범위를 넘어섰는지 여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해당 검사는 관련 사건 공판에 관여한 검사도 아니고 대검 공판송무부 소속 검사도 아닙니다. 해당 검사는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입니다. 그의 직무는 ‘수사정보 수집, 관리 등’입니다.”

이탄희 의원이 쓴 글은 이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건을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수사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곳이지 재판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재판부에 대한 정보수집이 ‘관행’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 관행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관행이라면, 이 논란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법률대변인은 29일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윤석열 총장에게 묻겠습니다. 본인의 주장처럼 법령상 허용되고 공판유지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면, 과거에도 이러한 정보수집을 해 왔습니까? 그리고 작년말 기준 판사 2,872명의 성향에 대한 자료도 공소유지라는 목적으로 앞으로 계속 취합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만약 이러한 질문에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본인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윤석열 총장이 ‘예’라고 대답해도 위법합니다. 그 이유는 김한규 대변인이 지적해줍니다.

“국가기관이 본인 동의 없이, 법률에 의해 정당하게 권한을 받지 않고,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여 업무에 활용하는 것이 사찰입니다. 미행, 도청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사찰이 아니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였던 사법농단 수사시 공소장에도, 판사의 성향과 활동을 탐문 조사하여 정보수집하는 행위를 ‘사찰’이라고 명시한 바 있습니다.”

대검찰청(자료사진)
대검찰청(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문건을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재판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법률에 의해 정당하게 권한을 받지 않았는지’를 따져보겠습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은 대통령령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중에 제3조 6항 ‘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의 설치와 그 분장사무’에 따라 설치됩니다. 이 규정에는 수사정보정책관실이 다루는 정보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령에 규정된 정보의 범위는 ▲부정부패사건ㆍ경제질서저해사건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 ▲대공ㆍ선거ㆍ노동ㆍ외사 등 공공수사사건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 ▲신문ㆍ방송ㆍ간행물ㆍ정보통신 등에 공개된 각종 범죄 관련 정보와 자료 ▲그 밖에 중요 수사정보와 자료입니다.

규정된 정보의 범위에 ‘재판부 정보’는 없습니다. 이탄희 의원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판사 정보를 수집하라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업무 매뉴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상위법령 위반입니다.”

그러니까, 설령 공판담당 검사가 재판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해도 같은 정보를 대검찰청의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수집하고 문건으로 만드는 것은 위법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예전부터 많은 ‘사찰’ 논란 속에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온 검찰의 ‘정보조직’의 현재 이름입니다. 과거 정부에서 사찰 논란은 주로 공안기관의 정보조직에서 벌어져왔는데요, 검찰에도 정보조직은 존재했고 논란 역시 존재해 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찰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검찰의 정보조직

문준영 교수가 쓴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라는 저서에 따르면 해방 이후 검찰청법이 제정되기 전인 ‘과도검찰청법’부터 대검찰청에 ‘정보과’를 두게 했습니다. 검찰직속 ‘수사기구’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속수사기구는 1949년 12월 검찰청법에 ‘대검 중앙수사국 설치규정’이 마련되면서 구체화됩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중앙수사국’은 명목상 존재했고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유명무실 했습니다.

1961년 4월 대검찰청 중앙수사국이 본격적으로 출범합니다. 이후 중앙수사국은 수사국으로 이름이 바뀌고 1973년 특별수사부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검찰총장 하명, 정확하게는 대통령의 하명 사건들을 전담하는 검찰총장 직속기구 성격을 띠게 되면서 조직이 커지고 힘을 계속 키워 나갑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1982년에는 중앙수사부로 이름을 바꿉니다. 오랜세월 악명을 떨친 ‘대검 중수부’는 논란 끝에 박근혜 정부 시절에 들어서야 폐지됩니다.

1961년 중앙수사국이 본격화 될 때 4개의 과가 설치되는데요, 수사과, 사찰과, 특무과, 서무과였습니다. 눈에 띄는 과가 있습니다. 바로 ‘사찰과’입니다. 아예 부서명이 사찰입니다. 행정기관에서 국민 감시를 기본으로 했던 시절이었으니 놀랄 것도 아닙니다. 군사독재 시절은 중앙정보부, 안기부 등의 정보기관이 다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시절 검찰의 정보수집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은 급성장 합니다. 안기부 등의 공안기관들의 영향력이 여전했지만 검찰은 굵직한 강력사건과 비리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성장했습니다. 갈수록 여론이 집중되는 사건이 ‘공안사건’에서 ‘비리사건’으로 옮겨가는데, 이 중심에 ‘대검 중수부’가 있었습니다.

검찰 정보의 중심이 된 대검 중수부

대검 중수부는 1990년대 이후 활약상이 두드러지면서 ‘정보가 모이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1995년 3월 대검 중수부 산하에 범죄정보과가 설치됩니다. 본격적인 범죄정보 수집 기구가 만들어진 겁니다. 4년 후인 1999년 1월에는 대검 중수부의 범죄정보과를 확대, 독립해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설치됩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검찰의 모든 정보는 지난 1월10일 대검 차장 직속기구로 신설된 이 부서가 쥐고 있다. 범죄정보기획관 아래 부정부패-경제범죄사범 등 중요 범죄정보를 다루는 제1담당관, 공안사건 정보를 수집하는 제2담당관을 두고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 산하에 있던 범죄정보과를 확대개편한 것이다. 결국 범죄정보기획관은 대검 중수부와 공안부가 나눠 맡았던 정보 수집 기능을 한 손에 쥐면서 새 요직으로 떠올랐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직제상으로는 대검 차장 직속이지만, ‘검찰 내 국정원’이라 불리며 사실상 검찰총장에게 직접보고하는 ‘총장 직속기구’ 성격으로 존재했습니다. 때문에 총장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대검 중수부와 함께 총장 권한을 지탱하는 양 축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2000년대 검찰의 엘리트 코스 중 하나로 꼽히게 됩니다. 2004년에는 ‘기업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며 정보력이 뛰어나도 평가되던 이인규 검사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발령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인규 검사는 검찰 요직을 거치며 중수부장까지 맡게 됩니다. 이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죠. 윤석열 검찰총장도 이 코스를 밟았는데요, 2009년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있었습니다.

중수부에서 독립한 정보기구 대검 범정

‘범정’은 처음 설치된 1999년부터 계속 각종 사찰 논란을 낳았습니다. 범죄정보 뿐 아니라 정치인, 기업인, 고위관료 등에 대한 개인정보와 첩보까지 수집하면서 ‘정치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2005년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공개적으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새로운 정치사찰기관으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재천 의원은 “수사기관이 정보기관화 되어 범죄정보가 아닌 정치(언론, 기업, 노조, 시민단체 등)정보를 수집을 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온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박영선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검찰이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한 정황을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박영선 의원은 당시 “국정원에서도 그런 일을 대놓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2017년에는 대정부 질문에서 법무부 장관에게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민주당 관련 비리첩보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범정 폐지론이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범정은 검찰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꼽혀왔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중앙수사부 폐지에 이어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조직이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들어서는 시급히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이었던 문무일 총장은 취임과 함께 대검 범정에서 일하던 40여 명의 직무를 모두 중단하고 원소속 검찰청으로 복귀하라고 지시합니다. 범정을 개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후 조직을 유지하되 인원을 축소합니다.

2019년 문무일 검찰총장은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합니다. 당시 문무일 총장은 “정보수집을 하는 건 좋은데 일반정보는 수집하지 않고, 수사에 국한하여 수사정보만 다루고 수집하자는 취지에서 이름을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일반정보는 ‘동향조사’ 등의 사찰을 뜻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의 ‘정보수집’ 기능은 개혁의 대상으로 남았습니다. 2019년 10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대검찰청 등의 정보수집 기능을 즉시 폐지하라”고 권고합니다. 구체적으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과 수사정보1·2담당관을 폐지하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산하 수사정보과, 수사지원과와 광주·대구지검 수사과의 정보수집 기능을 즉시 폐지하라고 권고합니다.

당시 폐지 권고의 중요한 이유는 ‘선택적 정보수집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범죄정보 수집’이라고 하면서 실질에서는 범죄수사와 관계없거나 사찰에 해당하는 정보수집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이탄희 의원은 “당시 대검은 ‘범죄와 무관한 정보의 수집은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해명한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무검찰개혁위의 권고가 나온 1년여 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범죄정보’가 아닌 문건이 작성된 겁니다. 이번 문건은 그 당시 대검의 해명이 거짓이거나, 법무검찰개혁위의 권고가 옳다는 것을 방증해 줍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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